Flower Dance 5
불면의이쑤신
그다음에는 의외로 평범하게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담소했다.
윤대협은 8인이 인증샷 찍으려고 죄다 꺼내 놓은 굿즈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자기도 이거 있다든가, 이거는 어디서 사셨냐든가, 태웅이 형도 이거 있냐든가, 이거 여기 두 개 있는데 하나 가져가도 되냐든가,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었다.
윤대협이 굿즈에 손을 댈 때마다 그것의 주인들은 정말 기쁘면서도 약간 죽고 싶은 표정을 얼굴에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모두의 마음은 비슷했다. 하 완덕 이후에도 처분하지 않기를 잘했다. 오늘 이렇게 윤대협을 기쁘게 하는 데에 쓰이려고 너희들이 그동안 나의 부동산을 차지해 왔구나. 아무것도 청소하지 않은 게으른 나 만세. 맥시멀리스트 만세.
굿즈 말고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불면이 윤대협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면서 하드캐리를 했고 점차 다른 사람들도 입이 풀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때의 최애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아이돌을 눈앞에 두고 감히 침묵 속에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상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미칠 듯한 어색함을 꾹 참고 좋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모두 세상에서 제일 호의적인 인터뷰어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윤대협이 먼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 빼고 생카를 열다니. 나 이제 아이돌도 아닌데."
차마 완덕 파티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불면이 대충 역질문으로 무마했다.
"아... 그냥 올해는 우리끼리 조촐하게 하려고... 대협이는 생일날엔 뭐해? 계획 있어?"
윤대협이 으음 하면서 뒷머리를 긁적인다.
"아직 별 계획 없어요. 일단 일정은 비워 놓긴 했는데."
대놓고 보송이를 힐끔힐끔 보고 있다.
"태웅이 형이 놀아주면 좋고."
보송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레몬 타르트나 먹으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언제 이렇게 절친이 됐어?
"아니, 언제 이렇게 보... 조던 님이랑 친해진 거여?"
불면은 보송이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외침을 육성으로 내뱉고 말았다. 윤대협이 흥미진진하게 눈동자를 빛낸다.
"조던? 태웅이 형이 조던 님이에요? 왜?"
보송이는 부루퉁하게 대꾸한다.
"멋있잖아. 조던."
"마이클 조던?"
"조던이 또 있냐."
"농구 좋아해?"
"보는 것만..."
"몰랐어. 해 본 적은 없어?"
보송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윤대협이 잡아채듯이 묻는다.
"그럼 내 생일에 농구 가르쳐 줄까? 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진 선수였어."
"알아..."
"형은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어서 완전 유리해. 잘할 것 같아. 체육관 예약해야지. 재밌겠다."
아니 왜 순식간에 둘만의 세계야. 미남들의 꽁냥꽁냥 좋기는 한데. 저기 구석에 앉은 댑보러 언니는 왜 또 두 손으로 입틀막을. 그 마음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지금 너무나 씹덕스러운 이유로 얼굴이 새빨개져 계시는데 괜찮은 건지. 물론 괜찮지 않은 거 알지만. 나도 괜찮지 않지만...
아나 녹음했어야 하는데 망했다. 그제야 불면은 속으로 한탄했다. 진짜 내가 완덕을 하긴 했나 보네. 아무리 급습을 당했다지만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을 잊다니.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즐기기로 한다. 최선을 다했던 덕질의 마지막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미친 말도 안 되는 존나 쩌는 이벤트...
아직도 눈앞의 윤대협이 너무 가깝다. 잡티 하나 없는 눈부신 피부와 새까만 머리칼의 두 미남이 도란도란 담소하는 아름다운 광경. 서태웅이 미남인 건 언제나 알고 있었지만 윤대협 옆에서도 빛나는 걸 보니 한 차원 다르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역시 보송아 너는 진작에 데뷔를 했어야 하는 건데. 우리는 하루하루 열심히 생존해 온 한국 여성으로서 이 투 샷을 좀 더 즐길 권리가 있는 건데...
머릿속으로는 아무 말 대잔치, 뻘소리의 향연, 필터 없는 욕망의 백 분 토론을 펼치면서, 겉으로는 최선을 다해 하하 호호 성숙한 사회인의 담소를 이끄는 불면. 다른 멤버들은 속으로 조용히 그녀의 배짱을 존경했다. 모두가 열심히 적절한 리액션과 조심스러운 질문으로 지원 사격을 했다. 하나로 합심하여 전 최애를 포함한 덕톡회를 이어갔다.
