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증후군 경보
불면의이쑤신
서태웅이 이상하다.
원래 코트를 벗어난 서태웅은 눈에 띄는 편이 아니다. 일단 말이 없다. 소리도 별로 안 낸다. 농구선수치고는 아주 큰 것도 아니고. 굳이 꼽자면 유니폼 갈아입을 때 너무 하얘서 물리적으로 돋보이는 정도인데. 땀에 전 천 쪼가리 벗어 던지기 바쁜 농구선수들이 그런 걸 눈치챌 리도 없다. 오히려 혼자서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너 거기서 뭐하냐고 주목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라커 룸이나 복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으면 조용히 와서 슥 끼어 있다. 아무 말 없이. 그야말로 병풍 같은 존재감이었다.
그런 서태웅이 요즘은 이상하다.
일단 자꾸 소리를 낸다. 커다란 한숨 소리. 뒤에 있는 줄도 몰랐다가 서태웅 한숨 소리 듣고 아이씨 깜짝이야 화들짝 놀란 피해자만 벌써 네 명째.
이겼는데 왜 한숨? 아니지. 서태웅은 졌을 때조차 한숨 쉬는 캐릭터가 아닌데. 조용히 연습하러 갔으면 갔지. 집에서 윤대협 끌고 나가서 원온원 조지거나.
그럼 어디 아픈가? 리그 전반기 1위를 이끈 에이스의 컨디션 난조 루머는 금방 이슈가 됐다. 동료들로부터 시작된 웅성거림은 곧 코치진의 귀까지 들어갔다. 결국 서태웅은 감독님과 면담이 잡혔다.
리그에서 젊은 편에 속하는 감독은 사무실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앉은 서태웅의 얼굴을 심란한 마음으로 관찰했다. 약간 눈 밑이 그늘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들은 얘기에 시야가 끼워 맞춰지고 있는 건지. 냉정하게 보면 평소와 다름없는 사이보그 무표정 같기도 하고…
“태웅아.”
“네.”
“혼내려고 부른 거 아니고.”
“네.”
“뭐 심각한 것도 아니야. 그냥 요즘 잘 지내나 싶어서.”
침묵.
이건 확실히 이상 징후다. 서태웅은 좀 무뚝뚝할 뿐이지 아무 이유 없이 감독의 질문을 씹을 정도로 안하무인은 아니다. 답을 모를 때 약간 고개를 갸웃하는 평소의 표정과도 다르다.
저건 틀림없이 대답을 하기 싫다는 표정이다. 시선을 아래로 피하면서 한쪽 눈 바로 아래 광대뼈가 살짝 떨린다. 회피 풀가동. 말은 없어도 시선은 항상 뚫어질 정도로 똑바로 바라보는 평소의 서태웅이 아니다. 감독은 슬슬 본격적으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뭐 걱정이라도 있니?”
서태웅은 잠깐 눈을 깜빡였다. 속도에서 심란함이 느껴졌다. 고민이 끝난 듯이 후우. 말로만 듣던 그 한숨을 어깨부터 가슴까지 푸욱 내뱉더니. 불분명한 발음으로 짧게 중얼거렸다.
“저 그거. 안 나가면 안 돼요?”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상체를 기울이며 오른쪽 귀를 내밀었다.
“그거? 그거가 뭔데?”
서태웅은 회피 풀가동의 살짝 숙인 고개 각도는 그대로 눈동자만 도륵 치떴다. 아까보다 좀 더 작게 중얼거린다.
“올스타전…”
이번에는 감독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쉴 차례였다.
“태웅아. 되겠니?”
그럴 줄 알았다. 훈계가 가득 담긴 말투에 서태웅의 담담한 무표정이 아주 약간 일그러졌다. 불만이 잔뜩 들어간 눈썹 가운데가 모아지며 눈매가 가늘어진다.
간만에 사람다운 서태웅의 표정을 보고 감독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거는 내가 어떻게 해 주고 싶어도 팬들이 투표하는 거잖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알아요…”
말끝이 기어들어 간다. 항상 넵. 넵. 든든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에이스의 색다른 모습. 귀엽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감독은 놀리는 투로 물었다.
