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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3.10.08

‘till death do us part

불면의이쑤신

온기는 사람을 쉽게 길들인다. 서태웅조차도. 특히 언제나 딱 좋을 만큼 따끈하고 온몸을 감쌀 만큼 거대한 체온이라면. 서태웅은 윤대협의 품속에서 자신의 것과 다른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밤에 금방 중독되었다.

하루가 멀다고 제 집처럼 윤대협을 찾아갔다. 실컷 농구하고, 포근하게 잠자고.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로만 가득 찬 하루하루였다. 셀 수 없는 낮과 밤이 오가는 동안 윤대협은 한 번도 서태웅을 거절하지 않았다. 역시 너도 날 좋아하는 거 맞잖아. 서태웅은 확신하는 때마다 뿌듯함이 체온에 더해져 양 볼을 달구는 것을 느꼈다.

좋아하는 사이니까 농구를 안 할 때도 옆에 있었다. 좋아하는 사이니까 가끔은 손을 잡고 걸었다. 좋아하는 사이니까 언제나 서로를 꼭 껴안고 잤다.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때까지.


서태웅은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날 밤에도 윤대협의 자취방에서 외박을 했다. 언제나처럼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 윤대협은 한숨도 안 잤다.

드물게도 서태웅 역시 깨어 있었다. 눈을 감았는데 꿈속이 아니었다. 이상했다. 서태웅이 윤대협의 품속에 파묻힌 입술을 우물거리며 불평했다.

"잠이 안 와."

윤대협의 웃는 소리가 정수리 위에서 들렸다. 비웃는가 싶어서 화내려고 올려다보니 아주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윤대협이 큼지막한 손등으로 서태웅의 토실한 뺨을 살살 쓸면서 중얼거린다.

"푹 잘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아는데."

서태웅은 흥미가 생겼다. 인생 처음으로 푹 잠들지 못한 오늘 같은 밤에 꼭 필요한 비법이 아닌가. 하지만 윤대협은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서태웅의 귓가를 만지작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최선을 다해... 참고 있어."

무슨 소리지? 서태웅의 눈에 의아함이 서린다. 귀 뒤쪽을 만지작거리는 윤대협의 손끝이 작게 떨렸다. 간지러웠다.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윤대협은 아주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태웅도 깨달았다.

"네가... 나를 잊지 않으면. 잠드는 방법을 알고 싶으면. 다시 찾아 와."

기다리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서태웅은 알 수 있었다. 충분히 따스한 작별이었다. 그의 체온만큼. 언제든지 찾아가도 되는 거구나. 윤대협을 잊을 생각이 없는 서태웅이 알아야 하는 건 그것뿐이었다. 안도의 깊은 한숨을 윤대협의 가슴팍에 촉촉하게 뱉어 놓고 수면의 안개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다음 날. 두 사람은 현관에서 작별했다. 윤대협은 비스듬히 문가에 기대 서 있었다. 서태웅은 똑바로 서서 그를 마주 보았다. 윤대협이 편안히 짝다리를 짚고 있어 시선이 맞았다. 윤대협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윤대협."

"응."

"좋아해."

"그래. 나도 좋아해."

"안녕."

"잘 가."

서태웅은 돌아섰다.

천천히 걷다가.

점차 걸음이 빨라졌고 나중에는 뛰었다. 명치 부근이 심하게 아팠다. 심장 쪽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또 죽는 건가. 시간이 돌아가는 건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참았다. 자신이 죽었을 때 윤대협의 표정이 떠올랐다. 지금은 그 때 윤대협이 왜 그런 표정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왜 심장 부근을 꽉 움켜쥐었는지도. 왜 웅크리고 있었는지도.

이상하다. 윤대협은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아플까.

13시간의 비행 내내 고민해 봐도 답은 없었다.

농구할 때만은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 간 서태웅은 농구밖에 모르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농구를 위해서라면 지금까지 해 본 적 없는 일이라도 기꺼이 덤벼들었고, 성격에 맞지 않는 어색한 행동일지라도 조금씩 익혔다. 팀 동료들에게 먼저 말도 걸고, 어떤 제안이든 거절보다는 우선 오케이로 받고, 성적을 맞추기 위해 공부하느라 머리도 싸매고, 뭐든지 했다.

