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결혼 반대
불면의이쑤신
[너 스토리에 올린]
[비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미남들은 누구야?]
[윤대협이랑 서태웅ㅇㅇ 둘다 농구선수]
[진짜 찐 결혼한 커플이야?]
[아님 니가 드디어 미쳐서]
[인스타로 농선 알페스를 하는 거야?]
[저기요 당연히 찐커플이죠]
[저 아직 사회적 자살은 하고 싶지 않아요]
[대박이다 둘다 현역인데 결혼한 거야?]
[ㅇㅇ대박이지 기다려보셈]
[이거 보고 같이 농구 봅시다]
[썸네일 미쳤나]
[‘남자 며느리’ 이러넼ㅋㅋㅋ]
[ㅋㅋㅋㅋㅋㅋ]
[근데 솔직히 농구는 관심 없고]
[합법 알페스만 관심 있어도 됨?]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룰은 내가 가르쳐 줄게]
[ㅇㅋ 기달 보고옴]
깔끔하고 널찍한 농구단 사무실.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송태섭이었다. 여기저기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자리에 앉는다.
“안녕하십니까~ 천재 등장!”
곧 마이크 안 차도 될 볼륨을 뽐내며 강백호 등장. 남의 팀 사무실인데 지네 홈인 양 당당하다. 뒤에서 살짝 귀를 막으며 정대만도 함께 들어온다.
셋은 각각 다른 프로농구팀에서 뛰고 있으나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인연으로 만나기만 하면 오른팔 전완근을 자랑하는 포즈를 시도 때도 없이 선보여 북산 바보 트리오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니까 농구 팬들에게 세 사람은 하나의 유닛이랄까 조합이랄까 콘텐츠 단위랄까. 자막은 [오랜만에 모인 북산즈] 정도로 순화되었지만.
PD가 묻는다.
“오늘 왜 모이셨는지 아실까요?”
아무 단서 없는 표정의 강백호를 사이에 둔 송태섭과 정대만이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는다. 송태섭이 뒷머리를 만지면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다.
“아~ 여기 태웅이네 홈이잖아요. 그 뭐 태웅이가 이제 결혼을 한다고…”
“뭐?! 결혼???!!!”
“아 귀청이야”
“아 제발 백호야 형 보청기 사 줄 거냐”
갑작스러운 강백호의 포효에 양옆의 선배들이 먼저 청력 손상을 호소하며 나가떨어진다. 카메라 하나가 요동치더니 고통을 견디는 표정으로 헤드폰을 멀찍이 귀에서 떼고 있는 여성을 잡는다. 자막이 설명해 준 그 사람의 극한 직업은 오디오 감독…
강백호는 정말 충격받은 표정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아니… 진짜로? 깜짝 카메라? 아니고? 여우 놈이 이 몸을 제치고…? 그럴 리가? 진짜라고?”
“너 기사 안 봤어? 태웅이가 신인왕 소감, 그거 구단 유튜브에서 말하면서…”
정대만의 설명이 미처 끝나기 전에 자료화면이 나온다.
현재 촬영 중인 곳과 같은 장소에서 정장을 빼입고 신인상 트로피를 앞에 둔 서태웅. PD가 묻는다.
“서태웅 선수의 내년 목표는?”
“우승하고… 결혼.”
“네…?”
요동치는 화면과 자막.
“우 승 하 고. 결 혼 이 요.”
쓸데없이 또박또박 말해 주는 서태웅.
“네?????”
되게 못 알아듣는다는 표정의 서태웅. 한 번 더 입 모양을 크게 벌려 말해 준다. 우우 스응 하아 고오 겨어…
거기서 자료화면은 뚝 끝났다.
송태섭이 귀 뒤를 머쓱하게 긁적이며 모두를 대변해 준다.
“하긴 나도 집에서 기사로 보고 겁나 놀라긴 했지…”
“뭐 평소에 여자에 관심 있는 척이라도 하든가. 혹시 여자가 아닌가?”
쓸데없이 예리한 정대만.
“난 오늘 상대분 소개해 준다고 듣고 왔는데?”
“아 그런 거야~ 그럼 상견례야?”
“상경래가 뭔데?”
농구 외의 상식이 별로 없는 강백호에게 송태섭과 정대만이 열심히 상견례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은 빨리 감기로 편집되었다. 생각보다 길었다.
PD가 진행을 이어간다.
“저희도 이제 본의 아니게 결혼 소식 특종을 해버려서. 상대분이 누군지도 저희 유튜브를 통해 밝히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오늘 북산즈 선배님들과 동기 앞에서 최초 공개입니다.”
“치수는?”
