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1
불면의이쑤신
모든 생물은 바다에서 나왔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육상에서 진화했으나, 해양 포유류는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센도 아키라는 해양 포유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특히 바다소목과 고래목.
해양생물 연구의 필드는 크게 두 군데다. 현장과 연구실. 바다와 현미경. 센도는 어디서나 에이스였다. 직접 모터보트를 몰아 추적기를 단 고래 무리를 쫓고 직접 다이빙을 해서 범고래 새끼가 먹다 버린 가오리를 주워다가 연령에 따른 이빨 모양과 크기를 연구했다.
센도는 언제나 포획보다 잠수를 선호했다. 표본을 채취하든 생태를 기록하든. 추적기를 다는 것과 다친 개체를 치료하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지만. 자연히 직접 수중 카메라를 들고 산소통을 짊어지는 일도 잦았는데 열정이 지나쳐서 그런가 정신을 차려 보니 다이버가 인정하는 다이버가 되어 있었다. 딱히 대회에 나가지 않아도 모두가 알았다. 향유고래를 따라가다 잠수정이 없는 상태로 가장 깊은 심해까지 잠수한 인간으로 비공식 기록을 세워 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위험천만한 돌발상황이었기 때문에 센도는 대단히 반성했고 다음부터 심해 연구를 할 때는 유무인 잠수정을 적극 활용했다.
센도가 해양 포유류의 수수께끼에 인생을 던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그저 알고 싶어서. 어떤 부연도 필요하지 않은 진짜 이유였다. 센도는 미지의 생물들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미지가 지식이 되는 순간을 사랑했다. 둘째는 앎이 늘어날수록 지킬 수 있는 방법 역시 알 수 있어서. 아주 약간의 차이일지라도. 예를 들어 지구를 5분의 1바퀴 정도 이동하는 혹등고래의 계절별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면 그와 겹치는 거대 선박 항로를 수정하도록 요청할 근거가 되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마침내 다 사라져 버린다 해도 그들은 어떤 존재였다고 전해질 이야기가 하나라도 더 남도록. 없어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의무감이라 불러도 좋았다.
고래도 그렇게 한다. 범고래와 벨루가는 무리에 따라 특별한 사냥 방법을 전승하고 계승한다. 증조할머니가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알려 준 기술과 전략. 고래는 센도와 달리 의무감이나 사랑 같은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전 생애를 바쳐서 역사를 잇는다. 삶의 방식이 그렇다.
센도는 해양 포유류 앞에서 항상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물리적으로만 그런 건 아니었다. 시선이 맞는다 보기 어려운 눈동자를 앞에 둘 때면 신기하게도 가늠할 수 없는 너름이나 깊이를 느낄 때가 많았다. 그들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기운차게 활주하는 바다와 마치 하나의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센도는 항상 가장 알려지지 않은 존재들을 추적했고, 관찰했고, 기록했고, 알아갔다. 북극해를 가르는 일각돌고래의 뿔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듀공 무리는 어떤 위계질서를 따르는지. 향유고래가 인간이 갈 수 없는 심해에서 대왕오징어를 사냥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인간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멸종 위기로 몰아넣은 아름다운 존재들을 신비에서 과학으로 한 발자국씩 이끄는 줄다리기의 최전방에 센도가 있었다.
그래서 센도 아키라가 전 세계에서 인어의 존재를 가장 먼저 감지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런 농담 같은 일을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해낼 수 있다면 후보자는 센도 뿐이었다. 놀라운 건 주어가 아니고 목적어였다. 인어.
그건 과학적이기보다 인문학적인 개념이다. 정확히는 신화적이거나 예술적인 창작물. 해양생물학 관점의 설명은 한 줄을 넘기 어려웠다. 인류가 듀공을 보고 상상해 낸 환상의 존재.