가장 어려운 건 의외로 수면이었다. 처음에는 시차 적응이 안 된 줄 알았는데. 넉 달이 넘도록 계속 잠을 설치는 건 문제가 있었다. 살면서 그래본 적 없기에 서태웅은 더욱 당황했다. 짚이는 원인은 하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커다란 인형을 하나 샀다. 동료들이 이케아에 가구 사러 간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농구 선수 상체만 한 상어가 잔뜩 쌓여 있었다. 폭신했다. 품에 안고 기숙사에 돌아와서 그대로 누워봤다. 혼자 덩그러니 누웠을 때보다는 훨씬 덜 허전했다. 평소보다 빨리 잠들었다.

그러나 자꾸만 새벽에 눈을 뜨는 버릇은 달라지지 않았다. 상어 인형은 처음에만 포근하지 나중에는 걸리적거렸다. 무엇보다 따스함이 없었다. 결핍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서태웅답지 않은 얕은 수면이 이어졌다. 새벽에 눈 뜬 김에 러닝을 때렸더니 점점 살이 빠졌다. 코치는 기겁을 하면서 오버런 조심하라고 했다. 짜증스러웠다. 코너에 몰린 서태웅은 한 가지 방법밖에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럼 다른 누군가를 안고 자면 되려나.

농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를? 서태웅은 미국에 와서 늘 그랬듯이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룸메이트였다. 서태웅이 수업과 수업 사이에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태웅은 드러누운 채로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잘 때 누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무슨 소리야? 우리 2인실 쓰고 있잖아."

"그거 말고. 이렇게."

끌어안는 시늉을 하자 룸메이트는 와우, 소리 내 감탄했다. 벌떡 일어나서 너도 그런 데 관심이 있긴 있었냐는 둥, 외박도 없고 방 비워 달란 소리도 없어서 그런 성향인 줄 알았다는 둥,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줄줄 늘어놓았다. 결론적인 조언은 파티에 가서 마음에 드는 애한테 말을 걸라는 거였다.

파티... 서태웅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모두가 술을 마시고 혀가 꼬이고 바보짓을 하고 춤을 추는 곳. 남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평소보다 다섯 배 정도 힘겹게 귀를 기울여야 했고 그렇게 알아들은 말은 시답지 않았다. 서태웅이 그렇게 좋아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잠을 잘 자려면, 그래서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면, 그래서 결국 농구를 잘하려면 도전해 봐야겠지. 서태웅이 애써 전의를 불태우는 동안 룸메이트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팔짱을 꼈다.

"어떤 스타일이 좋은데?"

"나보다 큰 게 좋겠지."

아무래도 안고 자야 하니까. 그런데 룸메이트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턱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면서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 쉽지 않은데. 혹시 남자 쪽?"

"상관없지 않을까."

서태웅은 어깨를 으쓱했다. 안고 자는 데 성별이 중요한가? 룸메이트는 왠지 감동했다는 리액션을 보였다. 말해줘서 고맙다며 악수까지 청했다(why?). 그러더니 솔직히 자긴 그 쪽은 잘 모른다면서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대단히 활발하고 밝은 성격에 끊임없이 웃고 말하고 박수치고 아무튼 리액션이 큰 친구였다. 서태웅이 잘생겼고 키도 크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미국에서 이렇게 대놓고 외모를 칭찬받는 경험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서태웅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점점 무표정해졌다.

룸메이트와 새 친구와 셋이 함께 저녁을 먹었다. 룸메이트는 행운을 빌어주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소개받은 친구가 서태웅을 데려간 곳은 실내 헬스장이었다.

설명하길 여기서 운동을 하면서 쭉 '스캔'한 다음에,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말을 걸거나, 누가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다.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그는 누군가와 몇 번 눈을 마주치더니 그 사람과 동시에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가 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서태웅은 아무것도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운동을 했다.

놀랍게도 정말로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서태웅보다 약간 키가 크고, 웃는 입매가 시원한 남자였다. 풀업을 끝내고 땀을 닦는 서태웅에게 처음 보는 얼굴이라며 자기 이름을 대고 악수를 청했다. 서태웅은 잠깐 망설이다 그 손을 잡고 이름을 알려줬다. 운동과 근육과 농구를 주제로 한 스몰톡이 잠시 오갔다. 그가 주로 수많은 칭찬을 섞어 가며 질문했고 서태웅은 짧게 끄덕이거나 대답했다.

대화의 끝은 식사 초대였다. 서태웅은 잠시 망설였다. 그는 부담스러웠다면 미안하다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서태웅은 그냥 직설적으로 용건을 말하기로 했다.

"친구를 사귀러 온 건 아니라서."

"그럼?"

