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불면의이쑤신
안영수는 천재다.
인간이 '지능'을 제대로 수치화할 수 있었다면 안영수도 센티넬로 인정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여전히 자기들 두뇌 작동 원리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고 개념적으로도 지능의 완전한 정의에 실패했다. 사고력, 분석력, 창의력, 발상, 전략, 설득, 그 외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종합해서 지능이라고 불러 버린 최초의 오류가 심각했다. 가장 최신의 국제법적 정의에 따르면 신체 능력을 수치화할 수 없는 경우엔 센티넬로 인정되지 않았다. 진실이 어떻든 인간 사회는 약속으로 굴러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영수는 보통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뇌 발달이 빨랐고 적시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데 탁월했으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답을 찾아가는 루트를 개척해 낼 줄 알았다. 십 대 후반에 이미 인류 전체의 지식을 증대시키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고 업적을 인정받았다. 박사 학위는 네 개. 신경과학, 화학, 양자역학, 유전공학.
연구 분야는 센티넬과 가이드의 생물학적 원리다. 이 분야는 거의 안영수가 혼자 만든 새로운 학문이라고 보면 된다. 안영수가 열다섯 살 때 <셀>에 발표한 논문은 혁명이었다. 그때까지 '파동'(대중적으로는 '파장'이라는 한 번 더 잘못된 단어가 흔히 쓰였다)으로 잘못 알려져 있던 센티넬의 능력 작동 원리가 특정한 전기 자극 신호에 의한 신경의 일시적 강화 반응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주먹구구나 다름없던 센티넬의 한계치 측정은 단숨에 고도화됐고 정밀해졌다.
전 세계가 안영수를 칭송할 때 당사자는 투덜거릴 뿐이었다. 당연한 소리 가지고 왜 난리야. 파동은 에너지의 시공간적 이동 현상 그 자체를 말하는 거지, 에너지의 발생 원리와는 무관하다. 에너지의 이동만으로 경이적인 신체 능력을 설명하려니 역부족이었던 거다. 결국 센티넬도 생명 현상이다. 오직 물리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안영수는 하던 연구를 했을 뿐이었고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전 연구의 어깨를 밟고 무릎을 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어느 시대나 혁신적인 아이디어일수록 막상 듣고 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 마련. 안영수의 무릎 펴기는 그 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역대 최연소 수상이었다.
인류가 센티넬과 가이드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건 안영수가 태어나기 20년 전이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신체 능력이 월등한 인간이라 여겼다. 올림픽과 각종 스포츠 세계선수권에서 1년 단위로 자기가 세운 세계신기록을 갈아 치우는 사람들. 말도 안 되게 시력이 좋은 파일럿. 관절 가동역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본 브레이킹 댄서. 물론 긍정적으로 재능을 살려 조명받은 케이스가 그렇다는 거고.
괴이에 가까운 경우도 많았다. 야구장에서 욕하는 목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 관중 고막을 파열시켜 법정에 선 사람. 상해죄인가 아닌가? 열띤 논란을 야기했다. AI가 인간은 연주할 수 없도록 작곡한 악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연주자. 초고속 카메라로 찍어야 손가락 움직임이 보였다. 한참 뒤에야 진상이 밝혀졌다. 그 사람도 센티넬이었구나.
능력 발달 시점이 엄청나게 다양하다는 지점이 오히려 새로운 현상일 가능성에 힌트가 됐다. (센티넬 능력 발달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는 오랫동안 '각성'이라는 비과학적 용어가 사용되었다. 안영수가 후속 논문에서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의 종합적 '발달'이라 봐야 한다고 규정했다. 신생아가 걷고 말하고 글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신체 능력이 뛰어났던 경우엔 구세대적 개념인 영재 정도면 충분했지만 서른 살에 갑자기 자기 몸의 세 배 높이로 점프할 수 있는 건 그때까지 인류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혹시 이 모든 게 같은 현상의 다른 사례들이었다면? 신인류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었다. 센티넬이라는 말은 미국 비영리 언론인 프로퍼블리카가 입수해 폭로한 CIA의 유사 사건 수집 문서에서 비롯됐다.
