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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5.07.27

페어 플레이 3

불면의이쑤신

[프로농구 시즌 결산] MVP 윤대협 단독 인터뷰 “태웅이 거 뺏은 건가? 우승컵 부러워“

(중략)

Q. 리그 사상 최초로 준우승 팀 MVP라는 독특한 기록도 세웠다. 소감은.

A. 정말 솔직히 말하면, 영광스럽지만은 않다. 우승컵을 든 MVP가 되고 싶었다. 평범하게.

Q. 팀은 라이벌 서태웅 선수의 버저비터에 울었지만, 개인 득점 및 기록은 압도적으로 앞섰다.

A. 태웅이는 그런 저력이 있는 선수니까. 하지만 두 번은 안 당할 거다. (웃음)

Q. 한 살 어린 선수와 항상 라이벌로 비교당하는 억울함은 없나?

A.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억울한 일인가? 지금 처음 알았다. (웃음) 서태웅 선수 정도면 억울하지 않은데. 어차피 프로 데뷔 동기고. 그래도 어릴 때 만나서 그런가. 나에겐 항상 중학교 티가 안 빠진 첫인상 그대로다.

Q. 사상 최초 얼리 전체 1번 지명과 최연소 2번 지명, MVP와 신인왕, 우승 경쟁까지. 주요 장면마다 맞붙었다.

A. 이번엔 태웅이가 MVP 차례인데 내가 뺏은 건가? (웃음)

Q. 그렇게 될지도. (웃음)

A. 신인왕은 태웅이가 뺏었으니까 비긴 걸로. (웃음) 기왕 뺏는 거 우승까지 가져왔어야 하는데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라이벌 구도가 생긴 이유는 유서 깊은 라이벌팀에 지명된 점이 큰 것 같다. 파릇파릇한 선수랑 라이벌로 봐 주면 나한테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연고지가 같은 것도 운이 좋았다. 둘 다 집에서 가까우니.

Q. 그러고 보니 두 선수는 룸메이트로 유명하다. 그래서 두 팀이 붙으면 경기 후 MVP 인터뷰마다 서로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나.

A. 개인적으론 환영이다. 인터뷰를 한다는 건 이겼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태웅이는 너무 싫어하던데? (웃음) 매일 보는 사이에 자꾸 영상 편지 같은 거 시키니까 쑥스러운가 보다. 의외로 부끄러움을 좀 타는 편이다. 그렇게 안 생겼지만.

Q. 룸메이트로서 서태웅 선수의 매력은?

A. 글쎄. 이것저것 있는데… 조용하다. 귀엽다.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Q. 같이 사는 것 맞나? (웃음)

A. 맞는 것 같은데… (웃음) 일단 오늘 아침에는 있었다. 이따 들어가서 또 확인해 보겠다. (웃음)

Q. 환영이라고 하시니 마지막으로 묻겠다. 서태웅 선수에게 한 마디 전한다면?

A. 아이스크림 골라 놔라. 내년엔 꼭 네가 사고.

※ 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 관계만큼이나 대학 때부터 룸메이트로 유명한 윤대협, 서태웅 두 선수의 아이스크림 내기는 한 인터뷰에서 언급되며 화제가 됐다. 바로 수도권 더비 때마다 진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산다는 것. 엄격한 식단으로 유명한 서태웅 선수가 유일하게 먹는 아이스크림이 바로 윤대협 선수가 사 주는 승리의 아이스크림이라고.


[익명] 22:30 질문에 서태웅 세 글자 등장한 후로 (웃음)이 안 빠지네 입꼬리가 귀에 걸리셨나봐요

ㄴ[익명] 22:31 호모녀 나가라

ㄴ[익명] 댓쓴이 22:33 아니 ㅅㅂ 내가언제? 눈깔이 있으면 니도 (웃음) 세어보라고 그냥팩트라고

ㄴ[익명] 22:34 나 농선 호모 안하는데 저건 그냥 팩트긴해 윤이 서를 너무 귀여워함…

ㄴ[익명] 22:37 잘하는 선수들끼리 친하니까 예뻐하는 거지

ㄴ[익명] 22:40 둘이 친한 거 모르는 사람 있냐 국대 때도 룸메였는데

[익명] 22:31 조용하다. 귀엽다.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 뻥안치고 내친구 고양이 자랑이랑 내용이 똑같음

