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 Dance 2
불면의이쑤신
대대로 서가네 식구들은 연말과 신정에 연휴를 붙여서 다 함께 여행을 가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돌에 빠져 버린 막내아들이 집안 대소사를 내팽개치고 연말 시상식을 챙긴답시고 불참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개인플레이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정이 생긴 장녀는 애초부터 바빴고. 차녀는 잘됐다고 본인도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둘이서만 오붓하게 놀러 다니기 시작한 부모님은 싫지 않은 눈치였다.
은퇴한 후로 부쩍 사이가 가까워진 부모님은 이번에도 튀르키예인가 체코인가 세계 지리에 젬병인 서태웅이 결코 기억할 수 없을 낯선 이름의 땅으로 여행을 떠났다. 큰딸은 배우자와 자식을 끼고 제 집에서 뒹굴고 있다. 둘째 딸은 다음 날까지 연차 붙여서 친구들과 부산으로 호캉스 갔다.
그러므로 서태웅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삑. 삑. 삑. 삑. 띠리링.
서태웅이 현관문 여는 소리가 고요한 집에 울려 퍼진다.
은은한 메아리가 남은 현관으로 들어가는 서태웅. 윤대협은 그의 등 뒤에서 주춤거렸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널찍한 아파트 신발장. 하지만 두 사람이 들어서자 3차원으로 꽉 찼다.
성큼성큼 먼저 들어간 서태웅이 대강 벗어 둔 나이키 운동화 두 짝이 바닥을 뒹군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대협은 허리를 숙여 그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바로 옆에 자신의 신발을 나란히 벗어 두었다. 왠지 뿌듯해진 마음을 안고 따라 들어간다.
서태웅은 집에 친구를 데려온 게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뭐부터 해야 하지?
서태웅은 거실과 부엌 사이에 서서 잠시 방황했다. 일단 마실 거? 아니 근데 잠을 못 잤다는데. 잠부터? 그러고 보니 밥은 먹었나? 냉장고에 내가 차릴 수 있는 게 있나? 아니다. 집에 왔으면 손부터 씻어야 해.
곰곰이 생각하던 서태웅에게 윤대협의 기척이 가까이 온다. 서태웅은 퍼뜩 뒤로 돌아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을 성급하게 내뱉었다.
"씻을 거야? 아니면 밥? 아니면 바로 잘 거야?"
"..."
윤대협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벌린 입에서 선뜻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 귀로 들어 온 청각 정보가 굉장히... 이상한 뉘앙스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지 수면 부족 탓인지. 침착하자. 얌전히 입을 일자로 다물고 살짝 정지한 뇌 속에서 상식적인 대답을 추려낸다.
"밥은 괜찮아. 손만 씻으면 될 것 같은데."
서태웅이 듬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복도 끝의 화장실 문을 가리킨다.
그럼 실례. 한 마디 남기고 들어가는 윤대협의 뒷모습이 지쳐 보인다. 많이 졸린가 보다. 빨리 재워야지. 서태웅이 윤대협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나와서 오른쪽 방이 내 방이야. 거기서 자면 돼."
어어, 알았어 하는 소리가 물소리와 섞여 들린다. 안심한 서태웅은 서둘러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 저도 손을 씻고 나왔다.
서태웅의 얄팍한 사회생활 상식 속에 친구를 집에 불러서 낮잠을 재울 만한 곳은 제 방 침대뿐이었다. 소파는 손님을 재울 곳이 아니다. 마룻바닥에 이불을 깔기도 차가운 날이다.
그래서 서태웅은 제 방문을 열면서 오늘부터 친구가 된 윤대협이 제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편하게 입고 잘 옷을 빌려줘야 하나, 혹시 이불이 불편하거나 찝찝하다고 하면 새로 꺼내줘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서태웅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윤대협은 침대 위에 누워 있지 않았다. 서태웅의 책상 위의 한구석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허리를 굽혀가며 얼굴을 기울이고 있었다.
서태웅이 가장 좋아하는 굿즈와 슬로건을 전시해 둔 곳. 일명 윤대협 성전이었다.
서태웅은 문가에 선 채로 돌이 되었다. 지금까지 가족 말고 아무도 이 방에 들어올 일이 없어서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누군가 저걸 볼 거라는 가정. 그랬을 때 자신의 심정.