초기 신인류로 점쳐지던 사람들은 대부분 요절했다.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다가. 왜 인간은 적당함의 미덕을 모를까. 극점에 오르려는 향상 본능은 인류를 오랫동안 지속시킨 힘이기도 했으나 센티넬에게는 쥐약이었다. 지구촌은 이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했는데 과정이 다소 끔찍했다. 올림픽 서른 개 종목 금메달리스트가 모두 원인 모를 심장파열로 경기장에서 즉시 사망했기 때문이다. 신기록은 곧 사망신고였다.
얼마 안 가 센티넬의 재능을 인류의 자원으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담론이 늘었다. 센티넬도, 잠재적으로 센티넬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지만 대체로 영원히 발달하지 않)는 99%의 보통 사람들도 찬성했다. 실질적으로는 각 국가 정부가 센티넬을 관리했다. 재능을 살려 국가와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대신 주어진 건 과학기술 예산과 인력이 총동원된 집중적 연구였다. 센티넬이 더 이상 목숨을 잃지 않으려면 센티넬에 대해서 더 알아야 했다. 전 세계가 '폭주'라고 이름 붙인 현상을 분석하려 애썼다. 안타깝게도 천재 안영수가 태어나기 전이었기에 연구는 더뎠다.
회복 센티넬, 즉 가이드의 존재는 10년 정도 늦게 인지되었다. 우연히 죽기 직전에 발견된 센티넬을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구조 대원이 앰뷸런스 올 때까지 꽉 끌어안고 있었는데 다른 어떤 조치 없이도 상태가 호전된 케이스가 계기였다. 인류의 많은 지식은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돌파구를 맞기 마련이다. 더 빨리 알았다면 훨씬 많은 센티넬이 천수를 누렸겠으나.
정확히는 회복이 아니다. 센티넬의 능력이 작용이라면 가이드의 능력은 반작용이다. 이것도 안영수가 열여섯 살 때 한국 최초의 가이드를 연구한 끝에 규정해 낸 사실이다.
'폭주'라는 잘못된 용어로 쉽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센티넬의 위기는 쉽게 말해 과부하다. 작용이 지나쳐서 통제불능이 된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 결국 멈추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생리 현상이다.
가이드가 인지를 통해 (뇌가 '자, 가이딩 해' 명령한다는 뜻이다) 중추신경계에서 특정 전기 자극을 발동시키면 말초신경계에서 미세한 진동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피부 표면을 중심으로 미세한 자기장이 형성된다. 이 시점부터 파동의 전달이다(파장은 단위다). 미세 자기장이 센티넬의 말초신경계로 전달되어 중추신경계까지 닿으면 일시적인 공명이 발생하고 과부하를 적합한 속도로 진정시킬 수 있다. 따라서 말초신경계가 집중된 피부를 많이, 오래 접촉할수록 진정 효과가 빠르다.
사랑의 힘으로 스킨십 강도가 진할수록 진정이 빠른 게 아니고. 안영수는 냉정하게 20여 년 이어진 센티넬 가이드 낭만 신화를 깨부쉈다. 생애 두 번째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모태솔로라서 억하심정에 이런 연구를 하게 됐다는 항간의 소문은 비열한 루머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진짜 연구 계기는 더 어이없었다.
최고의 연구 대상이자 소꿉친구인 한국 최초 가이드 윤대협의 순결을 지켜 주려고...
윤대협은 천재 안영수 랩의 에이스다. 연구자는 아니고 연구 대상으로서.
종종 윤대협은 동갑인 주제에 안영수를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우리 영수는 사람 살리는 일을 한다고 궁뎅이도 두들기고 커피도 사다 준다. 니가 우리 엄마냐? 키 좀 크다고 존나 어른인 척하네. 내려다보지 마. 앉아. 아니 그냥 꿇어.
