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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3.06.01

은하수 다방 上

불면의이쑤신

나 뭔가 좀 잘못 살고 있나 싶을 때 찾아가는 공간이 있다. 집에서 슬리퍼 신고 5분만 걸으면 갈 수 있는 작은 카페다. 생긴 지 얼마 안 됐다. 나 이직할 때쯤이니까 6개월 됐나? 번화가에서 한참 먼 주택가 빌라촌. 주변에 가게라곤 편의점 약국 슈퍼 빨래방 뭐 그런 것뿐인데. 카페는 여기가 유일하다. 누가 여기까지 와서 커피를 마실까? 나처럼 일에 지쳐 집에서 커피 내릴 힘도 없는 불쌍한 영혼이 아니고서야.

목재. 가죽. 식물. 클래식과 빈티지를 제대로 보여 주는 세 가지 요소가 아늑하게 어우러진 인테리어.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 듯한 깔끔한 실내. 노트북 가져가서 작업하기도 좋지만 난 웬만하면 여기서는 일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싫다. 제발. 인생에 일이 없는 성역 하나쯤 가져도 되잖아. 그놈의 재택 때문에 난 이제 일이 밀리면 집에서도 마냥 맘이 편하지 못한 임노동의 충실한 노예가 되었단 말이다.

보통은 아무리 예쁜 카페에 가도 책 한 권 안 들고 혼자 갔다가는 집에 있을 때나 다름없이 그저 핸드폰 액정만 들여다보게 마련이지만... 여긴 좀 다르다. 아주 특별한 볼 거리가 있다.

바로 카페 사장 얼굴.

얼굴까지 가기도 전에 일단 피지컬이 굉장하다. 180은 당연히 넘을 거 같고 잘하면 190? 평범한 문을 지나갈 때 세로로는 물론 가로로도 아슬아슬해 보인다. 어깨가 태평양이라서. 왜 단정하게 옷을 입고 있는데 근육의 윤곽이 이토록 또렷한지. 거 참 의견이 강한 몸매일세. 팔다리도 엄청 길다. 목까지 두껍고 길어. 뭐야 대체. 그림으로 그린 것 같다. 이 정도면 어지간히 못생겨도 이 나라 남성 외모 순위 탑 10%에는 들어갈 것 같은데.

하늘은 불공평해서 최고로 빛나는 하이라이트는 얼굴이었다. 남자치곤 예쁘게 접히는 굵은 쌍꺼풀과 긴 속눈썹. 특히 언더 래시가 길다. 처진 눈꼬리가 선한 인상을 만드는데 그 위에 드리워진 눈썹은 야성적일 정도로 짙고 숱이 많다. 티존이 광배근만큼이나 주장이 또렷해서 처음에는 수술도 의심해 봤는데 그러기엔 너무 전반적인 이목구비 비율과 라인이 자연스럽다. 만약 저게 수술이면 우리나라 남성 80퍼는 그 병원 찾을 것 같다. 저 티존 나도 달라고. 서비스직답게 항상 웃고 있는데 사람 없으면 창밖을 무표정으로 멍 때리고 쳐다본다. 그 옆모습에 툭 불거진 눈썹 뼈가 또 그림으로 그린 것 같다.

나는 웬만하면 남자 외모 칭찬을 안 하는 사람인데. 여기 사장은 그냥... 움직이는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흡족하다. 그래 내가 드디어 휴가를 내서 루브르에 왔더니 박물관이 살아있고 다비드상이 움직이는구나. 번아웃의 대가로 안복이 내렸구나. 그런 마음으로 커피 맛보면서 사장 얼굴 구경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남성 평균 외모는 해가 갈수록 하향평준화되고 있어 더 이상 이 얼굴의 50%도 TV에서조차 구경이 어렵다.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자. 목격자로서 소명을 다하자. 다 멸종하기 전에는 이런 미남도 이 땅에 존재했었노라고...

