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 Dance 1
불면의이쑤신
에취.
서태웅이 스프레이 뿌리는 것 같은 재채기를 했다. 코끝이 얼얼하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코트 소매를 붙잡고 차 옆으로 데려갔다. 코 앞에서 정중하게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서태웅에게는 얼떨결에 들어가는 옵션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히터가 돌아간 듯 차 안은 따스했다. 한숨을 내쉬어도 더 이상 하얗게 얼어붙지 않았다. 추워서 잔뜩 굳어 있던 서태웅의 어깨에서 녹듯이 힘이 빠졌다.
윤대협의 차에 탄 건 두 번째다. 낯익은 듯 오랜만이라 기분이 두 배로 이상하다. 힐끔 윤대협 쪽을 곁눈질했더니. 아예 핸들에 팔꿈치를 기대고 이쪽으로 상체를 돌리고 있다. 처음 사옥에서 둘이 만났을 때처럼 한참을 빤히 쳐다본다. 약간 감격이 들어있는 표정으로.
"진짜 오랜만이지. 2년 넘었나?"
서태웅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아니. 지난달에 봤는데. 콘서트에서."
윤대협은 짧게 웃었다.
"하. 치사하네. 나는 못 보는데 혼자서만."
생긋 휘어지는 이목구비.
"그래서 안 보고 싶었어?"
서태웅은 거짓말에 소질이 없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보고 싶었어."
서태웅에게도 나름의 감회가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윤대협을 본 건 말마따나 2년도 훨씬 넘은 게 맞다. 얼굴은 좋아 보이네. 다행이네.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순순한 인정이 의외였을까. 윤대협의 입술이 묘한 곡선을 그리면서 말려 들어갔다. 웃음을 참는 건지 울음을 참는 건지. 아직 완전한 실감을 찾지 못한 채로 묵묵히 그걸 쳐다보던 서태웅은 무언가를 연상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윤대협의 솔로곡. 의미심장한 가사.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언제 결정했어?"
"뭘?"
"은퇴."
"아."
맞다. 그게 있었지. 하는 태도로 윤대협이 박 터지는 소리를 냈다. 으음 하면서 턱 아래를 살살 긁는다.
"결정 자체는 꽤 됐지..."
"오늘 기사..."
"아 그거. 그건 지난달에 다 얘기 끝난 거야."
서태웅의 눈이 커졌다. 윤대협은 자상한 말투로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분들 원래 새해에 무조건 열애설 내시잖아. 나도 몰랐는데 보도 전에 미리 소속사엔 언질을 준대. 사실 확인도 해야 하고 대응할 시간도 주고. 보도 수위도 어느 정도는 조절하나 봐. 근데 이번엔 우리 후배들이 딱 걸렸네."
R엔터는 2년 전에 N그룹 후속으로 걸그룹을 출격시켰다. 처음부터 공들인 티가 났고 제법 잘됐다. 해외에서도 중소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1군급 주목을 받는 중이었다. 이 시점에 열애설은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뭐... 트레이드 같은 거지. 은퇴 단독 인터뷰로 퉁치기로. 나도 이런 방식으로 밝힐 생각은 없었는데. 그렇게 됐네."
윤대협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쩝 다셨다.
"그래도 감독님이 이왕 밝힐 거면 오해 살 기사 나가지 않게 제대로 하자고. 여러 번 인터뷰도 하고 많이 도와주셨어. 그분들도 의외로 취재를 열심히 하시더라고."
서태웅은 윤대협의 담담함이 이상했다. 10년 동안 쌓아 온 모든 것을 다 두고 떠난 사람 같지 않았다. 지금까지 키워 준 소속사와는 아무 갈등이 없었을까? 감독님, 감독님 부르던 유명호 대표와는? 멤버들과는? 간단한 상상만으로도 서태웅은 벌써 숨이 막히는 기분인데 윤대협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오히려 서태웅의 안색을 살피더니. 씨익 웃었다.
"기사 제대로 안 읽었구나."
니가 읽을 틈을 안 줬잖아. 서태웅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켰다. 윤대협이 불러 세우기 전 그대로 디스패치 기사가 화면에 가득했다. 찬찬히 읽어 내려간다. 윤대협은 옆에서 턱을 괸 채로 핸드폰 빛이 하얗게 반사된 서태웅의 집중한 옆모습을 물끄러미 감상했다.