“시간이 안 맞아서…”
바보 트리오 외에도 서태웅, 채치수까지 묶어 리그의 북산 고등학교 출신은 모두 통칭 북산즈다. 프로농구 리그는 보통 대학교 학연으로 묶이는데 북산즈는 이상하게 끈끈했다. 팀이 겹치면 말할 것도 없고 FA로 찢어져도 계속 친했다. 구단 유튜브가 올려주는 웜업 영상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즉시 티격태격. 올스타전 때 덩크에 성공한 채치수와 같은 편이던 서태웅이 바보 트리오를 향해 보란 듯이 고릴라 포즈를 했을 땐 팬들이 ‘북랄’에는 예외가 없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치수 선배랑 준호 선배가 약간 부모 느낌…?”
“뭔 부모야. 고등학교가 언제 적인데. 안 선생님도 아니고.”
“하… 암튼 난 좀 부담스러워요… 집에 가면 안 돼요?”
“그래도 궁금하지 않냐? 난 솔직히 궁금한데? 걔가 뭐 따로 이런 자리 만들겠냐고. 전 불러 주셔서 감사드림다.”
“여우 놈 주제에 감히 이 몸을 앞지르다니…”
“얘는 맛이 갔다.”
“확실히 이 멤버가 웃기긴 해요. 섭외를 잘하셨네.”
티격태격하는 사이 문 앞에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한다. 어, 왔다. 목을 쭉 빼고 구경하는 북산즈.
문이 열리고 서태웅이 들어온다. 카메라 뒤쪽의 PD들을 향해 쓰고 있던 캡모자를 벗어 꾸벅. 눌린 머리를 가볍게 탈탈 턴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거대한 그림자…
상대를 알아본 정대만이 무례하게 손가락을 뻗었다.
“너…!”
송태섭의 짝짝이 눈썹이 너무 놀란 나머지 공평하게 찌그러졌다.
“허어?”
강백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외쳤다.
“윤대협!!!!!”
막상 오늘의 주인공은 북산즈가 아닌 카메라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이고 예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윤대협. 현 프로농구 최고의 가드 겸 포워드. 작년 리그 우승을 이끈 통합 MVP. 리그 최초 20-20-20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올라운더. 대충 찍힌 기사 사진조차 단 한 번도 망가진 적이 없는 조각미남. 시상식 때마다 찍힌 정장 사진이 농구계를 넘어 모든 여초 커뮤니티에 도배되며 뭇 이성애자와 양성애자 여성들의 안구에 비타민이 되어 주는 남자. 각종 SNS에서 그의 사진에 따봉을 눌러 준 사람들의 10%만 실제로 농구 경기를 보러 왔다면 리그 붐업도 꿈이 아니련만. 심지어 이젠 품절남이 되어 버렸으니 영원히 꿈에만 남으리.
라는 자막과 함께 윤대협 소개가 끝났다. 해맑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줌아웃되며 옆에 앉은 서태웅을 함께 비춘다. 맞은편에 돌이 된 것처럼 계속 서 있는 강백호를 양옆에서 정대만과 송태섭이 끌어당겨 의자에 억지로 앉혔다.
“봐봐. 내가 여자 아니라고 했지?”
조금 정신이 돌아온 정대만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해요? 윤대협이라고? 서태웅이랑? 너네가 사… 사귄다고?”
송태섭은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도저히 눈앞의 난제를 풀 수가 없다는 듯이 열 손가락을 머리카락에 쑤셔 넣는다.
“어… 언제부터?”
윤대협과 서태웅이 슬쩍 눈을 맞춘다. 짜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같은 단어를 중얼거린다.
“고등학교…”
“고오등학교오오?????”
맞은편의 세 사람도 짠 적 없이 동시에 같은 단어를 뱉었다. 윤대협은 놀라지 않았다. 옆의 서태웅을 힐끗 바라본다.
서태웅은 평소와 비슷한 무표정이다. 턱을 약간 삐딱하게 당기고 아랫입술을 내밀고 있다. 불만 있냐는 듯한 얼굴. 북산즈의 시끄러운 리액션보다도 서태웅의 조용한 반응이 저다워서 윤대협은 슬며시 웃음이 났다.
“아니 이게 말이… 하… 너네 맨날 농구만 했으면서 뭐 언제…”
송태섭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 올린다. 윤대협은 바로 그거라는 듯이 냉큼 대답한다.
“농구하면서 자주 봤지.”
“언제? 뭐… 시합?”
“그것도 있고 전국체전이랑 청대랑 이것저것…”
“아놔 이것들 하라는 농구는 안 하고 연애질만 했네.”
뒷목 잡는 정대만의 얼굴 옆에 해골 마크가 세 개 정도 붙는다.
“농구도 했어요.”
서태웅의 하나 마나 한 반론에 반응해 준 건 윤대협뿐이다.
“재밌었지.”
