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불면의이쑤신
여름이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하나.
루카와 카에데는 서른 살에 NBA에서 은퇴했다.
커리어 최악의 부상을 입은 건 시즌 초반이었다. 치열한 골밑 점프슛 후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부딪혔다. 누구에게도 고의성은 없었으나 결과는 태클 수준으로 참혹했다. 오른쪽 무릎이 이상한 각도로 돌아간 데다가 위에 두 명이 쌓였다. 루카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기 중에 짐승처럼 단말마를 질렀다. 들것에 실려가는 동안 두 눈을 너무 세게 감아서 노란 불꽃놀이 같은 게 암흑 속에 퍼졌다.
연골이 찢어지고 인대가 늘어나고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이었다. 시즌 아웃. 이 시점에선 아무도 좌절하지 않았다. 일시적으론 끔찍하나 충분히 쉬면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의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CT를 찍고 MRI를 찍었다. 다치지 않은 왼무릎까지도. 의사는 반투명한 사진 속의 하얀 얼룩을 가리키면서 루카와의 무릎 사진이 70대 같다고 했다. 각각 퇴행성 연골 파열과 박리가 상당히 진행됐다고.
"지금까지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했습니까?"
그야 종종 통증은 있었다. 하지만 심각한 건 아니었다. 격렬한 경기 후에 으레 찾아 오는 근육통이라고 생각했다. 적절히 휴식하고 나면 괜찮아졌다. 의사도 납득했다. 원래 퇴행성 질환은 초기에 통증을 느끼기 어렵다고. 그래서 무서운 거라고. 언제 임계점을 넘어갔는지 알 수 없어서...
"외상만이라면 충분히 재활이 가능하지만... 현 상태는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관절이 거의 수명을 다한 거예요. 수술과 재활을 거쳐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회복하는 게 최선입니다."
최대한 회복해봤자 이미 건강한 무릎이 아니라고 했다. 선택은 전적으로 루카와의 몫이었으나 의사가 은근하게 권유하는 방향은 분명했다.
"인생은 아직 길잖아요."
루카와 카에데는 차라리 무릎이 잘려 나갔다면 기쁜 마음으로 휠체어 농구를 시작했을 사람이라는 걸 의사가 알 리 없었다. 그렇다고 잘라 달라고 할 순 없으니.
루카와는 담담하게 수술과 재활을 선택했다. 그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면. 수술은 값비싸고 고통스러웠다.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루카와는 10월부터 4월까지 꼬박 7개월을 재활에 전념했다. 아예 입원을 오래 했고 늘 목발을 짚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다. 구단에서는 피지컬 뿐 만 아니라 멘탈 테라피스트도 붙여 줬다. 마치 결과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재활은 실패였다.
최소한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했다. 루카와는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고 단거리라면 가볍게 뛸 수도 있었다. 당대의 최신 의학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러나 새처럼 나는 듯한 점프는 무리였다. 물리적으로야 시도할 순 있었다. 하지만 착지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충돌은 더더욱 언감생심. 다시 삐끗하기라도 하면 비명을 참을 수 없는 끔찍한 통증과 함께 지난 7개월이 무효가 된다.
재활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최대치로 예상한 건 본래 운동능력의 90%. 실제 회복된 건 7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NBA는 100%, 아니 120%를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다. 치고 올라오는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이런 무릎으로 포지션을 사수하는 건 무리였다.
한창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이던 5월. 루카와는 구단과 에이전시에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발표 시기는 시즌 종료 후로 조율했다. 팀의 목표는 언제나처럼 파이널이고 우승이니 경기 하나하나가 중요한 상황이다.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았다.
루카와는 단 1분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 더 경기를 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아득해진 지난 시즌 파이널이 인생 마지막 경기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감독과 코칭 스태프는 마음은 알지만 아무 것도 약속할 순 없다고 했다. 루카와도 납득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 1분은 기적처럼 찾아왔다.
