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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4.03.11

히아신스 1

불면의이쑤신

몰락한 번화가는 금방 어둠에 먹힌다. 싸구려 노래방과 풍속점과 낡은 러브호텔과 수상한 사무소들과 유행 지난 무슨 무슨 풍 알 수 없는 선술집들. 임대료를 내지 못해 야반도주한 가게가 하도 많아서 건물 이 층 창문은 거의 깨져있다. 망한 상가 거리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 집값 싸기로 유명한 근처 지역에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가난뱅이들만 해도 여기까지 올 일은 없다. 그들은 어린 자녀에게 낮에도 저쪽 길은 걷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 맞는 말이다. 낮이나 밤이나 이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중 제대로 된 놈들은 별로 없었다. 셋 중 하나였다. 취했거나, 술 팔아서 취하게 만들거나, 취한 놈들 등쳐 먹거나.

골목 안쪽 풍경은 그렇다. 두 블럭만 나가도 전철역을 중심으로 놀랍도록 밝은 세상. 그리로 가는 길에 전철선 따라 목조 상가들이 길게 늘어선 조촐한 거리가 있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가르는 그 자그마한 가게들은 대체로 라멘집, 만두집, 오뎅집 같은 야식메뉴 또는 나폴리탄 따위의 경양식을 파는 겸손한 레스토랑이었고, 그 사이에 절대로 없을 것 같은 꽃집이 딱 하나 있었다.

아키라 플라워.

시끄러운 전철 소리도 꽃잎 한 장 흔들지 못했다.


센도 아키라는 6년째 운영 중인 꽃가게 앞에 세워 둔 배달용 핑크 스쿠터의 안장에 걸터앉아있었다. 센도는 키가 무지막지하게 커서 스쿠터 안장에 올라타고도 발이 땅에 충분히 닿아 안정적인 자세였다. 바로 옆의 만두집에서 따끈따끈한 연기가 나온다. 익숙한 냄새. 슬슬 전철역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퇴근길 인파 중 몇몇이 냄새에 이끌려 뒤돌아본다.

후아암. 늘어지게 하품이 나온다. 조도가 눈에 띄게 낮아진 저녁 여섯 시. 남들에겐 잘 시간이 아니지만 센도에겐 달랐다. 딱히 잠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숏 슬리퍼라면 모를까. 센도의 취침 시간은 밤 8시나 9시. 기상 시간은 언제나 새벽 1시였다. 새벽 2시까지 꽃시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뒤늦게 가는 꽃시장은 안 가느니만 못했다. 히트 상품을 위주로 한 물량 공세 따위는 겪어본 적도 없고, 언제 누가 무엇을 찾을지 몰라 다품종 소량 구비밖에 방법이 없는 입장이라 더더욱. 차라리 사입 후에 대충 컨디셔닝도 없이 물만 올려놓고 아침잠을 자면 잤지.

예약 손님도, 그냥 손님도 거의 없어 생생한 꽃 많이 남았는데 굳이 가야 할까? 싶을 때도 센도는 절대 새벽 꽃시장 순회를 거르지 않았다. 센도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다. 한 번, 두 번 게으름을 부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었다. 그럴 거면 그냥 오늘만 하고 접지 왜. 손님 없단 핑계로 장사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 1년도 안 돼서 사라지는 이웃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이 작은 꽃집이 이런 구석탱이에서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센도가 어떤 부분에서만큼은 손님이 있든 없든, 보는 눈이 있든 없든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젠 그냥 루틴이었다. 안 가면 오히려 잠 안 잔 것보다 더 불안했다.

무엇보다 지금 시절 가장 예쁜 꽃은 거기 다 있다.

센도는 꽃이 좋았다. 그래서 부모가 소시민으로서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모아 놓은 유산을 남기고 죽었을 때, 한 푼도 남김없이 꽃 배우는 데 썼고 꽃집 차리는 데 썼다. 애석하게도 꽃 공부는 돈이 많이 들었다. 학비, 생활비 벌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투잡, 쓰리잡 알바를 뛰어가며 그 와중에 저축한 돈을 합쳐도 지금보다 더 좋은 위치는 무리였다.