“응.”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순식간에 그들만의 세상 스타트. 갑자기 편집도 수상해진다. 상하좌우에 시꺼먼 시네마틱 프레임이 두껍게 내려오면서 마치 영화 같은 느낌. 이유는 편집자도 모른다. 하얀 굴림체 자막으로 (왠지 이렇게 편집해야만 할 것 같은 아이컨택;;;)이라며 심경을 밝힌다.
한편 반대편에선 아나필락시스에 가까운 격한 반응이 터졌다.
“야 하지 마. 나가서 해.”
“뭘 했다고?”
“느끼하게 쳐다보지 말라고. 대화도 하지 마 그냥. 이상하니까.”
“그건 맞다. 너네 뭐 국대나 프로에서 그렇게 친하게 지낸 적도 없잖아. 인사는 했냐?”
“끝나고 만날 거니까 굳이…”
“아 그니까 하지 말라고 그런 소름 돋는 말을!”
마구 손을 내젓는 송태섭의 얼굴에도 해골 마크가 붙었다. 정대만은 과장해서 토하는 시늉을 했다.
자기들이 물어봐 놓구. 그지? 이렇게 말하듯 윤대협은 서태웅을 또 곁눈질했다. 눈이 마주치자 둘 다 어깨를 으쓱. 아주 칼군무다.
PD가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이 질문을 던진다.
“두 분이 평소에 연애하는 티를 전혀 안 냈나 봐요?”
북산 바보 트리오는 동시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표정과 몸짓과 육성을 동원해 부정을 표현했다.
“나는 오히려 너네 사이가 안 좋은 줄 알았는데? 맨날 밟아 준다,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이러고. 라이벌 아니었어?”
“고등학교 때도 그랬잖아 여우 놈아! 타도 윤대협이라며!”
“그건 그거고.”
서태웅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윤대협은 그 상황이 조금 재미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책상 위에 놓인 서태웅 손등을 슬쩍 잡았다.
“이건 이거고?”
“응.”
건수 제대로 잡은 편집자가 맞닿은 두 손을 클로즈업하며 다시 시네마틱 프레임으로 전환해 놓고 샤랄라 꽃잎의 폭풍우 같은 효과를 뿌려댔다. 커다란 자막이 지나간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차마 못 보겠다는 듯 마른세수를 하거나 시선을 멀찍이 돌리는 선배들 사이에서 강백호가 갑자기 간곡하게 윤대협을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아니 여우는 뭐 헤까닥했다고 치고. (갑자기 윤대협의 손안에 있던 서태웅의 손이 주먹으로 바뀌었다.) 윤대협은 왜 그래? 원래 인기 많았잖아. 어? 남자고 여자고 윤대협, 윤대협 쫓아다녔잖아. 왜 여우를? 어디 아파? 사기당했냐?”
송태섭이 생각났다는 듯이 책상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맞다. 너 고등학교 때는 연상녀들 줄 서서 만난다는 소문도…”
삐―
요란한 검열음과 선수 보호 차원이라는 자막과 함께 잠시 화면이 검게 끊겼다.
이어서 정대만도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대협이는 뭐 프로 와서도 여자 연예인들 시투 올 때마다 열애설이…”
삐―
다시 한 번 화면 조정.
돌아온 현장에선 윤대협과 서태웅이 더 이상 손을 잡고 있지 않았다.
PD가 진행 멘트를 던졌다.
“상견례다운 질문 좀 해 주세요.”
윤대협이 눈을 반짝였다.
“아, 그런 컨셉이에요?”
송태섭이 목을 가다듬는다. 다소 머쓱하게 국어책 읽기 톤으로 주어진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언제냐?”
윤대협이 잠깐 대답을 생각하는 사이에 서태웅이 툭. 기습적으로 답을 던졌다.
“벌써 했어요.”
“엥?????”
북산 바보 트리오의 우렁찬 합창. 오늘만 몇 번째인지. 이번엔 윤대협도 아까완 좀 다른 표정으로 서태웅을 바라보았다. 오. 태웅이. 이걸 말하네…
“그… 구청 가서 하는 거. 결혼신고… 그거 했어요. 그럼 결혼한 거죠.”
“아니 뭐가 그렇게 급해? 윤대협 어디 도망가냐?”
“그냥 빨리 하고 싶어서요.”
“야 윤대협. 감동받은 표정 짓지 마. 나 토한다 진짜”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저거 쪼개는 거 봐 참나… MVP 탔을 때보다 표정 좋다 지금”
윤대협 표정 단속하느라 혼인신고라는 말을 모르는 서태웅의 무식함을 지적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운동선수 평균 어휘 수준인 것일까.
쏟아지는 야유 속에 강백호가 진실한 의문을 던진다.
“근데 원래 결혼식을 먼저 하는 거 아니야? 신고가 먼저야?”
서태웅이 눈썹을 치켜뜨며 뭐라고 입을 열려는 찰나에 윤대협이 침착하게 대답한다.