듀공은 수심 10m 안팎의 얕은 물에서 해초를 먹고 생활하며 6분 이상 잠수하지 않고 해수면에서 숨을 쉰다. 특히 새끼를 낳으면 곧바로 수면 위로 밀어 올려 폐호흡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듀공과 자주 마주치고, 사냥하고, 보호종으로 지정한 후에도 밀렵하고, 멸종시키고, 새끼를 품에 안고 젖먹이는 모습과 우아하게 유영하는 뒷모습을 보며 반인반어라는 환상의 존재를 상상해 냈다.
듀공과 매너티가 포함된 바다소목의 학명은 사이레니아sirenia.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의 선원들을 유혹해 자살하게 했던 세이렌siren을 어원으로 한다. 그래서 전 세계에 몇 명 없는 듀공 연구자들끼리는 별것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 있으면 듀공 속에 인어라도 봤냐고 놀리기도 했지만.
센도는 그런 걸로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첫 번째 미스터리는 심해에서 올라 온 대왕오징어 조각이었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향유고래 먹이 찌꺼기를 의심했다. 하지만 표본의 발견지가 엉뚱했다. 물론 인간이 발을 디딜 수조차 없는 심해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는 향유고래의 사냥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센도가 5년 전 카메라 달린 무인잠수정 세 대를 동원해서 추적해 낸 한 향유고래 수컷의 정기적인 사냥터 외에는.
그렇다고 해도 이 표본의 위치는 지나치게 수상했다. 북극해였기 때문이다. 그린란드와 노르웨이 사이였다면 벨루가나 일각돌고래의 먹이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었다. 알래스카와 러시아 사이, 어느 대륙의 연안도 아닌 엉뚱한 곳에서 덩그러니 떠올랐다.
결정적인 건 이빨 자국이었다. 센도는 이빨고래의 먹이 찌꺼기에서 발견될 수 없는 흔적을 찾았다. 어금니였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육식동물에게는 어금니가 없다. 송곳니뿐이다. 사냥감의 피부를 가르고 고기를 찢을 수 있으면 되니까. 나머지는 삼킬 뿐이다. 이빨고래들은 심지어 위턱에는 구멍뿐이고 아래턱에만 원뿔 모양의 뾰족한 송곳니가 돋아있다. 어금니를 가진 이빨고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초식동물인 듀공에게는 쐐기 모양의 어금니가 있다. 질긴 해초를 뜯고 갈아서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센도가 발견한 표본에는 여러 겹의 송곳니로 찢은 자국과 맷돌 같은 사각형 어금니 최소 두 쌍이 짓이긴 흔적이 모두 남아있었다. 전형적인 잡식성 포유류의 치흔이다. 마치 인간처럼.
두 번째 미스터리는 소리였다.
이번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관측되었다. 뉴질랜드의 수컷 향유고래가 번식기와 이동기에 신중하게 유행시키기 시작한 노래는 바다의 5분의 1을 가로질러 다른 향유고래들에게 퍼져 나간다. 센도는 그걸 추적하려다 이상한 잡음을 찾았다. 다른 향유고래의 소리가 섞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처음 관측되는 주파수였다.
센도가 관찰 중이었던 수컷 향유고래는 그 소리에 별다른 소리로 응답하거나 반응하지 않았다. 가청 영역일 텐데도 마치 못 들은 척했다.
사실 그 소리는 초음파라는 사실만 빼면 향유고래가 내는 소리와 완전히 달랐다. 높은 휘파람 같은 소리도 폐의 공기를 후두부로 밀어 올려 모스 부호처럼 따다다닥거리는 클릭 소리도 없었다. 초음파가 잡히긴 했지만 고래가 내는 소리보다 훨씬 주파수가 낮았다. 사람의 가청영역에 정확히 꽂혔다.
초음파를 제외하고 다른 잡음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니 두 가지 소리가 더 잡혔다. 고저를 오가는 초음파 사이사이에 일부러 내는 듯한 거품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에 잘 잡히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부딪치는 듯한 둔중하고 먹힌 소리가 간혹 있었다. 마치 혓바닥으로 입천장을 부딪치는 듯한 소리였다.