사인회 때 미처 못했던 여러 가지 질문이 나왔고 윤대협은 전부 다 대답해주었다. 아이돌일 때는 답해줄 수 없었던 것까지. 왜 절대로 반말을 하지 않았는지. 정말로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걸 싫어하는지. 대체 왜 그렇게 이름을 못 외우는지. 솔로 활동은 언제부터 생각한 건지. 그때부터 은퇴를 생각한 건지.
왁자지껄한 웃음이 여러 번 터졌다. 조심스러울 수 있는 주제마저도 모두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과정이었다. 이 이야기를 다른 모든 팬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가벼운 질문도 막 나왔다. 가령 이런 질문이었다.
"그럼 이제 아이돌 아니니까 진짜로 말해 줄 수 있겠네."
"뭐를요? 갑자기 나 긴장되는데."
"이상형!"
"아~ 식상한 질문."
"모두가 물어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맞아, 그만큼 궁금하니까 그런 거지~"
"아무 데서도 말 안 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엄마 겁니다."
"아니 이거 미친 불효녀 아녀"
신나서 자기들끼리 소녀처럼 떠드는 고인물들 앞에서 윤대협은 잔잔하게 웃었다. 으음... 하고 고민하는 소리를 냈다. 진중한 침묵에 좌중의 흥분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윤대협은 처음에는 책상 끝을 내려다보았다. 조금씩 입을 열었다.
"나를... 제일 소중하게 여겨 주는 사람."
한 단어씩 조심스럽게 내려놓을 때마다 자석에 반응하는 자석처럼 서서히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
그 끝에는 서태웅이 있었다. 두어 시간이 넘도록 윤대협이 말할 때는 윤대협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봤던 서태웅. 물론 열심히 레몬 타르트 조질 때는 빼고.
"그런 사람이 좋아요."
서태웅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윤대협은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걸 감추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전 윤대협 팬들은 속수무책으로 숨을 멈춘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서태웅의 속눈썹이 서서히 내려갔다. 가지런한 손끝이 윤대협의 손등을 토닥였다. 서태웅은 이렇게 말했다.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런 사람."
윤대협은 서태웅의 손끝이 두드리고 간 자신의 손등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머지 여덟 명은 각각의 생각에 빠졌다. 지금 이거 녹화하고 싶다. 카메라 꺼내고 싶다. 나는 왜 녹음을 하지 않았는가. 미친내눈앞에서댑보라이브돌았다찢었다호모의신이시여감사합니다저는이제죽어도여한이없습니다천한일반인알페서인줄알았던내가사실은예언자노스트라다무스?! 참나 잘생긴 것들이 쌍으로 염병하네 그냥 사궈. 보송이 착한 줄 알았는데 윤대협이랑 연애하네... 기빨린다 집에 가고 싶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지 얘네 이제 집에 안 가나.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으러 나가면서 다른 누군가가 다 마신 일회용 커피잔을 모으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듯한 분위기가 됐다. 윤대협과 보송이도 벌떡 일어나 치우는 걸 도왔다. 제발 앉아있으라고 해도 말을 처듣지를 않는다. 결국 싹 치우고 나서 둘 다 이제 가봐야겠다며 현관문에 섰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고마워요. 절대로 못 잊을 것 같아요."
윤대협은 마지막까지 예쁜 말만 남기고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안녕안녕 손을 흔들어 준 다음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8인이 그 자리에서 흐느적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각자의 자세로 드러눕고 쭈그리고 엎어진 채로 신음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나 아무 기운이 없다. 기가 쪽쪽 빨렸다. 이게 무슨 일이니."
"언니 근데 어떻게 그렇게 말이 술술 나와요... 언니가 제일 마지막까지 댑프였는데... 진심 존경..."
"나 진짜로 최선을 다했다 리얼로 젖 먹던 힘을 다 씀... 이제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근데 나도 태어나서 이렇게 리액션 열심히 한 거 처음임..."
"응... 느껴졌어... 우리 진짜 열심히 했어..."
"아 두 시간 빡노동한 거 같애 너무 힘들어 미치겠어 당 떨어진 거 같애"
"우리 케이크 꺼낼까? 진심 나도 당 떨어짐"
"꺼내자 꺼내자"
두어 명이 기어가듯 냉장고 속 케이크를 찾으러 갔다. 나머지는 다 같이 드러누운 채로 천장을 보던 중에. 전 댑보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얀 양말..."
"엉?"
"보송이 양말... 하얀색..."