“식은 아직 날짜를 안 잡았어. 아직 부모님들 모시고 진짜 상견례도 안 해서…”
“근데 우리한테 먼저 와? 제정신 아니구나.”
“그렇게 됐네…”
리그의 발전에 보탬이 될 유잼 유튜브 콘텐츠를 위해 양가에 양해를 구해가며 판을 깐 PD를 탓할 수도 없어 윤대협은 적당히 뭉갰다. 사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서태웅이 갑자기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결혼 소식을 발표해 버렸기 때문이지만. 뭐 편집해 주시지 않을까나.
“그럼 부모님도 혼인신고한 걸 모르셨어?”
“아무래도 기사 나기 전엔 말씀드렸지.”
“허락도 안 받고 혼인신고부터 갈겼어? 거 성질 급하네.”
“음… 사정이 있었어.”
애매한 대답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갑자기 침묵.
정대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나 잠깐 화장실 좀…”
한 명이 사라지니 더 마가 떴다. 점 세 개가 자막으로 화면 전체에 지나간다. 점 점 점…
송태섭이 나직하게 말한다.
“대만쓰… 집에 간 걸까?”
강백호가 대답했다.
“앙? 그냥 화장실 급한 것 같은데?”
사실 집에 가고 싶은 건 송태섭이었다. 생각해보면 이건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 없는 청첩장 모임이나 다름없는 게 아닌지? 백해무익을 감지한 송태섭은 재빨리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르긴 할 거냐? 결혼식?”
“내가 왜 여우 놈한테 축의금을 줘야 돼!”
옆구리 찔러 청첩장 스틸하기. 가로채면 빠르게 집으로 백코트하겠다는 전략. 하지만 상대편 가드도 만만치 않았다.
“뭐… 가족끼리만 할 수도 있고.”
“아 북산은 가족이 아니다?”
“북산은 가족도 아니다?”
“뭐라고? 북산이 왜 가족이 아니야?”
“아 왔으면 빨리 앉아 봐요. 와 서운하네 윤대협이.”
“그래 서운하다 윤대협아.”
“서운하다 여우야.”
“축의금 내기 싫다며 멍청아.”
“아 그건 그거고~”
북산 바보 트리오 세 명은 눈빛도 주고받지 않고 신나서 입을 모아 외쳤다.
“이건 이거고!”
왁자지껄한 웃음. 윤대협도 같이 웃었다. 서태웅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쿠키.
자리를 뜨려고 일어선 다음에야 북산 바보 트리오는 윤대협과 서태웅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야, 그러고 보니까 축하를 안 했다. 축하해. 잘 살어. 청첩장 나오면 연락하든가 말든가. 서태웅은 말없이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다 강백호하고는 드잡이질 수준으로 어깨빵을 주고받았고 윤대협은 붙임성 좋게 웃으며 다정하게 눈을 맞춰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방을 나가며 정대만은 송태섭에게 슬쩍 말했다.
“안 줄 거 같지? 청첩장.”
송태섭은 포기하라는 듯이 정대만의 등짝을 두들겼다.
[아 웃겨 텐션이 SNL 같음]
[그치 개웃기지]
[아 농구를 알고 봐야 더 웃긴데]
[그니까 이 사람들은 친한 선배야?]
[응 근데 같은 팀은 아니고 고등학교 선배랑 동기]
[농구는 고등학교가 중요해?]
[아니지]
[보통은 대학인데]
[얘네가 유난인 거야 북랄 장난 아님]
[북랄ㅋㅋㅋㅋㅋ]
[근데 커플치고 별로 친해 보이진 않는다]
[헐 진짜?]
[난 중간에 잠깐 껐는데 보기 힘들어서]
[엄청 담담한 느낌임 아이컨택은 잘하네]
[아니 동시에 어깨 으쓱하잖아]
[멜로눈깔을 하고 있잖아]
[윤대협이랑 서태웅이!!!!!]
[이 미친 염병커플]
[근데 뭐 서로 대화도 거의 없고]
[다정한지 모르겠음]
[일단 서로 호칭이 없는데?]
[뭐 태웅이가~ 대협이 형이~ 안 이러잖아]
[대협이 형? 서태웅이?]
[님 그건 잘못된 캐해예요]
[그럼 뭐라 그래 서방님은 아닐 거 아냐]
[점점 더 잘못되고 있어요]
[헐 댓글 장난 아니네]
[헐 나 안 봤는데]
[뭐라는데?]