센도는 1톤 트럭 하나 빌려 중고 시장을 돌면서 필요한 집기들을 구해 와서 꽃집 내부 인테리어를 혼자서 했다. 간판도 LED선 사 와서 인터넷 보고 혼자서 만들었다. 깔끔하게 자르는 게 서툴러서 어쩔 수 없이 필기체가 된 [Akira Flower] 간판을 무사히 걸고 물러선 센도는 가게 앞에서 눈을 한 번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반짝이는 아키라 플라워. 이제 꽃으로만 채울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공간.

세상의 더 많은 공간에 꽃을 보내는 거야. 한 송이씩이라도.

그렇지만 오늘은 정말로 손님이 없었다. 한 송이도... 못 보낸 것 같은데. 센도는 머쓱하게 턱 아래를 긁적였다. 졸업식도 입학식도 한바탕 끝났고 어머니의 날은 두 달 남았다. 이런 비수기에는 전철역에서 데이트 약속을 기다리는 젊은 연인이나 지치고 힘든 퇴근길에 자신을 위해 작은 위로라도 손에 쥐고 싶은 가엾은 직장인, 그것도 아니면 거나하게 취해서 그 와중에 부인 잔소리를 조금이나마 덜어 볼 잔머리를 굴리는 아저씨 정도가 최대한의 잠재 고객이었다.

그마저도 월요일이라 아직 직장인이 센치해지려면 멀었고 술 취한 아저씨는 최소 9시 근처에 출몰한다. 평일 센도의 잠재 고객은 대체로 목요일, 금요일에 몰려있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가게 밖에 진열해 둔 꽃다발을 두리번거리는 손님들보다는 기념일이나 생일 예약 전화가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닫아도 된다. 하지만 센도는 어차피 가게로 출근할 거면 유리문을 활짝 열어두는 게 좋았다. 날씨가 좋으니까. 슬슬 따스해지는 3월 중순. 수선화가 활짝 피고 튤립이 수확되고 장미가 통통해진다. 이때 봉오리를 맺은 작약이 4월이 되면 솜사탕처럼 몽실몽실 피어올라 꽃시장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야말로 대가리에 꽃이 가득 차 멍때리고 있던 센도가 슬슬 몸을 일으키며 파스텔톤 앞치마를 탁탁 털었다. 문 앞에 내놓은 양동이로 다가간다. 햇빛 보여준다고 잠시 내놓은 새빨간 푸에고 장미가 가득하다. 물이 담긴 채로 가볍게 들어 올린다. 아직 컨디셔닝 전이라 줄기가 길고 가시가 그대로다. 발렌타인 때 제법 잘 팔려서 신나게 추가 매입했는데 왠지 화이트데이 때는 그만큼 안 팔릴 것 같다. 그래도 화형이 크고 통통한 것만 정성껏 골라 사 와서 여차하면 이대로 프리저브드해도 된다. 누가 장미꽃 100송이 한 다발만 시켜주면 좋겠당. 하루에 열 다발도 만들 수 있는 힘과 체력을 갖춘 센도가 속 편한 생각이나 하고 있던 그때.

공중에서 까만 것이 날아와 장미 속에 처박혔다.

"으아악!"

와장창.

양철 양동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안에 있던 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센도는 얼떨결에 안고 있던 장미를 쿠션 삼아 무언가를 품속에 받아 안았다.

사람이었다.

흩날리고 뭉개진 새빨간 푸에고 장미의 큼지막한 꽃잎 속에서.

새하얗고 새까만 미남이 찡그렸던 눈을 서서히 떴다.

아랫속눈썹이 엄청나게 인상적이었다.

벙찐 센도의 턱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의 뺨 위에 톡. 떨어졌다. 장미꽃잎 위에 뿌린 이슬처럼 튀어 올랐다.

미남은 감상할 틈을 오래 주지 않고 센도의 품에서 벌떡 일어났다. 까만 수트를 쫙 빼입은 다리가 엄청 길었다. 센도는 축축하게 젖은 채로 주저앉아 그 다리가 다른 장정에게 날아가 꽂히는 걸 슬로우모션처럼 감상했다. 빠르다. 그런데 느리게 보인다. 내가 미친 걸까?

미남에게 발차기를 정통으로 맞은 왜소한 남자가 헐렁한 재킷을 요란하게 벗어 던졌다. 촌스러운 셔츠와 양팔을 가득 채운 문신!