좀 부담스럽게 잘생겨서 데면데면 커피나 마시다가 사라지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사장은 성격마저 좋았다. 왜 아니겠어. 저렇게 생겼는데.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방문하니까 금방 단골 취급을 해 주고 주말에 사람 없으면 서비스로 쿠키 같은 걸 준다. 눈 마주치면 말도 건다. 나는 딱히 조각상과 대화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빤히 쳐다본 걸 들켰나 민망해서 자연스럽게 스몰 토크를 했다. 아직까지 빻았거나 쎄한 말을 한 적은 없다.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려니 싶을 정도는 된다. 어쨌든 잘생겼고 커피가 맛있다. 그럼 장땡이지.


그건 아마 3월인가 4월이었다. 작은 카페에서 나는 모종의 사건을 목격했다. 찻잔 속 태풍처럼 고요한 소용돌이를.

끔찍한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 근무를 보상하는 대휴를 쓴 날. 오후 한 시까지 처자다가 겨우 깨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물에 빠진 사람이 수면을 향해 돌진하듯이 아지트나 다름없는 카페로 줄행랑쳤다. 이 미친 회사 진짜 이직해야 되나. 아니야 들어오기 얼마나 빡셌는데. 시발 일 년은 버텨야지. 시발. 커피 말려.

딸랑, 작은 종소리를 내면서 문을 열면 미남이 웃으면서 인사해 준다. 오. 이 시간에 웬일로. 맨날 먹던 그거? 미남은 목소리도 좋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맨날 앉는 자리에 철푸덕 앉았다.

드르르륵 커피 빈을 가는 소리. 사장은 여유가 있을 땐 핸드 밀을 쓴다. 진짜 한량이다. 빠릿빠릿하게 내려야 한 잔이라도 더 팔지. 좋아서 하는 일은 달라도 달라.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좋은 향기가 퍼진다.

내 커피를 내리는 사장 너머 햇살이 내리쬐는 전면 유리창.

그 너머 골목길을 지나가던 한 청년이 걸음을 뚝 멈춰 섰다.

나도 모르게 사장이 아니고 그를 쳐다보게 된다. 근처에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체대 이름이 등에 적힌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아니 근데 이 청년은 얼굴이 또 왜 이래? 무심코 눈을 감았다가 다시 쳐다보게 된다. 사장에게 밀리지 않는 키. 운동해서 그렇겠지? 다리가 왜 저렇게 길어? 얼굴은 또 뭐지? 사장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계열의 꽃미남이다. 날카로운데 동시에 앳되어 보인다는 모순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얼굴. 멀리서 봐도 새하얗고 도자기 같은 뺨. 조그마한 입술. 오똑하고 날렵한 콧날과 부시시한 앞머리가 채 가리지 못해 언더 래시가 도드라진 새까만 눈동자. 약간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사장을 보고 있다.

내 커피를 내리던 사장이 시선을 눈치채고 그를 돌아본다.

눈이 마주쳤다.

그건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다. 살면서 본 최고의 미남 두 명이 서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가만히 마주 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한참 동안.

슬슬 내 커피가 걱정될 때까지... 저기요... 커피 식는 거 아니에요?

내 위치에선 사장의 얼굴이 안 보였다. 뒤통수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청년의 표정만 살폈다. 혹시나 볼 만한 드라마가 시작된다면 커피가 좀 맛없게 내려져도 봐 줄 요량이었다.

못 박힌 듯 사장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청년은...

놀랍게도 조금 얼굴이 붉어지더니...

아래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딸랑. 작은 종소리를 울리면서 문을 밀고 들어왔다.

헐. 지금 같은 실내 공간 안에 미남 농도 너무 높은데. 약간 현실감이 없어서 부담스럽다. 나는 부자연스럽지 않은 범위에서 최대한 몸을 작게 움츠려서 구석에 처박혔다.

