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First shot
불면의이쑤신
센도 아키라는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며 열여덟 살을 회상한다. 하늘이 그때만큼 새파랗다는 이유로.
도시의 흡연구역은 이상할 정도로 손바닥만 한 녹지나 공원에 붙어 있다.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단 몇 그루의 나무라도. 인간은 자기들이 토해 낸 더러운 것들을 전부 자연에게 떠넘기고 뻔뻔하게 싱그러움을 꿈꾼다. 언제까지 응석 부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덕분에 센도는 이곳에 나와서 담배를 피울 때마다 공원을 마주한다. 짙어진 나뭇잎 사이사이 아래로는 햇살이 떨어지고 위로는 파란 하늘이 조각나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카나가와의 야외 농구장을 떠올린다. 불가항력이다. 머릿속에 하얀 담배연기가 차올라 스크린을 만들어 주면 낡은 영사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어떤 장면들이 상영된다.
가령 열여덟 살의 어느 여름날.
센도 아키라는 초록색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그 농구장을 찾았다.
약속 상대는 먼저 와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하지만 센도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진 않았다. 루카와 카에데는 농구공과 단둘이 있을 때 절대로 남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센도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카메라를 눈에 가져다 댄다. 가장자리가 약간 왜곡된 플라스틱 화면 안에 네 모서리만 표시된 사각형. 가운데 십자 표시 너머로 루카와가 날아오른다. 센도는 제법 멋진 순간에 셔터를 눌렀지만 카메라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 태엽을 안 감았네. 괜히 머쓱한 기분이 되어 커다란 엄지손가락으로 뾰족뾰족한 부품을 슥슥 돌린다. 벽에 부딪힌 것처럼 반응이 없을 때. 다시 눈에 가져다 댄다.
한 손에 농구공을 든 루카와가 아대에 이마를 문지른다. 하얀 팔꿈치 안쪽에 밀려 올라 간 까만 앞머리. 무성의하게 구겨진 예쁜 얼굴.
찰칵.
찬란한 여름 햇살 아래에선 있으나 마나 한 플래시가 터지는 바람에 루카와가 이쪽을 눈치챘다. 낮인데 왜 플래시가 터지지? 카메라를 잘 모르는 센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루카와가 불만스럽게 공을 튕긴다.
"뭐해."
"이거 플래시 어떻게 끄는지 알아?"
한숨을 푹 쉰다. 아주 한심해 하네. 센도는 씨익 웃었다. 루카와는 건방질 때 제일 귀엽다. 늦은 주제에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어 놓고 딴소리나 하는 센도를 깊은 한숨 한 번으로 용서했는지. 순순히 겨드랑이에 농구공을 끼고 다가와서 고개를 들이민다. 어디 봐.
일회용 카메라를 잡고 있는 센도의 큰 손에 자기 손을 겹친다. 이리저리 기울이면서 번개 모양이 그려진 작은 버튼을 하나 찾아서 ON에서 OFF로 옮긴다. 센도는 자기 손가락에 닿았던 감촉을 의식해야 하는지 잠깐 고민했지만 루카와가 너무 거리낌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오. 이제 된 거야?"
다시 카메라를 들어 올리려다 턱 막힌다. 센도는 루카와의 얼굴을 보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많이 참았지.
구석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루카와의 가방 쪽으로 카메라를 가볍게 던진다. 포물선을 그린 끝에 톡. 안전한 착지. 주머니에 넣었다간 무사하지 못하겠지. 이 슈퍼 루키.. 아니 슈퍼 에이스를 상대하다 보면.
열여덟 살의 센도 아키라는 카나가와 고교 농구계의 명실상부한 일인자였고 열여섯 살의 루카와 카에데는 더 이상 루키가 아님에도 여전히 타도 센도를 외치는 슈퍼 에이스였다. 루카와는 작년에 전국 대회에 나갔고 국가대표로 뽑혔으니 현을 벗어나면 센도보다 훨씬 선수로서 인지도가 높았다.