안영수는 버릇처럼 까칠하게 반응하면서도 내심 고분고분한 연구 대상에게 감사했다. 인간만의 현상이라 아무래도 생체 실험이 어려운 센티넬 가이드 연구에서 안영수가 독보적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배경에는 윤대협의 역할이 컸다.
비교적 수가 많은 센티넬들은 자기 목숨이 걸린 문제라 그런지 대체로 국제 연구에 협조적이었다. 기꺼이 피 뽑고 전극 달고 CT를 찍어줬다. 가이드는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희소했다. 애초에 센티넬을 만날 기회가 없다면 평생 가이드인 줄도 모르고 죽을 확률이 높으니까. 알게 되더라도 타인의 목숨 내 알 바 아니라고 숨기고 살면 방법이 없다. 잠재력이 있다고 강제로 센티넬이나 가이드로 발달시키는 건 방법도 모를뿐더러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았고 국제법상으로도 금지됐다.
안영수에게는 지구에서 가장 희소한 무제한 샘플 제공 가이드가 있었다. 그것도 초특급 에이스. 가이드 한 명 규모의 실험으로 보편 현상을 증명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으나 엄격하고 정밀한 안영수의 실험 결과는 소규모일지언정 전 세계에서 항상 재현 가능했기에 빡빡한 검증을 통과했다.
윤대협은 지극히 보통의 열여덟 살 소년이다. 동시에 극단적으로 특출난 가이드다. 센티넬도 가이드도 일종의 돌연변이 현상이라 본다면 윤대협은 돌연변이 중에서도 돌연변이였다. 아웃라이어. 야구로 치면 새철 페이지. 농구로 치면 매직 존슨.
비접촉 가이딩이라는 개념 자체가 윤대협으로부터 시작됐다. 윤대협의 신경계가 작동시키는 미세 자기장은 유난히 강력하고 필드가 넓다. 그래서 피부 접촉 없이도 센티넬의 신경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경추나 척추에 손을 댔다간 사망 직전의 센티넬도 벌떡 일으킬지 모른다. 그 정도로 강력했다. 게다가 가이딩을 통한 진정 효과는 무조건 세다고 되는 게 아니고 섬세한 속도 조절이 필요한 영역인데 윤대협은 그것도 잘했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냥 마음을 먹으면 되던뎅. 망충한 얼굴로 뺨을 긁적이는 윤대협을 보며 안영수는 진짜 개 짜증이 나서 이 원리를 밝혀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너는 멍청해라 똑똑한 건 내가 다 할게.
윤대협은 다섯 살 때 발달이 완성된 한국 최초의 가이드이기 때문에, 초딩 때부터 쪼끄만 땅덩이치고 지나치게 많은 비율의 국내 센티넬 전원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고학년 때쯤부터 알아서 비접촉 가이딩을 했다. 공무원들은 포옹도 안 하고 손도 안 잡고 폭주를 진정시킨다는 걸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해 당황했으나 당사자인 센티넬들이 멀쩡해져서는 별점 다섯 개를 주고 싱글벙글 떠나는 마당이었다.
초딩 윤대협이 배운 적도 없는 비접촉 가이딩을 시도해 끝내 성공시킨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 날부터 땀 냄새나는 아저씨들을 별로 만지고 싶지 않았단다. 이른 사춘기와 넓은 퍼스널 스페이스. 그게 이유였다.
안영수가 원리를 밝혀내기 전까진 윤대협에게 양으로 음으로 접촉 가이딩 요청이 은은하게 지속됐다. 아무래도 스킨십이라 내놓고 강요할 순 없다는 점이 선량한 윤대협에겐 더 큰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았다. 암묵적인 기대. 윤대협이 해 주겠지. 정말 위급한 순간이 오면... 하겠지?
안타깝게도 그럴 확률이 높았다. 윤대협은 사람 목숨 살리는 걸 좋아했다. 자신 때문에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는 것만 봐도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들과의 스킨십은 싫었다. 센티넬은 일종의 재능이기 때문에 재능에 미쳐있는 한국 사회엔 유난히 인구 대비 센티넬 발달이 많았다. 윤대협 혼자 감당하기엔 더더욱. 아무리 사람 살리는 게 좋아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열다섯 살 때 윤대협은 커다란 손에 뺨을 기대며 한숨처럼 말했다.