NBA 파이널 마지막 경기. 팀은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 가비지 타임. 루카와에겐 쓰레기가 아니라 보석 같은 기회였다. 부상 이후 시즌 내내 복귀할 수 없었고 진작부터 은퇴설이 파다한 루카와가 교체 투입되는 순간.
홈 관중이 전부 스탠딩 오베이션을 보냈다. 루카와는 드래프트 이래 10년 간 한 팀에서만 쭉 뛰었다. 신인상을 탔고 득점왕을 했고 네 번 우승했고 홈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농구했다. 그야말로 뼈를 깎아서 얻은 리스펙이었다. 정확히는 무릎뼈.
인생에서 가장 간절한 1분. 루카와는 코트에 발을 딛자마자 실감했다.
다시는 여기로 돌아올 수 없다.
내 무릎은 끝났다. 다시는 예전처럼 농구할 수 없다. 당장이라도 트라우마에 가까운 통증이 돌아올지 모른다. 잘못하면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망가질 수도 있다.
그래도 루카와는 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다시는 걷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 이 1분을 포기할 수 없어서.
내가 나다울 수 있는 마지막 1분.
승부가 난 상황에서도 상대팀은 최선을 다해 루카와를 상대했다. 10초를 남기고 상대 팀 에이스가 루카와에게 공을 패스한 뒤 다른 팀원을 물렸다. 일 대 일 매치업. 낭만적이군. 루카와는 속으로 감사했다.
박수와 환호가 커진다. 1년 내내 매일 같이 프로 스포츠의 뜨거운 승부가 펼쳐지는 미국에서도 이 정도로 극적인 드라마는 흔치 않다. 스타디움의 공기가 용광로처럼 진한 밀도로 끓어오른다.
루카와의 결 좋은 까만 앞머리가 공중에 떴다. 폭발적인 드리블로 자신보다 10cm 크고 6살이 어린 상대팀 에이스를 순식간에 돌파해 날아오른다. 덩크를 꽂는다. 홈 관중이 미친듯이 환호했다.
버저가 울린다. 동료들이 달려 온다.
손가락을 림에서 놓는 순간부터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루카와는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공중에서부터 비스듬히 무너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오른쪽 무릎이 덜그럭거렸다. 아프다. 사실은 덩크를 위해 점프하는 순간부터 아팠다. 지금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두 눈을 꾹 감았더니 굵은 눈물 줄기가 동시에 네 갈래로 주르륵 흘렀다. 동료들이 등짝을 두들기다가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누군가 팀 닥터를 부른다.
난반사된 조명 빛으로 시야가 엉망진창이다.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뜨끈하고 땀에 젖은 팔뚝들을 붙잡고 골 밑에 주저앉아 루카와는 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었다. 기억하는 이래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었다. 눈물의 은퇴 경기였다.
센도 아키라는 서른두 살에 일본 10대 IT기업 임원이 됐다.
대학 다닐 때 머리 좋은 선배들이 회사를 창업한다길래 합류했다. 재밌어 보여서. 그리고 대기업 취준이 더럽게 귀찮고 지루해서.
그랬더니 이게 무슨 일. 웹 서비스 하나로 유니콘 기업이 됐다. 창업 초기 센도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접점이 되는 지점에서 마케팅, 영업, 홍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해 성장에 기여했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CFO로 재무를 총괄한다. 사람보다는 숫자를 훨씬 많이 본 지가 꽤 됐다.
한창 시작할 때보단 훨씬 재미없는 일이다. J커브를 그리던 성장은 둔화됐고 벤처기업은 대기업이 됐다. 창업 멤버 중에는 상장 이후에 주식을 팔고 이른 은퇴를 하거나 새 사업을 시작한 선배들도 있다.
센도는 남았다. 그 정도로 하기 싫은 일은 아니다. 그 정도로 하고 싶은 다른 일도 없었다. 어쨌거나 청춘을 바쳐 키워 온 회사에 애착은 있었다.
농구도 딱 이런 기분일 때 그만뒀다.