그럼에도 루카와는 센도를 넘어야 비로소 전국 대회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굴었다. 사실이 아니었다. 팀으로써 쇼호쿠가 넘어야 하는 벽은 여전히 카이난이었다. 타오카 감독이 열심히 스카우트해 온 1학년 센터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농구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하나미치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리바운드와 디펜스에서 확실하게 밀리는 료난에게 스피드와 공격력까지 갖춘 쇼호쿠는 골칫거리였다. 물론 료난의 주장 센도 아키라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현 예선에서 두 팀은 아직 맞붙지 않았다. 료난은 카이난을 이겼고 카이난은 쇼호쿠를 이겼기 때문에 쇼호쿠가 료난을 이기면 계산이 아주 복잡해진다. 승점이 같고 승자승도 애매하다. 그럼 골 득실률을 따져야 한다. 이러면 료난과 쇼호쿠가 카이난보다 유리할 수 있다. 둘 다 원래부터 미친 공격력의 팀인데다 올해는 부쩍 디펜스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 상대를 해 주면 전력 노출인가?
센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주제에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새파란 초여름의 하늘을 등에 지고 날아오르는 루카와의 앞을 가장 단단한 벽이 되리라는 마음먹고 막아설 때는.
사실 아무런 생각이 안 든다. 그저 즐겁다. 농구는 이 정도의 상대가 없으면 결코 이만큼 즐겁지 않다. 센도는 가치 있는 것이 눈앞에 있을 때 즐기자는 주의다. 아껴 놨다 사라지고 후회하면 무슨 소용.
두 사람은 한 마디도 없이 몇 시간이고 맞붙는다. 루카와는 작년보다 체력이 많이 늘었다. 센도만큼은 아니다. 아직은 이기기 때문에 재밌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지 이제는 정말로 모르겠는 아찔함이 작년보다 더 스릴 있다.
각자 가져온 물병과 2L짜리 페트병 하나. 한꺼번에 마시면 뛸 수도 없기 때문에 번갈아 입을 조금씩 축이다가, 그걸 다 먹으면 다른 말없이도 적당히 파하는 분위기가 된다.
쪼그리고 앉아서 가져온 수건에 이마를 부비던 루카와가 물끄러미 무언가를 응시한다. 아까 던져둔 초록색 일회용 카메라. 자칫하면 이대로 루카와 가방에 실려서 보낼 뻔했다. 긴 팔을 쭉 뻗어서 회수. 루카와의 시선이 고양이처럼 따라온다.
"집에서 찾았어. 나도 처음 찍어 봐."
"수학여행 때 안 찍었어?"
"음. 내가 찍어 본 적은 없는데."
흐응. 루카와가 코와 목의 중간에서 지나가는 심드렁한 소리로 대꾸한다. 센도는 루카와의 반응을 곱씹다가 굉장한 사실을 발견한다. 이렇게 쿨하고 무뚝뚝하게 생겨서는 수학여행 때는 일회용 카메라로 친구들이랑 서로 사진도 찍어 준단 말인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의외함이 왠지 참을 수 없이 우습다. 혼자서 쿡쿡 웃었더니 더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 이 표정을 찍어 놓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렸더니 손을 뻗어서 가렸다. 그래. 센도는 순순히 카메라를 내려놨다. 싫으면 안 찍을게. 그냥 고양이 같은 반응이 귀여웠을 뿐이다.
바람이 지나간다. 건조하고 청명하다. 적당히 땀을 식혀 준다. 이 동네에는 바다를 건너 온 바람이 분다. 에어컨 같은 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잠시 눈을 감는다. 바람을 즐긴다. 서로가 달궈 놓아 뜨거워진 덕분에 더욱 시원하다.
지나가는 바람에 루카와의 여상한 목소리가 실렸다.
"다음 주는 못 와."
"월요일? 아니면 일요일?"
"둘 다."
매주 월요일은 쇼호쿠도 료난도 부 활동이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학교가 끝나면 바로 야외 농구장으로 왔다. 매주 일요일도 아침 연습으로 끝이다. 오후에는 시합이 없으면 연습도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점심을 먹기 전이나 후에 야외 농구장에서 만났다. 언제나 루카와가 먼저 와 있었다. 가끔 못 올 때도 있었고. 센도가 늦잠을 자 버릴 때도 있었지만.
루카와가 미리 일정을 얘기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센도는 무심코 물었다.
"왜?"
루카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월요일은 진로 상담."
두껍고 빽빽한 속눈썹이 4월의 청보리밭처럼 부드럽게 물결친다.
"일요일은... 면담을 해."