그런 소리는 멀리 뻗지 않는다. 가까이 붙어 다니는 개체들만이 의사소통으로 사용할 소리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 있는 센도의 연구용 마이크에 우연히 닿았다. 초음파. 거품. 그리고 혀를 차는 소리. 이 세 가지 소리를 의사소통에 활용하는 개체가 있다. 절대 고래는 아니다.
미스터리는 세 번째에 시원하게 전신을 드러냈다. 새빨간 피를 이마부터 뒤집어쓴 채로.
조우한 바다는 다시 북극이었다. 센도는 벨루가 무리가 잠시 입양했던 길 잃은 일각돌고래가 성년이 되어 독립했다가 다시 양부모 벨루가 무리와 동선이 겹치는 시기를 기다려 잠복을 시작하려던 차였다. 다시 만났을 때 서로의 사회작용이 있을 것인지 궁금했다.
오랜 기간 추적 중인 벨루가 무리에게 붙여 둔 추적기가 수명을 다해가므로 한 번은 포획 후 교체가 필요했다. 최대한 다치지 않게 신속한 작업을 마칠 수 있도록 미끼와 그물을 점검하는 리허설을 세팅하는 중이었다. 배 옆으로 그물을 대충 펼쳐서 던져두고 수중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센도가 웻수트와 다이빙 장비를 갖춰서 갑판으로 나온 순간.
큰 충격을 받고 보트가 좌우로 흔들렸다. 보트에 탄 모든 과학자도 함께 출렁였다. 모터인지 엔진인지 그쪽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센도와 조타수가 후미로 달려갔다. 아작난 프로펠러 하나가 수면 위로 둥둥 떠올라 있었고 모터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조타수는 욕을 하며 엔진을 멈추고 예비 프로펠러를 가지러 갔고. 센도는 혹시 그물이 걸려서 이 사달이 났나 싶어 확인을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센도의 그물에 무언가 걸려 있었다.
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인류도 만난 적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그 생물은 그네를 타듯이 그물 위에 '앉아' 있었다.
센도는 바닷속에서 전신이 굳은 채로 생물을 관찰했다. 숙련된 다이버로서 습관처럼 중성부력을 잡고 있어 가라앉지도 뜨지도 않은 채 생물과 마주 볼 수 있었다.
해양생물이었다. 꼬리지느러미는 흑범고래처럼 가운데가 푹 들어가고 끝이 뾰족하며 날렵한 제비 꼬리 모양이다. 전신이 벨루가를 닮은 새하얀 색이었다. 비늘은 없다. 배꼽이 있다. 그리고 배꼽 위쪽으로는 놀랍도록 인간을 닮았다.
인간의 상체였다면 갈비뼈가 있어야 하는 곳에 대각선의 각도로 가느다란 틈이 있었다. 아가미다. 내외를 들락거리는 바닷물에 갈비뼈와 흡사한 모양의 틈이 흔들리며 새하얀 피부 안쪽의 새빨간 속살을 힐끗힐끗 비췄다. 아래로 갈수록 길이가 짧아지는 아가미는 양쪽에 세 개씩 늘어서 있고, 그 위로 아주 몸이 좋은 보디빌더의 상체처럼 흉곽이 도드라졌다. 해양생물치고는 좌우로 넓은 흉곽을 덮은 부드러운 피부 위에는 젖꼭지 한 쌍이 있다. 갈비뼈 대신 아가미가 있다는 것만 빼면 인간 남성 상체와 판박이다. 젖꼭지와 배꼽이 있다면 포유류. 그런데 동시에 아가미가 있다. 수륙 양서 할 가능성이 높다.
팔이 있다. 팔... 앞다리라고 해야 하겠지만. 인간을 너무나 닮아서 팔로 보인다. 심지어 첨단에 손가락으로 보이는 것이 다섯 개 달려 있다. 엄지가 분리되어 있어 그물을 '쥐고' 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하나마다 전신의 다른 피부와 달리 단단하고 뾰족한 창과 같은 지느러미가 달려 있다. 듀공의 피부 위에 날카로운 돔류의 등지느러미가 붙은 모양새다. 손가락 사이를 자세히 보니 얇고 투명한 지느러미가 흔들리고 있다. 손끝까지도 새하얗다.