[뭔가 쎄하대]
[서태웅 왜케 화났냐고 하고]
[기분 좋아 보이는데]
[선배들이 마음에 안 든 것 같대]
[중간에 일부러 자리 피한 거 아니냐고]
[어색해서 그랬겠지]
[고등학교 때부터 굳이 비밀로 사귄 것도 이상하다고]
[그리고 청첩장은 왜 안 주려고 하냐고]
[가족이 반대한 거 아니냐 이런 궁예도 있음]
[아놔 이 농알못들이 뭐라는겨]
[그럼 왜 도둑처럼 몰래 혼인신고 했냐는데?]
[습 그건 나도 궁금하네]
윤대협과 서태웅의 잘못이라면 자각에 비해 훨씬 화제성이 큰 결혼을 했다는 것.
물론 평소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시즌 내내 닥닥 긁어도 백만이 될까 말까 한 농구팬들에게나 슈퍼스타였다. 농구 아레나 근처가 아니고서야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다. 아직 둘 다 데뷔 후 올림픽 같은 대형 A매치가 없었기에 더더욱. 대충 마스크 끼면 뭔가 운동선수겠거니 싶은 정도. 종종 잘 나온 사진이 여초 커뮤니티에 진출하는 건 인터넷 별로 안 해서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별생각 없이 찍은 콘텐츠. 서태웅은 원래도 구단 유튜브 촬영을 위한 필터용 자아 같은 게 따로 없다. 강백호랑 둘이 나왔는데 쌍욕을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할 일이라고 윤대협은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스스로에게도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그 정도면 무난했지 뭐. 주제가 주제인 만큼 쉽진 않았지만 지나치게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았고. 윤대협이 조금이라도 신경 쓴 건 그 부분뿐이었다.
서태웅네 구단 유튜브 채널 관리 담당자의 잘못이라면 이 커플의 잠재력을 너무 얕봤다는 것.
사실 그들도 가만히 있다가 당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구단 내 최고 인기 선수의 사생활을 파헤쳐 어그로를 끌겠다는 원대한 포부 따윈 애초부터 없었고. 신인상 수상 소감을 말하랬더니 갑자기 내년에 결혼한다고 폭탄 발언을 던진 서태웅한테 말려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왁자지껄한 북산즈를 불러 남자 며느리 상견례 컨셉으로 전 리그가 길이 회자할 비시즌 콘텐츠 한번 찍어 보자 한 건데.
그들이 생각한 대박 사이즈는 시즌 내내 닥닥 긁어도 백만이 될까 말까 한 농구팬들이었다.
결코 전 국민이 아니었다.
현역 운동선수 두 명의 동성 결혼은 차별금지법 통과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그 자체로 스포츠면뿐 아니라 사회면에서도 관심을 보일 만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런 외모. 고등학교 때부터 심심하면 VS 붙어서 소환되던 라이벌. 사실은 VS 자리에 하트를 넣어야 했다니. 대중이 환장할 만한 범상치 않은 히스토리다.
북산즈와 윤대협, 서태웅은 물론 농구계 내부적 고맥락을 다 알고 있는 편집자마저도 눈치채지 못한 사실. ‘남자 며느리’ 영상에는 시비를 털자면 얼마든지 털 수 있는 자잘한 소재가 많았다. 시비라기보다 정확히 말하면 스타의 결혼에 일반인이 갖는 환상을 충족시키지 못한 오점이랄까.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결혼은 현대 사회의 왕족 결혼이나 마찬가지. 그만큼 전 국민이 입을 대는 심심풀이 안주다.
대중은 로열 웨딩에 동화 같은 정상성을 원한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개연성을 가진 서사가 아니라면 차라리 불미스러운 클리셰 쪽에 끼워 맞춘다. 없는 사실을 지어내서라도. 그게 익숙하니까. 합법화된 동성 결혼이라고 해서 엄격한 대중의 잣대로부터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정대만과 송태섭이 웃자고 꺼냈으며 실제로 꽤 웃겨서 편집자가 자르지 않은 윤대협을 둘러싼 루머는 악플러들의 상상력과 결합해 잔뜩 부풀려졌다. 열애설 기사 캡쳐가 그를 천하에 못 믿을 놈 취급해도 무방하다는 핵심 증거처럼 따라붙었다. 실제로 숨만 쉬어도 열애설이 터질 법한 윤대협의 화려한 외모는 이런 오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딱 봐라. 그렇게 생겼나 안 생겼나. 뭐 이런 식이었다.
편집점 이후에 더 이상 손을 잡고 있지 않았던 장면은 서태웅이 먼저 손을 뿌리친 것처럼 왜곡되었다.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급한 혼인신고가 이런 유의 자극적인 시나리오에 불을 질렀다. 그러니까 서태웅이 윤대협을 못 믿어서 부모님한테 말도 없이 혼인신고부터 갈겨서 묶어 놓은 거 아니냐는 식이었다.
