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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5.07.27

페어 플레이 4

불면의이쑤신

[프로농구 시즌 결산] MVP 서태웅 단독 인터뷰 “포지션 변신? 전부 윤대협 꺾기 위해”

Q. 데뷔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과 MVP를 석권한 소감은?

A. 감사하다. 전부 팀 덕분이다.

Q. 그게 다인가? (웃음)

A. (한참 생각 후) 그게 다다.

Q. 팀에서 맡은 역할이 완전히 달라진 시즌이었는데.

A. 그렇지는 않다. 지금도 내 역할은 득점이다. 방식만 좀 바뀌었다.

Q. 돌파를 앞세운 골밑 공격 이미지가 강하고, 외곽은 허를 찌르는 한 수였는데, 이번 시즌에는 정반대였다. 대처하지 못한 다른 팀이 초반부터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A. 시즌 전부터 팀과 함께 준비를 철저히 했다. 어차피 전부 나를 막으러 올 테니까, 절대 막을 수 없도록.

Q. 완전히 다른 선수 같았는데, 적응이 힘들지 않았는지?

A. 이전과는 다른 선수가 되려고 했으니까. 재미있었다.

Q. 고등학교 때부터 영혼의 맞수로 불리는 윤대협 선수를 꺾었는데.

A. 전부 팀 덕분이다. 팀이 나를 잘 써주셨다. 그래서 MVP도 받았다. 감사할 뿐이다.

Q. 특별히 윤대협 선수를 겨냥한 대책이 있었나?

A. 이전과는 다른 선수가 되려고 했다. 윤대협을 이기려면 윤대협의 예측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교 농구 때부터 그랬다. 윤대협은 내가 아주 단순한 줄 안다. 조금 도발하면 자기 뜻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뒤집어서 하면 된다. 자기 꾀에 빠진다. (미소)

Q. 리그를 발칵 뒤집었던 포지션 변화 자체가 윤대협 선수 때문이었나?

A. 윤대협을 꺾으면 전부 이길 수 있다.

Q. 라이벌 팀을 꺾고 와이어 투 와이어 신화를 이룩한 팀 분위기는 어떤가?

A. 좋다.

Q. 더 자세히 말한다면?

A. (한참 생각 후) 다들 기쁜 것 같다.

Q. 최연소 얼리 드래프트 이후 벌써 리그 3년차다. 서태웅 선수는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인가?

A. (잠시 침묵) 형들이 놀리려고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좌중 웃음)

Q. 올해는 드디어 동생들도 입단했다. 에이스로서 한 마디 한다면?

A. 잘 해 보자.

(생략)


[익명] 23:07 ? (미소) ㅇㅈㄹ 소설쓰네

ㄴ[익명] 23:08 정확히 이 말 쓰려고 들어옴

ㄴ[익명] 23:10 아니야 영상 떴어 youtu.be/watch=s71a1rk

[익명] 23:07 (미소) <-????? 이거 오보 같은데요 언론중재 신청합니다

ㄴ[익명] 23:08 ㄹㅇ 난 심지어 영상도 봤는데 기자양반 과장이 좀 심하시네 근데 웃긴 웃었음

ㄴ[익명] 23:10 (모나리자) (입술씰룩임) (조소)

ㄴ[익명] 23:12 윗댓 정론직필

ㄴ[익명] 23:12 아니죠 이건 서태웅 기준으로 보정 들어가야죠 (박장대소) (활짝) (큰 웃음)

ㄴ[익명] 23:14 ㅇㅇ난 윗댓에 한표 서태웅이잖아 박장대소 인정이지

[익명] 23:09 이새끼는 입털때마다 싸가지 밥말아먹었나 윤대협이 니 친구냐 맨날 반말 찍찍 그 흔한 윤대협선수 존칭도 없음 한번 이겼다고 존나 기세등등하네

ㄴ[익명] 23:10 얘 어제부터 농구봄? 친구는 아니고 동거인입니다만

ㄴ[익명] 23:10 정작 느그 윤대협은 집에서 배나 긁을텐데 일부 개유난 대협빠들만 긁히는 현실

ㄴ[익명] 23:11 서태웅 싸가지 논란은 데뷔 시즌에 윤대협 제외 모든 선수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게 밝혀지며 종결된지 3년째란다 feat.최연소얼리드랲

ㄴ[익명] 23:11 유난러: 서태웅말이짧다싸가지없다어쩌구

윤대협: ㅎㅎ태웅이 마이콧네 귀여워

ㄴ[익명] 23:11 서태웅이 윤대협한테 형이라고 부르면 윤대협 존나쫄듯… 괴담인가 싶을듯

ㄴ[익명] 23:12 윗댓ㅇㅇ 심지어 “윤대협 선수”??? 체할지도 모름… 새로운 티배깅인가…

ㄴ[익명] 23:14 아 올스타전 때 누가 뒤에서 부르는 거 실수로 다른 선수인 줄 알고 네 형 했는데 돌아보니까 윤대협이어서 표정 썩는거 졸라웃겼는데ㅋㅋㅋ 윤대협은 입 찢어지고ㅋㅋㅋㅋㅋ

ㄴ[익명] 23:18 명장면 다시보시죠 youtu.be/watch=v1tpsfn

ㄴ[익명] 23:20 오랜만이다 이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익명] 23:20 헐 나 처음 봄 ㄳㄳ

[익명] 23:10 아니 나도 인터뷰 영상 봤는데 진짜로 입이 직선은? 아니네? 웃긴? 웃네? 웃을줄? 아네?????

