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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3.07.25

사이렌 3

불면의이쑤신

심해에는 빛이 없다.

센도는 하루에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표본실을 어둡게 유지했다. 모니터와 엑스레이 판에서 나오는 불빛이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마저도 꺼둘 때도 많았다.

까만 물속에서 가끔 번쩍이는 두 쌍의 황금빛. 카에데의 눈동자다.

카에데는 빛을 두려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게슴츠레하게 눈꺼풀을 좁히기는 했지만. 작열하는 북극해의 태양 아래에서도 달리 격한 반응은 없었다. 백열등은 한결 나았다. 카에데는 물속에선 거의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어쩌면 눈꺼풀 자체가 수륙 양용 생활 시 강한 빛에 적응하기 위해 발달한 것일 수도 있다.

카에데가 괜찮다고 해도 센도는 어둡게 지냈다. 최대한 편한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다. 비록 인간의 욕심 때문에 코딱지만 한 어항 속에 가뒀더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센도 쪽에서 어둠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카에데의 세상에.

인간의 눈은 저명도에 쉽게 익숙해진다. 컴컴한 물속에서 카에데의 움직임을 쫓기 위해 애쓰다 보면 눈이 금방 피곤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조도를 조금만 올렸다. 서서히 조명을 조절했다.

어둠 속에 갇힌 두 생물 중에 시력이 압도적으로 약한 쪽은 센도였다. 아마 해저에서 카에데는 빛과 시력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주변의 움직임과 형태를 감지했을 것이다. 소리조차 되지 못한 작은 진동을 감지하거나, 초음파를 반사해 지형을 파악하거나, 물의 흐름을 민감하게 느끼거나. 반면 센도는 시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결국 자신을 기준으로 환경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게 센도는 약간 좌절스러웠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여기는 인간을 위한 장소다. 센도가 인간의 세계로 카에데를 끌어왔다. 어떤 인간도 감히 손대지 못한 깊은 바다 밑으로부터. 지구상의 모든 바다의 면적 중에서 인류의 발이 닿은 범위는 비율로 따지면 태양계의 면적 중 인류가 탐험한 범위보다도 좁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주보다 비밀에 싸인 심해. 그곳이 카에데의 세계다.

바다신의 보물을 몰래 훔쳐 온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최선을 다하면서도 한계에 부딪히고 갈등하는 센도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카에데. 어둠 속에서 두 쌍의 황금빛이 사라졌다. 잠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센도도 곧 잠을 청했다. 인간의 시간에 딱히 구애받지 않고서. 함께 사는 식구처럼 밤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센도는 언제나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다. 카에데는 인간이 아니다. 카에데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언젠가 무사히 돌아가야 할 야생동물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금기가 달콤한 생물이라서. 꿈속에서 센도는 가끔 중얼거렸다.

잘 자. 카에데.


센도의 표본실 안에서 풀어야만 하는 카에데의 수수께끼가 하나 있었다. 의사소통 수단이다. 카에데와 관련한 수수께끼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기실 의사소통 수단을 파악한다는 것은 서식지 추측과도 연관되며 또 무리생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질문은 한 가지로 요약된다. 뉴질랜드에서 녹음한 소리의 출처는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인가? 대답 여하에 따라 동시에 여러 개의 수수께끼가 해답에 한 발자국씩 가까워질 수 있다. 한 번에 완전히 풀리는 건 많지 않아도. 그건 원래 모든 생물의 수수께끼가 그렇다.

만약 그 소리가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 카에데의 동족이 서로 소통하는 소리라면. 서식지 후보가 갑자기 엄청나게 넓어진다. 북극에서 뉴질랜드까지. 거의 지구 전체다. 카에데의 피부 두께와 지상에서 잘 적응한 것을 생각하면 온도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생물이라고 해도 납득이 간다.

수조의 수온을 올려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센도는 위험을 부담하고 싶지 않았다. 카에데의 신체에 돌이킬 수 없는 이상이 생기거나 죽음에 이를 때까지 수온을 올리는 방식의 실험은 할 수 없었다. 현대 야생동물 연구 윤리에도 어긋나며 원래 센도의 신념에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 카에데는 지나치게 귀한 표본이었다.