[익명] 22:35 이렇게 죽고 못 사는데 한 놈이 결혼하면 남은 놈은 우짜노

ㄴ[익명] 22:37 농선들 다 여친 있지 않음? 특히 윤앤서가 없을리가… 1군여돌 사겨도 ㅇㅈ되는 유2한 남농선임

ㄴ[익명] 22:40 서태웅은 여친 있었다가 깨졌잖아

ㄴ[익명] 22:41 서태웅 대농 때 인스타 관종 여친 언팔 사건 모름? 존나유명한데

ㄴ[익명] 22:42 윤대협이 저 와꾸로 여친 소문조차 없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신비주의도 정도가 있지 갑자기 내일 결혼해도 안놀랄듯

ㄴ[익명] 22:44 서태웅 이제 걍 인스타 없는 여자 만날듯 존나 데여서… 지금 가서 인스타 삭제하고 올게

ㄴ[익명] 22:44 나 원댓글인데 내말은 지금 탑투 라이징 농선끼리 잘 살면서 시너지 효과 대박인것 같은데 이게 언젠가 깨질거 같고 그럼 결혼해서 내조받고 분유버프 오는 쪽보다 남는 쪽이 데미지?가 오지 않냐 뭐 이런 거지

ㄴ[익명] 22:45 동거인을 전국민이 다 아는데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나

ㄴ[익명] 22:46 원댓글 일리있는 추측임 근데 뭐 둘다 결혼 일찍 하지 않겠음? 선수들이 다 그렇지 알아서 하겠지 윤앤서가 연봉이 모자람 얼굴이 모자람 실력이 모자람

[익명] 22:45 업계 아는 사람이 프로 스포츠 남선은 야축농 관계없이 공식여친 없으면 걍 개드럽게 노는 거라던데

ㄴ[익명] 22:47 disappointed but not surprised

ㄴ[익명] 22:47 뭔소린진 알겠는데 일반화가 심하네

ㄴ[익명] 22:47 윤대협 날티궁예 억까 언제 사라짐 존나 불쌍… 데뷔년도 우승하고 2년 연속 MVP인데도 심심하면 여자 후린단 소문돔 막상 후려졌다는 여자는없음 나폴리탄 괴담이 따로없다

ㄴ[익명] 22:50 그니깐… 막상 대농때 여친 사귄 건 서태웅인게 웃기다

ㄴ[익명] 22:54 원래그래 한명만 사귀면 소문날게 없는거여 당사자가 혼자 관종짓하다 사라진게 웃길뿐 나같으면 무슨일이 있어도 결혼때까지 버틸텐데 쩝

ㄴ[익명] 22:55 지금부터 SNS 디톡스 드가보자 트라우마를 노려보자 (미친소리인거 알아 그냥지나가)


처음 서태웅과 살기로 결정한 후, 윤대협은 작정하고 까탈스럽게 굴었다. 자신도 이런 것이 궁금할 줄 상상도 못 했던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전부 다. 심지어 명문화했다. 그렇게 까다롭거나 섬세한 성격이 아닌데도. 어쩌면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싶어 하는 코트 위의 윤대협이 희한하게도 코트 밖에서 발휘되어 버린 걸지도 모른다. 상대가 서태웅이라서 그랬을까. 저도 모르게 승부 모드가 자극됐는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민감한 질문도 참지 않았다. 예를 들면 윤대협은 서태웅에게 처음부터 몇 년 정도 같이 살 걸 예상하는지 물었다. 서태웅은 약간 시선을 들어 곰곰 생각에 잠기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는데. 살아 봐야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윤대협에겐 필요한 질문이라 판단한 이유가 있었다.

“음… 하지만 말이야. 얼마나 같이 살지에 따라 구매할 가구가 달라지는데.”

10년을 쓸 가구와 2년을 쓸 가구에 적합한 성능과 가격은 완전히 다르다. 윤대협은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부모님 댁에 돌아가야 한다면 쓸모없는 살림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몰라. 일단 좋은 거 사고 중고로 팔든가. 돈 쓰기 싫으면 처음부터 중고로 사든가.”