"그게 뭐?"
댑보러가 갑자기 좀비처럼 벌떡 일어나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아 왜 네가 보여 준 윤대협 유튜브 캡처 있잖아!! 맨날 나오는 양말 하얀 형!!!"
"헐? 아 설마. 이 세상에 하얀 양말이 한두 개여?"
"그런가... 하지만 형이라고도 했는데..."
댑보러는 다시 드러누웠다. 소파에 누워 있던 다른 고인물이 끼어들었다.
"그거 말만 형이라고 하고 여자는 아니었던 거 확실하지?"
"캡처 보여줬잖아 발 크기 보트만 한 거... 280은 가볍게 넘겠던데 여자면 더 신기하다."
"맞다 그때 얘기했다."
"우리 케이크 자르자!"
"커피 한 잔 더 시킬 사람, 지금 주문한다."
"저요~"
케이크를 먹으면서 아예 다른 화제로 넘어간 와중에도 댑보러는 혼자 중얼거렸다. 흰색 양말 수상해…
8인의 오타쿠들은 당분을 보충하고 기운을 차리자 방금까지 있었던 꿈 같은 두 시간에 대해 각자 얼마나 당황스러웠으며 무슨 생각으로 어디에 도망 가 있었는지 풀기 시작했다. 도파민 팍팍 터지던 현장이 여덟 개의 버전으로 다시 생생하게 재구성 되었다. 실감 나는 재현 속에 금방 웃음꽃이 만발했다.
누군가가 불면에게 물었다.
"언니 완덕 한다고 판 벌렸는데 제대로 탈덕문 닫힌 거 아니야?"
"그러게. 리터럴리 최애가 와서 직접 문 닫은 거 아님?"
"이제 또 작곡가 덕질 탑시드 되시는 거 아니냐고."
불면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깐 침묵했다. 정말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였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사실은 두 시간 내내 느끼고 있었다.
"너네니까 진짜 솔직하게 말하는 건데. 그냥... 다 이루었다는 느낌이야. 진짜로."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어. 생각해 봐. 윤대협을 계속 덕질하면서 이거보다 더 강렬한 경험이 가능할까?"
7명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불가능이지. 절대 안 되지. 있을 수 없지. 이제 팬싸는 그냥 달달한 주스 같다.
"솔직히 그냥 당분간 아무 덕질 안 해도 될 거 같음. 몇 년간 오늘 얘기만 해도 먹고 살 만한 도파민이다 레알로."
"완전 장난 아니지. 우린 탈덕한 지 오래됐는데도 감당이 안 되는데 언니는 어떻겠어..."
"아니 진짜 전설이지. 미쳤지. 말이 됨? 아놔 언니가 보송이 그때 잡아놔야 한다고 안 했으면 진짜 와."
"맞네 그 전시회 때 포섭 작전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빌드업 미쳤다. 진짜 아!!! 소주 깔까?!"
"술 꺼내자 꺼내자 마셔 그냥"
발 빠른 여성들은 미리 사 놨던 술과 안주를 우르르 테이블에 쏟아 놓기 시작했다. 케이크와 커피를 대충 정리하고 야무지게 개인 접시와 잔까지 챙겨 준다. 일 잘하는 한국 여성 8인이 모여 있으니 정리도 세팅도 순식간이다. 자연스럽게 술판이 이어졌다.
끝내주는 완덕의 날이었다.
탕.
호텔 주차장에 세워 둔 윤대협 차의 운전석과 조수석 문이 거의 동시에 닫혔다. 서태웅은 안전벨트를 매고 얌전히 출발을 기다렸다.
그런데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의아하게 윤대협을 쳐다본다. 앞만 보고 있다. 서태웅은 가라앉은 윤대협의 옆얼굴의 원인을 짐작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웃다가 나왔는데. 분명히 윤대협의 즐거움은 진짜였는데. 서태웅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유심하게 윤대협의 언행을 살피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왜 이렇게 처졌지... 서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눈빛에 걱정을 담고 있었다. 윤대협은 시선을 흘끗 돌려 서태웅의 눈을 스치자마자 그걸 알았다. 그래서 용기가 생겼다.
윤대협이 말했다.
"아까 내가 말했던 이상형 기억해?"
서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대협은 만족하지 못했다.
"뭐라고 했었는지 형이 다시 말해 줘."
서태웅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너를 제일 소중히 여기는 사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주먹을 꽉 쥐고 이어서 말했다.
"네가 제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
윤대협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해?"
"뭐가."