루카와가 눈을 뜬다. 조각 난 햇살이 통과하는 검은 눈동자가 센도를 바라본다.
"미국에서 온 코치하고."
바다를 건너 온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루카와 카에데는 사진 한 장을 들고 열여섯 살 때 자주 가던 야외 농구장으로 향했다. 하늘이 그때만큼 새파랗다는 이유로.
혼자 간 건 아니다. 조카들과 함께다. 루카와도 볼 겸 아이들 방학도 보낼 겸, 일주일 간 카나가와 본가에서 묵게 된 첫째 누나는 오랜만의 친정 방문에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다. 형부는 일하느라 못 왔다. 누나가 숙면하는 잠깐 동안 발생한 부모의 부재는 카에데 삼촌이 책임지기로 했다.
휑한 공터와 야외 농구장 몇 개가 연이어 있던 공원에 무려 어린이용 야외 풀장이 설치된 지도 몇 년이 지났다고 한다. 바다가 코앞인데 why... 루카와의 의문은 첫째 누나가 잠들기 전에 처치해 줬다. 넌 애를 키워 본 적은 없고 애였던 적만 있어서 몰라. 바닷물과 민물은 씻기는 난이도가 천지차이다. 모래가 있는지 없는지도. 루카와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바다 말고 풀장 갈게. 어차피 야외 농구장에 가고 싶었던 차였다.
루카와가 미국에 있을 때 태어난 조카들은 각각 일곱 살 여자아이와 네 살 남자아이다. 둘 다 에너지가 엄청나다. 얼굴은 누나와 형부를 반반씩 섞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신기한 구석이 루카와를 닮았다.
첫째는 재채기 소리가 루카와랑 똑같다. 아무런 전조 없이 고요하게 있다가 온몸을 움츠리면서 츄! 또는 쳇! 같은 바람 새는 소리를 낸다. 둘째는 윗입술 정중앙이 유달리 톡 튀어나온 게 루카와랑 똑같다. 양쪽 가족을 통틀어 루카와만 갖고 있는 특징인데. 유전자는 신비하다. 아마도 자신의 아이를 낳을 일이 없는 루카와 입장에선 가장 분신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어쨌든 유전적으로는 그렇다.
아이들이 훨씬 작았을 때는 주로 사진이나 영상으로 봤다. 작년까진 1년에 한 번 겨우 만났다. 그래도 일본에 오면 꼭 얼굴을 봤다. 저만의 기억을 가질 만큼의 나이가 되고 나서는 둘 다 절대로 루카와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번쩍 들어서 빙빙 돌려준 덕분이겠지. 카에데 삼촌은 놀이 기구 가득한 유원지만큼이나 사랑받았다.
일본에 사는 아이들은 루카와보다 큰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 말본새가 똑 부러진 첫째 아이는 루카와가 왔다 가면 한동안 제법 큰 사람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 키가 크네. 그렇지만 카에데 삼촌보다는 안 크네.
첫째는 일곱 살치고 키가 아주 크다. 누구나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생각한다. 죽순처럼 쑥쑥 자란다. 특히 종아리가 길어서 모델 같다. 루카와는 내심 기대를 했다. 실내용 농구대랑 작은 농구공도 사줬다. 누나는 진부하고도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라며 쯧쯧 혀를 찼지만. 강요는 절대 아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었고 루카와는 그냥 5부 팬츠에 젖어도 상관없는 짧은 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짐이 많아서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갈아입을 옷. 커다란 비치타월 세 개. 튜브와 비치볼. 혹시 몰라서 챙긴 어른용 농구공과 아이용 농구공. 물놀이에 질릴 수도 있으니까. 루카와는 어릴 때부터 포기에 서툴렀다. 강요는 절대 아니다. 아마도.
루카와는 운전이 서투르다. 미국에서 면허를 따는 바람에 좌우가 달라 더 그렇다. 다행히 주말 낮에 카나가와의 도로는 한적한 편이다. 천천히 바다가 보이는 수변공원으로 나아간다. 누나의 차는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쩌렁쩌렁 동요가 나온다. 아이들은 지지 않고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부모님 없이 삼촌하고만 떠나는 나들이에 들뜬 모양이다. 루카와는 도로와 운전에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애썼다.