"첫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은데."
안영수가 제 머리카락을 까치집이 되도록 박박 긁었다. 진짜 개짜증 나는 새끼 다정하지 말든가 예민하지 말든가. 이러나저러나 안영수는 하나밖에 없는 친구에게 마음이 약했다. 청춘의 순정은 같은 청춘이 지킨다. 그렇게 두 번째 노벨상을 탔다.
서태웅은 열여섯 살 여름방학에 센티넬 발달과 동시에 죽을 뻔했다.
가족들이랑 울릉도에 놀러 가서 튜브를 허리에 끼고 둥둥 떠 있었는데 사상 최악의 쓰나미가 덮쳤다. 재난 규모로는 섬 전체가 사라지는 게 맞았다.
울릉도는 멀쩡했다. 서태웅은 쓰나미를 공중에서 세웠고 억지로 역류시켜 태평양으로 돌려보냈다. 최소한 72.86제곱 킬로미터를 덮쳤을 양의 파도를. 해일의 중간 지점 일부만 상쇄됐다. 섬 주민들과 관광객들 모두 상처 하나 없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잔잔한 바닷가에 서태웅만 얼굴을 모래사장에 박은 채 쓰러져 있었다.
놀랍게도 그날 울릉도에 윤대협이 있었다. 안영수가 휴가를 줘서 낚시하러 간 거였다. 윤대협은 서태웅이 지금까지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새로운 센티넬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원소계 센티넬의 출현이었다.
윤대협은 열여덟 평생 한 번도 한 적 없는 접촉 가이딩으로 서태웅을 살렸다. 목격자들은 나중에 뉴스 인터뷰에서 한 청년이 인공호흡으로 물에 빠진 또 다른 청년을 살렸다고 증언했다. 역사적인 사건은 막상 당대에는 잘 이해받기 어렵기 마련이다.
적어도 윤대협 개인에겐 역사적인 첫 키스였다.
세계 최초의 원소계 센티넬 서태웅은 금방 해외 토픽이 됐고 기자들에게 물어 뜯기기 전에 천재 안영수의 랩으로 로켓 배송됐다. 배송맨은 당연히 윤대협. 잘 했어. 역시 에이스. 안영수에게 드물게 칭찬받은 윤대협이 환히 웃었다.
서태웅은 처음 와 보는 랩실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잤다. 푹. 시원하게. 스무 시간 동안. 유칼립투스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처럼.
너 가이딩을 잘못한 거 아니냐? 아예 중추신경 전체를 코마 유도했어? 안영수는 돌발 상황이 생기면 으레 그랬듯이 윤대협을 의심했다. 윤대협이 두 손을 허공에 들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윤대협의 결백은 한참 뒤에야 깨어난 서태웅에 의해 밝혀졌다. 그냥 졸렸단다. 가이딩은 매우 편안했고 컨디션 아주 좋다고. 농구하고 싶다고... 응?
안영수는 전속 농구 코트 만들어 줄 테니까 독점적으로 연구 대상이 되어 달라고 딜을 걸었다. 서태웅은 잠깐 고민하더니 코트만으로 농구를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팀이 없으면 농구를 못 해."
"어 내가 만들어 줄게. 우리 랩실 포닥들도 운동 좀 해야지."
간악한 랩장 안영수가 연구실 좀비들을 두 팀으로 나눠 시합까지 시킬 생각을 하는데 서태웅이 딱 잘랐다.
"너도 해."
그다음엔 윤대협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너도."
안영수만큼이나 또래 친구가 없는 윤대협은 목소리부터 들떴다.
"나도 끼워 주는 거야?"
서태웅이 단호하게 말했다.
"너 안 끼면 안 해."
윤대협이 소녀처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안영수는 짜증이 치밀었다.