청년은 바를 사이에 두고 사장을 마주했다. 이제야 옆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사장은 상당히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약간 뺨이 붉은 것 같기도 하고. 뭐야. 수상해. 꼭 첫눈에 반한 것 같은 얼굴로 그제야 더듬더듬 어서 오세요 따위의 인사를 하려는 것 같은데.

아랑곳 않고 등 뒤의 가방에서 뭔가 큼지막한 걸 꺼낸 청년이 그걸 사장에게 불쑥 내밀었다. 농구공이었다.

"윤대협 선수."

앳된 목소리는 끝이 살짝 떨렸다.

"사인해 주세요."

내 커피는 차갑게 식어갔다.


한참 뒤에야 처음부터 새로 내린 커피를 가져온 사장... 윤대협 선수는 내 앞자리에 멋대로 앉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뭡니까. 커피 맛 떨어지게."

"미안..."

미안하다면서 또 한숨.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 이제야 제 나이 같다. 사장은 아마도 30대일 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진짜였다. 윤대협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았는데 검색해 보니 왕년에 잘나가던 농구선수였다. 미국 빅 리그에서도 활약해서 그쪽에서는 전설적인 존재였다. 우리나라에서 농구가 그렇게 인기 스포츠는 아닌데도 문외한인 나조차 이름이 익숙할 정도니까. 이렇게 잘생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농구 봤지. 서른 넘어 기량이 꺾이면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서 뛰다가 작년에 은퇴했다고.

"농구선수였어요?"

"아... 얘기 안 했나?"

"안 했는데요."

"그래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아까 그 청년한텐 되게 중요해 보이던데."

조금 페이스 찾나 싶더니 다시 한숨을 푹 쉰다. 아저씨 땅바닥 꺼지겠어요. 사인받은 농구공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돌아서던 뒷모습을 떠올리고 있는지. 걔도 농구하는 애인가 보지. 그래서 그렇게 몸이 좋았구나. 이놈도 저놈도.

짧은 검색 결과 아직도 프로농구 팬들 사이에서는 팀 성적이 별로면 윤대협 돌아오라고 원성이 자자했다. 아직 젊던데 그만두고 가게 하네. 하긴 운동선수들은 일찍 은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각처럼 반듯하게 튀어나온 눈썹 뼈를 문지르던 사장이 난데없이 물었다.

"수신 씨 친구들은 대학생이라고 했지?"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를 한 모금 했다. 산미 없고 고소한 내 취향 드립 커피. 고졸로 취업해서 벌써 두 번 이직한 5년 차 노예. 친구들은 대체로 아직 대학생 청춘을 구사하고 있다. 나만 등대처럼 불 밝힌 회사에서 매일 야근하며 죽으면 쓸 데도 없는 돈이나 입출금 통장에 재테크 할 틈도 없이 쌓아 두고 있지.

그런 사정까지는 관심 없는 사장은 눈이 반쯤 맛이 갔다. 지금 이 시공간을 보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내 뒤에 뭐가 있나 해서 슥 쳐다봤다. 먼 곳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20대 남자들은 뭘 좋아할까?"

"전 여잔데요."

"그럼 다시. 20대 남자 꼬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시던 커피를 뱉을 뻔했다. 이 아저씨가 돌았나. 지금껏 쎄한 말 한마디 빻은 어휘 한 번 올린 적 없는 그의 인성이 갑자기 도마 위에 오른다. 너무 열받은 나머지 무심코 비싼 진실을 입에 올렸다.

"전 여자 좋아하는데요."

"그렇구나..."

갑자기 커밍아웃 의기투합? LGBT 우리 존재 화이팅? 전혀 그런 분위기 아니고 겁나 싸하다.

사장이 또 그림 같은 모습으로 다리를 쭉 뻗으면서 포옥 한숨을 내려놓는다. 짜증 난다. 이래서 미디어 속 게이들이 헤녀 친구들한테 붙들려 다니는 거야. 가서 남미새들끼리 놀아.