예전에는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지금보다 훨씬 빠른 스피드로. 뺨에 스치는 바람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아무런 보호장구도 없이. 핸들을 잡은 채 정신이 반쯤 다른 데로 떠나도 두려움이 없었다. 너무 익숙한 풍경이나 공기나 냄새 같은 것들은 최소한의 경계심조차 무디게 한다.
긴장감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을 때 시작된다. 대체로 루카와의 인생에서는 센도 아키라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는 어디서든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런 종류의 참을 수 없는 긴장을 부여하는 존재였다.
가령 열여섯 살의 어느 여름날.
미국에 가는 건 루카와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마이클 조던이 되려고 시작했던 농구였다. 방법이 없어도 만들어서 갈 생각이었다. 농구를 더 잘하고 싶었다. 게다가 갈 방법이 있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선례도 있고 경쟁자도 있다. 가장 잘 할 줄 아는 종류의 경쟁이었다. 농구로는 져 본 적이 없었다.
딱 한 명한테만 빼고.
결국 그 녀석이...
루카와는 이 문장을 어떻게 마쳐야 하는지 잘 모른다.
당연하고 쉬울 줄 알았던 길을 가로막았나?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부숴버리려고 찾아갔다. 벽을 만났을 때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힘껏 뛰어올라 훌쩍 넘으려고 했다.
그렇게 만만한 벽이 아니었다. 애초에 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에 그 녀석은 딛고 점프하는 발판이나 밟고 올라가는 계단처럼...
센도 아키라는 엉터리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도움닫기였다.
거칠 것이 없었던 십 대 시절의 농구 인생. 센도의 존재 덕분에 예측할 수 없는 전개의 연속이었다. 상상도 못했던 숙명 같은 장애물이 생기고. 장애물인 줄 알았더니 잡고 올라갈 밧줄이었고.
어쨌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루카와는 미국으로 농구를 하러 가게 됐다. 그걸 센도에게 전달하는 일은... 역시 긴장됐다.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랑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센도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했다. 공치사나 감사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별처럼 다가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동그랗게 커진 검은 눈동자가 가끔 떠오른다. 파란 하늘과 청량한 햇살이 반사되던. 예쁘게 쌍꺼풀진 커다란 눈. 결 좋고 짙은 눈썹이 그리던 힘없는 곡선이나. 살짝 벌어져 있던 입술 끝이나. 초여름의 공기만큼 맑은 침묵을 머금고.
너는 왜 그런 표정이었을까. 나는 왜 그런 심정이었을까. 그때도 지금도 잘 알 수 없다.
누나가 옳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날씨 좋은 7월의 무자비한 햇살 아래 관광객들은 바다를 찾고 동네 사람들은 수영장을 찾기로 한 모양이다. 공원에 가까워질수록 전례 없이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한 아이들의 칭얼거림 속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주차장을 찾았다. 이미 자동차로 빽빽했다. 예전에도 이렇게 주차장이 컸던가?
차에서 내린 루카와는 농구장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어떤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저쪽에 철망과 나무의 배치가 너무 익숙한데?
얼른 주머니에서 꺼낸 사진을 들어 올려 눈앞의 풍경과 겹쳐 본다.
이 주차장이다. 예전에... 농구장이었던 곳.
야외 풀장을 만들고 폭증한 주차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였을까. 야외 농구장 전체가 주차장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풍경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폭력적인 재개발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 이 동네 토박이라 해도 뭐가 크게 바뀌었다 느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철망 울타리도 나무들도 그 너머로 보이는 파란 바다도 그대로다. 허름한 농구 골대 몇 개만 사라졌을 뿐. 거기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열여섯 살 같은 걸 넣어 둔 사람은 많지 않겠지...
"카에데 삼촌! 빨리!"
아이들은 제 몫의 튜브와 물놀이 도구를 야무지게 챙겨서 루카와를 재촉한다.
"미안해. 삼촌 잠깐만."
루카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사진을 넣지 않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일본에는 아직 발매되지도 않은 최신 스마트폰은 미국 스폰서 회사에서 준 선물이다.
사진을 수평으로 들어 올리면서 휴대폰을 코앞에 바짝 붙인다. 네모난 화면 속에 14년 전의 풍경과 눈앞의 풍경이 겹친다.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 셔터 소리가 파묻힌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