기사는 특유의 유치하고 필력 없고 과장된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문장으로 가득했다. 구조도 엉망이었다. 윤대협과 은퇴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시작하더니 중간부터 윤대협의 커리어를 읊다가 유명호 대표며 멤버들의 코멘트를 갑자기 끼워 넣으면서 중구난방 이어졌다.
첫머리엔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무슨 엄청난 사연이 있어 갑자기 은퇴한 것처럼 어그로를 끌었는데. 다 읽어보면 결국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고 싶어서.' 그게 다였다. 지금까지 커리어와 상관없이 출발하고 싶어서.
기사에 따르면 윤대협은 여전히 R엔터 소속이었다. 다만 더 이상 N그룹 멤버가 아니고.
새로운 계약은... 유명호 대표에 따르면, R엔터 최초의 전속 작사가 겸 작곡가였다.
서태웅은 기사를 읽다 말고 얼굴을 홱 돌려 윤대협에게 물었다.
"아키라가 너라고?"
윤대협은 반가운 미소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akira는 윤대협 그룹의 2집 수록곡으로 시작해 모든 앨범 크레딧에 빠짐없이 등장한 작사가다. 솔직하고 간결하고 다정한 가사가 특징이었다. 알파벳 다섯 글자 외에는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성별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윤대협 그룹 팬들만큼은 꾸준히 내적 친밀감을 쌓아왔다. 4집에서 제일 히트 친 곡이 그의 작품이었다. 그때 주목받으며 실력이 알려졌는지 이후로는 다른 가수 노래에도 종종 등장했다. 1년 전에 나온 윤대협 솔로 앨범은 작사 작곡이 거의 전부 아키라였다. 작곡가로서는 그때가 데뷔였다.
그게 윤대협이라고?
은퇴 못지않게 충격적인 소식이다. 기사에 따르면 윤대협은 아이돌의 후광이 덧씌워지지 않도록 철저히 익명으로만 작사, 작곡 활동을 해 왔다. 윤대협 그룹이 유명세를 탄 이후에는 프로페셔널 외주 인력과 정정당당하게 공모로 경쟁해서 일을 따 왔다. 본인 솔로 앨범만 빼고.
지금껏 개인적인 도전 또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머물렀던 창작 영역에 앞으로는 온전히 전념하는 방식으로 소속사에 기여하기로 했단다. 최소 2년 동안 대표 및 멤버들과 진솔한 소통을 통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시기와 방향을 조율했다고.
기사 말미에 통으로 인용된 윤대협의 인터뷰. 왜 아이돌과 병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사실 지금까진 제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전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고요. 그런데 이제 다른 방식도 해 보고 싶어졌어요. 하나에 집중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해요. 주어진 역할 말고. 하고 싶은 역할만. 자유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 일, 조금이나마 익숙해진 일로부터의 자유.
팬들이 항상 저한테 해주시는 말이 있어요. 윤대협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하고 싶은 거, 정말 다 해 볼 거예요. 자유롭게."
서태웅한테는 한 문장만 형광펜을 칠한 듯이 눈에 박혔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서태웅이 언제나 생각했던 것이다. 윤대협이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살길 바랐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없었나? 없었다. 아마도. 꿈속에서라면 모를까.
제 마음을 읽은 듯이 꿰고 있는 윤대협의 인터뷰 때문에 또 마음이 벅차오른다. 오타쿠는 원래 쉽게 벅차오르는 존재니까. 물론 서태웅과 달리 언변도 뛰어나고 적극적인 수많은 다른 팬들은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윤대협에게 마음을 전해왔겠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다. 핸들에 팔꿈치를 기대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윤대협. 하고 싶은 대로 신나게 살고 있는 윤대협.
핸드폰 화면을 끄고. 서태웅은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윤대협은 조용히 그 침묵을 기다려주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서태웅이 물었다.
"N그룹은 해체야?"
"아니. 윤대협만 빠졌어. 네 명이서 그대로. 아마 지금 각자 팬들한테 편지 올렸을 거야. 공식 채널하고 본인들 인스타. 어제 연말 시상식 무대도 있는데 홍보팀이 그거 끝까지 첨삭한다고 고생하더라."
윤대협의 태도는 가벼우면서도 진지했다. 기사에 인용된 멤버들의 인터뷰에도 나쁜 말은 전혀 없었다. 오랫동안 진심을 꺼내 놓고 상의하며 정해 온 모두가 지지하는 결론이라고 했다.