“너 뭐 입장할 때 춤추기 싫어서? 올해는 후배들 시켜.”
서태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긴. 감독이 알기론 서태웅은 지금까지 올스타전에서 팬들이 시키는 걸 거절한 역사가 없다. 그것이 여장이든 인형 옷이든 아이돌 댄스 챌린지든.
서태웅은 그 모든 난리통을 팬들이 시킨 건지 아닌 건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냥 팀에서 하라면 두말없이 했다. 평소랑 완전히 똑같은 사이보그 무표정으로. 눈빛만큼은 괴상할 정도로 형형했다. 어쨌든 올스타전도 승부라는 생각인지.
윤대협과 공개 결혼한 시즌엔 난리도 아니었다. 같은 팀이라서 아예 손 붙잡고 동시 입장. 장내 아나운서가 결혼식 사회 보듯이 이름을 외쳐 줬다. 둘 다 한복 치마저고리를 대충 헐렁헐렁 걸쳐 입고 양볼과 이마에는 연지 곤지를 찍고 정수리엔 족두리까지 야무지게 매단 꼬락서니였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손을 꼭 붙잡고 기운차게 뛰어와서 슬라이딩하듯이 관객 앞에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양팀 감독 앞으로 쪼르르 뛰어가서 때 이른 세배를 갈기고 뭔가 바라는 듯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객석에서 환호와 폭소에 이은 세! 뱃! 돈! 세! 뱃! 돈! 연호가 터지는 바람에 감독들은 주머니를 뒤져 대충 뭐라도 쥐여줘야 했다. 부부 세배단은 보란 듯이 하이 파이브를 갈기고 한복 주머니에 지폐를 쑤셔 넣었다. 나중에 궁금투성이 팬들이 중계화면 캡처해서 도대체 얼마를 뜯긴 건지 피해 액수를 집계해 봤다. 꽤나 짭짤했다.
그러니까 얘는 올스타전으로 손해 본 게 없잖아? 감독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오히려 용돈 받고. 좋은 시간 보냈구먼.
아니면 쉬고 싶나? 아무리 올스타전은 어디까지나 축제이고 최대한 잦은 교체로 선수들의 체력 소모를 방지한다 해도 시합은 시합. 팬 투표와 선수단 투표와 감독 선발까지 거쳐도 명단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의 유일하게 위안이 바로 집에서 푹 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달콤한 휴식이었다.
농구에 미친 서태웅 특성상 아닐 것 같으면서도 일단 물어본다.
“혹시 체력이 좀… 후달리니?”
“전혀요.”
눈에서 레이저 나온다. 어휴 무서워. 그렇게까지 정색할 필요 있나.
“힘들면 덩크슛 콘테스트만 나가도 되고. 아님 이번에 내가 특별 심판이니까. 말도 안 되는 걸로 파울 먹여서 빼 줄까?”
“괜찮습니다. 경기하고 싶어요.”
요지부동이다. 스태미너 약점이라고 논란됐을 때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더니. 은근히 긁혔나 보네. 하긴 오피셜로 가장 신경 쓰는 기록이 전 경기 출장이라고 했으니까. 감독 입장에선 약점 논란도 서태웅 보유 구단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만 보여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알아서 잘 아껴 쓸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입장이랄까.
무엇보다 선수의 의지가 너무 뚜렷해서. 승패의 향방이 영 점 몇 초 안으로 빨려 들 때가 많은 농구에서 그런 집착적인 멘탈은 무기다.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잘 하고 의욕적 선수를 괜히 오바해서 아껴 쓰겠다고 기싸움할 필요가 없다. 너무 폭주하지만 않으면 되지. 팬들과 선수단의 압도적인 지지로 매년 출전 중인 올스타전을 말릴 이유까진 될 수 없었다.
“그럼 뭐가 그렇게 싫은 거야. 그거? 자유투 방해로 놀리는 거?”
서태웅은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렸지만 다시 한 번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자유투 방해는 비단 올스타전 얘기만은 아니긴 했다. 사상 최초 프로농구 현역 부부의 탄생이라니. 한 점 한 점에 진심인 농구팬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떡밥은 없었다.