길쭉하고 하얀 목 위에 있는 건 분명 인간의 얼굴이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무중력 같은 물속에 먹물처럼 부드럽게 퍼져 가닥가닥 나부낀다.
눈이 두 개. 일반적인 해양생물과 달리 전방 주시에만 유리한 위치에 달려 있다. 일반적인 해양생물은 물고기들이 으레 그렇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선형이라 양옆이 납작한 '세로형'으로 생겼고 양쪽에 눈이 하나씩 달려 있다. 이 생물은 그렇지 않다. 인간처럼 생겼다. 정면을 향한 적당히 너른 어깨가 있고. '뒤통수'와 얼굴이 앞뒤로 붙어 있다. 인간이 하듯이 수영한다면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단정한 얼굴이 센도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이목구비 어디에도 위화감이 없다. 심지어 눈썹이 있다. 눈썹... 해양생물에게. 빗은 것처럼 단정한 굵직하고 기다란 털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속눈썹도 있다. 제법 길다. 위아래 속눈썹이 바닷물을 뚫고 들어 온 수면 위의 햇살 속에 흔들린다. 눈동자는 짙은 올리브색과 호박색이 섞인 빛깔이다. 유백색이 한 방울 섞인 듯 약간 탁하다. 심해생물이라면 시각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 정도로 후방주시를 포기했다면 더더욱...
시원하고 매끈하게 내려와 끝이 우아하게 살짝 솟아 있는 코. 콧구멍이 두 개다. 인중도 있고 입술도 있다. 새하얀 피부 위에서 유일하게 분홍색을 띠고 있는 작은 입술. 입술 사이로 작은 공기 거품이 세 개 나온다. 폐호흡을 한다는 뜻이다. 수륙 양서가 맞다.
귀는 좀 다르다. 귓바퀴는 보이지 않는다. 위로는 눈썹이 끝나는 지점에서 반 뼘 옆부터 아래로는 턱뼈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길쭉하게 너덜너덜 찢어진 투명한 비단 같은 겹지느러미가 나풀거리고 있다. 틈바구니에는 고막이 있는지 아가미가 하나 더 있는지 이 거리의 관찰로선 알 수 없다.
생물은 그물에 그네처럼 '앉아' 있다. 척추를 한 번 접어서 배꼽 아래를 그물 속에 넣고 꼬리지느러미를 앞뒤로 흔들어서 그물을 움직인다. 흔들. 흔들. 눈은 센도에게 고정되어 있다. 새하얀 피부를 덮은 검은 머리카락 아래에서 새어 나온 붉은 피가 물속으로 퍼지고 있다.
센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은 지금 부상을 당했다. 치료해야 한다. 피가 제법 난다. 피 냄새를 맡고 범고래 떼라도 오면 일이 커진다.
폐호흡을 믿고 이 생물을 육지로 끌어 올리기로 결정한다. 센도는 재빨리 배 옆의 사다리를 붙잡고 갑판으로 올라간다. 신속하게 다이빙 추와 산소통을 벗고 웻수트의 지퍼를 죽 끌어 내린다. 동료들을 모아서 난생처음 보는 새로운 해양생물이 그물에 걸렸다고 알린다. 카메라와 마취 세트를 준비시킨다. 상처를 제대로 살펴 보고 치료하려면 필요할 수도 있다.
뼈가 얼 듯한 북극해 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달아오른 맨팔에 그물을 감아 신중하게 끌어올린다. 아직 경도를 알지 못하는 새하얀 피부가 부디 그물에 쓸려 다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생물은 티끌만큼도 상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미 다친 것 이상으로는. 양팔과 꼬리로 중심을 잡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아니라 들것에 실린 사람처럼 여유로운 자세를 하고 올라왔다. 센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기겁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다. 카메라를 든 동료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what the fuck?