서로의 뇌피셜을 진지하게 퍼 나르며 순식간에 부정적인 평가가 덕지덕지 불어난다. 서태웅은 왜 그렇게까지 윤대협과 결혼을 해야 하나? 서태웅만 좋아하는 것 같은데? 윤대협은 별로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질 않는 듯. 촬영 자체도 그런 컨셉이냐고 꼽주고. 잘 살겠다든가 잘 부탁드린다든가 뭐 그런 말 한마디를 안 하네. 사실 서태웅도 화난 거 아니야? 전혀 안 웃는데? 계속 부루퉁하잖아.
오죽하면 제일 연장자인 정대만이 중간에 박차고 나가기까지 했을까. 송태섭도 갑자기 화나서 집에 간 거 같냐고 물어보잖아. 일부러 그 장면을 넣은 편집자들이 이 결혼 말리라고 당근 흔들고 있는 거 아니야? 어쨌든 유튜브 제작자들도 서태웅 팀이잖아.
그런 식으로 스쳐 지나간 의미 없는 표정이나 발언에 잔뜩 주석이 달렸다. 남들이 못 알아챈 부분에서 나만은 쎄함을 느꼈다는 통찰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망. 아무도 인터넷 탐정들을 말릴 수 없었다. 윤대협과 서태웅의 감정은 마음대로 해석되고 단정되었다.
논란을 땔감 삼아 해당 영상은 프로농구 구단 자체 콘텐츠 사상 최초로 백만 뷰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덩달아 서태웅이 갑자기 결혼을 발표하는 시즌 시상식 비하인드 영상까지도.
보다 못한 농구 팬들이 적극 진화에 나섰다. 아 우리 반 아니면 나가라고. 그렇게 짜증만 부리기엔 사태가 너무 커졌다. 농알못을 위한 친절한 설명이 뚱뚱하게 덧붙여지고 도배되고 퍼 날라졌다. 자 들어 보세요 농구 처음 보신 분들아 일단 서태웅이 전혀 안 웃는 건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부터 설명해야 한다는 것에 프로농구의 비인기를 실감하여 절망을 느낀다…
사실 윤대협의 열애설은 당시에도 하루를 넘기지 않고 쌍방에서 부정되었기 때문에 조금만 찾아봐도 쉽게 반박이 가능했다. 혼인신고는 사정이 있었다니까 부동산 대출이나 그런 밝히기 애매한 이유가 아니겠냐는 누군가의 추측이 제법 신빙성을 얻었다. 실제로 일반적인 예비부부가 식보다 혼인신고를 먼저 한다면 경제적 사유가 대다수니까.
정대만은 평소 캐릭터를 알고 있는 농구 팬의 눈에는 정말 순수하게 화장실이 급했을 확률이 높았다. 갔다 와서도 그냥 시원해 보이는 표정이라고 대다수의 정대만 팬들이 불꽃 같은 의리로 진지하게 감별해 주었다. 송태섭은 처음부터 촬영을 부담스러워하는 장면이 있었으니 본인이 집에 가고 싶어서 정대만이 자기만 두고 먼저 튄 건 아닌지 걱정했을지도 모른다는 추리가 쉽게 나왔다. 예리한 지적이었다.
어떤 소녀는 영상을 나노 단위로 뜯어서 5초 이하의 영상 열댓 개 정도를 생산하여 설명하기를 윤대협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항상 서태웅을 먼저 쳐다본다며. 이게 사랑이지 뭐가 사랑이냐고. 대담하게 카메라 앞에서 손도 먼저 잡았데. 고등학교 때부터 다 아는 형제 같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스킨십이 쉬울 것 같냐고. 뭐 갑자기 키스라도 갈겨야 찐사랑이냐고. 피를 토하며 둘의 슴슴한 애정표현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현장의 분위기가 ‘닭살 돋으니까 꺼져라’였던 것도 소녀의 필리버스터에 근거가 되어 주었다. 아마 상당한 알페스 공력을 지닌 소녀가 합법 알페스 커플 탄생의 현장에 흥분하여 공개 계정에서 서치 방지 없이 흑역사를 쓰는 현장이었으리라.
원래 인터넷 논란이 다 그렇듯 한번 흐름을 타면 역주행은 금방이다. 방금까지 신나게 욕하던 사람들이 손바닥을 뒤집는다. 의도를 가지고 재편집하자면 로맨틱한 장면이야말로 얼마든지 많았다. 그저 불미스러운 자극에 민감한 대중들이 그런 장면에만 집중했을 뿐.