대학 리그까지는 제법 진지했다. 인터칼리지에서 U21 세계대회에서 또 올림픽에서 나름대로 활약했다. 실업 리그에서 러브콜도 있었다. 일본에도 드디어 프로 리그가 생겼을 때는 모두 센도 아키라의 미래가 결정된 것처럼 굴었다. 본인만 빼고.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센도가 쉽게 질리는 사람인 것도 아니다. 풀이 너무 좁았다. 농구는 결국 공 하나 던져 놓고 사람끼리 부딪히는 게 전부인데. 센도가 속한 리그의 멤버는 고등학교 때부터 인터칼리지, 국가대표까지 다 고만고만했다. 어느 시점까지는 서로 부딪히며 성장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문턱을 지나가니 속도가 둔화되고 비슷해졌다. 영원히 자라는 나무는 없다. 고인 물은 썩는다.
한 달만 지나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실력이 늘었던 십 대 시절과 비교할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몸은 그 때의 짜릿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루카와 카에데를 처음 만난 경기를 어제처럼 기억한다.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는 것이다.
시금석이 다이아몬드인 셈이다. 한 번 잭팟을 경험한 도박 중독자가 가장 취약한 것처럼. 그럭저럭 견딜만한 재미로는 부족했다. 의욕이 점점 말라갔다. 그 정도로 재미있는 상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적어도 국내에선 그랬다.
인생에 어떤 선택권이 주어진 시절부터. 항상 갈림길에선 더 재미있어 보이는 쪽을 골랐고 뒤돌아 보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달렸다. 센도는 창업 이후로는 취미로도 농구를 안 했다. 완전히 일에 몰두했다.
몇 년이 지나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나서야 주말에 가끔 혼자서 실내농구장을 예약했다. 별 재미는 없었다. 농구는 팀 스포츠였고 지난 몇 년 간 인간관계를 독점한 회사 동료들은 딱히 운동에 관심이 없는 IT 긱이 대다수였다. 이제 와서 사회인 스포츠를 시작하기도 귀찮았다.
루카와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농구했던 그 때처럼. 영원할 수 있었을까. 지속적으로 한 뼘씩 쑥쑥 성장해서 제 몸에 또렷한 마디 하나를 긋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돌연변이 대나무처럼. 언제나 파죽지세였던 루카와 카에데.
센도는 잘 알았다. 실은 가장 먼저 손에서 빠져나간 건 농구가 아니고 루카와다. 그래서 영원히 십 대의 여름에 남아 있다. 손 댈 수 없는 과거의 아름다움으로.
6월 마지막 주. 센도 아키라는 야근 중이었다. 사무실엔 몇 명이 더 남아 있었다. 4월에 상반기 공채로 뽑은 신졸자들의 3개월 평가가 코앞이다. 급성장하는 신사업에서 안정적이고 복지 좋은 대기업이 되어버린 만큼 요즘 신입사원들의 성향도 많이 변했다.
어쨌든 현재 회사에 남은 사람 중 센도만큼 이 회사를 위해 사람을 많이 뽑아 보고 교육해 본 경력자는 없었다. 특히 올해는 재무부서 충원이 많았다. 이제 센도는 신입을 가르칠 부하들을 가르쳐야 했다. 맛보다 카페인이 우선인 캡슐 커피를 들이키며 기지개를 켠다. 피곤이 쌓였다.
기분 환기 차원에서 회전 의자와 함께 빙그르르 돌아 본다. 사무실의 커다란 TV는 별 일 없으면 뉴스 채널에 고정이다. 브라운관 상단을 박력 있게 채운 익숙한 글자가 센도의 시선을 멈춰 세운다.
생중계. 루카와 카에데 NBA 은퇴 후 첫 귀국 기자회견.
센도가 발작처럼 리모콘을 찾아 볼륨을 키웠다. 뮤트가 해제되자 찰칵찰칵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들린다.
길다란 책상 뒤로 익숙한 얼굴이 느릿느릿 걸어 들어온다. 다리를 조금 저는 것 같다. 센도는 제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루카와가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 사이로 천천히 목례한다.
기자 대표가 사전 취합한 질문을 건넨다.