법무팀이 준비한 계약서에 서태웅이 시원하게 사인한 후에는 안영수의 짜증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다음 날 랩 주차장이 반 토막 나고 대신 길거리농구 코트가 생겼다. 한국인들은 아무튼 건설 공사 하나는 죽이게 빠르다. 서태웅이 윤대협한테 드리블과 점프슛을 가르치는 동안 안영수는 길고 긴 검사 예정 목록을 죽 뽑았다.
솔직히 서태웅은 안영수에게도 충격이었다.
안영수가 열다섯에 밝힌 바 센티넬 능력은 생리현상이다. 물론 물리력을 동반하기에 자연 세계에 영항을 미치기는 한다. 하체 근력과 탄력이 비상식적으로 뛰어난 센티넬이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면 콘크리트도 부서진다. 센티넬은 자연 세계와 그런 종류의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생리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센티넬 발달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강화시킨 건 명백하게 근육과 운동신경이다. 콘크리트를 약화시킨 게 아니다.
그런데 서태웅은 신체 외부를 조종한다. 물. 그것도 입자 단위로.
안영수는 전율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설계한 센티넬에 대한 상식이 다 무너졌다. 원리가 무엇인지 아직은 몰라도 이런 식이라면 콘크리트를 약화시키는 센티넬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서태웅은 인류가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테이지다. 바로 지금을 위해 연구를 해 온 것일까. 이런 때야말로 천재가 꼭 필요한 법이지...
문제는 서태웅이 윤대협과 비슷한 종이라는 거다. 안영수를 세상에서 제일 짜증 나게 하는 무자각 에이스들. 물을 어디까지 조작할 수 있는지, 물리적으로만 조작 가능한지 화학적으로도 조작 가능한지, 다른 액체는 불가능한지 온갖 기초적인 사실을 물어봤는데 대답은 딱 하나였다.
"몰라. 안 해 봤는데."
미친. 안영수는 숨 쉬듯이 욕을 했다. 진짜 짜증 나 죽겠다 너네. 갑자기 옆에서 싸잡아 욕먹은 윤대협이 시무룩한 팔자 눈썹을 했다. 서태웅은 하품이나 했다. 이 자식은 윤대협보다도 리액션이 없고 마이 페이스다. 진짜 갈수록 태산.
"지금부터 해 보지 뭐."
그렇다고 연구에 비협조적인 건 아니다. 이런 점도 윤대협을 닮았다. 좋은 것만 닮아라 좀.
센티넬도 가이드도 인지와 신경을 동시에 사용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나 생각이 능력 발달과 사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연스럽더라도 어쨌든 걸어야지 생각해야 걷고 이제부터 뛸까 하면 뛰는 거니까.
언어와 표현에 탁월해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단계별로 섬세하게 설명할 줄 아는 센티넬들은 신경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능력 사용의 과정을 알아내는 데에 지대한 도움이 되었다. 서태웅은 그런 면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되던데."
안영수는 서태웅이 ‘그냥’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쟤 머리에 쟁반이 떨어지는 단순한 기계 장치의 설계도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고안했다가 폐기한다. 역시 언어는 믿을 게 못 된다. 안영수는 가상 현실로 뇌 영역 구석구석의 작동을 구현한 정밀 CT와 뇌파 검사를 믿기로 했다. 서태웅은 입 다물어. 내 눈으로 보겠어.
서태웅 연구는 하드한 편이었다. 안영수가 급한 게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가 급했다. 그놈의 빨리빨리 정신. 왜 하필 이런 쥐좆만한 땅덩이에 세기의 돌연변이들이 넘쳐나서 피곤하게 굴어. 단군 그 자식이 부동산 하나는 잘 본 건지 뭔지.
알고 보니 위에는 위가 있어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쪼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체 외부의 원소를 조작하는 센티넬의 등장은 미국 국방부에 지대한 충격을 안겼다. 서태웅을 무슨 안보 위협 요소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이제 와서 누가 전쟁을 한다고 지랄이람. 대한민국의 실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안보 위협은 핵무기보다 저출생이 된 지 오랜데. 합리성과 별개로 국가 과학기술 총예산의 20% 정도를 갖다 쓰고 있는 안영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루치 검사와 실험이 끝나면 서태웅은 꽤 지쳤다. 안영수가 첫 페이퍼 주제를 능력의 상세 범위 파악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결코 한계치를 시험하진 않았지만 섬세한 조작을 많이 요구했다.