"같이 잘 사람이 필요해."

그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심지어 지금 바로 자신의 집으로 가도 좋다고 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는걸. 서태웅은 바로 따라나섰다.

그가 서태웅을 데려간 곳은 깔끔한 아파트먼트였다. 어른이 사는 공간 같았다. 서태웅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집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적응이 잘 안되어 어색하게 서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낯선 장소에서 낯선 장소로 계속 이동 중이었다. 갑자기 피로가 눈썹 위로 우르르 몰려왔다. 이렇게 피곤할 때 잠이 안 오는 게 제일 최악이다. 뭐 마실 거라도 필요하냐는 집주인의 질문에는 대답도 없이, 서태웅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덥석 물었다.

"껴안고 자도 돼?"

하하!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너무 귀엽다고, 얼마든지 그러라고 말했다. 서태웅은 마음이 놓였다. 왜 무엇이 귀여운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인들은 종종 아무 때나 귀엽다고 하니까. 침실로 갈 때까지도 서태웅은 희망적이었다. 예전처럼 누군가를 껴안고 잘 수 있다면. 그래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농구를 더 잘할 수 있다면.

그러나 막상 침대 앞에서 껴안은 그는... 달랐다. 냄새가 낯설었다. 살결의 감촉도. 근육의 탄력도. 체온도. 이게 아니야. 서태웅은 그 사실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찾던 건 이게 아니야.

내가 잃어버린 건... 이 사람이 아니야.

그는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상의에 이어 하의까지. 거기까진 개인의 잠옷 취향이겠거니 했는데 서태웅도 벗기려고 했다. 추위를 타는 서태웅은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신경질적으로 굴더니 벗을 생각이 없으면 나가 달라고 했다. 서태웅은 아무런 주저 없이 꺼져줬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어쨌든 한 가지 교훈은 분명히 얻었다. 그는 윤대협이 아니었다. 당연하다. 누구도 윤대협이 될 수는 없다. 윤대협 빼고는.

서태웅은 다시 상어 인형의 품으로 돌아갔다.

수면의 질은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거의 6개월째 제대로 잠을 못 잔 서태웅은 하마터면 향수병이나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버릇처럼 모로 누우면 팔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지나치게 허전했다. 아무리 상어 인형을 쥐어짜듯 껴안아도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서태웅을 제법 좋게 보고 있는 룸메이트가 자다 일어나 짜증낼 정도로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려도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아마도 서태웅은 확실하게 향수병이나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 일주일 뒤에 찾아온 방문객이 아니었다면.

서태웅은 그날도 하루 종일 체육관에 처박혀서 운동만 했다. 녹초가 되어 기숙사 방문 앞에 왔는데 마침 룸메이트가 나오는 참이었다. 오늘 여자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더니 출발하는 길인가. 그런데 왠지 룸메이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다정한 손길로 어깨를 툭툭 치면서 너를 찾아온 손님이 앉아 있다고 비밀스럽게 귀띔했다. 의아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서태웅의 침대에 윤대협이 앉아있었다.

서태웅은 다시 방문을 닫았다. 하도 잠을 못 잤더니 헛것이 보이는 것 같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열어 본다.

여전히 윤대협이 앉아있다.

눈을 세 번 깜빡인다. 여전히 그대로다. 헛것이 아니다. 꿈도 아니다.

윤대협은 멋쩍게 웃으면서 차마 묻지도 못하고 벙쪄 있는 서태웅에게 알아서 방문 사유를 신고했다.

"그냥 잠이 잘 안 와서..."

서태웅은 다짜고짜 그를 껴안았다. 뒤로 자빠진 윤대협은 하마터면 침대 옆의 벽에 머리를 제대로 부딪힐 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태웅은 더욱 힘주어 윤대협의 상체를 감싸고 얼굴을 비볐다. 뱃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한숨이 나왔다. 이거다. 이 냄새. 살결의 감촉. 근육의 탄력. 체온. 완벽했다. 서태웅은 당장이라도 까무룩 잠들 것만 같았다.

"서태웅?"

실제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윤대협은 자기 배에 달라붙어 도로롱 작게 코 고는 소리까지 내고 있는 6개월 만에 만난 연인을 허망하게 쓰다듬었다. 아주 불편한 자세로도 음냐음냐 딥슬립 중인 서태웅을 이리저리 당기고 밀어서 침대에 제대로 눕혀 주고 신발도 벗겨주었다. 신발 신고 침대에 엎어져 자다니. 벌써 미국인이 다 되었군. 왠지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둘이서 눕기엔 아주 좁은 침대에 몸을 구겨 넣고, 윤대협도 여독이 누르는 대로 눈꺼풀을 감았다.