심지어 최애 본인의 습격.
습격이 아니지. 내가 들어와 있으라고 했지. 서태웅은 자신의 대가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윤대협은 문가에 서 있는 서태웅을 흘끗 보더니 허리를 폈다. 방을 한 바퀴 구경하듯 쓰윽 둘러본다. 시선이 어떤 벽에 꽂힌다. 서태웅도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따라가게 됐다.
그 끝에는 윤대협 1집 브로마이드가 있었다. 진짜 윤대협이 브로마이드 속 윤대협을 보면서 감탄하듯이 작게 입을 벌렸다. 서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린 듯한 오타쿠 현장을 최애 본인에게 들켜 버린 서태웅. 아찔함이 정수리를 파고든다.
이래서 아이돌과 팬은 친구가 될 수 없는 거구나...
몇 년 전 단톡방에서 자신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런저런 진지한 의견을 나누던 오타쿠 동료들이 떠오른다. 서태웅은 이제 그들에게 아이돌과 팬이 친구가 될 수 없는 또 다른 근거를 말해 줄 수 있다. 오늘의 새로운 경험 덕분에. 보통은 친구를 집에 초대했을 때 친구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는 방이나 친구의 굿즈를 소중하게 모아 둔 책상 한구석을 들킬까 봐 걱정하진 않아도 되니까...
그건 다 증거였다.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얼마나 찐한 마음인지도 감출 수 없는. 명명백백하고 물리적인 증거였다. 서태웅이 그걸 하나하나 다 모았고 그중에서도 사소한 이유를 붙여 가며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엄선했고 배치와 위치를 결정해서 늘어놓았다.
심지어 이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너무나 잘 보이는 위치. 눈만 돌리면 보이는 노트북 바로 옆. 차라리 항상 윤대협 생각만 했습니다 광고를 하지 그래. 딱히 다를 것도 없었다. 아무도 볼 일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고려해 본 적조차 없었다. 더더군다나 최애 본인 앞에 공개될 거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한 적 없었다.
윤대협이 방금 생긴 브랜드 뉴 친구이자 밤새고 온 손님만 아니었다면 서태웅은 당장 그의 뒷멱살을 잡고 방에서 끌어냈을 것이다. 오늘 본 것은 잊으라고 살벌하게 말해 주고 소파든 마룻바닥이든 이불을 펴 줄 테니 이 방은 출입 금지라고 단호하게 경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윤대협은 서태웅과 오늘부터 친구를 먹기로 했으며, 서태웅이 집에 데려온 첫 번째 손님이고, 무엇보다 서태웅의 처음이자 마지막 최애였다. 최애를 좋아하는 마음을 최애에게 들키기 싫어서 최애를 문전박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실은 최애니까 더더욱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거지만... 복잡다단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 와 서태웅은 살짝 고장 났다. 제자리에 계속 서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런저런 기분을 견디고 있었다.
윤대협의 표정에 감격이 묻어 나오는 걸 보고 나서야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윤대협이 입을 열었다.
"나도 이거 다 있는데."
서태웅도 안다. 인스타 라이브에 종종 나온다. 윤대협이 선물 받은 것들을 모아 놓은 방.
"그런데 여기도 있는 걸 보니까 진짜 기분이..."
서태웅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윤대협의 입은 서태웅의 손아귀로 틀어막혔다. 토막 난 뒷말이 서태웅의 손바닥 속에서 뭉쳐 의미를 잃고 구겨졌다. 서태웅은 치밀어 오르는 온갖 감정을 꾹 누르고 말했다.
"자라."
서태웅의 손아귀 속에서 윤대협이 뭐라 웅얼거렸다. 입술이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기묘했지만 서태웅은 물러설 수 없었다. 철저하게 윤대협의 리액션을 차단한다.
"자라고. 졸리다며."
"..."
윤대협은 서태웅을 빤히 쳐다보다가 제 입을 틀어막은 서태웅의 손등을 톡톡 쳤다. 이거 풀어주면 안 되냐는 제스처였다. 서태웅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말해. 자."