서태웅이 눈에 뭐가 들어 간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크게 꿈뻑이고 있으면 옆에서 지켜보던 윤대협이 두 손을 가만히 걔 눈꺼풀 위에 올려놨다. 윤대협의 커다란 손안으로 서태웅의 조막만 한 얼굴이 3분의 2 정도 사라졌다.
3분 정도 그러고 있다가 조심히 손을 뗀다. 서태웅은 더 이상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윤대협이 엄지 손가락으로 구겨진 서태웅의 아래 속눈썹을 살살 펴줬다. 서태웅은 항상 순순히 그 손길을 받았다.
염병하고. 안영수는 서태웅을 굴렸다는 자각이 있어 양심껏 소리 내진 못하고 속으로만 욕했다. 저 새끼 접촉 가이딩 그렇게 싫다고 한숨 푹푹 쉴 땐 언제고 존나 애틋하게 구는 것 좀 봐 아이고 동네 사람들.
그러나 얼마 후 안영수는 차라리 접촉 가이딩이 보기 좋았다고 한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혁신이 너무 빨라서 머리가 아프다. 역시 천재 안영수 랩.
실험이 끝나면 서태웅은 윤대협을 찾는다. 낮잠 다 자고 기지개 켠 고양이가 반려인에게 쓱 문대듯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얼굴 대신 오른손을 가져갔다. 오늘은 손을 잡나 보다. 서태웅은 순순히 기다렸다.
가이딩이 아니었다.
윤대협이 서태웅의 손에 연노랑색 사탕 하나를 쥐여줬다.
"이게 뭐야?"
"먹어 봐."
서태웅의 조그만 입술 속으로 연노랑색 사탕이 쏙 빨려 들어간다. 레몬맛이 났다.
"맛있네."
"그래? 잘 됐다."
윤대협이 환히 웃는다. 서태웅이 좋아하는 미소였다.
"가이딩은?"
"그거 다 먹으면."
서태웅은 얌전히 오물오물 사탕을 빨았다. 윤대협은 턱에 꽃받침 하고 느긋하게 구경했다.
사탕이 작아졌다. 얇은 마지막 조각이 혀에 붙어 사라졌을 때 서태웅은 이거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그 순간 느껴지는 익숙한 감각. 서태웅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진다. 윤대협이 쌍꺼풀을 접으면서 활짝 웃었다.
"지금... 가이딩 해 주고 있어?"
안영수가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윤대협은 손 안 대고도 가이딩이 가능하다고. 그런데 항상 서태웅에게는 손을 대어 줬다. 그러면 더 빨리 효율적인 가이딩이 가능하다고 했다. 오늘은 천천히 해 주고 있는 걸까?
윤대협이 관자놀이를 긁었다.
"음... 맞긴 맞는데. 그 사탕으로 하는 거야."
뭔 소리지.
"뭔 소리야?"
"나도 처음 해 봐서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사탕이 어떻게 가이딩을 하지. 서태웅은 벙쪘다. 윤대협은 더 설명할 말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상태 좋아졌으면 됐지 뭐.
서태웅은 적어도 윤대협보다는 호기심이 많았다. 다행히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같은 건물 안에 있었다.
서태웅 얘기를 듣고 안영수는 기절하고 싶다는 표정으로 윤대협 멱살을 잡았다.
"사탕에 뭔 짓 했냐?"
"하하... 진정해 영수야."
"진정하게 생겼냐고?!"