그물을 칭칭 감은 채로 갑판 위에 드러누운 눈처럼 새하얀 생물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태양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버둥거리지도 파닥거리지도 않았다. 눈꺼풀이 있네. 센도는 그렇게 생각했다. 빛이 없는 심해에서 눈썹과 눈꺼풀과 속눈썹은 무슨 역할을 했을까...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센도가 일회용 장갑을 끼고 차갑게 얼린 수건을 양손에 걸친 채 머리 쪽으로 가져가자 생물이 퍼뜩 몸을 일으키려 했다. 센도는 신속하게 눈을 가렸다. 육지로 올라온 해양생물은 눈을 가리면 진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 생물은 아니었다. 대뜸 손 지느러미로 센도를 푹 찔렀다. 센도는 수건을 집어 던졌지만 물러서진 않았다. 손등에 피가 터진 채로 오른쪽 주머니에 준비해 둔 마취 주사를 생물의 목덜미에 찔렀다. 그런데 주사기가 부러졌다. 생물은 간지럽지도 않았는지 뭐가 일어난 지 모르는 것 같았다. 위에서 떨어지는 센도의 피와 자신의 피를 손끝으로 우아하게 긁적이기나 했다. 거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무래도 고래상어 급으로 피부가 단단한 것 같다.
다행히 센도는 플랜 C까지 준비하는 남자였다. 몸 왼쪽에 준비해 둔 마취 가스와 연결된 마스크로 생물의 코와 입을 덮었다. 생물은 이번에는 눈을 가렸을 때만큼 즉시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 잠시 이게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듯 느리게 움직이다가... 그대로 스르르 눈을 감고 다시 드러누웠다. 마취량은 인간과 똑같이 계산했다.
'앞머리'를 들어 올려 상처를 파악한다. 길이와 모양을 보니 프로펠러가 분명하다. 조타수가 신음했다. 준비된 응급 세트도 사실 인간용이다. 센도가 직접 응급용 호치키스를 이마에 박는다. 단단한 피부에 튕겨 나갔다. 결국 낚싯바늘을 소독해서 드릴처럼 돌려가며 구멍을 뚫어서 꿰맸다. 지독하다. 그래도 지혈이 됐다. 물이 마르고 나자 가루형 지혈제와 항생제를 뿌릴 수도 있었다. 생물은 얌전한 아가미 위로 새근새근 폐호흡을 했다. 누워서 자는 인간 같다.
아니 인어 같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인어다. 센도 아키라가 인어를 발견했다.
센도는 치료와 연구를 위해 인어를 가장 가까운 노르웨이 연구소로 데려가기로 했다.
마취되어 있는 동안 기초적인 표본 관찰을 마친다. 몸 곳곳의 크기를 잰다. 심박수와 맥박을 잰다. 머리카락과 눈썹, 속눈썹, 상처 부위에서 피부 조금의 표본을 뗀다. 혈액을 뽑는다. 여러 각도로 엑스레이를 찍는다.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여러 장. 결국 이것이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전신 CT와 MRI도. 이 단계에서 치열을 확인했다. 가지런한 한 줄의 앞니와 세 겹의 송곳니와 양쪽에 세 쌍씩 열두 개의 어금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때 그 대왕오징어 찌꺼기 표본에 찍혀 있던 치열과 일치했다.
센도 아키라의 노르웨이 해안 연구소는 폐쇄된 아쿠아리움을 개조한 곳이다. 3층 건물을 한 번에 뚫어 놓은 거대한 규모의 수족관에 한 번에 한 개체씩만 넣어서 연구한다. 아직 마취에서 깨지 않은 개체는 훨씬 작은 수조에 넣는다. 한 층 규모의 원통형 수조는 이 연구소에 준비된 최대 크기의 수족관에 비하면 시험관에 가깝다. 어쩔 수 없다. 처음에는 근접 관찰이 필요하다.