열받게도 눈앞의 남미새는 희소가치가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 있었고 맛있는 커피를 적정한 가격에 내려 주었으며 내 마음을 치유하는 아늑한 공간의 주인이었다. 조금도 궁금하지 않고 어디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연애상담을 늘어놓은 죄 정도는 사해 주는 것도 뭐 어렵진 않았다. 단 도움을 주거나 감정적 공감을 표해 줄 생각은 한 톨도 없었다.

나는 묵묵히 커피를 마셨고 사장은 조용히 좌석에 늘어진 채 좌절했다. 아무리 손님이 없어도 장사하는 시늉은 해야 하지 않냐고 한 마디 쏘아붙여 쫓아낼 법도 했지만 참았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완벽해서. 목을 아무렇게나 등받이 뒤로 꺾어서 콧구멍이 보이는데 굴욕이 없다. 이쯤 되면 진기한 구경거리다. 예쁜 조각이 눈앞으로 와 있는데 굳이 도로 멀리 갖다 놔야 하나? 커피 마시면서 눈요기로나 쓰자.

그날 사장은 내가 돌아갈 때까지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가엾은 짝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주말에는 카페에 간다. 가급적 이틀. 안 되면 하루. 나는 여기 커피보다 맛있는 곳을 모르기 때문에 약속 있는 날에는 테이크아웃이라도 해 간다.

그런데 최근 한 달 동안 갈 때마다 보이는 익숙한 얼굴이 있다.

그 미남 청년이다.

주말에는 아무래도 번화가에 몰린 유동인구가 여기까지 밀려들 수 있어 평일처럼 널널하진 않다. 어쨌든 지도 앱에 검색하면 나오니까 굳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엔 사장 외모 평가나 사진이 어디 리뷰에라도 뜨면 평일에도 자리가 위험할 것 같은데 아직 그렇지는 않은 듯. 아무튼 주말에 가면 사장과 잡담은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럭저럭 손님들이 온다. 좌석은 별로 없는 곳이라 주로 테이크아웃이지만.

미남 청년은 꽤 일찍 왔는지 내가 언제 들러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가에 붙은 2인용 테이블. 정확히 바를 마주 보는 자리다. 한 번 내 전용 자리가 비었길래 제법 오래 죽치고 지켜본 적이 있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오로지 사장 얼굴만 쳐다본다.

마치 나 같네. 아니 그래도 나는 커피도 마시고 창밖도 쳐다보고 핸드폰도 만지고 하는데... 얘는 커피가 다 식도록 그냥 사장 얼굴만 쳐다본다. 눈은 깜빡이는지 궁금하다.

사장이 사람 좀 가고 나서 나한테 쿠키를 가져다주고 애한테도 한 개 가져다준 적이 있다. 살벌하게 잘생긴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쿠키를 쳐다보다가 사장 뒤통수에 대고 꾸벅 목례를 했다. 아니 쳐다볼 때 해야지. 아이고 내가 다 안타깝다.

웃기는 건 사장도 일하다가 흘끗흘끗 미남 청년을 쳐다본다. 하 꼬시고 싶으시다더니 아주 안달이 나시나 보군. 그도 그럴 것이 미남 청년에게는 하루 최소 3건 최대 5건의 헌팅 내지 번호 적힌 쪽지가 무조건 시도되었다. 우리나라 헤녀들은 간절하다고. 이런 미모를 두고 볼 리 있냐고. 아저씨 나이쯤 되면 헌팅으로는 잘 안 만나니까 괜찮을지 몰라도 20대는 다르지. 가끔 교복 입은 애들도 들이대던데.

그때 사장 표정이 진짜 볼 만했다. 이런 꿀잼을 나만 봐도 되나 싶을 정도. 이럭저럭 1년 가까이 단골인데 그런 얼굴은 처음 봤다. 서비스직이 그렇게 살벌한 표정 해도 되냐고요. 무서워서 커피 마시러 오겠어? 호호호.