서태웅은 자정쯤에 불현듯 눈을 떴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는데 뭔가 무거운 게 가로막고 있었다.

윤대협의 뜨끈한 팔뚝이었다.

서태웅의 온몸에서 긴장이 풀렸다. 그대로 윤대협을 다시 끌어안는다. 윤대협의 손이 서태웅의 등을 살살 쓰다듬는다. 잠이 깼나 보다. 자꾸만 품을 파고드는 서태웅에게 벽으로 밀려 거의 구석에 처박히다시피 한 채로 윤대협이 웃는다.

"잘 잤어?"

내 침대에. 기숙사 방에. 미국에 윤대협이 있다.

서태웅은 대답 대신 윤대협의 가슴팍에 고개를 처박았다. 두근. 두근. 두근. 규칙적인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숨을 내뱉는다. 드디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죽은 것도 아니었는데. 서태웅은 윤대협의 심장에 대고 오물오물 입술을 움직였다.

"보고 싶었어."

윤대협이 서태웅을 으스러지도록 세게 끌어안았다. 서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헤엑하고 약간 숨을 들이마셨다. 서태웅의 목과 어깨 사이에 코를 처박은 윤대협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그 순간 서태웅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까.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두 손을 더듬어서 윤대협의 얼굴을 잡아 올린다. 오랜만에 마주한 눈동자는 조금 젖어있었다. 서태웅은 윤대협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따스했다. 잘 알고 있는 온도였다. 낯선 곳에서 느껴졌지만. 손안에 가득 찬 윤대협의 얼굴도 따끈따끈했다.

윤대협의 손이 불쑥 서태웅의 뒷목을 감쌌다. 다음 순간 입 속으로 윤대협의 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심장이 크게 튀었다. 입 안 구석구석을 채우며 더듬는 힘을 따라 간신히 입을 벌려 혀를 마주대고 침을 삼켰다. 낯선 감각. 자꾸 눈썹 사이가 찌푸려진다. 눈이 가물가물 감겼다. 윤대협의 혀가 닿는 데마다 녹아버릴 것처럼 달콤했다.

윤대협이 축축해진 입가에서 떨어졌을 때 서태웅은 어느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윤대협의 티셔츠에 몰래 입술을 부벼서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찾아가기로... 했었는데..."

"응. 내가 못 참고 와 버렸네."

윤대협이 가만히 뒤통수를 쓰다듬는 손길이 부드럽다. 다시 잠들 것 같다.

"그러면... 알려 준다고 했잖아."

"잠드는 방법?"

"응."

서태웅이 힘이 쭉 빠진 손끝을 들어 윤대협의 입술을 만졌다. 제 것처럼 축축하고 뜨거웠다.

"이거야?"

윤대협은 뭔가를 참는 것처럼 눈썹 사이에 힘을 꾹 주면서 웃었다.

"아니."

다정하게 서태웅의 뺨을 쓰다듬어 주면서 허리를 꽈악 끌어당겨 하체를 붙인다. 바지 너머로 딱딱해진 다리 사이가 맞붙어왔다. 서태웅은 목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닿아있으면 아마 자신도...

윤대협이 속삭였다.

"여기선 안 해. 네가 생활하는 곳이니까. 계속 생각나면 안 되잖아."

서태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윤대협은 가만히 서태웅의 등을 토닥였다. 미묘하게 윤대협의 심장 소리와 비슷한 박자였다. 고양되었던 서로의 체온 속에서 서태웅의 눈이 금방 가물가물해졌다.

그날은 그렇게 잠들었다. 미국에 온 이래로 가장 깊은 숙면이었다.

다음 날 서태웅은 필수 훈련을 제외한 자율 훈련을 전부 빼먹고 윤대협에게 달려갔다. 윤대협은 근처에 잡아 둔 호텔에서 서태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고등학생 때 윤대협이 차마 할 수 없었고 서태웅은 알 수 없었던 많은 일을 했다. 상대의 입을 통해서만 산소를 들이마실 수 있는 사람들처럼 끝없이 키스하고 만진 적 없는 곳을 만지고 본 적 없는 표정을 보면서 느껴본 적 없는 감각에 몸부림쳤다. 기절하듯 잠들 때까지.

과연 효과가 좋았다.