ㄴ[익명] 23:11 비결: 윤대협 디스

ㄴ[익명] 23:12 이게 맞음

ㄴ[익명] 23:12 222 윤대협 밟아서

[익명] 23:11 근데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어야” 이길 수 있는 걸 밟았다고 할 수 있냐? 뭔가 뒷맛이 묘하다

ㄴ[익명] 23:12 이거지 자세히 읽어봐 윤대협 리스펙이야 첨부터 끝까지… 그놈의 형소리에만 집착하느라 이런 걸 모르는 일부 대협빠들 한심함

ㄴ[익명] 23:13 “윤대협을 꺾으면 전부 이길 수 있다” 이러네… 본인vs윤대협>나머지 이런 세계관임 참내

ㄴ[익명] 23:15 의외로 제일 지독한 대협빠=서태웅

[익명] 23:11 존나 잘생겼네 얜 왜 아이돌 안하냐

ㄴ[익명] 23:12 또 금지영상 꺼내야 되냐

ㄴ[익명] 23:12 뉴비들아 20XX 올스타 하프타임쇼 윤대협 서태웅 검색하고 와라 차마 그건 링크 못 가져옴

ㄴ[익명] 23:13 하 또 올스타 영상 끌올되겠네 내눈 미리 RIP

ㄴ[익명] 23:15 ㅅㅂ 처음봤네 서태웅도 서태웅인데 옆에 윤대협 나만보여????

ㄴ[익명] 23:16 킹받는점 윤대협은 목위로는 무슨 1군남돌임 근데 목아래로는… 농구잘해서 다행이다 얘들아

ㄴ[익명] 23:16 케이팝이 빼앗긴 인재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케이팝이 거절한 인재였던 사건

ㄴ[익명] 23:17 옆에서 저지경이 나도 한톨도 웃지 않았던 서태웅… 윤대협 밟고 (미소)

[익명] 23:11 태웅아 올시즌 잘했고 수고했고 올해 이룰 거 다 이뤄서 혹시 내년 목표 정할 거 없으면 인터뷰 대답 분량 확보는 어떨까? 정중하게 부탁하는 거예요


프로 구단의 팀메이트 관계는 학생 때와 완전히 다르다. 적어도 서태웅은 그렇게 느꼈다. 특히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오늘 같은 팀이라고 내년에도 그러라는 법은 없다는 것. 다 알고 있는데도 같이 있는 동안엔 끈끈한 소속감으로 뭉친다. 팀 분위기는 언제나 좋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두가 자영업자. 그것도 실시간으로 연봉이 공개되고 성과를 비교 당하는. 대조는 팀 내에서 더 심하다. 한 번도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가 있는 반면, 윤대협이나 서태웅처럼 데뷔 시즌부터 팀과 별개로 개인 스폰서 기업이 붙는 선수도 있다.

어찌 보면 가혹한 환경. 그렇다고 팀워크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솔직하게 부러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연차나 나이를 앞세워 질투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없다. 능력의 차이가 돈의 차이다. 그게 너무 당연한 사람들뿐이다. 그런 점에서 프로라고 느낀다.

그만큼 팀 내 경쟁도 치열하다. 수많은 선별을 거친 승리자들만 코트에 선다. 먼저 시작했다고 꼭 이긴다는 법은 없다. 각자 잘하는 방식이 다르고 비결이 다르고 루틴이 다르다. 함부로 조언하기에 마땅찮다. 잘못 선무당이 입을 댔다가 고유의 리듬이 깨지는 날엔 아무도 책임져 줄 수 없다.

서태웅은 그런 점 때문에 조언을 아낀다기보다… 조언 자체에 약했다. 중고등학생 때야 어렵지 않았다. 그 땐 서태웅은 선배에게 묻는 것도 후배에게 가르치는 것도 스스럼없었다. 하지만 프로는 다르다.

프로에 온 후로 서태웅은 항상 자기 자신이 먼저였다. 수준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선에서 농구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의 문제점에 대한 힌트보다 자신이 시도해 보고 싶은 게 먼저 떠올랐고. 떠올랐다면 바로 실행해 보고 싶었다. 아이디어가 실체를 가진 동작이 되고 마침내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스킬이 될 때까지. 실행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을 잊었다. 그렇게 며칠이 금방 농구로 빨려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서태웅은 끝없이 강해지기에 바빴다. 주변을 보는 것. 쉽지 않았다.

누구나 그런 식으로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윤대협처럼은.

너는 시합 때나 원온원 때나 플레이가 같아.

프로 선수가 된 지금도 서태웅은 종종 그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알았지?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그 말 자체가 무슨 의미인지 곱씹느라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말을 건넨 윤대협의 의도나, 그걸 파악해 낸 윤대협의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닿지도 않았다.

서태웅의 농구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서태웅이었을 터. 그럼에도 서태웅이 알지 못했던 서태웅의 농구를 윤대협은 먼저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서태웅에게 알려주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자기 자신을 가장 우선하지만. 동시에 주변을 아주 정확히 파악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윤대협. 그건 윤대협이 타고난 스킬이다. 서태웅은 흉내 낼 수 없다.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농구를 계속하고 후배가 늘어날수록 서태웅은 그때 윤대협의 대단함을 점점 더 알게 되었다.