서태웅 홈 응원단은 두 사람의 맞대결마다 윤대협 전용 자유투 방해 도구로 백보드 뒤쪽 관객 전원에게 서태웅 얼굴 사진을 인쇄한 가면을 뿌렸다. 양쪽으로 기괴하게 휘어진 2차원의 서태웅 무표정이 줄지어 늘어서서 신나게 응원 도구를 휘두르는 단체샷의 박력은 엄청났다. 심지어 시야 보장을 위해 눈 부분이 뻥 뚫려 있었기 때문에 더욱 기괴했다.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는 눈 뚫린 서태웅 얼굴을 달고 단체로 섹시포즈를 선보였다.
별 소용은 없었다. 윤대협은 평소랑 전혀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얄밉게 자유투를 성공시켰다. 성공시킨 후에는 바로 뒤돌아서는 대신 목을 쭉 빼서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기괴한 서태웅 얼굴 밭을 1초 정도 관찰한 뒤에 백코트했다. 그 와중에 궁금했나 보다.
당연히 윤대협 홈 응원단도 정확히 똑같은 자유투 방해를 시도했다. 재미없게도 두 사람 다 자유투 성공률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실패했을 때 관객들의 즐거움이 세 배로 치솟았으니 보람은 있었다.
특히 서태웅은 성공할 땐 변함이 없을지언정 실패할 땐 확실히 긁힌 것 같았다. 중계 카메라에 다 잡히도록 큰 소리로 칫, 하고 혀를 차서 최선을 다해 깝쳐댄 윤대협 홈 관중의 가슴을 뿌듯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 문자 그대로의 얼굴 공격도 두 번째 경기부터는 타격이 없는 게 눈에 보였다.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었다.
양쪽 응원단들은 시즌 내내 신혼부부 떡밥을 연구하며 최선을 다했다. 윤대협 오른쪽 얼굴 사진을 왼쪽에 두고 서태웅 왼쪽 얼굴 사진을 오른쪽에 맞붙여 발로 합성한 듯한 키스 사진을 농구선수만큼 거대하게 뽑아 온 적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자유투 던지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상대방에게 타격이 더 심한 것 같았다.
올스타전이 피크였다. 선수만 올스타가 아니고 응원도 올스타. 각 구단의 명물 자유투 방해가 총출동하는 시간. 윤대협과 서태웅은 같은 팀이기 때문에 상대편 응원단은 노다지를 만난 거나 마찬가지.
서태웅이 자유투를 넣을 땐 다 같이 윤대협의 헤어스타일을 흉내 낸 삐죽삐죽한 종이 가발을 머리에 둘렀다. 단체 윤대협의 시각 공격. 단상 위의 응원단은 무려 세팅 가발을 뒤집어썼다. 당사자인 윤대협은 빵 터졌다. 아예 배를 잡고 한참 웃었다.
자유투 라인에 선 서태웅은 백보드 뒤로 그 참상을 힐끗 쳐다봤다. 콧방귀를 한 번 뀌고. 여유롭게 자유투 두 개 연속 성공. 관중들은 아쉬운 탄성을 뱉으며 머리에 쓴 삐죽삐죽한 종이를 내려놓았다.
하나도 안 닮았어. 서태웅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서태웅이 질색한 건 서태웅을 향한 자유투 방해가 아니었다. 윤대협을 향한 자유투 방해였다.
상대편 응원단이 아이디어를 얻어 온 건 다름 아닌 서태웅 홈 구단의 자유투 방해 전략이었다. 그러니까 농구선수만큼 거대하게 발로 합성한 키스 사진.
그런데 이번에는 인물이 세 명이었다. 왼쪽에 윤대협. 가운데 서태웅. 오른쪽에… 마이클 조던.
아 이거 초상권 괜찮나요? 미국에서 항의받는 건 아니겠죠? 저희 중계진은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빵 터진 와중에도 해설진은 자못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윤대협이 자유투 라인에 서자 관중들은 가운데의 서태웅 사진을 윤대협 쪽으로 슬슬슬 기울였다가 다시 오른쪽의 마이클 조던으로 서서히 갖다 붙이며 막장 드라마를 연출했다.