센도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아키라 플라워 앞에서 야쿠자들의 패싸움...이 아니라 5대 1 린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안쪽'의 싸움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일은 드물다. 센도는 혼비백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리를 지나다니던 퇴근 인파는 어느새 뚝 끊겨 고요했다. 멀리 전철역에서부터 소란을 간파하고 아예 이쪽은 얼씬도 않는 것이다. 이어폰 꽂고 걷느라 길 잘못 들었던 몇몇 젊은이들만 화들짝 놀라 횡단보도를 건너 안전거리를 확보한 다음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 잠깐 촬영을 하다 다시 갈 길 재촉했다.

찍을 만했다. 센도는 넋 나간 와중에도 어쩔 수 없이 감탄했다. 액션 영화가 따로 없었다. 주인공이 훤칠한 미남이어서 더 그랬다. 기다란 팔다리 끝에 달린 단단한 주먹과 구둣발로 패고, 차고, 밟고, 던진다?

"꺄아악!"

미남이 냅다 내던진 사람이 센도 쪽으로 날아왔다. 센도는 본능적으로 배구공 토스하듯이 각도를 바꿔 날려버렸다. 저도 모르게 옆으로 치웠는데 그만 각도가 좋지 못했다.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날아 온 놈이 가게 앞 선반에 늘어놓은 꽃다발을 와르르 무너뜨린 것이다. 으아악 망했다. 센도는 허둥지둥 꽃다발을 주웠다. 조심조심 최대한 상하지 않게. 이 와중에도 크고 비싼 것부터 가게 안으로 재빨리 옮겨 놓는다.

아직 다 못 치웠는데 설상가상으로 쓰러졌던 남성이 비틀비틀 일어나다 비닐로 된 꽃다발을 밟고 쭉 미끄러졌다. 아스팔트에 무자비하게 내동댕이쳐진 뒤통수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센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듣기만 해도 아픈 소리였다. 상상하기도 싫었다. 몸서리치며 시선을 돌렸다.

정면에서 미남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은 여기 박은 채로 쳐다보지도 않고 달려드는 놈들을 피하고 팬다. 무서워. 센도가 진심으로 겁먹는 동안 미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호오. 퍽퍽 두들겨 패는 와중에 그런 소리를 낸다. 뭔가 유용한 정보를 얻은 동화 속의 여우처럼...

"헤이, 하나 더 간다."

"엥? 어엉? 꺄아아악!!!"

미남이 이제는 대놓고 신호를 하고 인간을 던진다. 제일 떡대가 좋은 양반인데 달려드는 힘을 이용해서 그대로 센도한테 넘겼다. 파울볼이 더 속도가 붙는 것처럼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길래 에라 모르겠다, 미식축구 태클하듯 어깨와 코어에 힘을 빡 넣고 허리춤에 퍽 부딪혔다. 떡대는 깩 소리도 못 내고 벌러덩 기절했다. 내장이 파열한 건 아니겠지? 센도는 그저 두려웠다. 이건 정당방위... 맞지?

이미 난장판이 된 골목 어귀에 얼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면 양옆 가게에서 식사하던 손님들은 어머어머 싸움이다 작은 창문에 달라붙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 좀 나와서 도와달라구요. 센도는 울상지었다.

기어이 다섯 명이 모두 더러운 아스팔트에 뺨을 대고 눕고 나서야 미남 야쿠자는... 아니야. 경찰일지도 몰라. 센도는 이 와중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직은 직업을 알 수 없는, 그러나 왠지 신축성 겁나 좋은 까만 수트를 입고 까만 가죽장갑까지 정중하게 싸매고 사람을 다섯이나 두들겨 팬 미남은, 지독한 무표정으로 바지에 묻은 발자국과 장미 이파리 따위를 툭툭 털었다. 그러고 나서 오른손에 낀 가죽장갑의 벨크로를 왼손으로 찍 뜯으면서 엄지부터 손가락 끝부분을 하나하나 앞니 끝으로 물어 당겼다.

마지막으로 장갑의 새끼손가락 끝을 물고 쭉 당기자 핏기 없고 큼직한 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장갑 사이에 끼어 있던 장미 꽃잎 하나가.