카에데가 뉴질랜드에서 녹음한 소리에 반응한다면 적어도 북극해의 카에데와 뉴질랜드에서 이런 소리를 낸 생물은 동족이라는 뜻이다. 자칫 비약하면 같은 무리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전자와 후자의 함의는 천지 차이기 때문에 쉽게 뛰어넘을 논리는 아니다. 대양 곳곳에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 또는 아종들이 흩어져서 살아간다는 가능성과 한 무리의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가 북극해에서 뉴질랜드까지 지구를 횡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다. 어느 쪽인지 너무나 알고 싶어서 센도는 잠깐이지만 신체적인 고통마저 느꼈다. 그렇지만 조급함이 도움이 된 적은 별로 없다. 침착해야 한다.

센도가 녹음했던 세 종류의 소리. 특정 파장의 초음파, 거품 소리, 혀를 입천장에 붙였다 떼는 듯한 둔탁한 소리. 향유고래는 이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즉 다른 종의 해양생물을 위협하거나 경고하기 위한 소리가 아니다. 다양한 소리를 복잡하게 조합해서 소통하는 해양생물은 대체로 무리생활을 한다. 무리가 없으면 소통의 필요성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의 무리생활 가능성에 보탬이 될 만한 증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대왕오징어를 먹는다는 사실이다. 대왕오징어는 카에데가 성체가 아니라 할지라도 크기로 보나 악력으로 보나 게임이 안 된다. 포크레인 앞의 치와와나 다름없다. 빨판 한 개가 카에데의 얼굴보다 훨씬 큰데. 설령 새끼만 노린다고 할지라도 대왕오징어를 잡아먹을 수 있다면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는 분명 떼 지어 다니는 사냥꾼이다.

소리의 수수께끼를 풀면 세 가지 수수께끼가 힌트를 얻는다. 의사소통 수단. 서식지. 무리생활. 어떤 수수께끼는 힌트를 던지면 파문이 더 커지기만 할 지라도. 물음표의 상태에서 멈춰 있는 것보다는 의문이 확장되는 편이 훨씬 낫다. 과학자는 언제나 질문의 사슬을 붙잡고 진실에 다가간다.

센도는 수조 위쪽에서 수중 스피커와 녹음기와 카메라를 묶어 놓은 기계 덩어리를 천천히 물 안으로 집어넣는다. 카에데는 수면 밖으로 눈만 빼꼼 내민 채 구경한다. 적당한 위치에 고정한 다음 센도는 내려와서 수조를 마주 보았다. 카에데는 유리 벽에 붙어 있는 기계 덩어리에 가까이 갔다가 멀어졌다 하면서 관심을 보인다.

수중 스피커와 녹음기와 카메라는 모두 센도의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다. 마우스 휠을 굴려 소리를 키운다. 뉴질랜드에서 만났던 파동이 수조 안으로 퍼진다.

카에데는... 고개를 기울였다.

갸우뚱 돌아간 카에데의 머리 각도를 따라서 피봇하는 발레리나처럼 목 아래의 전신이 빙글 돌아갔다. 갸웃. 빙글. 갸웃. 빙그르르. 수조 속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카에데의 하얀 몸. 시선은 수중 스피커에 고정된 채로.

그때 카에데가 소리를 냈다. 초음파와 부글거리는 거품소리를 동시에. 입을 다문 채로 턱만 위아래로 벌려서 빠르게 딱딱딱 소리를 냈다. 아래턱의 가죽이 안쪽부터 움찔거린다. 혓바닥을 입천장으로부터 내려치고 있는 것이다. 혀로 내는 소리가 맞았다.

격렬한 소리를 쏟아내던 카에데가 갑자기 홱 돌아섰다.

"앗...!"

우지끈. 손 쓸 틈도 없이 수중 스피커가 박살 났다. 카에데가 휘두른 꼬리지느러미를 정통으로 맞고. 검은 플라스틱 안에 숨어 있던 회선이 볼품없이 드러났다.