특히 농구 팬들은 서태웅의 고분고분함에 강백호급으로 충격을 받았다.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저 농구 기계가 진짜로 연애를 하다니… 그런 장면을 내 눈으로 보다니…
오래된 농구 팬으로 보이는 한 소녀는 아예 윤대협과 서태웅의 질긴 인연을 그 시절 사진과 기사들을 덧붙여 가며 망라하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툭하면 라이벌로 소환됐지만 플레이 스타일은 윤대협에게서 서태웅으로 전수되는 측면이 있고 청소년 대표팀에서는 가드와 포워드 콤비로 맹활약. 윤대협이 대학 진학한 해에 서태웅이 미국 유학을 갔으므로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었다면 이 시기엔 장거리 연애로 추정. 대학 농구에서 재회하나 이때도 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이었으며 얼리 드래프트를 하네 마네 끝까지 경쟁. 프로에서도 마찬가지. 윤대협이 첫 해 신인왕, 다음 해 MVP를 탔고 서태웅이 신인왕을 타면서 내년에 MVP 경쟁이 주목되는 와중에 깜짝 결혼 발표.
‘자 봐라 우리 오빠들 멋있지’에 가까운 마음으로 스크롤이 짧아질 때까지 써 재낀 글은 의도치 않게 장대한 일편단심 러브스토리를 좋아하는 대중 취향에 그대로 꽂혔다.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별로 알페스에 관심 없는 순수 농구 팬의 담백한 히스토리 설명이라 한층 더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바 있었다.
해당 글이 각종 커뮤니티와 SNS와 나아가 포털 메인까지 점령했을 때 천만 영화배우의 대형 스캔들이 터졌고 대중의 관심이 그쪽으로 옮겨 가며 논란은 완전히 끝났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이 모든 소동을 전혀 몰랐다.
둘 다 댓글 같은 거 읽는 타입이 아닐뿐더러 평소에도 이틀 정도 핸드폰 안 보는 건 예사였다. 특히 영상이 올라간 직후에는 지인들로부터 축하 메시지가 너무 많이 와서 둘 다 툭하면 배터리가 나갔다. 댓글 흐름을 보고 걱정 돼서 전화했던 지인들은 시달려서 꺼놨나 보다 지레 짐작하고 코멘트를 삼갔다.
정작 두 사람은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비시즌에 연락할 사람이래 봤자 서로밖에 없으니.
단체 훈련이나 전지훈련 일정이 없으면 두 사람은 대체로 윤대협의 집에서 딱 달라붙어 있었다. 윤대협의 부모님은 해외 주재원이라 시즌 중에만 어머니가 잠깐 들어오시고 아들 뒷바라지가 필요 없는 비시즌엔 두 분 다 집을 비우셨다. 연인들이 지내기에 좋은 환경. 고등학교 때 생각도 나고.
가족들은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윤대협은 대학 입학 후 첫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계절에 사귀는 사람은 없냐는 부모님의 의례적인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했고. 서태웅은 유학 짐 정리를 돕던 어머니에게 가지런히 모아 놓은 러브레터를 들켰다.
장거리 연애 시절 서태웅은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었고 윤대협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편지를 보냈다.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책상 위에 쏟으면 인화된 사진이 몇 장 떨어졌다. 누가 찍어 줬는지 다 흔들린 본인 얼굴이나 해 질 녘의 농구 코트 구석이나 드러누워 배를 보이는 까만 길고양이나 뜬금없이 ‘태웅건설’이라는 낡은 간판을 찍은 사진 같은 것들. 사실 글이라고는 단 한 마디도 쓰여 있지 않았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을 보냈다고 해야겠지만 서태웅은 항상 그것을 편지라고 생각했다. 요약하자면 보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
그러니까 알고 보면 윤대협과 서태웅은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부모님의 묵인하에 사랑을 키워 오다 결혼에 골인한 정석적인 커플이었던 것이다. 로열패밀리의 러브스토리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대중들이 알았다면 기뻐 날뛸 사실이었으나.
윤대협과 서태웅은 아무에게도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둘 다 누군가에게 그런 썰을 풀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 서태웅은 말재주도 없었고 윤대협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서태웅이 첫 계약에 사인한 날에도 윤대협이 신인왕을 탈 때도 두 사람은 함께 있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한 뒤에는 쉽지 않았다. 서태웅은 프로 첫 시즌 적응에 온 신경을 초집중했고 윤대협은 그런 서태웅을 코트에서 상대할 준비를 해야 했다.
사실상 서로의 휴식일이 겹치는 날에만 마음 편히 만난다. 특히 맞대결을 한 날부터 다음 날까지. 경기 후에 같이 저녁 먹고 누군가의 집에서 그대로 잠든다든가. 데이트는 주로 낮잠이나 넷플릭스 보기 또는 가벼운 회복 운동이었다.
윤대협의 홈구장에서 맞붙은 어느 주말. 서태웅은 아주 자연스럽게 윤대협의 차를 타고 윤대협의 집으로 퇴근했다.