물에 생물의 목 아래를 담그고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바깥에 기대 둔다. 수륙 양서 하는 해양생물은 잠수 한계시간이 있을 수 있다. 바다거북은 7시간에서 9시간까지 잠수할 수 있지만 반드시 수면으로 나와 폐호흡을 해야 한다. 수심 2000미터까지 잠수하는 향유고래도 반드시 수면으로 올라와서 호흡한다. 호흡 주기를 모르기 때문에 마취된 상태로 물에 완전히 넣을 수 없다. 전신이 새하얀 생물은 뒷덜미와 등 쪽에만 얼룩덜룩 불긋한 자국이 있었다. 신경다발이 모여있는 곳 같았다. 센도의 추측이 옳다면 심해에서 피부 호흡을 돕는 기관일 가능성이 높다. 바다거북도 목뒤 쪽 주름에 몰려 있는 신경다발을 통해서 일부 피부 호흡을 한다. 그러면 이 생물은 호흡 방법이 세 가지다. 폐, 아가미, 피부. 지금까지 발견된 그 어떤 해양포유류보다 심해에서 오래 버티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의 눈에 지금까지 띄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된다.
센도는 작은 입술을 바보처럼 에 벌리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얼굴. 새까만 머리카락. 물기가 마르니까 더 인간 같다. 쭉 뻗은 눈썹 아래 착 내리깐 속눈썹. 유일하게 색이 있는 분홍색 입술.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너무나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센도는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인간을 본 적이 없다.
센도가 손목시계를 본다. 마취에서 깰 시간은 한참 지났다. 신체적인 이상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도로롱 약간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린다.
인간을 지나치게 닮은 아름다운 해양생물은 그냥 잘 자고 있었다.
학명을 붙이는 건 발견자의 특권이다. 보통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넣는다.
새로 발견한 해양생물이 분류학적으로 어디에 속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조금 있었다. 포유강까지는 의문이 없었다. 폐와 아가미로 모두 숨 쉰다고 꼭 양서류는 아니다. 분류학은 진화 단계를 좀 더 따지는 편이다. 그러나 아직 이 생물로 추정되는 화석은 발견된 바 없기 때문에 고생물학적으로 분류를 정하기엔 마땅치 않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다른 동물들과의 유전적 연관성과 신체적 특징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로 봐도 그렇지만 일단 젖꼭지와 배꼽이 있다면 이 기관이 그저 퇴화한 흔적이라는 다른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포유강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오리너구리처럼 유두가 없고 알을 낳는 포유류도 존재한다. 단공류라 한다. 태생인지 난생인지는 번식 장면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어쨌든 현재 알 수 있는 사실만으로는 포유강이 가장 납득할 만하다.
어떤 목인지부터 의견이 분분해졌다. 첫 번째 의견은 바다소목에 새로운 과로 포함하자는 것.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의 이름을 딴 해양 포유류를 바다소목Sirenia이라 한다. 현존하는 바다소목 동물은 단 5종. 듀공과 서식지에 따라 구분되는 4종의 매너티뿐이다. 나머지는 멸종했거나 화석으로 흔적이 남아있다.
두 번째 의견은 새로운 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일단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으로도 호흡법과 치아가 다르기에 바다소목에 포함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일리는 있었으나 이들은 인어mermaid라는 영단어를 어떻게든 목명에 넣고 싶어 했는데 인어는 라틴어로 syreni라고 쓴다. 결국 돌고 돌아 사이렌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센도는 신중하게 모두의 의견을 경청했고 바다소목 하에 듀공, 매너티에 이어 새로운 과를 넣는 것에 동의했다. 아직 이 생물의 생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단계에서 목 단위를 새로 만드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일단은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좀 더 많은 개체를 관찰한 후에 바꿔도 늦지 않다.
어쨌든 학명을 붙이는 건 발견자의 특권이다. 대체로 발견자의 이름이 들어간다. 또는 그가 원하는 단어가. 센도는 새하얀 목덜미에 어린아이의 손자국처럼 붉게 뭉쳐 있던 실핏줄 다발의 어른어른한 자국들을 생각했다.
카에데.
새로 발견된 해양생물의 이름은 그렇게 결정됐다.
센도 카에데 사이레니아Sendoh-kaede-sire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