그 조언도 결국 윤대협을 나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을까. 그 조언을 통해 스스로 강해지는 것만 생각해 왔던, 이제서야 비로소 그때 윤대협이 왜 그랬던 건지 이상히 여기는 서태웅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이젠 열다섯 때보다는 반추하는 힘이 생겼다. 시야도 넓어졌고. 또 결과적으로 농구에 관여하는 농구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 예를 들어 사람의 감정이나 상호작용이나 습관의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다. 그만큼 서태웅의 농구 자체가 넓어졌고 서태웅의 세계도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서태웅은 코트를 밟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오늘 이 경기. 오늘 이 쿼터. 지금 바로 이 순간. 앞으로 몇 점을 더 넣을 것인지. 다른 모든 정보는 오직 그것에 집중하기 위한 재료들에 불과했다. 몸에 새겨진 모든 훈련과 머릿속에 넣었던 모든 분석과 의식하기도 전에 이미 행동으로 종료된 동물적인 판단. 서태웅은 그런 식으로 질주하며 승리했다.

비슷한 듯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늘 서태웅을 가로막는 윤대협.

하지만 완전히 다르니까 이길 수 있는 거지. 서태웅이라고 언제까지나 한 수 모자라기만 한 건 아니었다. 특히 윤대협에게는. 윤대협에게만큼은. 윤대협만 서태웅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코트 안에서 윤대협을 가장 잘 아는 건 서태웅이다.

끊임없이 생각에 빠져있는 윤대협. 계산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한 윤대협. 벤치의 지시보다 자기 자신을 믿는 윤대협. 팀에게 사용되기보다 팀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고. 자신 있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통제권을 장악하는 윤대협.

계산을 아득히 넘어서는 플레이 앞에서만 진짜 본능만으로 덤벼오는 윤대협.

언제나 서태웅의 목표는 그 순간까지 윤대협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 순간이 되면 윤대협은 자신에게 익숙한 존을 벗어나고 서태웅의 영역에 들어온다. 오직 본능에 충실한 서태웅만이 윤대협을 그 순간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 계산과 논리로 촘촘히 구성된 윤대협의 방어기제를 뚫고 진짜 윤대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서태웅은 이런 걸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찬찬히 생각하면 논리를 발견할 수는 있었겠지만. 농구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언제나 확신했다.

윤대협을 상대하는 건 나라고.

프로에 온 이후 서태웅은 팀을 몇 번 바꿨다. 그 때마다 윤대협과 다른 팀이었다. 두 사람을 확보하면 압도적 경기력은 보장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어느 팀이든 끈질기게 제안해 왔지만. 서태웅은 별 고민 없이 다른 팀을 골랐다. 윤대협의 의견은 물어본 적 없다. 기자들이 알려주기론 ‘서태웅은 다른 팀일 때 더 재밌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집에서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나눈 적 없었다.

윤대협이 서른일곱, 서태웅이 서른다섯일 때까지도.


아직은 윤대협이 스물일곱, 서태웅이 스물다섯의 여름이었다.

기복 없는 군림의 비결을 물을 때마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짠 것처럼 비시즌 몸 관리를 말했다. 윤대협은 최근 부활시킨 고등학생 시절 취미를 좇아 가끔 훌쩍 낚시 여행을 떠나는 것 말고는 대체로 비슷한 하루를 보냈다. 잘 짜인 운동 루틴과 준수한 식단. 좋아하던 와인도 스물다섯 이후 완전히 끊었다.

대학 때부터 친한 선후배들이든 능남 시절 친구들이든 윤대협은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만났다. 비시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오직 이 시기의 결혼식에만 참석 가능하다는 것 정도. 선배 무리에서 첫 스타트를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관혼상제에 익숙하지 않은 윤대협은 사회적으로 마땅히 가야 하는 경우거나 뷔페가 특히 당기는 날에만 참석했다.

만나는 사람 없냐고 모두들 입을 모아 물었다. 윤대협은 그냥 웃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애가 자신에게 별로 맞지 않는다는 걸 충분히 확신할 정도의 경험은 있었다. 미성년 시절의 미숙한 만남은 연애로도 안 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윤대협은 자신도 다른 사람들도 그때보다 과연 얼마나 성숙했을지 의심스러웠고 별로 진상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섹스에 대해서도 별생각 없었다. 대체로 부정적인 기억 뿐이었다. 상대방의 욕망 때문에 원치 않는 성적 긴장감이 조성되는 경험은 언제고 유쾌하지 않았다. 윤대협이 생각하기에 섹스는 아주 친밀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인데, 기껏 친밀해지고 나면 잘 아는 사이에 섹스한다는 게 민망해진다는 점에서 모순적이었다. 그러니까 신비감이 남을 정도로는 적당히 낯설고 또 신뢰할 수 있을 만큼은 적당히 가까운, 바늘귀처럼 섬세한 거리감에서만 섹스가 편안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너무 복잡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고등학교나 대학교 운동부 시절에는 섹스가 상당히 화제에 오르곤 했다. 섹스에 대한 주변의 욕망은 실제 섹스보다도 대단히 노골적이고 폭력적이며 단순하기 그지없어서 윤대협으로서는 내가 좀 지나치게 섬세한 건가 싶은 순간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프로가 되고 나서는 그렇지 않았다. 윤대협은 관찰 결과 극단적인 두 부류의 존재를 파악했다. 한 편은 학창시절 운동부 때 망상하던 그대로, 스포츠로 자극된 넘치는 아드레날린을 그대로 끝없는 섹스로 이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중독자 같은 부류. 그들은 그걸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남자는 원래 그런 거라며. 흔한 일반화의 오류를 승부욕에도 성욕에도 함부로 갖다 붙였다.