윤대협은 입이 틀어막힌 채 속눈썹이 긴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씨익 웃었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보여주며 항복 표시를 한다. 서태웅은 경계를 풀지 않고 침대를 턱짓했다.
윤대협은 총구 앞에 협박당하는 사람처럼 여전히 두 손바닥을 든 채로 서태웅에게 입을 막힌 채 주춤주춤 침대를 향해 뒷걸음질하다가, 적당한 위치에서 조심스럽게 앉았다. 윤대협이 상체를 스르르 눕힐 때까지 서태웅은 윤대협의 입을 막은 손을 놓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침대 옆에 엉거주춤 앉게 되었다.
윤대협이 얌전히 누운 걸 확인한 서태웅이 조심스럽게 손을 치웠다.
5초 뒤에 윤대협이 말했다.
"1집 브로마이드 제일 좋아해? 왜 저걸로 붙여놥븝벱"
서태웅은 윤대협의 발언권을 도로 압수했다. 물리적 수단을 써서. 윤대협은 억울하다는 듯이 눈썹을 팔자로 내리면서 히잉 표정을 지었지만 명백하게 장난치고 자빠진 표정이었다. 열받은 서태웅이 손을 치우는 동시에 이불을 윤대협 머리끝까지 확 뒤집어씌웠다. 이불 밑에서 윤대협이 참지 못하고 낄낄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잠이나 자."
"네~"
대답은 잘해요. 서태웅은 윤대협이 얌전해진 이후로도 한참 동안 경계를 풀지 않다가. 정말 조용해지자 조심스럽게 이불을 윤대협의 목 아래까지 걷어봤다.
윤대협은 그새 잠들어있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하게. 오랫동안 윤대협을 덕질하며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모습이었다. 편안해 보였다.
달라져 버린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실감이 났다. 이제 윤대협은 굿즈가 상징하는, 슬로건이 응원하는, 브로마이드 속의 최애가 아니다. 서태웅의 침대 위에 누워서 곤히 자고 있는.
친구다.
이유를 알 수 없이 가슴이 찡해서 서태웅은 잠깐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다가 본인도 잠들어 버렸다.
눈을 떴을 때 서태웅은 팔다리를 큰대자로 펼치고 누워있었다. 자신의 침대 위에서.
헉 소리가 날 정도로 깜짝 놀란 서태웅의 머릿속에 두 가지 의문이 연속으로 떠올랐다.
왜 내가 침대에 누워있지? 윤대협은 어디 있지?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 순간 두 번째 의문은 3초 만에 풀렸다. 윤대협은 그새 일어나서 또 서태웅 책상 위의 윤대협 성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감상할 게 많은지 굿즈에는 손끝도 대지 않고 고개만 기울여서 하나하나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서태웅의 가슴이 또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이 자식. 빨리 방에서 꺼내야겠다.
"잘 잤어?"
서태웅이 일어나는 소리를 들었는지 윤대협은 돌아보지도 않고 태평하게 인사한다. 아니 잘 자야 하는 건 넌데. 서태웅은 생각하는 대로 말했다.
"너는?"
윤대협이 돌아보며 환히 웃는다.
"완전 잘 잤어."
그리고 물어본 적도 없는 걸 대답한다.
"태웅이 형은 잘 때도 잘생겼더라."
서태웅이 한 마디를 소화하기도 전에 또 말한다.
"근데 쪼끔 침 흘렸어. 괜찮아. 귀여우니까."
서태웅은 참을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갔다. 아직은 자는 얼굴까지 공개할 생각은 없었던 전 최애이자 연하의 친구에게 조롱당하고 있다. 그런데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 분하다. 일단은 자꾸만 치욕이 계속되는 장소를 벗어나기로 한다.
서태웅은 말없이 성큼성큼 부엌으로 걸어갔다. 냉장고를 기세 좋게 열었다가, 고민하다가, 다시 닫았다. 좀 생각하다가 다시 연다. 조롱은 열 받지만 손님이니까. 뭔가 대접을.
냉장고 속에는 서태웅 생일이라고 누나들이 사 둔 케이크밖에 없었다. 커피머신을 돌려놓고 케이크 조각을 신중하게 자르는 동안 윤대협이 기지개를 켜면서 주방으로 따라 나왔다.