카에데는 꽤 비싼 수중 스피커였던 것을 두 손 지느러미로 붙잡고 우드득 물어뜯었다. 센도가 할 수 있는 일은 황급히 전원을 끄는 것뿐이었다. 혹시나 카에데가 감전되지 않도록.

난 대체 무슨 소리를 녹음해 온 거지? 센도는 황당했다.

어쨌든 수수께끼는 풀었다. 뉴질랜드에서 녹음한 소리는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가 맞다. 무슨 의미인지는 한참 더 관측이 필요할 것 같지만... 별로 긍정적이진 않은 것 같다.

표본이 박살 낸 기계의 가격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한숨을 내쉬면서 센도는 수조 위쪽으로 올라갔다. 기계를 회수하기 위해서다.

수면 위로 카에데가 눈을 빼꼼 내민다. 물에 젖은 까만 머리가 매끈하게 이마에 달라붙어 수영 모자를 쓴 사람 같다. 센도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건넨다. 동물을 앞에 둔 인간들이 주변에 다른 인간이 없을 때 으레 그러는 것처럼. 속 시끄러울 때는 더더욱.

"완전 박살 냈네. 카에데. 그렇게 이상한 소리였어? 응?"

카에데가 수면에 걸친 콧구멍으로 날숨을 내뿜어 부글부글 거품소리를 낸다.

"그것도 뭔가 말하는 거야? 난 모르겠어. 혹시 욕하는 거? 그럴 수도 있겠네."

카에데의 탁한 올리브색 눈동자가 센도를 빤히 올려다본다. 센도가 기계 덩어리를 모두 끌어올려 옆에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카에데가 지금까지 낸 적 없는 소리를 냈다. '목소리'였다. 허밍에 가까운.

센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계 덩어리를 떨어뜨렸다. 해저의 돌처럼 굳은 채로 카에데를 바라본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공기가 흔들려 카에데에게서 나오는 음파를 방해하기라도 할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카에데가 수면 위로 솟아 있는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인다. 아까와 같은 소리를 반복적으로 낸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플랫시켜 조성을 바꾼 듯이 미묘한... 멜로디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비강과 두강의 공기를 진동시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리를.

과학자로서 센도는 당장 녹음기의 전원을 켜러 달려갔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센도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방법을 알지 못하면서도. 카에데가 말을 걸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에데 역시 방법을 알지 못할 텐데도. 어쩌면 최대한 센도가 내는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팔짱을 따라 끼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센도는 두 팔을 뻗어 전완을 물속에 담갔다. 자신도 모르게 물 속에 뛰어들 듯이 상체를 기울인다. 카에데의 잘 뻗은 눈썹 아래 두 눈동자가 센도의 손 앞으로 스르르 다가온다.

센도는 음악의 문외한이다. 떠오르는 멜로디는 하나밖에 없었다. 헛기침 몇 번으로 성대를 가다듬고 나직하게 허밍 해 본다.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 후렴구. 절대음감이라 할 수 없는 센도가 아무렇게나 내뱉는 음의 나열은 원곡을 잘 따라가는 듯 어긋난 지점도 많아서 오히려 카에데가 내는 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수면에 반쯤 걸쳐진 카에데의 얼굴 지느러미가 팔락팔락 움직여서 물결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화내지 않았다.

센도는 머릿속으로 띄엄띄엄 가사를 생각한다.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그 이후로 센도는 카에데에게 먹이를 주거나 관찰에 필요한 수중 기기를 설치하고 회수할 때마다 목소리를 내어 카에데를 불렀다.

카에데.

그러면 이미 수면 위에 눈을 내놓고 있던 카에데가 스르르 다가왔다. 카에데가 허밍 하면 센도가 그 음을 따라 했다. 카에데가 다시 달라진 멜로디를 허밍 하면 센도는 그것도 따라 했다. 카에데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8자를 그리면서 수면 위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어떤 반응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센도는 카에데의 모방을 모방해 보았을 뿐이다.

어느 날 카에데가 돌발행동을 하기 전까지.