윤대협은 짧게 머물렀고 귀국하면서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어 갔다. 서태웅도 윤대협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받아 놨다. 방학이 시작하는 날짜도 미리 말해뒀다. 윤대협과 저녁에 통화를 한 날에는 훨씬 잠이 잘 왔다. 방금 들었던 잘 자라는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다 보면 기억이 끊겼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귀국일만 기다렸다.

NCAA 3년간 서태웅은 매번 NBA 드래프트에 도전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상위 팀은 몰라도 29개 팀 중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의 성적은 아니었다. 동양인의 한계에 대한 비관적인 예측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어쨌든 선례가 없었고 누구도 실패 사례가 되고 싶어 하진 않았다.

하지만 서태웅은 생각보다 좌절하지 않았다. NCAA 자체로 훌륭한 리그였다. 자신의 성장은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신화를 쓰기엔 충분치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타인이 짓밟을 수는 없었다. 서태웅은 드래프트 결과와 관계없이 리그에 집중했고 꾸준한 기록을 쌓았다.

드래프트 마지막 해. 스물한 살의 서태웅은 토론토 랩터스에 5순위로 드래프트 되었다. 작년에 생긴 신생팀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일단 드래프트권이 넉넉했고, 빅 마켓 팀도 아닌지라 저렴하게 미래에 투자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했다. 동양인 이주자가 유난히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신생 구단의 젊은 감독이 서태웅을 자신이 구상하는 팀의 중심으로 삼으려 했다. 감독 역시 선수 시절 서태웅처럼 체격이 작은 편인 포인트가드였다. 좋게 말하면 오랜 꿈이고 나쁘게 말하면 한풀이일지도 모르는 전략이었다. 특히 득점 능력이 뛰어난 포인트가드가 있어야만 실현 가능한 그림이었고 마침 서태웅이 제격이었다. 드래프트 순위가 밀린 건 이전 세 차례의 결과를 볼 때 다른 구단이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가치를 낮게 평가한 건 아니었다.

감독의 강한 요청으로 구단은 서태웅을 위한 통역을 맡을 직원을 구했다. 최종 합격자는 서태웅과 같은 지역에서 농구선수였다는 점에 가산점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해외 취업에 성공한 스물세 살의 윤대협이었다.

드디어 두 사람의 심장이 같은 곳에서 뛰게 됐다. 같은 코트에서, 리그에서, 대륙에서. 내친김에 살림까지 합쳐버렸다.

동거 8년째에 캐나다 연방정부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두 사람은 아무 날에나 손을 잡고 시청에 가기로 했다.

혼인신고 전날 밤. 오랜만에 잠이 오지 않았다. 모로 누운 서태웅의 등을 끌어안고 있던 윤대협이 반려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날 생각 나?"

윤대협이 좋아하는 이야기다. 처음 고백했던 날.

같이 살게 되면서 윤대협은 시도 때도 없이 그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필 꽂힌 동화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달라고 하는 어린이처럼. 그때마다 살짝 들뜬 목소리로.

"그날 너 되게 귀여웠지. 뭔가 평소랑 완전 달랐어... 되게 나한테 달라붙고. 집까지 쫓아오고. 손도 잡고. 나 혼자 두고 절대로 안 죽을 거니까 울지 말라고."

서태웅은 제 가슴팍을 단단히 끌어안은 윤대협의 팔뚝을 만지작거렸다. 윤대협은 아직도 15년 전 그날 서태웅이 겪은 일을 모른다.

사실은 서태웅도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진짜로 있었던 일인지 잘못 기억하는 꿈인지 모를 정도로 흐려질 때쯤에 윤대협이 이런 식으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면 진작에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고백하려고 그랬던 거야?"

응? 말해 줘. 윤대협이 서태웅의 귀 아래에 코를 부비면서 조른다. 서태웅은 윤대협의 숨결이 귀 안쪽에 닿아서 간지러움에 움츠러든다. 그럴수록 윤대협은 서태웅을 더 끌어안으며 얼굴을 밀어붙인다. 서태웅은 힘겹게 윤대협의 팔뚝을 풀고 몸을 돌려 반려자를 마주 보았다.

"그건 아니고..."

입술이 삐죽 올라온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윤대협은 서태웅이 먼저 고백했다는 사실을 아주 좋아한다. 자꾸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아마 그래서겠지.

서태웅은 달래듯이 윤대협의 앞머리를 살살 쓸어 넘겨주면서 눈을 맞췄다. 열심히 말을 고른 뒤에 천천히 이야기한다.