팔랑.

아스팔트로 떨어졌다.

찰나 동안 두 사람은 동시에 그 꽃잎을 쳐다보았다.

먼저 시선을 돌린 건 직업 미상의 미남이었다. 그는 장갑 벗은 손으로 양복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청소부 좀 불러. 아닌데. 갑자기 덮치던데. 몰라. 지금부터 봐야지. 보고는 나중에."

음... 경찰은 아닌 것 같다. 센도는 속으로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안쪽'에 얼마나 많은 야쿠자와 폭력 조직과 그 아래에 빌붙은 불량배, 양아치, 시정잡배들의 파벌이며 친목 다짐이 있는지 센도로서는 알 바 아니었고 모르는 게 약이었다.

그런 놈들 싸움에 센도는 얼떨결에 손을 대고 만 것이다. 살짝 손만 댔으면 다행인데 아주 아스팔트에 메다꽂아버렸다. 그것도 두 명이나.

이웃 식당 안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이제 슬슬 문을 열고 나와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간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동네 주민들다운 훌륭한 상황 판단이 돋보였다. 돈 벌어서 빨리 떠야지. 이놈의 동네.

미남 '야쿠자'가 부른 '청소부'인지 뭔지는 그냥 동료들이었나보다. 낡은 봉고차 한 대가 와서 떡대들을 우르르 내리더니 트렁크에 시체처럼 널브러진 다섯 명의 몸뚱이를 다 싣고 가 버렸다. 모두 가 버린 골목 어귀에서 여전히 오른손 장갑만 벗은 새까만 미남은 안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붙였다. 어둠 속 새까만 전신 중에 그 오른손만 희게 빛났다. 오히려 그 손만 장갑을 낀 것 같았다.

가게 앞 풍경이 평소와 비슷하게 돌아오자 센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주위의 참사를 찬찬히 둘러본다. 내 꽃들!

줍는다고 주웠지만 구해내지 못했던 꽃다발이 여기저기 짓이겨져 있었다. 하나하나 센도가 만든 것들이다. 센도의 가슴도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컨디셔닝도 하기 전에 햇빛 본다고 꺼내 놨던 양동이 속의 생화도 여럿 상했다. 특히 마지막 남은 프리지아 다발과 어제 사 온 오렌지 튤립이 아팠다.

센도는 부아가 치밀었다. 아스팔트 한가운데서 맛있게도 담배를 빨고 있는 미남 야쿠자의 등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기요!"

미남은 깜짝 놀라서 담배를 떨어뜨렸다. 불만 가득한 얼굴이 슥 돌아본다. 오른손으로는 두 번째 담배를 꺼내 물면서. 그 자연스러운 동작이 그림 같아서, 센도는 자기가 야쿠자에게 시비를 털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조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거 어떡하실 거예요?"

센도의 긴 팔이 참상을 척 가리킨다. 담뱃불을 붙인 미남 야쿠자가 세 발자국 가까이 온다. 센도는 순간 때리러 오는 줄 알고 흠칫 놀랐다. 하지만 야쿠자는 조용히 센도가 가리키는 대로 흘끗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더니 다시 오른손을 가슴팍에 넣고 묵직한 장지갑을 꺼냈다. 이 사이에 문 담배를 위아래로 꺼떡이면서 짤막하게 대답하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어. 물어줄게. 얼마야."

가까이서 쳐다본 야쿠자의 하얀 뺨에 가늘고 빨간 실금이 있었다. 푸에고 장미 가시가 스치고 간 흔적이었다.

"얼마냐고."

잠깐 넋을 놓고 있던 센도가 흠칫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근데 이게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시큰둥하게 이쪽을 노려보는 건 저보다 결코 연상은 아닐 듯한 앳된 얼굴. 거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싸가지 밥 말아먹은 말투가 어지간해선 하하 웃는 센도의 신경을 거슬렀다.

그 와중에 장사꾼의 재빠른 뇌세포는 바지런히 상황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따져 봐야 '안쪽'의 인간에게 이깟 꽃은 몇 푼. 그보다 센도가 가장 큰 손해를 본 건.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고."