의외로 서태웅은 거침없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미국에서 배운 방법이란다. 거기선 집값이 비싸서 학생들이 하도 방을 휙휙 바꾸니까 거의 모든 살림을 중고로 사고판다고. 윤대협이 생각해도 합리적이었다. 결국 적당히 믹스해서 샀다. 냉장고는 좋은 걸로. 소파는 대충 중고로. 침대는… 어차피 맞춤 제작뿐이다. 다행히 주방과 거실을 가르는 아일랜드 식탁은 일반인에겐 약간 불편할 정도로 높아서 농구선수에겐 딱 알맞았다.

대충 중고로 샀던 소파는 역시나 농구선수 규격이 아니었다. 용돈 모아 좀 더 큰 걸 살까 싶다가도 윤대협은 결국 내버려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기울어진 쪽 저울에는 항상 언제 동거 생활이 끝날지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었다. 최대한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솔직한 마음도.

소파를 바꾸겠다고 다짐한 계기는 서태웅이다.

정확히는 서태웅이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처음 동거를 시작했을 때 서태웅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다. 귀국하고 즉시 편입이 안 돼서 6개월간 개인 훈련하면서 농구만 하던 시절에 부모님의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같은 학교 음대생이라고 했다. 본인 말로는. 동갑인데 한 학년 위. 서태웅은 정식 입학과 동시에 거의 연예인급 인기를 몰고 다녔지만,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귀어 온 같은 학교 여자친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덕분에 그 어떤 대시도 받을 일 없었다고. 안 그래도 체대와 음대는 미팅도 소개팅도 엄청나게 자주 한다. 여자친구의 존재가 밝혀진 후론 윤대협네 학교까지 소문이 들릴 정도로 가볍게 유명인 커플 취급이었다.

막상 윤대협이 실물을 마주한 건 같이 살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거의 일 년이 지난 시점으로 윤대협은 기억한다.

후줄근한 운동복 바람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는 길이었다. 윤대협은 양손에 쓰레기를 가득 든 채로 건물 앞에서 서태웅과 여자친구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집 앞 전봇대에서 뭐라 소곤소곤 말하는 여자친구의 얼굴 쪽으로 귀를 기울이던 서태웅과. 눈이 딱 마주쳤다.

서태웅의 시선에 따라 여자친구도 돌아보았다. 윤대협은 평소처럼 손을 살짝 들어 인사하고 싶었지만, 양손이 쓰레기로 막혀 있어 여의치 않았다. 적당한 미소로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여자친구가 정중한 목례라도 하기 전에 도망칠 심산이었다.

천천히 공들여 완벽한 분리수거를 끝내고 집 앞으로 돌아갔을 때. 두 사람은 없었다. 왠지 긴 한숨이 나왔다. 데려다 주러 갔겠지. 터덜터덜 슬리퍼를 끌고 귀가했다.

문을 열었을 때 윤대협은 놀랐다. 서태웅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힐끗 눈만 돌려 윤대협을 본다.

“헤이. 쓰레기 당번.”

데려다 주러 간 줄 알았는데. 그대로 헤어졌나 보다. 윤대협은 가볍게 손을 들어 아까 못 했던 인사를 건넸다.

“여어. 다음 주 당번.”

서태웅이 코웃음 치는 소리를 들으니. 비로소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 기분이었다. 윤대협은 조용히 제 욕실에서 손을 씻고 서재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가족이 있는 집에 다시 돌아가도 쓸 생각으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장만한 의자의 튼튼한 헤드레스트에 목을 푹 기댔다.

서태웅과 여자친구.

놀랍게도 윤대협은 조금 충격을 받았다. 그 사실에 대해서도 조금 충격이었다. 이중 충격. 조금씩이지만.

데미지가 생각보다 있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윤대협은 서태웅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시야에 들어왔던 여자친구의 조그마한 실루엣을 떠올리곤 했으니까. 이상하게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그 조그만 실루엣이 인상 깊게 남았다. 새삼스러웠다. 어차피 웬만큼 키 큰 여자도 서태웅 옆에서는 조그맣게 보일 텐데.