"내가 죽고 네가 우는 꿈을 꿨어. 그래서."

윤대협의 눈이 커졌다. 서태웅은 평온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이상한 경험. 실은 윤대협을 다시 만난 후로 서태웅은 불현듯 안전에 민감해질 때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처럼 아무 데서나 졸면서 자전거를 타기는커녕 면허도 못 땄다. 언제고 또 죽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그랬다가 이번에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까 봐.

한참을 말없이 서태웅의 눈을 마주 바라보던 윤대협은 온몸으로 반려자를 꼭 껴안아 주었다. 다시는 그런 꿈은 꾸지 않게 해 주겠다는 듯이.

서태웅은 모든 걱정을 잊고 잠들었다. 고동치는 심장 소리 속에서. 가장 익숙한 체온 속에서. 매일 밤 그렇듯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하지만 서로만 있으면 충분했다.

서태웅은 혹여나 갑자기 죽지 않도록 생각날 때마다 신경 쓰며 살았다. 운전도 안 하고(면허를 못 땄으니까) 담배도 안 피우고(그야 운동선수니까) 술도 안 마시고(그야 운동선수니까) 몸에 나쁘다는 건 절대로 안 했다.

윤대협은 의외로 서태웅보다 바빴다. 아시아 농구 수준도 높아져 리그에도 여럿 진출했기에 귀한 농구 전문 통역은 할 일이 많았다. 윤대협은 심지어 NBA에만 머물지 않고 국제 대회, 컨퍼런스, 자선 행사, 끝내는 스포츠 관련 기업까지 일감을 따 왔다. 나중엔 어느 대학교 통역학과에서 수업까지 맡고 있었다. 서태웅은 마음을 놓았다. 말년에는 편안히 얹혀살아야지.

그렇다고 윤대협이 서태웅만큼 자기 일을 사랑한 건 아니었다. 서태웅의 직업적 특성상 부부는 남들보다 훨씬 일찍 은퇴해도 될 정도로 돈이 많았다. 서태웅이 은퇴한 그 순간, 윤대협은 냉큼 백수가 되어 배우자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제 고국에서도 둘은 합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아진 시점에는 그들도 자연스럽게 길에서 손을 잡고 입을 맞출 수 있었다.

한 가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서태웅은 매일 밤 윤대협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따스한 체온 속에서 잠들었다.

서태웅은 혹여나 갑자기 죽지 않도록 생각날 때마다 신경 쓰며 살기는 했다. 그럼에도 설마 윤대협이 먼저 죽을 줄은 몰랐다. 세간에서는 장수라거나 호상이라고 했지만 서태웅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나고 항아리에 뼈를 담아 위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정갈하게 불간을 꾸미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허기가 지면 밥을 먹고, 땅거미가 지니 잠을 자려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랜만이었다. 몇십 년 만이다. 그동안은 항상 윤대협이 함께 있었으니까. 서태웅은 새벽에야 겨우 선잠에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서태웅은 익숙한 집에 친구들과 가족들과 다 함께 있었다. 무언가 파티를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윤대협이 왔다고 외쳤다. 모두가 서태웅을 불렀다. 남편 왔는데 안 가 보냐고. 서태웅은 애써 고개를 숙여 외면했다. 왠지 그쪽을 바라보면 안 될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바라보면 안 돼. 그럼 또 놓쳐 버릴 거야.

시야에 익숙한 운동화가 들어왔다. 윤대협이 좋아하는 까만 운동화. 목소리가 들렸다.

"태웅아."

서태웅은 윤대협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천천히 시야를 올렸다.

윤대협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서태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것 봐. 내가 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억울한 마음에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 순간 눈을 떴다.

맞은편에 윤대협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모로 누워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러본다.

"윤대협."

"으응..."

익숙한 무게의 두 팔이 자신을 감싼다. 눈물이 날 정도로 따스했다. 서태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꿈이었구나. 그런데 어디서부터 꿈이었지? 그래. 장례식. 그것부터 다 꿈이었던 거야. 만약에 정말이었다고 해도. 이번에는 윤대협도 시간을 뒤로 돌린 거야.

그렇지 않았다. 정말로 눈을 떴을 때, 두 번의 꿈에서 깨어나 현실의 침대에 누워.

서태웅은 혼자였다.

온기 없는 침대의 반쪽을 쓸면서 서태웅은 조용히 울었다. 오래 울지는 않았다. 다시 만날 거니까.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다시 한번 꼭 껴안아 줄 거니까.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