한편으론 인생 전반에 금욕적인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 농구 외의 정보에 무관심. 오직 주변 사람들이 전해주는 딱 그만큼의 세상만 알고. 자신의 신체와 내면에 집중한 나머지 그 바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 농구가 주는 도파민이면 충분한 사람들. 타고난 성적인 충동의 빈도나 양은 당연히 각자 다를 것이고 그런 대화까지 나눠 본 적은 없어서 어떻게 해소하고들 사는지까지 알 순 없지만. 최소한 그들에게 섹스는 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 곁에서 윤대협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와 내면에 온전히 집중하는 만큼 농구에서 눈에 띄게 성과를 냈다. 입단 때는 무명 신인 선수일지라도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두각을 나타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당연히 서태웅이다. 그의 옆에서 유난히 숨쉬기 편한 데엔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코트에서 마주하는 서태웅은 윤대협의 체내에 아드레날린, 도파민, 엔도르핀의 분비를 촉진한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무한한 자극. 찰나가 영원처럼 느려지는 짜릿한 집중. 심장 박동을 전신으로 느끼는 고양감. 벼랑 끝으로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함과 한계까지 밀어붙인 육체가 지르는 비명 같은 고통, 동시에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과 실제로 해낼 수 없었던 것을 해냈을 때 마비같이 얼얼한 성취감.

집에서 마주하는 서태웅은, 사실 마주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인데, 윤대협의 체내에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한다. 혼자 있을 때 같은 평안. 긴장이 완전히 사라져 잔잔하게 감각되는 이완. 바다가 규칙적으로 내는 숨소리처럼 표백되지 않은 고요. 윤대협의 그 어떤 생각이나 정서도 방해하지 않는, 정적이고 규칙적이며 예측 가능한 생활패턴. 속내를 한 번 더 꼬아 짐작할 필요 없이 투명한 감정 표현.

윤대협은 농구와 서태웅만 있으면 딱히 섹스나 연애가 필요하지 않았다. 실은 서태웅과 섹스나 연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완벽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윤대협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애는 안 하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그렇게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서태웅은 비시즌 때도 그냥 시즌 때랑 똑같이 살았다. 가끔 미국 친구들을 만나러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 말고는 완전히 똑같은 하루였다. 친구 중엔 농구를 계속하는 사람들도 학업이나 취업을 쫓아 간 사람들도 있었다. 결혼한 사람이 많았고 애가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정말 빨리 결혼하는구나. 서태웅은 내심 놀랐다. 국내에서 주변 또래 중에는 아직 결혼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결혼하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서태웅은 할 말이 없었다.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건 윤대협과 살 수 없다는 뜻이다. 그건 싫다.

이미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여자친구를 통해 깨달은 바 있었다. 결혼하지도 않을 거라면 굳이 여자친구를 만들 필요를 서태웅은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여자친구도 스포츠를 직업 삼아 꾸준히 할 거라면 어릴 때 좋은 사람 만나 일찍 결혼하는 게 제일이라는 의견을 가진 부모님의 지인을 통해 결혼을 전제로 소개받은 상대였다. 둘 다 나이가 나이였던 만큼 약혼 같은 무거운 개념과는 거리가 먼,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얇고 은은한 ‘결혼 전제’이긴 했지만.

그때 서태웅은 어렸지만 농구에 결혼이 필요하다는 말에 어느 정도 막연하게 공감했다. 지금까지 부모님이나 학교가 그랬던 것처럼 농구 이외의 의식주와 살림을 어느 정도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한 거겠지. 농구 외의 생활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지탱해 주고.

그러나 서태웅은 윤대협을 만났고. 함께하는 생활에 만족했다. 그래서 헤어졌다.

서태웅은 현재 생활에 매우 만족했다. 가사와 살림도 둘이서 맞들면 시간을 모으든 돈을 모으든 어렵지 않게 해결됐다. 윤대협만큼 조용한 결혼 상대가 이 세상에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농구도 좋아하고. 그래서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고. 심심하면 일 대 일도 할 수 있고. 생활상의 불편함은 물론 사소하게 다툰 일조차 없다. 그래서 동거 생활이 오래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윤대협도 같은 마음이라는 자신감이 서태웅에겐 있었다. 싫었다면 금방 그만뒀을 놈이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결혼하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냐면.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거야. 서태웅은 다문 입술을 한 번 더 꾸욱 물었다.

그럼 윤대협이 결혼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서태웅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윤대협은 집에 여자친구를 데려 온 적이 없다. 서태웅처럼 함께 있는 모습을 들킨 적도 없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조차 들은 적이 없다. 윤대협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해 보였다. 행복하고. 자연스럽고. 좋아 보였다. 그래서 그런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농구 외에 깊이 고민할 게 생긴 건 오랜만이었다.


비시즌도 나름 바쁘다. 훈련이며 사회생활이며 가족들과의 일정. 룸메이트 얼굴은 시즌보다 약간 더 자주 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일 대 일 횟수만큼은 시즌에 비할 바 아니다. 여름이라고 봐주지도 않는다. 독한 녀석. 윤대협은 속으로만 욕했다. 겉으로 했다가 당사자가 칭찬인 줄 알까 봐. 하늘은 스스로 독한 녀석을 돕는지 마침 단지 내 야외 농구 코트는 건물로 둘러싸여 24시간 그늘이다.

해가 지면 한층 더 할 만하다. 길어진 여름 해를 따라 노을도 같이 길어졌기에 제법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다.

고등학생 때도 이런 시간에 서태웅과 공을 던진 적이 있었다. 서서히 넘어가는 해가 다채롭게 물들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치열하게 맞붙었던 기억. 그때는 그게 하지에 가까운 찰나의 여름이라 가능한 마법 같은 시간이라는 걸 몰랐다. 등 뒤의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눈앞에서 잽싸게 스쳐 지나가는 서태웅의 얼굴과 그 손끝에 걸린 공의 행방에만 집중했었다.