"커피, 따뜻한 거? 아이스?"
"아이스. 고마워."
라떼파가 아닌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서태웅은 윤대협을 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본인 몫의 따뜻한 카페라떼를 만들어 식탁에 내려놓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용으로 부모님이 손님 대접을 할 때 쓰는 예쁜 크리스탈 잔을 꺼냈다.
두 사람 몫의 테이블을 세팅해 본 적이 있었던가? 장식장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고급 디저트 접시 두 개에 서투르게 잘라 옆면이 약간 내려앉은 케이크 조각을 얹어 윤대협 앞에 하나, 제 앞에 하나 놓는다.
윤대협은 서태웅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포크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냥 같이 먹으려나 보다 했는데.
서태웅이 의자에 앉자마자 손을 모으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잘생긴 입술 틈에서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가 노래한다.
"사랑하는 태웅이 형."
제일 좋아하는 미소로.
"생일 축하합니다. 와~"
신나게 박수를 치더니 그제야 포크를 들어 케이크의 뾰족한 끝을 깔끔하게 잘라낸다. 아, 하면서 서태웅 눈앞에 들이댄다. 반사적으로 벌어진 조그만 입 사이로 쏙 들어간다. 다 삼키지 못한 생크림이 입술 가에 뭉쳤다. 윤대협은 포크를 회수하면서 그걸 엄지손가락 끝으로 싹 훔쳐 갔다. 쪽 소리를 내며 빨아 먹었다.
"생일 축하해."
서태웅은 뭘 당했는지 인식하지도 못하고 얼떨떨한 채로 중얼거렸다.
"고마워."
진심이었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달콤한 케이크와 쌉싸름한 커피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등 쓰잘데기 없는 잡담이었다. 예전에 몇 번 통화할 때와 다르지 않았다. 주로 윤대협이 서태웅에게 질문했고, 서태웅이 단답형으로 대답하면, 윤대협이 관련된 이야기를 덧붙이거나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서태웅은 그런 대화가 편했다. 통화나 메시지보다도 훨씬 좋았다. 서태웅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턱 끝을 붙잡고 흥미를 보이거나, 작은 표정 변화만 있어도 맞장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이버 소통보다 대면 소통이 더 편한 관계는 서태웅 인생에 처음이었다.
심지어 침묵도 나쁘지 않았다. 윤대협은 서태웅만큼이나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건 누구도 느끼지 않았다. 서태웅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해 마주 앉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딱히 상대방을 신경 쓰느라 억지로 입을 열어 본 적은 없지만. 마이페이스인 성격이라도 처음부터 불편함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가 압도적으로 편하다는 걸 오늘 알았다.
포크로 과일 조각을 건드리던 윤대협이 시선을 접시에 둔 채로 부드럽게 말했다. 비밀 얘기를 하는 것처럼.
"나, 사실은 친구 집에 놀러 온 거 처음이야."
그건 의외였다. 서태웅은 잠깐 눈이 커졌다가. 금방 대답했다.
"나도."
윤대협이 포크를 딱 멈췄다. 눈이 마주쳤다.
"친구 집에서 잔 것도 처음이야."
서태웅은 윤대협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도."
윤대협이 배시시 웃었다.
"다음엔 부모님 계실 때 올게. 인사드려도 돼?"
이 질문에는 서태웅이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아이돌에 관심 없는 사람도 윤대협은 안다. 서태웅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막내아들의 최애라는 사실까지 알고 계시는데. 아무래도 놀라실 것 같은데...
그러나 맞은편에 앉은 윤대협의 선량한 미소를 거절하기가 힘들다. 서태웅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윤대협의 얼굴이 더 환해졌다. 한없이 자상한 얼굴로 이런저런 제안을 한다.
"내 집에도 놀러 와. 아무 때나 와도 돼. 혼자 살거든. 작업실도 있어. 구경시켜 줄게."
서태웅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작업실. 말만 들어도 신기하다. 아이돌 시절에 자컨 속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녹음실 풍경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본업하는 윤대협을 실물로 볼 수 있는 걸까. 그 가능성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자신의 생일 케이크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서태웅은 생각했다.
친구는 좋은 거구나...
달달한 생크림이 혀끝에서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