"부상으로 은퇴를 결심했다고 알려졌는데요. 재활은 불가능한 상태였던 건가요?"
센도가 커피잔을 꽉 쥐었다. 굳이 물어볼 필요 없는 뻔하고 고통스러운 질문처럼 느껴졌다. 관련 기사가 처음 부상을 입었던 1년 전부터 파다했는데.
막상 TV 속의 루카와는 담담해 보였다. 미리 질문을 확인해서 그렇겠지만. 높낮이가 없는 듣기 좋은 저음이 천천히 답한다.
"시즌 내내 재활했습니다. 그래서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걸을 순 있지만 농구는 역시 어려운 건가요?"
"농구... 할 수 있습니다."
루카와는 질문을 건넨 기자가 아니라 정면의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본다.
"하지만 더 잘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도 상처 입은 적 없는 매처럼 당당하게.
"저는 농구를 더 잘하고 싶어서 미국에 갔습니다. 오직 그 이유였습니다. 매 경기, 매 시즌 나아지고 싶었고 그것만을 목표로 뛰었습니다."
센도는 루카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시선에 꿰뚫리는 것 같다.
"이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퇴합니다."
기자는 기계적으로 수첩을 넘기며 곧바로 이어 질문한다.
"일본 프로 리그로의 이적 가능성은 어떤가요?"
"없습니다. 지금 무릎 상태로는 확실히 말해 민폐입니다."
"국가대표도 마찬가지인가요?"
"물론입니다."
"NBA에 있는 동안 국가대표팀에 참여하진 못했는데요. 아쉽지 않으신가요?"
"아쉽습니다."
루카와는 프로 생활을 하며 국가대표를 뛴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때문에 국내 여론이 일시적으로 나빠지기도 했다. 물론 잠깐이었다. 다음 시즌이 오면 다시 루카와에게 감탄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명실상부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했으니까. 센도는 소속 구단이 부상 걱정에 대표팀 합류를 막았으리라 추측했지만. 루카와는 단답형 대답에 아무런 변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이 더 오간다. 루카와는 지금까지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를 표하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자유 질문 시간이다.
"이후 국내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어... 집에 갑니다."
멍한 대답에 좌중에 잠깐 웃음이 일었다. 정말 아무 일정이 없어 보인다. 뭐가 잘못된지 몰라서 머리를 긁적이는 구부정한 뒷목이 센도가 아는 루카와 같다. 왠지 지켜보던 센도가 긴장이 풀린다.
"은퇴 경기가 현지에서도 국내에서도 굉장히 화제였습니다. 혹시 경기 장면을 다시 보셨나요?"
"아니요....."
"어째서죠? 감동적인 명장면으로 손꼽혔는데요."
"아니요...... 너무 울어서......"
다시 좌중에 웃음이 퍼진다. 누가 봐도 짖궂음이 담긴 질문이었다. 루카와가 약간 더 구부정해진다. 분명히 부끄러워하고 있다. 얼굴은 그대로지만 목 아래가 살짝 핑크색으로 물들고 있다.
센도는 문제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봤다. 그래도 익숙한 종목이라고 포스트시즌이 되면 종종 NBA를 틀어 놓곤 했다. 중계 시간에 따라서 무료한 주말 오전이나 야근 BGM으로 제격이었다.
일주일 전 NBA 파이널 마지막 경기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화제였다. 그럴 만큼 강렬했다. 하이라이트는 라스트 1분. 가비지 타임에 교체 출장한 루카와 카에데. 상대팀의 리스펙과 홈 관중의 환호. 마지막 덩크와 처절한 눈물. 아름다운 스완 송. 스포츠 뉴스 뿐 만 아니라 모든 방송에서 수백 번 수천 번 리플레이 됐다. 아마 그 장면을 아직도 못 본 일본인은 없을 것이다. 루카와 카에데 본인 빼고.
센도는 그렇게 우는 루카와를 본 적이 없었다.