마침내 완전한 어둠이 주변을 감싸고 가로등에 일제히 불이 켜진다. 선선해진 밤공기도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진정시킬 수 없다. 윤대협은 민소매 셔츠를 끌어당겨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오늘의 패배자에게 선언한다.

“네가 사야지.”

서태웅은 미련이 남은 듯이 한 번 더 림을 향해 공을 던졌다. 깔끔한 삼 점. 그래도 패배는 패배다. 서태웅은 궁시렁거리지 않고 편의점을 향해 앞장선다. 그래도 옆에서 본 입술은 삐죽 튀어나와 있어 윤대협은 빙긋 웃었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편의점까지 말없이 걸었다. 각자 신중하게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서태웅이 계산하길 기다렸다가. 입에 하나씩 물고 밤거리를 걷는다. 몸이 뜨거웠던 때엔 선선하게 느껴졌던 밤공기는 한 김 식고 나니 미지근했다. 다시 땀이 나지 않도록 둘은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걸었다.

윤대협은 가로등이 길게 늘여 놓은 서태웅의 그림자가 자신의 그것과 함께 나란히 걷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충동적으로 물었다.

“요즘 연애 안 하네.”

서태웅의 고개가 윤대협을 향하는 게 느껴진다.

“나?”

“응.”

서태웅은 대답이 없다. 그건 대체로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뜻이다. 하긴 헤어진 이유가 이유였으니. 그래도 결혼만 안 하면 연애는 할 수도 있잖아. 윤대협은 그런 의미로 질문한 거지만 굳이 풀어 묻진 않았다. 정말로 궁금하진 않았다. 그냥 그런 말이 튀어 나갔다. 처음부터 오래 갈 수 있는 대화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서태웅은 그럴 생각도 아닌가 보다.

“넌 없어?”

윤대협은 무심코 고개를 휙 돌려 서태웅을 보았다. 가로등이 길게 늘여 놓은 윤대협의 그림자와 서태웅의 그것이 나란히 걷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서태웅의 옆모습은 평소와 똑같았다.

“뭐가?”

“여자친구.”

이번엔 눈만 슬쩍 돌려 윤대협의 얼굴을 살핀다.

뭐라고 해야 하지. 윤대협은 농구와 서태웅만 있으면 딱히 섹스나 연애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태웅에게 그렇게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짧게 머리를 굴린 끝에 윤대협은 서태웅을 좀 놀리기로 했다.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장난스러운 미소까지 애써 감추지는 않았다.

“왜? 집 비워주게?”

서태웅은 아주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윤대협은 자신의 힘으로 이 표정을 끌어냈을 때 왠지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서태웅이 확신을 가지고 맞받아친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너 집에 여자 안 데려오잖아.”

윤대협은 잠깐 사고가 정지했다.

서태웅이 자신의 감정이나 요구가 아니라 윤대협에 대해 관찰한 바를 말한 적이 있었나? 애초에 서태웅은 평소에 나를 관찰하고 있단 말인가?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을 한다고? 서태웅이?

“내가 데려오는 것도 싫어했고.”

심지어 쐐기. 항상 관찰하는 쪽은 자신이라고 생각해 왔다는 걸. 윤대협은 바로 그 순간 깨달았다. 서태웅은 조용하고, 농구가 아니면 방문도 노크하지 않고,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은 듯이 윤대협의 그 무엇도 침범한 적 없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뭔가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지 모르지만. 윤대협은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들켰네…”

서태웅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돌아온다.

“뭐가 들켜. 룰인데.”

그래서 윤대협은 그 이상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고 일상적인 대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랬지 참…”

“네가 그러라며.”

“맞네…”

“그냥 친구도 허락받으라고 했어.”

그러고 보니 그런 룰이 있었다. 손님을 데려올 땐 허락을 받자. 이사 첫날, 당시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규칙을 빽빽하게 쓴 종이를 두고 진지하게 머리를 맞댔던 일을 생각하니 윤대협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은 그 종이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냉장고에 붙어 있었는데. 냉장고 밑에 들어갔나… 그런 걸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로 6년을 살았다. 다 알면서도 윤대협은 즐겁게 그 시절의 어리석은 규칙을 변호했다.

“그게 맞지 않나? 집에 왔는데 생판 타인이 있는 건… 유쾌하진 않지.”

“나도 남인데.”

“너는…”

윤대협은 비로소 말문이 막혔다. 너는.

그 다음을 잇기가. 쉽지 않았다. 함께 살았던 지난 6년이. 그전에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까지. 머릿속에 찰나처럼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것이 선명한 듯. 모든 초점이 흐려졌다.

몇 개인가 가로등을 터벅터벅 지나고 나서야 윤대협은 간신히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농구공 같은 거니까…”

침묵. 부디 서태웅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길 바랐지만. 윤대협은 굳이 확인하진 않았다.

농구, 같은 거라고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는 걸. 이 세상에서 오직 윤대협만 알았다.

또다시 가로등 한 개 정도를 지났을 때 서태웅이 느리게 말했다.

“나는 사람이야.”

윤대협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런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없었다. 아이스크림은 진작 다 먹고 없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마찬가지. 조용히 불이 켜지는 소리뿐이었다. 에어컨을 켜고 나갔기 때문에 실내는 더없이 쾌적했다. 묵묵히 각자의 욕실로 향한다. 개운한 샤워. 윤대협은 침대에 드러누울까 잠깐 고민하다가 서재로 들어갔다. 잠시 책상 앞에 앉아 아까 그 순간에 느낀 정체불명의 위기감은 뭐였는지. 조금이나마 소화한 후에 잠들고 싶었다.