센도는 앞머리를 바짝 올려 드러난 이마를 오른손바닥에 문대며 왼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저절로 짝다리가 나오고 같이 말이 짧아진다. 가까이서 본 미남 야쿠자는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덩치로 따지자면 센도가 위다. 물론 아까 그 발차기를 맞으면 그렇지 않겠지만...

"지금 그쪽 때문에 나도 두 명이나... 좀... 정당방어를 했거든요?"

미남 야쿠자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센도는 아랑곳 않고 떠들었다. 숫제 협박조였다. 누가 야쿠자인지 알 수 없었다.

"가게에 분풀이하러 오면 어떡할 거야? 나한테 해코지하면?"

문제의 본질은 거기 있었다. 센도는 야쿠자들 싸움판에 휘말렸다. 정당방위 어쩌고는 씨알도 안 먹힐 놈들에게.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요."

오직 이 얼굴이 지나치게 빼어난 야쿠자 때문에!

미남 야쿠자는 조용히 센도를 쳐다봤다. 박력 있는 미모가 정면으로 부딪치자 센도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쫄았다. 그러나 최대한 안 그런 척 눈을 부릅떴다. 긴장까지 숨길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있는 힘껏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센도를 빤히 올려다보던 미남 야쿠자가 그대로 담배 연기를 후 뱉었다. 센도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정통으로 코에 담배연기가 들어가 어쩔 수 없이 모양 빠지는 기침이 연속으로 터졌다. 망했다.

작정하고 덤빈 기싸움에서 쉽게 밀린 센도는 얼얼한 코를 틀어쥐었다. 이제 그냥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나. 연속된 기침만은 아닌 이유로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어. 책임질게."

"엥?"

순순한 대답에 센도는 반대로 눈이 동그래졌다. 뭘 어떻게 책임진다는 거지? 혹시... 꽃집을 옮겨주는 걸까? 저녁 내내 지나친 스트레스에 혹사당한 센도의 뇌세포가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리기 시작했다. 합의금이라 치고. 야쿠자들은 원래 부동산에 강하니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치안이 좋은 곳으로...

그러나 미남 야쿠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켜주면 되는 거지?"

"예?"

기싸움도 잊고 자기도 모르게 다시 존대를 뱉은 센도 앞에서 미남 야쿠자는 담배를 툭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센도의 운동화를 피해 간 꽁초를 콱 밟고 짓이긴다. 그 바람에 코앞까지 얼굴이 들이대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센도의 잘 뻗은 코 아래에 바로 다가온 아랫속눈썹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신변 보호. 제공한다."

"..."

센도는 귀를 의심했다. 진심은 아니겠지. 애석하게도 미남 야쿠자는 진심인 것 같았다. 아키라 플라워의 간판을 슬쩍 올려다보면서 성실하게 묻는다.

"몇 시에 문 열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기계적으로 센도의 입을 빠져나갔다.

"새벽 두 시에 꽃시장 가는데요."

"..."

이번엔 미남 야쿠자가 귀가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왼손 손목을 꺾어 척 봐도 꽤 비싼 메탈시계를 툭 쳐다본다. 시계 부럽다. 한 8시쯤 됐겠지. 체감은 자정이다. 미남 야쿠자의 표정은 점점 험악해졌다. 그제야 아까까진 별생각 없는 심드렁한 무표정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센도는 신변 보호는커녕 벌써부터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

미남 야쿠자가 험악한 표정 그대로 한숨을 푹 내쉰다. 됐으니까 그냥 조용히 꺼져 주시고 다시는 제 눈앞에 나타나지 말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사옵나이다, 라는 문장을 센도가 채 꺼내기도 전에 선수를 친다.

"그럼 두 시에 이 앞에서."

저벅저벅, 긴 다리가 걸어간다. 금방 '안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센도는 꿈을 꾼 것 같았다. 긴 악몽을. 눈을 감고 관자놀이 근처를 손바닥으로 세 번 빠르게 때려본다. 제발 이게 꿈이라면 지금 깨기를.

눈을 떴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어둑한 골목도. 엉망이 된 꽃다발도. 아스팔트에 짓이겨진 새빨간 푸에고 장미 꽃잎도.

새하얀 뺨을 가르는 장미 가시의 빨간 실금도.

손에 잡힐 것처럼 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