그날 센도는 살아있는 가오리를 먹이로 주었다. 카에데는 언제나처럼 재빠르게 사냥했다. 꼬리지느러미가 두어 번 움직이는 즉시 마치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피융 날아갔다. 익숙하게 손 지느러미를 놀려서 가오리의 하얀 배를 가르고 간을 뜯어낸 카에데. 여기까진 평소와 같았다.

카에데의 작은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연노랑색 살덩이가 센도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카에데가 가오리의 간을 수조 벽에 누르고 있었다. 흉측하게 짓눌려진 가오리 간의 그림자 안에서 센도는 팔짱을 풀었다. 당황했기 때문이다.

카에데가 몇 번 더 먹잇감을 수조 벽에 꿍. 꿍. 찧었다. 센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정형행동인가. 드넓은 바다를 빼앗기고 수조에 갇혀 미쳐버린 돌고래나 범고래처럼. 식사를 거부하고 공격성을 보이는 걸까.

센도는 침착하게 수조 위로 올라갔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내일이라도 바다에 다시 풀어주더라도. 일단은 카에데를 진정시키고 싶었다. 더한 자해를 하기 전에. 수면 위로 빼꼼 나온 눈동자를 바라보며 다시 비틀스를 허밍 하려던 순간.

물속에서 뻗어 나온 두 팔이 센도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센도는 머리부터 수조로 떨어졌다.

푸하!

센도가 다 젖은 앞머리를 반동을 이용해 뒤로 넘기며 수면에서 호흡을 되찾는다. 범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눈을 빼꼼 내밀고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뻔뻔한 얼굴. 센도는 살짝 오기가 생겼다. 뭘 하려는 건지 제대로 알고 싶다.

시간이 얼마 없다. 북극해에 맞춰 둔 수온 때문에 벌써 전신이 떨린다. 침착을 되찾기 위해 심호흡을 세 번 하고. 네 번째에 길게 길게 호흡해 폐에 가득히 공기를 채웠다. 프리다이빙의 최종호흡. 그대로 입과 코를 꾹 닫고 머리를 아래로 처박아 수조 밑으로 내려간다. 센도를 따라 카에데의 머리꼭지도 쏙 수면 아래로 내려간다.

센도가 천천히 발차기하는 동안 카에데는 정신머리 없이 주변을 맴돌았다. 센도를 기준으로 스크루처럼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수중 스피커를 처음 봤을 때처럼 얼굴을 고정하고 빙글빙글 피봇 턴을 돌기도 하고. 가까이 왔다가 멀리 갔다가. 아주 정신머리가 없었다.

센도는 침착하게 수조 바닥에 발을 디뎠다. 추도 없고 붙잡을 줄도 없는 상태에서 부력을 조절할 수 없는 프리다이빙으로 수심을 지키기가 어렵다. 급한 대로 손으로 유리 벽을 짚고 버틴다.

카에데는 눈을 빛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얼굴이 가깝다. 물속에서 보는 카에데는 푸르스름하고 윤곽이 흐릿하다. 그런데도 이것이 진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에데가 손 지느러미를 뻗어 센도의 얼굴을 감싼다. 뾰족한 지느러미 끝에 스쳐 센도의 뺨에서 붉은 핏방울이 물속으로 번진다. 카에데가 손 지느러미를 거둔다. 목을 쭉 내밀어 코앞까지 가까이 온다.

센도는 움직일 수 없었다.

작은 입술이 쩍 벌어진다. 분홍색 혀를 내밀어 센도의 상처에 갖다 댄다. 끈적한 점액질을 묻히고 떨어진다. 지혈이 됐다. 혓바닥의 감촉은 매끈하고 딱딱했다. 미뢰가 없고 생각보다 길쭉하며 끝이 뾰족했다.

센도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부력으로 둥실 팔이 떠오른다. 물 속인데 손끝이 떨렸다. 추워서만은 아니었다. 눈알 쪽으로 손가락이 뻗어오는데도 카에데는 전혀 피하지 않았다.

카에데의 코끝을 향해 가던 센도의 손가락이 물속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것처럼 다급하게 멈췄다. 무중력 속에서 나부끼는 카에데의 머리칼이 센도의 손끝을 스쳤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센도는 차마 카에데를 건드리지 못했다.

천천히 발차기해 수조 밖으로 나온다.