고학력자의 가녀린 손목이 리드미컬하게 격분하는 데에 맞춰 190cm 윤대협이 팔랑팔랑 흔들려 준다. 윤대협 다루는 데 이골이 난 안영수의 노련하고 구체적인 질문과 윤대협의 망충하지만 성실한 답변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윤대협은 물질에 전자기력을 부여해서 자기장을 발생시켰다. 사탕을 통해 서태웅은 입자 단위의 자기장을 삼켰다. 그야말로 내부로 흡수했다. 어떤 의미에선 점막 접촉보다 효율이 좋은 가이딩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안영수는 가끔 윤대협도 천재가 아닌가 의심하는데 오늘이 최고조였다. 윤대협은 제 눈썹 끝을 만지작거리면서 머쓱하게 말했다.
"그냥 이 사탕이 태웅이 낫게 해 줄 거라고 믿으니까 되던데."
천재가 아니고 사이비 교주 재목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이야 뭐야. 윤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대신 사탕을 가이딩 묘약으로 바꾸셨도다. 안영수는 이마를 거칠게 문질렀다. 또 실험하고 페이퍼 써야 돼...
윤대협이 이 방법을 전 세계 가이드에게 가르칠 수 있다면 또 한 번 혁명이 일어난다. 사탕 한 알로 가이드는 자유가 되고 센티넬은 건강을 얻는다. 생산에 참여한 가이드에게 수익 내지 임금을 보장해 준다면 능력 발달을 감출 이유도 없다. 명백하게 세상의 불균형과 고통을 감소시키는 발견이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영수가 물어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나 남발한다. 윤대협은 서태웅이 무슨 맛을 좋아할지 몰라서 아무 맛도 안 나는 알사탕을 준비했었는데 그걸 먹어 본 서태웅은 레몬맛이 난다고 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안영수는 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지금 윤대협 가이딩이 레몬맛이라는 거야 뭐야. 사탕이 전자기력의 영향으로 일부 산패해서 신맛 난 거 아니냐. (거의 순수한 당분은 웬만해선 산패하지 않는다는 걸 안영수가 모르지는 않는다.) 아무튼 여긴 신성한 과학의 장이니까 멜로 영화는 딴 데 가서 찍어라. 윤대협이랑 서태웅은 동시에 고개를 같은 방향으로 갸우뚱해서 안영수를 더 킹받게 했다.
윤대협과 서태웅의 루틴이 달라졌다. 윤대협은 아무 때나 서태웅의 오른손에 레몬맛 사탕을 꾹 쥐여줬다. 눈 뜨고 처음 마주쳤을 때. 밥 먹고 입가심으로. 실험 끝났을 때. 농구하고 지쳐서 쉴 때. 서태웅은 작은 입술 사이로 그걸 쏘옥 넣었다. 윤대협은 서태웅이 그걸 다 녹여 먹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봤다.
"왜 사탕으로 하기로 했어?"
어느 날 서태웅이 사탕을 빨면서 물었다.
윤대협은 바닥을 잠깐 쳐다봤다. 말할까 말까.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것 같아서."
"나를?"
"너를."
윤대협은 곤란한 듯이 살짝 웃고 있었다.
서태웅은 곰곰이 생각하다 입술 사이로 혀끝을 내밀었다. 새는 발음으로 말한다.
"근데 이거 자꾸 베여..."
녹아서 구멍 뚫린 레몬맛 사탕의 날카로운 테두리에 찔려 나온 빠알간 피가 열매처럼 맺혔다가 혓바닥에 번졌다.
윤대협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한참 동안 서태웅의 빨간 혀끝을 바라본다.
얼굴이 기울어진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상처 난 혀끝을 핥아주었다.
가이딩으로 센티넬의 물리적 상처를 치료할 순 없다. 센티넬의 능력도 가이드의 조절도 특정 전기 자극으로 인한 인지와 신경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외상이 재생되는 생명 현상은 좀 다른 영역에 있다.
그래도 윤대협은 서태웅의 모든 상처를 쓰다듬고 싶었다.
서태웅은 피하지 않았다. 윤대협이 절대로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후 접촉 가이딩을 영원히 포기하기로 약속했다. 서태웅이 당장 목숨을 잃을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앞으로 스킨십을 통해서는 특정 전기 자극으로 인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훨씬 더 비과학적이고 실체가 없는 것을 주고받기로 했다.
좋아하는 마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