윤대협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커다란 연인으로 가득 찬 조수석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서태웅은 차창에 팔꿈치를 괴고 광대뼈를 손에 기댄 채 소리도 없이 잠들어있었다. 그건 운전하는 윤대협을 구경하다 잠든 자세였다. 출퇴근길에 서태웅이 가장 즐겨하는 포즈. 막상 윤대협은 운전하느라고 잠들기 직전 느리게 깜빡거리는 속눈썹을 구경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거 좋아하는데. 좀 치사하네.
불편한 자세에서 얼른 깨워 줘야 하는데. 못내 아쉬웠다.
윤대협은 자신의 아쉬움이 어디서 오는지 정확히 알았다.
다음 날은 둘 다 원정 이동일이었다. 서태웅을 원정 버스 앞에 태워다 주고 나면 한참을 못 본다. 이제 또 며칠간은 나를 구경하다 잠들어 버린 연인의 숨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다음 날이 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서도.
매일 같은 집으로 퇴근할 수 있다면 조금 덜 아쉬울까.
윤대협은 손을 뻗어 서태웅이 제 손에 기대지 않은 뺨을 감쌌다. 따스한 기운에 검은 속눈썹이 바르르 떨린다. 서태웅이 느리게 눈을 꿈뻑거린다. 윤대협이 좋아하는 표정이다.
“잘 잤어?”
서태웅은 대답 없이 목 근육을 좌우로 늘렸다. 아무래도 찌뿌둥하겠지.
“불편해? 더 일찍 깨울 걸.”
“왜 안 깨워…”
“귀여워서 구경했어.”
졸음 가득하던 두 눈에 총기가 돌아온다. 좀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한 묵묵한 눈빛이 온전히 자신을 향하는 걸 윤대협은 싫어하지 않았다. 서태웅은 손을 쭉 뻗어 윤대협의 볼을 한 번 꾹 쥐었다가 휭 차에서 내린다. 아마도 ‘니가 더 귀여워’ 정도의 바디랭귀지인 것 같다. 악력이 좋네. 윤대협은 볼을 문지르면서 따라 내렸다. 얼굴 한쪽이 약간 얼얼한 것조차 불쾌하지가 않다. 이것이 귀여운 연하 남자친구의 힘일까. 내일이면 심지어 그리울지도.
한 번 졸고 여운이 남은 서태웅은 밥 먹는 중에도 계속 꾸벅꾸벅했다. 마무리 운동은 잠깐 자고 일어나서 하기로. 계속 서태웅을 관찰한 윤대협도 같이 졸린 기분이었다. 아예 거실에 푹신한 패드를 깔고 같이 대자로 누웠다. 이러면 은은하게 자연광이 들어와서 적절한 시점에 자연스럽게 잠이 깬다.
서태웅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윤대협이 잠결처럼 말했다.
“아까 있잖아.”
서태웅이 듣든지 말든지.
“매일 같은 집으로… 둘 다 퇴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서태웅의 빽빽한 속눈썹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꿈인가. 아닌가. 윤대협의 눈은 점점 감긴다.
“지금은… 매일 이렇게… 같이 잠들면 좋겠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건. 헤이즐넛색 광채가 단단히 돌아온 진지한 눈빛. 좀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한. 윤대협이 아주 좋아하는 서태웅의 눈빛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서태웅은 조깅하러 가자며 윤대협을 깨웠다. 대학 때부터 자주 있는 일이기에 윤대협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도 순순히 끌려 나갔다.
그런데 어쩐지 코스가 초행길이다. 서태웅은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요리조리 길을 찾는다. 아무리 봐도 목적지가 있는 것 같은데…?
윤대협의 짐작이 맞았다.
목적지는 윤대협의 집에서 7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구청이었다.
서태웅이 기둥에 커다랗게 붙은 안내문을 가리켰다.
[혼인신고는 1층 민원여권과에서 번호표를 뽑으세요]
“나도 좋아.”
뭐가 좋다는 건지 떠올리기까지에는 아무리 윤대협이라도 잠시 시간이 걸렸다.
“매일 같은 집으로 돌아가는 거. 같이 자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에 떠오른 자신의 발언을 그대로 읽어 주는 듯한 서태웅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결혼하자.”
조금도 떨리지 않아서.
윤대협은 그게 좋았다.
조용히 미소를 지은 채로 윤대협은 서태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노려보는 듯한 곧은 눈빛 끝에 언제나 자신이 있다. 그때마다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웃음을 서태웅은 매번 보고 있겠지. 이 기쁨에 적당한 승낙의 말을 찾기 어려워 윤대협은 고개를 숙여 서태웅의 단호하게 다물린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거절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프러포즈였다.
그게 부모님도 모르게 도둑처럼 혼인신고를 하게 된 이유였다. 증인은 아침 일찍 여권 갱신하러 온 선량한 주민 두 명이 흔쾌히 맡아 주었다.
서태웅에겐 이 사연을 유튜브에 맞게 썰로 풀 만한 말재주가 없었고…
윤대협은 누구에게도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