너무 의외라서 그런가? 윤대협이 ‘손님을 데려올 땐 반드시 허가를 받자’는 규칙을 제안할 때 머릿속에 떠올린 건 고교 시절 자취방에 호기심을 보이던 능남 농구부와 왁자지껄한 북산 농구부였다.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서태웅은 머릿속에 없었다. 물론 서태웅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여자친구를 집에 들인 적이 없고, 그날도 문밖에서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가족의 방문조차 서태웅은 꼬박꼬박 윤대협에게 사전 고지했고 윤대협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룰을 어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윤대협은. 예측 못 한 파울 휘슬이 날카롭게 불렸을 때처럼 가슴이 선득했을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질문한 결과 도출된 대답은… 불편한 소파를 남겨두기로 한 결정과 같은 쪽 저울에 있었다. 그러니까 서태웅에게 ‘정말로’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서. 윤대협의 마음 한 켠에 언제나 있었던, 언젠가 동거 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무거워진 것이다. 물리적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윤대협은 느꼈다. 거의 일 년 전, 그 소파를 중고로 대충 살 때는 느끼지 못한 무거움과 출렁임.

그 시점에서 윤대협은 서태웅과의 생활이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동거 생활은 퍽 좋았다. 생각보다 좋았다. 그래서 한쪽의 결혼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실감은 윤대협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윤대협은 개인적으로 결혼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혼자 살고 싶어서 시작한 자취 생활이다. 서태웅과의 동거 생활은 윤대협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구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타입이구나. 선호와 필수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게 바로 서태웅의 놀라운 점이다. 서태웅과는 함께 있어도 혼자 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좋았다. 뭐랄까. 아무 이유 없이 든든하다고 할까.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아도. 그냥 저 혼자 거실에 늘어져 자고 있거나, 빨려 들어갈 듯한 집중력으로 NBA를 보고 있거나, 자기 방에 처박혀서 조용히 노래를 듣고 있을 때도.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이상한 안정감이 있었다.

전지훈련 일정이 어긋나 드넓은 집 안에 완전히 혼자가 되면 예전과 달리 조금 허전하기까지 했다. 가족에게도 느낀 적 없는 기분이었다. 서태웅처럼 조용한 룸메이트가. 짧은 인사를 제외하면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는 날도 있는데. 없어졌다고 이렇게 큰 존재감을 선보일 줄은 몰랐다.

그새 길들어 버린 것일까.

서태웅이 떠나면 어떻게 혼자 살지?

윤대협은, 막 대학에 입학했던 시절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무언가가 무너진 것을 느꼈다. 이제 윤대협은 그때의 윤대협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어떤 부분에서만큼은.

딱 서태웅이 관여한 부분만큼만.

즉 농구를 제외한 모든 일상생활.

서태웅처럼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자유로운 룸메이트가 이 세상에 두 명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농구도 하고. 게다가 실력도 비슷하고. 언제든지 일 대 일을 해도 재미가 보장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윤대협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변해버린 자기 자신도. 서태웅의 연인에 대한 감정도. 심리적인 충격은 막상 직면하고 나면 별것 아닌 듯 금방 잔잔해졌다. 씁쓸한 뒷맛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로부터 또 일 년 정도 더 지났을 때였다.

윤대협은 아일랜드 식탁에 앉아 오랜만에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천천히 마시는 중이었다. 가끔 운동으로 땀을 시원하게 흘린 날엔 그러고 싶을 때가 있었다. 술을 자주 마시진 않지만.

갑자기 맞은편 의자가 드르륵 빠지더니 서태웅이 앉았다. 자기 방에 조용히 박혀 있던 서태웅. 술자리는 안 빼도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시는 놈이.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집에 침묵을 싫어하는 사람은 살지 않았다. 윤대협은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는 서태웅의 자귀나무꽃처럼 빽빽한 아래 속눈썹을 구경하며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두 번째 모금을 넘길 때쯤 서태웅이 불쑥 말했다.

“헤어졌어.”