"걔네들한테도 새로운 도전이겠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주고 싶어. 근데 내가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것 같기도 해. 내가 없어야 느낄 수 있는 재미도 많겠지. 완전히 다른 게 될 수 있을 거고."
담담하다. 윤대협이 서태웅 앞에서 멤버들에 대해 말하는 건 처음이다. 지금까지 윤대협과 서태웅은 서로에 관해 묻고 답하고 친구 하자 싫다 엎치락뒤치락하느라 대화 중 다른 사람을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마치 세상에 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러나 윤대협의 세계에는 서태웅의 세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들어왔다 나갈 것이고. 그중에서도 10년 동안 한 팀으로 묶여 있었던 사람들과 관계가 변하게 된 것이다.
서태웅은 윤대협에게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끝까지 듣고 나서 침묵이 찾아왔을 때에야. 하나 더 물었다.
"아이돌. 그만두고 싶었어?"
음. 윤대협은 잠시 정면을 봤다. 가죽 핸들 커버를 손끝으로 톡톡 두들기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다른데. 힘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좋았는데. 이미 많은 걸 해봤고. 물론 더 하면 몰랐던 경험을 계속 하겠지만."
조심스러운 전제를 겹겹이 거친 뒤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10년 정도 같은 걸 했으면 한 번쯤 바꿔 봐도 되지 않나? 그냥 그럴 때가 된 것 같았어. 이것도 부드럽게 옮길 기회가 있을 때 하는 게 최선이겠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이직이 잦은 IT 직종에서는 서태웅처럼 10년간 한 회사에 처박혀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드물었다. 10년이면 진취적이고 자기 것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독립을 꿈꾸기도 하는 시기다. 윤대협은 따지고 보면 직무만 바뀌었지 업계를 옮긴 것도 아니다. 재계약 타이밍이 최선이라는 말도 이해는 됐다. 이미 마음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오래전부터 주변에 밝혀 왔는데 억지로 참으면서 남는 쪽이 더욱 불신과 상처만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팬들에게도 부드러운 과정일까? 문득 친구들이 생각나 서태웅은 다시 핸드폰 화면에 코를 박았다. 윤대협은 못마땅한 듯이 입술 새로 들숨을 길게 삼키는 소리를 냈지만. 들리지도 않았다.
카톡방에 쌓인 빨간 알람은 셀 수도 없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는 친절한 절취선 아래 기사 링크가 있고 그 아래엔 온점만 길게 찍은 반응과 헐... 따위의 충격 리액션이 몇 개 있었다. 그러나 심각하지 않았다. 모두 다른 장르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서태웅은 스크롤을 내리면서 불면의 반응을 찾았다. 어제까지도 윤대협이 최애였던 유일한 멤버다. 가장 큰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 그의 첫 마디는 이랬다.
작곡가 덕질은 어떻게 하는 거냐?
나도 모르지 님이 지금부터 우리한테 알려줘야지
하 미취겠네 저에게 새로운 경험을 그만 주십시오
괜찮은 것 같구만. 서태웅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핸드폰 화면을 껐다.
고개를 들었더니 전 아이돌 윤대협이 입을 삐죽이고 있었다.
"대화하다가 핸드폰을 보다니. 매너 없네."
"미안."
"뭐 봤어? 댓글? 그런 거 보지 마. 나도 안 봐."
안 봤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지. 서태웅은 윤대협의 적반하장 염려에 말문을 잃었다. 조용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윤대협은 앞유리창을 향해 두 팔을 쭈욱 펴며 기지개를 켰다.
"더 궁금한 거 없어? 다 물어봐. 오프라인 무물~"
서태웅은 고민했다. 짧게. 다 물어보라는 말만 믿고 지른다.
"나 때문이냐?"
윤대협의 눈이 잠깐 커졌다. 금방 사르르 풀어진다.
"그거 물어볼 것 같더라."
재수 없는 말을 귀엽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나도 많이 고민해 봤어. 그거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그러면서 바로는 대답을 안 하고 뜸을 들인다. 기다란 손가락 끝에 관자놀이를 기대 놓고 조금 문지르다가.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서태웅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완전히 아니라고도 할 순 없겠지?"
이게 무슨 대답이야. 서태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스 또는 노, 0과 1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서태웅에겐 null이나 다름없는 답변이었다. 즉 정보 값이 없었다. 배시시 웃으면 다인가? 저건 화내지 말라고 가드 올리는 게 틀림없다. 한 대 맞을 소리한 거 지도 이미 아는 거지.