윤대협에게 서태웅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건 이 세상에 윤대협뿐이다. 윤대협은 당사자는 물론이요 그 어떤 타인에게도 서태웅을 향한 독특하면서도 단순한 감정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자신 안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느꼈지만.

심지어 서태웅을 성적인 상대로 볼 수 있는지 같은 민감한 문제조차 아마 그럴 거라는 정도의 가벼운 추측은 해 둔 상태였다. 물론 깊이 고민하진 않았다. 깊이 고민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어떤 강렬한 감각을 내면에서 즉각 느꼈기 때문이다.

그건 거부감이나 불쾌감과는 또 다른 감각이었다. 서태웅은 이미 윤대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손이나 발 같은 게 아니고. 말하자면 피부 내면에 달라붙은 방식으로. 그런 일부는 애초에 그 어떤 대상도 될 수 없다. 피부의 내측이라 쓰다듬을 수 없다. 이미 품고 있어서 껴안을 수 없다.

약간 심란해진 상태로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생각에 잠긴 윤대협의 귀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서태웅이 윤대협의 방문을 노크한 적은 없다. 일 대 일을 할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불안밖에 없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려면 멀었다.

하지만 다른 옵션이 있을까? 침대방이 아니라 자는 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윤대협이 아무 대답 없으면 서태웅은 조용히 자기 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어깨를 낮추고 뒤돌아 설 뒷모습이 그려져. 윤대협은 그게 더 참을 수 없었다. 망설인 끝에 결국 윤대협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들어와.”

다행히도 더없이 침착한 목소리였다.

문고리를 잡은 채로 열린 문밖에 서 있는 서태웅은. 의자에 앉아 있는 윤대협을 따라 약간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실내의 적당한 조도에 맞춰 드리워진 속눈썹의 그림자. 조금 망설이는 듯 문고리를 잡은 손이 움찔거리는 것을 윤대협은 보았다. 서태웅으로서는 드문 태도였다.

서태웅도 윤대협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있었다.

평소의 퉁명스러운 어조 대신 느리고 나직한 목소리가 윤대협의 방 안으로 내려앉았다.

“룰… 추가하면 안 돼?”

확신이 없는 말투만으로도 윤대협은 가슴이 움찔거렸다.

6년 동안, 아니 서태웅을 알고 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허락을 구한다니. 서태웅이 윤대협에게. 손님을 데려올 땐 허락을 구하자는 룰이 있음에도 서태웅은 허락을 구할 일 자체를 단 한 번도 만든 적 없다.

그렇다고 저까지 움찔거릴 순 없는 노릇.

윤대협은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로 물었다. 지나치게 자상한 말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룰?”

서태웅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대체로의 경우처럼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그건 드물게 대답을 위한 준비 시간을 갖는 모습이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꾸욱 들어가는 걸 윤대협은 똑똑히 확인했다.

서태웅이 결연하게 입을 열었다. 힘주어 목소리를 낼 때마다 자귀나무꽃 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여자 생기면 말해주기.”

전신의 피부 안쪽이 찡하게 울린다.

윤대협의 마음 한 켠에 있던 저울이 기어이 무너졌다. 내려앉았다. 흔적도 남지 않고 완전히 소멸했다. 그 작지만 거대한 천재지변 같은 붕괴를 온몸의 안팎으로 느끼며 윤대협은 간신히 떨림을 참았다. 잠시 생각하는 척 눈을 내리깔고 심장의 흔들림을 미친 듯이 억제하려 안간힘을 썼다.

거절하고 싶다.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서태웅은 분명히 이유를 물을 것이고. 왜 필사적으로 거리를 두고자 하는지 설명하려면. 서태웅에 대한 윤대협의 마음을 폭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걸 왜 요구하냐고 반대로 따져 묻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서태웅의 이유를 들으면, 벌써 한 번 같이 살자는 여자를 윤대협 때문에 거절한 서태웅이 이런 걸 물어보는 이유를 들으면. 그 때는 정말 현재의 관계가 완전히 박살난다. 돌이킬 수 없다.

못 들은 척 방문을 닫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문고리를 꼭 쥔 서태웅의 커다란 손아귀에 감겨 있는 긴장을 보았기 때문에. 윤대협은 절대 서태웅의 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사실은 기뻐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결국 남은 답은 한 개 뿐이다. 들릴까 재빨리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야. 윤대협은 적당한 진지함을 섞어서. 확인하듯 물을 수 있었다.

“너도 지켜야 하는 거 알지?”

서태웅이 약간 내리깔았던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자 형광등이 반사되어 반짝 빛났다. 윤대협은 현기증을 참았다. 서태웅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

“알겠어. 그렇게 하자. 안 써놔도 되겠지?”

“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 그러니까 눈에 띄게 안도한 얼굴로 서태웅은 가볍게 돌아섰다.

거슬리지 않는 정도의 작은 소리를 내며 가만히 방문이 닫히고, 살짝 끄는 듯한 서태웅 특유의 발걸음이 제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소리까지 귀 기울여 들은 다음에야.

윤대협은 책상 위에 팔뚝을 겹치고 완전히 엎어졌다. 들릴까 무서운 깊은 한숨을 그 안에 내려놓는다.