근데 이거 짝사랑 맞나? 흠... 미남들의 쌍방 삽질 같기도 하고...


사장은 결국 참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아예 빙글 돌아버린 것 같다.

오랜만에 일이 좀 일찍 끝난 금요일. 집에 가다 카페를 슥 보니 좀 한산하길래 들렀다.

사장은 이상하게 반가워했다. 개였다면 꼬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커피랑 같이 서비스 쿠키를 내민 사장이 금방 본론을 꺼냈다.

"수신 씨 친구들 중에 혹시 알바하고 싶은 사람 없어?"

"여기서요?"

"응. 주말만 구하려고. 딱 세 시간만."

"아 애매한데. 일주일에 6시간은 너무 돈을 못 벌잖아요."

"그런가..."

개였으면 지금 귀가 축 처졌을 것이다. 미남의 다양한 표정을 구경하는 건 솔직히 재밌긴 하다.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할까요?"

"괜찮겠어?"

"세 시간이면 뭐. 어차피 주말엔 보통 오니까..."

솔직히 구미가 당겼다.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대가리를 텅텅 비우고 할 수 있는 육체노동을 원했다. 대가리만 달랑달랑 들고 가서 신경회로를 한계까지 미친 듯이 태우다가 다시 대가리만 달랑달랑 들고 퇴근하는 나날들. 뇌에 과부하가 올 정도의 지식 노동에서 오는 피로는 오히려 육체적 피로로 잊을 수 있다. 목숨 걸고 큰돈 들여 운동하는 이유다. 이런 와중에 주말 3시간, 좋아하는 공간에서 커피 향에 둘러싸여, 널널한 강도로 돈도 받는 육체노동? 최고인데? 내가 한다.

"혹시 주말 출근할 수도 있긴 한데요."

"되는 날만 해 줘도 돼. 난 완전 좋지. 커피도 가르쳐 줄게. 보너스로 빈도 주고."

"집에 커피 내리는 도구 없어요."

"내가 다 줄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야 뭐야. 어쨌든 내가 손해 볼 건 없었다.

공짜가 너무 많은 딜은 한 번 의심해 봤어야 하는데.


돌아오는 토요일. 냉큼 계약서 쓰고 일을 시작했다. 이번 주는 한숨 돌린지라 오픈 준비 시간 맞춰 나와서 이것저것 기초를 배웠다. 당분간은 핸드드립 말고 에스프레소만 하라고 했다. 손님이 핸드드립 찾으면 자기 부르라고. 아니 그럴 거면 왜 알바를 쓰지?

정답은 곧 나왔다.

정확히 오픈 시간에 맞춰서 미남 청년이 딸랑, 작은 종소리를 내며 문을 밀었다.

사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어서 오세요. 함께 입을 모아 인사하며 나는 속으로 좀 소름이 돋았다. 이 자식... 오픈런이었어...?

미남 청년이 주문을 했다. 사장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커피를 내렸다. 내가 서빙하려고 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가 트레이를 든다. 다른 손님 올 때까지 편하게 연습하고 있으라면서 성큼성큼 미남 청년의 테이블로 간다.

사장이 커피를 내려놓으면서 맞은편에 앉았다.

미남 청년의 눈이 엄청 커지는 게 보였다. 얼굴이 살짝 상기되고 있다. 커피를 잡으려고 내밀었던 손끝도 떨리고 있다.

역시 짝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군.

사장은 뒤통수 밖에 안 보이는데도 왠지 잘생긴 얼굴 천 퍼센트 활용해서 햇살처럼 웃는 표정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래요. 최선을 다해 꼬시고 계시겠죠. 사장이 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 음악을 좀 줄일까?

미남 청년은 입술을 일자로 꾹 물었다가 긴장한 표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말했다.

서. 태. 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