문제는 윤대협의 가장 하찮은 미소조차 서태웅 상대로는 철벽의 가드가 된다는 점이다. 결국 한숨 한 번에 다 용서해 버린 서태웅의 험악한 미간을 보면서 윤대협은 입술을 모아서 중얼거렸다. 진짠뎅.
윤대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질문해도 됩니까?"
"해라."
윤대협이 눈을 반짝이며 왼뺨을 주먹 쥔 손바닥에 기대듯이 꾹 눌렀다.
"이제 나랑 친구 하는 거지?"
서태웅은 기대로 가득 찬 윤대협의 얼굴을 바라본다. 반짝거린다. 처음 윤대협을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빛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단순히 조형이 잘생겨서도 있지만.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솔직하고 다정한 투지. 윤대협의 전신에는 그런 것이 살아있고. 그래서 언제나 아름답고. 그래서 아마 서태웅은 앞으로도 계속 윤대협의 팬이겠지만.
거절할 명분을 영원히 잃어버린 서태웅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고 힘을 잔뜩 줬더니 더없이 무뚝뚝하고 엄격한 말투가 됐다.
"친구 해 주면... 고맙지."
윤대협이 상냥하게 웃는다. 실내 온도가 2도 정도 올라간 것처럼 따스해진다. 마음속으로부터 온기가 퍼진다.
서태웅은 그렇게 서른한 번째 생일날 친구가 한 명 늘었다. 이제 친구가 무려 열 명이다. 두 손을 꽉 채웠다. 나도 공식적으로 인싸가 된 거군. 서태웅은 가슴을 폈다. 뿌듯했다. 인생의 마일스톤을 하나 달성한 기분이었다.
윤대협이 입을 세로로 길게 벌려 쩌억 하품을 한다. 찡그린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짙은 눈썹이 완전히 팔자 모양이 된다. 한결 졸음이 쌓여 멍청해진 얼굴을 등받이에 푹 기댄다.
"아~ 다 했다. 이제 좀 자야겠다..."
"못 잤어?"
"응. 제야의 종 치고 나서 바로 회식... 집에 가면 못 깰까 봐 일단 버텼어. 이제야 졸리네."
정초부터 9시간 꿀잠 때린 서태웅은 황당했다. 설마 밤을 꼴딱 새우고 여기 앉아 있었던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서태웅은 그런 끔찍한 가정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윤대협이 등받이를 뒤로 젖히면서 졸음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도 돼. 너무 오래 잡았네. 또 연락할게."
"연락처를 모르잖아. 그 핸드폰 정지했어."
"알아."
윤대협이 길쭉한 손가락을 한 개 뻗어 서태웅의 주머니를 정확하게 가리킨다.
"지금 그 아이폰."
서태웅의 전화번호 열한 자리를 정확하게 읊는다.
"그리고 내 번호. 아까 전화 걸었으니까 저장해."
집에 오는 길에 모르는 번호에서 왔던 그 전화다.
이 자식. 무슨 수로 알아냈지?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경찰 친구라도 있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따져 물으려는 순간. 매우 잠들기 불편하다는 듯이 등을 뒤척인다. 괜히 마음 쓰이라고 그러는 것처럼. 의도가 어땠는진 몰라도 그 덕에 서태웅은 벌써 의심에서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이동해 버렸다. 이미 감긴 지 오래인 두 눈 아래 다크서클이 좀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들어가. 나는 한숨 자려고."
"너도 들어가서 자."
"이렇게 졸릴 땐 운전하면 큰일 나."
정확히 서태웅에게 면허가 없는 이유다. 서태웅은 입을 다물고 조수석 문손잡이를 내려다본다. 이대로 윤대협을 혼자 두고 떠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사람이 밀폐된 차 안에서 히터를 틀어 놓고 잠들어도 되던가? 죽는 거 아니야? 아니 그건 과학적 근거가 없던가? 선풍기 틀어 놓고 자는 거랑 어느 쪽이지? 서태웅은 혼란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새근새근 소리를 내기 시작한 윤대협의 팔뚝을 붙든다. 윤대협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다른 쪽 손을 뻗어 제 팔뚝에 달라붙은 서태웅의 손을 잡아 정중하게 떼어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서태웅이 내뱉은 말을 듣더니
"우리 집에 가서 자."
눈을 번쩍 떴다.
"아무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