지금까지 6년 동안 서태웅이 혼자 있는 윤대협을 방해한다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그전에도. 조금 늦었을지언정 멀쩡히 농구부 가는 윤대협을 붙들고 승부하자 덤볐던 그 순간조차. 윤대협은 방해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한 적 없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방해라고만 보기에도 너무 잔인하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두근거린다. 작은 망치로 일정하게 때리는 것 같다. 깨어질까봐 두렵다. 윤대협은 이런 아픔을 원하지 않았다.

최악이다. 서태웅은 정말 최악이다. 가장 정리가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모든 것을 다 뒤흔들고 가 버렸다. 정리? 윤대협은 오늘은 그냥 다 포기하기로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한숨을 참지 않았다. 마른 얼굴을 끝없이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머리칼 속으로 몇 번이나 손가락을 통과시켰다.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 속에 푹 잠긴 채로 충분히 허우적거리고 나서야 윤대협은 겨우 진정되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자리의 폐허를 바라보듯 멍하니 허공을 향한 시선. 하나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서태웅과 섹스나 연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선을 넘을지도 모르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그러나 참아야만 하고 모른 척해야만 하는 이런 종류의 간지러움은. 서태웅의 존재는. 두 개의 서태웅이. 짜릿한 긴장과 달콤한 이완이, 아드레날린과 세로토닌이,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이 교차하는 순간은. 그리하여 마침내 완전한 서태웅의 존재는.

고통스럽다면 고통스럽고 행복하다면 행복하다. 언젠가 이것을 영원히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가정법에는 좀 더 확실하게 고통만 남지만.

그럼에도 윤대협은 아픔이 무서워서 아끼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남자는 아니다. 세계는 넓어질수록 기쁨만큼이나 상처도 준다. 베일까 두려워 손 뻗기를 주저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농구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그랬다. 농구공 같다고 얼버무렸었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은. 농구를 사랑하는 만큼. 꼭 그만큼 패배는 언제나 아프지만. 패배가 두려워 농구를 그만두겠다고는 생각한 적 없듯이.

현상 유지. 그것이야말로 용기다.

딱 그만큼 정리하고서야 윤대협은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윤대협이 스물일곱, 서태웅이 스물다섯의 여름이었다.


서태웅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집주인입니다 통화 괜찮으신가요]

서태웅은 지금까지 집주인과 통화해 본 적이 없다. 그건 윤대협이 하는 일이었다. 이 집을 소개해 준 중개사가 윤대협과 친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임대차 계약은 각자 했지만 집과 관련된 돈 관리나 하자 보수 등 집주인과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창구는 윤대협으로 통일했다. 윤대협이 만들어 온 룰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집주인이 먼저 연락했다면 룰 위반은 아니지.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가. 다소 긴 인사말과 칭찬 끝에 들은 용건은…

“갑작스러우시겠지만 제가 부동산에 집을 내놓을까 해서…”

“네?”

“아. 오해하지 마시고요. 매매로 내놓으려고요.”

“매매요?”

“네. 그래서 서태웅 씨가 혹시 이 집이 마음에 들면 우선적으로 저기 하고 싶어서요.”

“저한테요?”

“네. 생각해 보시겠어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두 달 후. 시즌이 끝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마무리 훈련도 종료되고 이제 전지훈련까지는 개인 훈련뿐이다. 본격적으로 빈둥거려도 되는 시간이라는 의미다. 적어도 윤대협에게는 그랬다.

화창한 평일 낮. 노크 소리를 들었을 때 윤대협은 서태웅의 손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농구공을 상상하며 문을 열었다.

거기엔 농구공 대신 서류철을 손에 든 서태웅이 서 있었다.

서태웅과 서류철…

윤대협은 랜덤 합성처럼 어색한 풍경에 잠시 사고를 멈췄다.

아무 반응 없는 윤대협을 잠깐 쳐다본 뒤 서태웅은 혼자서 아일랜드 식탁에 가 앉는다. 빨리 안 오고 뭐 하냐는 듯이 지긋이 윤대협을 바라본다. 말이 없는 대신 시선으로 독촉하는 재주가 있다. 윤대협은 서류철을 식탁 위에 단정히 내려놓은 서태웅 앞에 얌전히 앉으면서도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서태웅과 서류철…

윤대협이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서태웅이 말했다.

“윤대협.”

“응?”

신중한 태도로 묻는다.

“너 이 집 좋아하지?”

“그렇지.”

윤대협은 재빨리 이 대화의 기시감을 눈치챘다. 아마 두어 달 전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시즌 막바지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서태웅이 정확히 똑같은 질문을 했고. 달리 대답할 말이 없어 윤대협은 아마 거의 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태웅은 신중하게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왜…?

의문을 정리하기도 전에.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을 한 서태웅이 서류철을 척 펼쳤다.

왼쪽에 있는 건 부동산 매매 계약서였다. 집주인의 이름과 서태웅의 이름이 보인다.

오른쪽에 있는 건 부동산 소유권 등기였다. 집 주소와 서태웅의 이름이 보인다.

윤대협은… 모든 상황을 순식간에 이해했다. 서태웅이 근엄하게 선언하기 전부터.

“이제 내가 집주인이야.”