윤대협은 바닥에 공을 두 번 튕기더니. 발칙하게도 라인에 서 있는 서태웅 쪽으로 고개를 돌려 흘끗. 쳐다보았다. 반응을 체크하는 것처럼.
오우. 허허허. 그 모습을 똑똑히 포착한 중계진이 탄식했다.
서태웅의 이마빡에 핏줄이 솟아오르는 동시에 슛. 깔끔하게 통과. 소리조차 경쾌했다.
이번에도 역시 던지는 놈보다 지켜보는 놈이 더 긁혔다. 백코트하며 서태웅은 야무지게 주먹을 쥐고 윤대협의 삼각근을 퍽 소리 나게 가격했다. 아야야. 인텐셔널 파울 아닌가요? 윤대협은 얼른 심판에게 어필해 봤지만 안타깝게도 특별 심판이 당시 윤대협네 감독이었다. 엄하게 고개를 저으며 노 파울 선언. 서태웅은 뻔뻔하게 두 손바닥을 펼치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 귀여워서 봐준다. 윤대협은 끝까지 웃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것들은 왜 신성한 코트에서 연애질을 한 거지? 그것도 감독이며 선배 후배 아니 전 국민이 다 보는 앞에서. 눈꼴셔 죽겠네. 풍기문란 단속을 위해 진짜로 서태웅이라도 빼야 하는 것 아닌지?
하지만 그건 감독이 서태웅을 올스타전 출전 명단에서 제외하고 싶은 이유가 될 순 있어도 서태웅 본인이 빠지고 싶은 이유일 순 없었다. 서태웅의 올스타전 보이콧 사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슬슬 답답해진 감독이 서태웅을 다그쳤다.
“그럼 도대체 이유가 뭔데? 어?”
서태웅의 입술이 더욱 뚱해졌다. 고집이 뚝뚝 묻어나오는 얼굴. 감독은 윽박이 먹히지 않자 얼러 보기로 한다. 요즘 애들 힘들다.
“말을 해야 해결을 해 줄 거 아니냐. 말을.”
굳게 닫혀 있던 서태웅의 아랫입술이 약간 느슨해졌다. 단순한 자식.
서태웅은 그러고도 말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감독은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했다.
삼 초 후에도 아무 대답 없으면 귀한 감독 시간 낭비하지 말고 썩 꺼지라고 소리칠 것 같은 지경에 다다랐을 때. 서태웅의 조그마한 입이 열렸다.
“윤대협…”
“어. 그래. 윤대협. 니 남편.”
다음 단어는 정말 작은 소리라서 진짜로 안 들렸다. 감독의 상체가 앞으로 돌진했다.
“뭐라고?”
“… 같은 편이 아니잖아요.”
“뭣이?”
이번에는 안 들려서 되물은 게 아니었다.
어조의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서태웅이 눈치 없이 고개를 치켜들고 목소리를 키웠다.
“윤대협. 같은 편 아니라서. 나가기 싫었어요.”
그러고 다시 입을 꾹 다문다. 아무리 사이보그라도 이건 좀 부끄러웠는지 목덜미가 서서히 발개지고 있다…
감독은 오른손을 서서히 들어 제 이마를 퍽. 소리 나게 짚었다. 하… 나야말로 감독하기 싫어진다…
윤대협은 올 시즌을 앞두고 이적했다. 플레이오프 탈락의 충격을 만회하고 이번에야말로 우승을 노리기 위해 FA 시장에 적극 뛰어든 인기 팀에서 두둑한 계약금을 투자해 윤대협을 영입했다. 좋은 일이었지만.
단 한 가지. 처음으로 올스타전에서 서태웅과 팀이 갈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진 쭉 같은 팀이었군. 감독 입장에선 아무래도 좋은 정보라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서태웅에게는 꽤 중요한 정보였던 모양이다…
피차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감독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해 보려고 애썼다.
“그래… 그래서. 진짜 안 나갈 거냐?”
“아니요.”
“너 고작 이런… 이런 이유로 막 한숨 푹푹 쉬고 그랬어? 선배들 후배들 다 있는 데서?”
“몰랐어요.”