윤대협은 따끔따끔한 탄산이 기분 좋게 식도를 넘어가는 걸 느끼며 눈을 깜빡거렸다. 다소 바보 같다는 자각이 있는데도 굳이 물었다.

“여자친구?”

서태웅은 달리 누가 있냐는 한심한 표정으로 윤대협을 바라보았다. 대답은커녕 끄덕여주지도 않는다.

“음… 한잔할래?”

왠지 헤어진 사람한테 해야 할 것 같은 말을 던져본다. 질색하며 고개를 흔든다. 아까부터 일관적으로 평소의 서태웅이다. 별로 실연의 상처가 깊어 보이진 않았다. 왠지 웃음이 나서 그걸 가리려고 윤대협은 맥주잔을 크게 위로 기울였다. 얼마 남지 않은 맥주엔 거품이 거의 없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즐긴 뒤. 윤대협은 굳이 물었다.

“왜?”

서태웅은 윤대협을 빤히 바라보았다. 윤대협이 맥주를 마시는 걸 구경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평소의 눈빛으로. 나직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졸업하면 결혼하자고 해서…”

윤대협은 한 번에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몇 번 머릿속으로 반복해 본다.

서태웅보다 한 학년 위인 여자친구. 그녀의 입장에선 내년이 대학 마지막 해. 윤대협의 재빠른 머리가 숫자를 계산한다. 입학 전부터 사귀었으니 3년인가. 아주 뜬금없는 제안은 아니다. 프로 선수 사이에서 일찍 결혼해 내조받는 건 복이라고 한다. 무성한 소문에 따르면 서태웅의 여자친구는 활발하게 SNS를 하다 많은 구설에 오르는 모양이었지만. 윤대협은 반쯤 실체 없는 대중의 질투겠거니 짐작했고, 막상 당사자인 서태웅은 여자친구를 나쁘게 말한 적이 없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윤대협 앞에서 아예 여자친구를 언급한 적이 없지만. 어쨌든 과한 SNS는 결별 사유가 아니다.

턱을 긁적이던 윤대협은 뭐라도 반응해 보았다.

“독신주의였던가?”

서태웅의 나직한 목소리가 천천히 대답을 내려놓는다.

“그건 모르겠는데…”

윤대협은 서태웅의 자귀나무꽃처럼 빽빽한 아래 속눈썹을 구경했다.

“결혼하면 너랑 못 살잖아.”

서태웅은 그렇게 말했다. 윤대협은 가만히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강렬하게 두 번째 캔맥주가 당겼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진 않았다. 윤대협이 맥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을 참는 동안 서태웅은 묵묵히 맞은편에 앉아 있다가. 할 말은 그게 다라는 듯이 일어나. 물 한 잔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방문을 닫는 소리를 들으면서 윤대협은 여전히 맥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윤대협은 그때 소파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계약금을 받자마자 윤대협은 가구 매장에 서태웅을 데려갔다. 항상 불편한 듯 묘하게 편한 자세로, 무릎 아래를 팔걸이 너머 허공에 대롱대롱 매단 채 잠을 자던 서태웅. 윤대협은 서태웅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소파를 원했다. 8인 가족도 너끈히 앉을 거대한 소파를 사고 나서야 윤대협은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어딘가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저울은 아직 기울어지지 않았다. 윤대협은 평형을 유지한 저울 가운데에 거대한 소파가 쐐기를 박듯이 반석처럼 단단하게 무게중심을 추가하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소파를 바꾸고 나서 서태웅이 거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눈에 띄게 늘었다. 아예 침대에서 안 자고 소파에서 잘 때도 있다. 더워서 그러려니. 윤대협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비시즌에도 훈련 일정이 바쁜 걸로 알고 있는데, 짬이 나면 서태웅은 윤대협의 방문을 두드렸다. 윤대협이 문을 열면 농구공을 빙그르르 돌리며 서 있다. 현관으로 고개를 까딱. 그렇겠지. 농구가 아닌 일로 서태웅이 윤대협의 문을 두들긴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건 뭐 산책 가자는 강아지도 아니고. 윤대협은 괜히 웃음이 났다.

이상하게 단 한 번도 거절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