아마 본인도 본 적 없을 거다. 센도는 솔직히 당시엔 경기를 끝까지 본 걸 후회했다. 생각보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따져 보면 그 역시 부질없다. 어차피 일본에 살면서 그 장면을 안 볼 수는 없었을 거다. 경기가 끝난 뒤 루카와가 만원 관중 앞에서 은퇴를 선언하는 장면은 나중에 스포츠 뉴스에서 봤다. 새빨개진 눈과 쉬어빠진 목소리를 하고서.
두세 번 더 질문과 답변이 오간다.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거의 미국에서 있었던 은퇴 기자회견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마지막 질문을 던진 건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히코이치잖아. 센도는 반가운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자 빙그레 웃었다. 내가 없는 데서 재회를 하고 있네.
"루카와 선수는 자라나는 다음 세대 농구 선수들에게 명실상부한 우상이자 목표입니다. 반대로 루카와 선수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 궁금합니다. 누구에게 가장 영향을 깊게 받았나요?"
루카와가 세 번 눈을 깜빡인다. 시선이 다시 정면의 카메라를 향한다. 조그마한 입술이 열린다.
"마이클 조던. 그리고..."
잔잔한 여름 바다처럼 금빛 햇살을 머금은 투명한 눈빛이 센도를 똑바로 쳐다본다.
"센도 아키라."
머그컵이 요란하게 바닥을 구른다.
마시던 커피가 엉망진창으로 쏟아졌다. 야근하던 소수의 직원들이 일제히 소리의 기원을 쳐다보는 동시에 센도가 화장실을 향해 급히 몸을 돌렸다. 미안해요. 대걸레 가져 올게요.
하지만 센도는 금방 돌아갈 수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벽에 머리를 부딪히듯 기댔다.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밀려 드는 아득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갑자기 무겁게 때려 오는 심장 박동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중력보다 강한 힘이 센도를 지구 내핵 쪽으로 끌고 가려 한다. 시간을 되감으려고 한다.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십 대의 여름에 영원히 남은 것도 너 혼자만이 아니었다.
루카와 카에데는 카나가와의 본가에 도착했다.
7월이 시작됐다. 완연한 여름.
열여섯 살 때까지 살았던 집에 서른 살에 돌아왔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부모님은 아무리 권해도 이사도 새 집도 마다하셨다. 익숙한 것이 제일이라며. 미국에서 번 돈은 최대한 아껴 쓰라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 빨리 은퇴했으니 부모님 말씀이 옳았다. 다행히 농구를 안 한다면 크게 돈 들어갈 일은 없다. 제일 많은 돈을 잡아먹은 두 무릎뼈도 이젠 진정됐으니까.
남들은 집을 나가 새 가정을 차리고도 남을 나이에 루카와는 반대로 부모님 슬하로 굴러 들어왔다. 역자취? 퇴행? 캥거루? 나이 드신 부모님은 오히려 반가워하셨다. 14년을 떨어져 살았으니까. 부모보다 먼저 은퇴한 막내아들. 그래도 당신들 눈에는 아직도 먼 타지로 혼자 유학을 떠나던 고등학생 아이 그대로였다.
어머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루카와는 다이닝룸 식탁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가끔 야채 씻는 걸 도왔고 몇 마디 수다를 떨기도 했다. 14년간 손에 꼽을 정도 밖에는 가질 수 없었던 시간이다. 앞으로는 매일 할 수 있다.
갑자기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져서 양파를 써는 어머니를 뒤에서 껴안아 본다. 어깨에 턱을 꾹 누른다. 고등학생 때도 안 하던 애교다. 마음이 조금 촉촉해지신 어머니는 한참 루카와의 매끄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셨다. 설거지는 루카와가 했다.
배가 부르다. 소파에서 잠깐 낮잠을 잤다. 얇은 레이스 커튼을 통과한 햇빛이 나른하게 루카와를 감쌌다. 어머니가 에어컨을 약하게 켜 줬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금방 식어간다.