"지금까지 만난 적 없는 것처럼 말했잖아. 그런 사람."
서태웅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살짝 벌린 채로 굳은 사이에 윤대협이 그의 손을 가로챘다. 뜨거운 체온이 확 느껴질 정도로 꾹 잡은 채 자신의 가슴에 누른다.
"왜 그게 서태웅이 아닌 것처럼 말하냐고."
간절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게 여겨 주는 사람. 서태웅 아니야?"
서태웅은 제 손이 짓눌려 있는 가슴팍 너머로 윤대협의 심장 박동을 손에 잡을 듯이 느꼈다. 거의 비슷한 박자로 요동치는 자신의 맥박도. 세상이 두근거림으로 가득 찼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었다.
표정 하나 바꿀 여유 없는 상태로 서태웅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진실이 입술을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건 절대 안 져. 내가 최강이야."
자신이 말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서태웅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 세상에서 윤대협을 가장 좋아하는 건 서태웅이다. 아마도. 누구와 견주라고 해도 그 마음만큼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윤대협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서태웅은 시선을 피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잖아..."
다음 조건은 별로 자신 없었다. 그건 서태웅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서태웅의 손이 윤대협의 손아귀에서 슬쩍 빠져나가려는 듯이 물러섰다.
윤대협은 용서 없이 다잡았다. 아예 두 손으로 꼭 맞잡는다. 윤대협의 반듯한 이마가 서태웅에게 서서히 다가온다. 서태웅은 슬슬 물러서다가 조수석 창문에 뒤통수가 닿아서 멈췄다.
거의 서로의 이마가 맞닿은 상태에서 윤대협이 속삭였다.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
서태웅에게서 빠져나간 숨이 윤대협의 목소리와 섞인다. 두 배로 뜨거워진다.
"누군지 가르쳐 줘도 돼?"
서태웅은 이를 꾹 깨물고 각오를 다졌다. 어떤 이름이 나와도 축하해 주고 싶다는 각오. 왜냐하면 나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니까.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이 결연한 얼굴이 다가온다.
입술과 입술이 부드럽게 맞붙었다 떨어졌다.
서태웅은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입술을 조그맣게 벌린 채로 굳었다.
윤대협이 애달프게 눈썹을 찌푸리며 서태웅의 손끝에 입을 맞췄다.
"앞으로도 계속 가르쳐 줄게. 허락해 주세요. 나 생일이잖아."
살풋 웃으면서 조른다.
"생일 선물 주세요."
서태웅은 한참 동안 굳어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윤대협이 충분히 불안해질 만한 시간 동안.
그러나 윤대협은 재촉하지도 다른 곳을 보지도 시동을 걸지도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윤대협은 승부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서태웅이 간신히 꺼낸 말은 이런 거였다.
"아까 그건..."
"키스?"
"... 친구는... 안 하는 건데."
윤대협이 정답을 맞힌 학생에게 주는 상처럼 생긋 웃었다.
"맞아. 제일 소중한 사람한테 하는 거지."
서태웅은 다시 침묵했다. 생각에 잠겼다. 서태웅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 가족을 제외하고. 단 한 명이다. 답은 쉬웠다.
서태웅은 말보다 행동으로 결정하는 타입이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목을 쭉 내밀었다. 갑자기 들이대는 바람에 두 사람의 코와 입술이 부딪혀 뭉개졌다. 엉망진창인 와중에도 쪽! 귀여운 소리를 내며 입술을 뗀다. 기습을 돌려받은 윤대협이 자신도 모르게 소녀처럼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서태웅이 윤대협의 손을 꾹 쥐면서 복창했다.
"제일 소중한 사람. 맞아."
서태웅은 인간관계가 아주 좁다. 친구도 오랫동안 한 명이었고 최근에야 두 자릿수를 겨우 채웠다. 연인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연애 감정을 느낀 적도 없다. 친구, 연인, 우정, 사랑, 그런 것의 경계나 정의를 고민해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고 지금도 모호하게 여겼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았다.
키스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하는 거라면, 윤대협에게 키스하는 건 아무 문제 없다.
서태웅에게 윤대협은...
윤대협에게 서태웅도...
마음이 통했다. 정확히 같은 언어로 묶였다. 두 사람의 감정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깜짝 놀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살짝 아찔했다.
서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구겨지며 눈썹과 콧잔등이 찡그려졌다.
서태웅이 서투른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윤대협은 울고 싶어졌다. 행복해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 다시 한 번 입술을 맞댔다.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