따스한 샤워로 체온을 되찾고 몸을 닦은 뒤 침낭으로 둘둘 싸매고 나서도 센도는 한참 동안 와들와들 떨었다. 추위가 아닌 다른 이유로 심장이 하염없이 떨렸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북극해처럼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5분 정도로 저체온증이 와서 사망에 이른다. 그러나 정신이 제대로 박히지 않은 인간들은 언제나 한계를 밀어붙여 역사와 과학을 진전시켜 왔다. 저수온용 특수 웻수트가 존재하는 이유다. 센도는 그중에서도 가장 성능이 좋은 것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고 카에데의 수조용으로 새로운 것을 하나 더 샀다. 전신수영복을 입고 래시가드를 입고 그 위에 다시 저수온용 웻수트를 빈틈없이 껴입는다. 검은 그림자 인간의 꼴이 되어 얼굴마저 스노클과 마스크에 꼼꼼하게 감춘다. 그래도 뺨의 틈새가 시리다.

센도는 그날 이후 수조에 들어가는 날이 부쩍 잦아졌다. 어떤 경험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깊은 영향을 미치고 만다. 센도는 이제 유리 벽 밖에서의 관찰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날 카에데가 가오리 간을 들고 보였던 기행은... 센도에게 먹이를 주려던 것으로 밝혀졌다. 카에데는 다음날 센도가 잠수했을 때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처음에는 센도 앞에 가오리의 간을 떨어뜨렸다가. 센도가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들어 올려 센도의 목젖쯤으로 밀었다.

침착하게 당황을 다스린 센도는 일단 그쯤에서 물을 나왔다. 그리고 식사를 가져와서 수조 바로 앞에서 카에데를 불렀다. 삼지창 같은 손 지느러미에 가오리 간을 꽂은 채로 나타난 카에데의 무표정 앞에서 센도는 과장스럽게 구운 생선을 집어 올려 입에 넣었다. 물속에서 눈을 깜빡이지 않는 카에데는 묵묵히 센도의 식사를 지켜봤다. 그리고 센도가 생선을 다 먹고 난 후에야 가오리 간을 먹어 치웠다.

카에데의 유려하고 재빠른 수영 실력을 따라갈 순 없지만 오리발을 끼면 센도도 그럭저럭 뒤를 쫓을 수는 있다. 카에데는 센도가 물속으로 들어오면 유난히 화려한 영법을 선보였다. 꼭 두 번 세 번씩 보여줬다.

혹시나 싶어 센도가 최선을 다해 수중 3바퀴 회전을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카에데는 양손 지느러미의 단단한 부분끼리 부딪쳐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냈다. 그리고 새로운 묘기를 또 보여줬다. 센도 입장에선 묘기였지만 카에데 입장에선 이 정도도 못하면 험한 북극해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기초 수영 기술이었을지도 모른다... 센도가 적당히 흉내 내는 척만 하면 반드시 한 번 더 보여줬다. 상당히 스파르타 선생님이다.

이 모든 상호작용은 센도의 추측을 바탕으로 해석되었다. 센도는 카에데가 자신에게 수영을 가르치려 한다고 느꼈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우연이 겹쳐 센도가 카에데를 모방했고, 그 전부터 모방 행동을 보이던 카에데에게 그것이 자극이었을지도 모른다. 살던 곳보다 훨씬 좁은 곳에 오랫동안 갇힌 입장이라 그게 무엇이라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끌리는 걸지도.

카에데는 뇌 용량이 크고 무리생활을 하는 해양 포유류다. 지능이 발달했을 가능성은 처음부터 생각했고 실제로 상당하다. 그렇다면 모방 행동도 드문 경우는 아니다. 카에데는 엄지가 분리되었다고도 직립보행을 한다고도 보기 어려워 영장류로 분류할 수는 없으나 거의 영장류 급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카에데가 특별한 개체인지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의 평균적인 지능 수준인지는 알 수 없다.