왜냐하면 정확히 석 달 전에 집주인이 윤대협에게 연락해 부동산 매매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윤대협은 신중하게 고민했지만, 최종적으로 구매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집을 구매한다고 서태웅과 계속 지금처럼 생활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언젠가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 결심이 선 서태웅이 떠나면, 그게 30대든 40대든 심지어 50대 이후라고 해도, 윤대협은 이 집에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가족과 사는 게 그나마 차선이었다. 물론 서태웅은 단지 내 야외 농구 코트 하나만으로도 이 집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주거 환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불확실한 리턴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컸다. 큰 간섭 없고 일 처리가 정확한 집주인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건 아쉬웠지만. 전 국민이 다 아는 윤대협과 서태웅만큼 우량한 세입자는 드물 것이고. 다소 집세가 올라간다 해도 그들이 감당 못 할 수준일 리 없으니 이 집에서 쫓겨날 확률은 제로에 수렴했다. 윤대협은 현상 유지를 택했다.

그래서 윤대협은 모든 상황을 순식간에 이해했다.

그럼에도 잠깐… 시간이 필요했다.

집주인으로선 당연히 남은 한 사람에게 같은 제안을 해볼 만하다. 다만 윤대협은 지금껏 집주인과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오직 홀로 담당해 왔기에 그런 뻔한 가능성을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집주인이 서태웅의 전화번호를 아는 줄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중개사를 통해 간단히 알 수 있는데.

그렇게 윤대협과 같은 제안을 받은 서태웅은, 윤대협에게 이 집을 좋아하는지 거듭 확인한 다음, 부동산 매매 등기까지 완벽하게 종료한 채 의기양양하게 서류철을 들고 윤대협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그리고 즐기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가급적 혼자였다면 좋았겠지만. 눈앞에는 서태웅과 서류철이 건재했다. 윤대협은 움찔거리는 입술 가장자리에 힘을 꾹 주어 통제력을 되찾으려 애썼다. 그 얼굴과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서태웅이 재차 엄숙하게 선언했다.

“지금부턴 나한테 월세를 내는 거다.”

권위 있는 설명에 윤대협은 참지 못하고 활짝 웃어버렸다. 미처 손으로도 못 감추어 그나마 능청으로 가려 본다.

“지인 할인 없나요?”

잠시 고민하던 서태웅이 다섯 손가락을 척 보여준다.

“50%.”

윤대협은 자신도 모르게 높은 목소리로 기뻐했다.

“너무 파격적인데? 사기 아니죠?”

“내던 대로 내란 소리다. 멍청아.”

“하핫.”

결국 실없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알아.”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듯한 서태웅의 얼굴을 보며 윤대협은 그냥 웃었다. 자꾸 웃음이 났다. 윤대협이 가장 좋아하는 표정이라 그런가.

“좋아서 그래.”

그 무엇도 감추지 않고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윤대협에겐 새 집주인이, 서태웅에겐 난생처음 세입자가 생겼다.

윤대협이 서른, 서태웅이 스물여덟의 여름이었다.


그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

루틴으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운동도 식사도 깔끔하게 마친 비시즌의 여가 시간. 야외에서 일 대 일을 하기에는 너무 덥다. 체육관에서 추가로 땀을 빼거나 방에서 고독을 즐기는 대신. 윤대협은 8인 식구가 전부 늘어앉아도 남을 법한 거대한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TV도 켜지 않았고 책을 읽지도 않았고 잠들지도 않았다.

그냥 허공을 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서태웅도 옆에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방에서 음악을 듣거나 자는 대신 8인 식구가 전부 늘어앉아도 남을 법한 거대한 소파를 윤대협과 둘이 차지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누워서 졸지도 않았고 NBA 재방송을 찾아 케이블 채널을 뒤적이지도 않았고 그늘이니까 일 대 일을 하자고 우격다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윤대협과 나란히 앉아 허공을 보았다. 아무 생각 없어 보였다.

고요했다. 멀리서 들리는 도시의 생활 소음이 적절하게 여백이 되었다. 편안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어도 서태웅은 이런 시간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윤대협으로서는 딱히 방에 처박히지 않아도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동시에 조금도 고독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윤대협은 알 수 없었다. 중간에 잠깐 졸기도 했다. 서태웅이 자는 듯이 일정한 숨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걸 듣다 잠들었던가. 자다 깨서 들었던가. 헷갈렸다. 나른했다. 시계를 찾아 숫자를 보면 이 마법이 깨질 것 같아 윤대협은 그만두었다. 서태웅이 깨어 있다는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윤대협이 꿈처럼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너랑 이렇게 잘 지낼 줄 몰랐는데.”

시작도 끝도 뜬금도 없이 내뱉은 것치고는 생각보다 또렷한 자신의 목소리가 귀에 돌아온다. 서태웅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모를 침묵 속에 있다. 자고 있어도 놀랍지 않다. 편안한 고요는 계속된다.

서태웅의 대답이 들릴 때까지.

“난 알았어.”

윤대협은 무심코 고개를 틀어 서태웅을 바라본다. 처음처럼 멍하니 허공을 본 채로 서태웅은 움직이지 않는다. 목소리만은 의외로 또렷하다. 윤대협은 아무런 타의 없는 순수한 의문으로 반문한다.

“나랑 잘 지낼 것 같았어?”

서태웅은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제자리로 돌아간 시선이 여전히 멍하니 허공을 향한다. 윤대협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이번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잠시 대답이 없었다. 윤대협은 이번에도 대체로의 경우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서태웅이 무의식적으로 턱을 약간 당겨. 조금 치켜뜬 눈으로 지금까지처럼 허공을 바라보며. 열심히 대답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충분한 생각 끝에 서태웅은 후련하게 대답했다.

“그냥.”

“그냥?”

“어. 그냥.”

처음처럼 나른하게 허공을 향하는 서태웅의 시선을 보다 윤대협도 서서히 고개를 제자리로 돌렸다.

“그래…”

그 후로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달콤한 침묵뿐.

그게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였어도 이상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