“너 하도 땅이 꺼져라 한숨 쉬어서 애들이 걱정해서 나한테까지 말한 거야.”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정수리가 보이도록 숙인다. 정중한 사죄를 받으니 또 뭐 그렇게까지 잘못한 건 아닌 것 같고. 애가 쌍욕을 하고 다닌 것도 아니고 대놓고 투덜거리고 다닌 것도 아니고 저도 모르게 한숨 좀 쉰 것뿐인데.
그냥 이 모든 해프닝이 싫다. 윤대협과 서태웅의 금슬에 대한 정보를 그만 알고 싶다. 감독은 진정으로 이 독대를 후회하는 마음으로 손을 파리 쫓듯이 설레설레 내저었다.
“됐어. 별것도 아닌데. 불러다 캐물은 내가 미안하다. 들어가 봐라.”
“네.”
서태웅은 벌떡 일어나 인사를 꾸벅 남기고 사라졌다. 감독은 즉석에서 퇴근을 결정했다. 오늘은 정신적으로 이미 초과 근무다. 산재가 멀지 않았다.
감독과의 독대로 서태웅의 저기압은 피크에 달했다. 이래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굳이 물어봐 놓고 혼내시다니. 최악이다. 최악의 하루.
게다가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윤대협과는 이제 올스타전에서도 다른 팀이다.
사실은 두 해에 걸쳐 있는 프로농구 시즌을 기준으로 한 해를 세는 서태웅에게 올스타전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명절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모든 구단 사람들이 다 모인다. 얼추 일가친척 다 모이는 분위기가 난다. 티켓도 순식간에 매진. 투표해 주는 팬들한테 덕담도 많이 듣고. 재롱도 선보인다. 서태웅은 특히 덩크슛 콘테스트에 최선을 다했다.
윤대협을 이기는 건 시즌이면 충분하다. 그때는 오히려 같은 편이 아닌 쪽이 좋았다. 마주 볼 수 있으니까. 넘어설 수 있으니까. 다시 한 번,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도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명절에는 같은 팀이 좋은데. 실제로는 두 해에 걸쳐 있는 프로농구 시즌을 기준으로 한 해를 세는 서태웅은 일 년에 한 번쯤은 윤대협의 패스를 받고 싶었다.
물론 그런 기회는 국가대표 경기도 있다. 다 핑계다. 그냥 일가친척 다 모인 명절에는 같은 편이고 싶었던 거다.
어차피 윤대협과 서태웅은 평생 같은 편이기로 했지만.
또 남들 앞에서 그럴 수 있는 시간은 많이 없었으니까.
서태웅은 데뷔 시즌부터 최다 득표로 올스타전 명단에 올랐다. 그때는 아직 아무도 윤대협과 서태웅이 연인인 줄 몰랐다. 별로 숨기지는 않았는데.
특히 같은 팀이 된 올스타전에선 대놓고 사이좋게 다녔다고 생각했다. 서태웅이 먼저 하프라인 슛 콘테스트 대기하는 윤대협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기도 하고. 윤대협이 아무 활약도 하지 않고 백코트만 하는 서태웅한테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고. 하프타임 때 스트레칭도 둘이서 같이 했고.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윤대협이 서태웅한테 앨리웁 패스도 쏴 줬다.
재밌었는데. 서로 다른 팀일 땐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렇다고 피 튀기는 국가대표 경기에서 즐길 수도 없는. 사소한 시간들. 별것도 아니었지만 서태웅으로선 코트에서 데이트하는 기분이었다. 그다음 시즌은 아직 결혼식 전이었지만 혼인신고를 한 건 모두가 알았다. 그래서 대놓고 커플 한복도 입고. 감독님들한테 용돈도 받고. 정말 명절 같았다. 재미있었다. 자유투 방해는 유치했지만. 그다음 해부터는 다들 질렸는지 안 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명절에도 다른 팀이라니.
서태웅은 울컥 서러워졌다.
집에 돌아온 저를 맞이하는 윤대협의 웃는 얼굴을 본 순간. 치밀어 오르는 반가움과 억울함을 참지 못한 서태웅은. 야무지게 말아쥔 주먹을 윤대협의 삼각근에 날렸다. 너 때문이잖아. 괜히 이적해서. 물론 좋은 조건이었지만. 축하하지만. 열받는다고. 널 너무 좋아해서.