센도가 지금 의심하는 건 자신의 지능뿐이었다. 센도는 카에데 앞에서 과학자로서 지켜왔던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무시하고, 빠뜨리고, 배제했다. 산호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열대어가 눈에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손부터 뻗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바다 생물을 절대 해치지 않는다는 다이버의 첫 번째 룰조차도 모르던 시절로. 무엇이든 쉽게 사랑하고 쉽게 망가뜨리던 시기로. 모든 규칙과 금기와 원칙을 바다에 던진 것처럼.

한 편으로 센도는 아주 모순된 두 가지 충동이 부딪히는 것을 자주 느꼈다. 센도는 카에데에게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귀했다. 바늘조차 튕겨내던 피부인데도. 뉴질랜드의 온난한 바다부터 북극해의 뼈를 에는 추위까지 견디는 강철 같은 존재인데도. 감히 건드릴 수가 없었다. 이미 지은 죄가 커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더 큰 죄를 짓고 싶었다. 가슴을 수평으로 배를 수직으로 갈라 부검을 하듯 해부하고 싶었다. 장기를 꺼내 순서대로 늘어놓고 크기와 무게를 재고 샘플을 현미경에 들이대고 싶었다.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일그러진 3D 이미지로는 부족했다. 손에 쥐고 냄새를 맡고 심지어는 한 입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손끝 하나 댈 수 없는 강렬한 보호본능에 사로잡혔다. 부딪히는 모순된 충동 속에서 센도의 마음은 점점 마모되어 갔다.

거꾸로 잠을 자는 카에데의 속눈썹이 해초처럼 가지런히 흔들린다. 잠자는 카에데의 얼굴을 바라보며 센도는 생각에 잠겼다.

센도는 가끔 그런 것이 궁금했다. 왜 지금까지 어떤 인류도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만큼 깊은 심해에 오래 머물러서 그럴 수도 있지만. 무인잠수정의 탐사까지도 피해 갔다고 치더라도. 시체조차 발견된 적 없는 것은 이상하다. 죽은 뒤엔 가장 깊은 바다 아래 가라앉아 생태계 밑바탕에 풍부한 영양을 공급하도록 설계된 향유고래의 사체조차도 가끔 부패 가스 때문에 수면으로 떠올라 해변에서 인간을 조우하는데.

센도는 정황 근거만 가지고 멋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혹시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 무리에게는 어떤 인간도 찾을 수 없는 해저에 가족의 시체를 묻는 장례 습관이 있는 것일까... 의도를 가지고 해저에 고정한다면 과연 인간의 눈에 띄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 정도면 문명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문명이 인간에게만 허락되는 단어는 아니니까. 벌과 개미가 이룩한 건축과 계급과 전쟁을 문명이라 부르는 데에 주저할 이유가 없듯이. 물론 근거를 찾기 전까지는 과학이 아니라 상상일 뿐이다.

잠자는 카에데의 얼굴을 바라보며 센도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파편처럼 흩어지는 생각 사이로 끈적하게 얽힌 감정이 밀물처럼 끼어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돌아가고 싶겠지. 돌려보내고 싶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카에데를 보고 싶다. 사냥하고. 먹고. 소통하고. 배우고. 놀고. 자유로운 카에데. 자연스러운 카에데. 카에데와 가족들과 친구들의 방식을 알고 싶다. 배우고 싶다. 카에데가 알고 있는 문화. 전통. 습관. 카에데의 삶.

곁에서 보고 싶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센도는 카에데를 방생하기로 결정했다.


센도와 카에데는 오랜만에 연구실을 나섰다. 크루들과 함께 처음 만났던 북극해로 보트를 몰고 간다. 사람과 육성으로 대화를 하는 게 얼마 만인지. 카에데를 만난 이후로는 거의 처음이다.

계획은 그랬다. 카에데에게 추적기를 달고 방생한 뒤 카메라를 단 무인 잠수정으로 쫓는다. 카에데를 따라가면 무리를 만나고 서식지를 파악할 수도 있다. 시간과 배터리가 허락하는 한 카에데 무리의 생태를 기록한 뒤 잠수정을 회수한다. 카에데의 이동을 기록한 뒤, 한 번 경로와 패턴을 파악하고 나면 다시 수면 위로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북극해에서 체크인을 시도한다.