저녁을 먹기 전에 2층 방으로 올라갔다. 루카와의 짐은 아직 박스에 담겨 1층 거실과 2층 복도에 여기저기 널려 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집에서 살다 온 지라 정리할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14년간 쓰던 짐치고는 적은 걸지도.
이번 주 일정은 빼도 박도 못한다. 대청소뿐이다.
짐 정리를 하려면 짐이 들어갈 방부터 치워야 한다. 루카와는 14년 만에 돌아온 방을 둘러본다. 제법 깔끔하다. 부모님이 저 없는 동안에도 꾸준히 관리해 주신 거겠지. 감사함뿐이다.
두고 간 잡동사니가 거의 그대로다. 루카와는 팔을 걷어붙였다. 과거의 흔적을 선별할 때다. 과감히 버리거나 창고로 보내 간직하거나. 구석구석에 쌓여 있던 먼지들이 여름 오후의 누런 햇살 속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루카와는 일회용 마스크를 가져다 썼다.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보던 농구 잡지들. 조던의 기사를 모은 스크랩북. 박스를 꺼내는 순간 균형을 잃고 우르르 쏟아지는 카세트테이프들.
한때는 보물이었던 부스러기들이 먼지와 함께 굴러다닌다. 그리운 기분을 참지 않고 하나씩 만져 보고 펼쳐 본다. 사소한 마음을 다 쌓아 놓고 넣어 놨더니 훑어만 보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지 않은 것, 직접 수고를 들여 만들지는 않은 것, 수명을 다 하거나 망가져서 간직할 이유가 없는 것들은 과감하게 100리터 쓰레기봉투로 옮긴다. 카세트테이프는... 재생이 되려나? 나중에 확인해 보기로 한다.
느릿느릿 정리하다 서랍 구석에서 묘하게 낯선 물건을 하나 찾았다.
초록색 일회용 카메라.
루카와는 사진을 찍는 취미가 없다. 가족 중에선 아버지가 기록에 관심이 있는 편이지만 캠코더를 시작으로 디지털로 옮겨 간 지 꽤 됐다. 요즘은 기자들처럼 거대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취미로 새 찍으러 다니신다. 급기야 휴대폰에도 카메라 렌즈가 붙어 나오기 시작한 시대. 일회용 카메라는 운석 맞고 빠르게 멸종한 공룡이나 다름없다.
21장짜리 필름 중 소모된 건 겨우 5장.
나머지를 다 찍어야 필름을 꺼낼 수 있다. 루카와는 엄지손가락으로 태엽을 도륵도륵 감아서 방구석을 아무렇게나 찍는다. 묶어 둔 오래된 농구 잡지 위로 햇살이 내려오는 풍경이나. 무너진 카세트테이프들만 남기고 텅 빈 책장 선반이나.
조그만 방에서 찍을 만한 건 금방 떨어졌다. 1층으로 내려가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른다. 포즈를 잡기 전에 냅다 찍는다. 조금 당황하셨지만 싫어하진 않으셨다. 마지막엔 두 분이서 제법 다정한 포즈도 취해 주셨다. 환하게 웃으면서. 루카와도 따라서 미소 지었다.
까만 플라스틱에 표시된 하얀 숫자가 0으로 바뀌었다. 더는 찍을 필름이 없다는 뜻이다.
달칵. 루카와가 일회용 카메라 뒤를 열어 동그랗게 말린 필름을 꺼냈다. 아버지가 현상해 주겠다며 까만 필름통에 넣어 가셨다.
다음 날. 루카와 카에데는 스물한 장의 사진을 손에 잡았다. 딱딱한 모서리를 손끝으로 지탱하고 하나하나 넘겨 본다. 가장 마지막 장은 환히 웃는 부모님. 어머니와 아버지의 독사진. 1층 집안 풍경. 2층 제 방 구석구석.
열여섯 장을 넘기고 나서야 다섯 장의 14년 전이 등장했다.
일회용 카메라의 정체가 생각났다.
루카와는 사진 다섯 장을 하나씩 책상에 나란히 늘어놓았다.
묵묵히 바라본다.
두고 갔던 여름 조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