아야야. 윤대협은 커다란 고양이의 냥냥 펀치를 받은 듯이 반응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으면서 살짝 맞아 줬다는 뜻이다.
갑자기 주먹을 맞아도 윤대협은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는다. 평소랑 똑같이 잘해 준다. 서태웅은 루틴을 되찾은 고양이처럼 금방 진정됐다.
배우자의 너른 품에 안겨 잠들기 직전. 서태웅은 최종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집에 오면 같은 편이다. 그럴 뿐 아니라 같은 침대에 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해 올스타전에서 서태웅은 털이 복슬복슬한 까만 고양이 귀 모자를 쓰고 입장했다. 양옆으로 축 늘어진 분홍 젤리 모양 장갑에 손을 끼우고 꾹꾹 누르면 연결된 고양이 귀가 까딱까딱 움직이는 모자였다. 십년 전쯤 유행한 아이템이 돌고 돌아 서태웅에게 왔다. 평소 신경 쓰던 헤어스타일이 다 눌려도 서태웅은 군말 없이 하루 종일 모자를 쓰고 다녔다. 누가 부르면 대답 대신 분홍 젤리 장갑을 꾹꾹 눌러 귀를 까딱거렸다. 시키는 대로 다 하는 평소의 서태웅이었다.
그 아이템에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다름 아닌 윤대협이었다. 다른 팀인 주제에 하루 종일 서태웅 곁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서태웅 대신 분홍 젤리를 꾹꾹 눌러대는 바람에 양쪽 귀가 엄청난 스피드로 까딱까딱 움직였다.
서태웅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결국 서태웅에게 결혼의 장점이란 대다수의 불만은 윤대협과 같은 침대에 누우면 해결된다는 점에서도 발휘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에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같은 침대에 누울 수 없을 때.
치명적이었다.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프로 농구도 팬데믹의 직격을 맞았다. 시즌이 진행되던 중 남은 경기를 취소당했고 이후로도 무관중 경기였다. 실내에 사람이 밀집되는 경기장 구조에 관객과 선수, 선수와 선수의 거리가 가까운 콘택트 스포츠. 농구는 비말 감염 바이러스에 상당히 취약했다.
그날은 둘 다 경기가 있었고 서태웅의 귀가가 좀 더 빨랐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윤대협이 전화를 했다.
[도착했어?]
“어.”
[나도 다 왔어.]
“저녁.”
[라면 어때?]
“콜.”
단어를 듣자마자 매콤하고 기름진 국물이 확 당긴다. 전화를 뚝 끊자마자 서태웅은 커다란 냄비를 꺼내 여섯 개 분량의 물을 채웠다.
스프를 하나하나 뿌리고 면을 넣을까 말까 할 때 도어락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스 타이밍. 와르르 쏟아 넣고 뚜껑을 닫은 다음 남편을 마중 나간다.
“헤이.”
“헤이. 맛있는 냄새 난다.”
들어오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술을 찾아 쪽. 연애할 때부터 거른 적 없는 루틴이었다. 장거리 연애 시절의 영상통화 버릇이 그대로 남았다.
“아까 시합 전부터 라면 먹고 싶었는데. 고마워. 잘 먹을게.”
서태웅은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태웅은 엄격하게 식단을 지키는 편이었지만 가끔은 시즌 중에 라면이 엄청나게 당길 때가 있었다. 탄산음료는 안 마셔도 라면은 먹었다. 그것도 한 번에 세 개씩. 특히 시즌 중엔 든든하게 열량을 넣는 편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면 벽 하나를 거울로 채운 피트니스 룸에서 서로 눌러 주며 스트레칭 한 판 하고 바로 잔다. 사실 스트레칭 중에도 서태웅은 기절 직전이다. 피곤하고 배부르고. 윤대협이 겨우겨우 일으켜서 씻으러 간다. 잠옷까지 뽀송뽀송 갈아입었을 때.
콜록.
갑자기 윤대협이 기침을 했다.
어라. 그냥 재채기가 아니라 확실히 기침이었다. 그러고 보니 목이 좀 간지러운데. 대체로 자신의 컨디션에 낙천적인 윤대협도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경계심이 앞섰다. 괜히 이마를 짚어본다. 미열이 있는 것도 같고. 확실하진 않았다. 윤대협은 평소에도 남들보다 체온이 좀 높았다.