1단계부터 쉽지 않았다. 카에데는 추적기를 얌전히 달고 있지 않았다. 어디에 달아도 카에데는 손을 뻗어 뜯어버릴 수 있었다. 골반뼈를 기준으로 척추를 접을 수 있으니 꼬리지느러미 끝에 달아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무인 잠수정만 믿어야 했다. 어쨌든 한 가지 서식지를 알면 다시 찾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플랜B 역시 무참히 무너졌다. 카에데는 주변을 맴도는 무인 잠수정을 언젠가 부숴버렸던 수중 스피커 2호기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재빠른 스피드로 가볍게 낚아채더니 렌즈를 두 동강 냈다. 기특하게도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더니 배 가까이 다가와 손 지느러미에 꽂힌 잠수정의 잔해를 내밀었다. 센도에게 돌려주려는 것일까.

센도는 한숨을 푹 쉰 다음 만반의 준비를 갖춰 바다로 뛰어들었다. 카에데에게서 잠수정이었던 쇳조각을 받아 갑판 위로 던진다. 고맙다 카에데.

플랜C는 무모하고 위험하며 모든 크루가 반대했던 계획이다. 센도가 카메라를 몸에 달고 카에데를 가능한 한 쫓는다. 체온과 수심에서 한계를 느끼면 바로 귀선한다. 보트는 센도 뒤를 바짝 에스코트한다. 마지막 지점을 체크하고 카에데가 사라진 뒤에 무인 잠수정을 넣어 그곳부터 탐사를 시작한다. 훨씬 단서가 줄어들지만 결국 이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말에 웃어 보이며 센도는 남몰래 가슴이 뛰었다.

무인 잠수정을 치워 버린 뒤 센도는 천천히 부력을 조절해 가라앉았다. 카에데가 센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함께 가라앉는다.

수심 5m 정도에서 센도는 전신을 수평으로 바꿨다. 카에데는 센도 주위를 3차원으로 돌아다니다가 어떤 방향으로 날쌔게 헤엄쳐 갔다. 작별을 남기고 떠나는 뒷모습처럼.

센도는 필사적으로 그 뒤를 쫓았다. 역부족이었다. 카에데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그때 카에데가 한 번 뒤돌아봤다. 센도와 눈이 마주쳤다. 점점 멀어지던 카에데가 갑자기 거짓말처럼 멈춘다. 반동으로 휘날리는 머리칼이 뒤섞인다. 센도가 가까스로 카에데를 따라잡았을 때.

카에데의 오른손 지느러미가 센도의 왼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두꺼운 저수온용 웻수트가 쉽게 찢어졌다.

인간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카에데는 심해를 향해 돌진했다. 절대 모터보트 따위로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닐뿐더러 수면 위를 지키는 건 의미가 없었다. 카에데는 거의 수직으로 깊은 바다 밑을 향해 돌진했다. 검은 바다가 센도를 머리부터 집어삼켰다.

너무 빠르다. 도저히 신체 내부의 기압을 조절할 수가 없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귀가 아프고 뒤이어 코가 아프다. 피 맛이 난다. 수압이 급격히 늘어나 곧 폐가 쪼그라들 것이고 그 전에 뇌 안팎의 기압 차이로 졸도할 것이다. 센도가 출발 전에 체크한 바에 의하면 산소통의 용량은 세 시간 정도를 버틸 수 있다. 심장이 완전히 멈추기 전에 센도는 의식을 잃고 산소호흡기를 단 뇌사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진정계 마약 같은 몽롱한 쾌락이 중추신경으로 퍼진다.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서 카에데의 까만 머리카락이 까만 바닷물을 가르며 휘날린다. 오른 손목을 단단히 붙든 날카로운 지느러미의 통증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피가 바닷속에 퍼지고 있겠지. 그 냄새 때문에 상어나 범고래가 끌리면 안 되는데. 그래도 카에데는 지혈을 할 줄 아니까...

그 통증마저 희미해지기 시작했을 때. 센도는 이런 생각을 했다.

카에데는 나를 어디에 묻을까?

카에데의 말로 사랑한다는 소리는 뭘까.

내가 낼 수 있는 소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