일단 침착하게 마스크를 찾는다.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하고. 벌써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의아하게 몸을 일으키는 서태웅에게 고한다.
“태웅아. 나 잠깐 자가진단키트 사러 갈게.”
“윤대협 아파?”
“목이 좀 간지럽네. 열은 잘 모르겠고. 집에 체온계 있나?”
“모르는데.”
“오케이. 그것도 사 올게.”
다행히 약국이 문을 열었다. 이것저것 사 온 윤대협은 알아서 피트니스 룸에 스스로를 격리했다. 푹신한 요가매트 두 개를 펴고 그 위에 주로 낮잠 잘 때 거실에서 쓰는 담요를 펼친다.
체온계에 표시된 숫자는 37.8. 미묘하다. 미열 정도는 되나. 자가진단키트 결과는 음성이었다. 윤대협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코를 좀 더 푹 찔렀어야 했나. 내일 병원 가서 PCR 해야겠는데.
방문이 빼꼼 열린다. 서태웅이 고개를 내민다.
“윤대협 코로나야?”
“음성 나왔어.”
“그럼 빨리 자자.”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일 병원 가려고.”
윤대협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까 집에 오자마자 뽀뽀하지 말 걸. 라면도 같이 먹지 말 걸. 스트레칭도 각자 할 걸. 그중에서도 제일 밀접한 접촉은 역시… 아까 집에 오자마자 뽀뽀하지 말 걸…
“오늘은 여기서 잘게.”
순식간에 서태웅의 볼따구가 부루퉁해졌다.
“싫어.”
“안 돼… 혹시 모르잖아.”
“싫어.”
“나도 싫은데… 어쩔 수 없어.”
차마 세 번은 거절하지 못한 서태웅이 입술을 일자로 꾸욱 다문다. 윤대협은 착잡한 마음으로 고집 센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웬만한 건 형이 져 주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이런 건 어쩔 수 없다. 혹시라도 둘 다 걸리면 큰일이니까.
결국 서태웅은 혼자서 커다란 안방 침대로 돌아가 벌렁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 스트레칭할 때만 해도 기절 직전이라 윤대협이 겨우겨우 일으켜 줬는데. 옆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윤대협의 베개를 쳐다본다. 텅 비어 있다. 윤대협의 따끈한 팔뚝이 없다.
너무 허전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서태웅은 무려 이십 분을 모로 누워 윤대협의 텅 빈 베개만 바라보았다. 만약 윤대협이 내일 병원 가서 양성이 뜨면. 최소 5일에서 7일은 이렇게 허전한 침대에서 홀로 잠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큰일도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었다. 서태웅은 결혼 이후 빠르게 윤대협의 체온에 익숙해져 버렸고 이젠 더 이상 수면의 필수 조건 중 하나였다. 침대나 베개나 이불 같은 게 없어도 아무 데서나 잘만 잠드는 서태웅에게는 사실상 유일한 수면 조건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원정 경기 후에도 두 사람 모두 끝끝내 당일 귀가를 고집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같은 침대에 윤대협이 없는 건 너무 취약한 환경이었다. 서태웅은 눈을 감고 속으로 세 번 복창했다.
윤대협 코로나 아니게 해주세요.
윤대협 코로나 아니게 해주세요.
윤대협 코로나 아니게 해주세요…
간절하게 되뇌다 보니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잠든 서태웅의 핸드폰이 밝아졌다. 윤대협이 보낸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남편 저 물 한 잔만 문밖에 놔 주면 안 될까용]
윤대협이라고 쉽게 잠이 올 리 없었던 것이다.
[태웅아?]
[자는구나]
[잘 자]
[사랑해]
다음 날, 윤대협의 PCR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서태웅은 다행이라는 감정과 하룻밤의 안락한 수면을 날렸다는 억울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야무지게 말아쥔 주먹을 윤대협의 삼각근에 날렸다. 아야야. 윤대협은 언제나처럼 고양이 냥냥 펀치 대하듯 반응했다. 피할 수 있는데도 다 맞아 주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