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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3.07.02

상암의 꽃 8

불면의이쑤신

팬클럽에 스케줄이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활동기다. 서태웅은 관성처럼 모든 공방 사녹과 미니 팬 미팅을 신청했다. 그래 놓고 연봉협상이나 인사이동 시즌에도 한 적 없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컴백 티저 이후로 서태웅은 잘 모르는 감정과 싸우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일을 하다가도 문득. 덕질을 할 때는 조금 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배회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뭔가를 놓친 것 같은 기분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한바탕 백로그를 확인하고 스케줄을 체크하고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나면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적지근하게 남아있는 껄쩍지근함.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감각. 서태웅은 그 감정의 이름이 불안이라는 걸 몰랐다. 태어나서 한 번도 불안을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태웅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나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두뇌를 할애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정서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건 대체로 타인인데, 서태웅은 그 영역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매우 협소한 인간관계에도 충분히 만족했기 때문이다. 나만 잘하면 되는 인생에는 불안이 끼어들기 어렵다. 말하자면 서태웅은 처음으로 통제할 수 없는 타인과의 관계에 깊이 영향을 받는 중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타인은 윤대협이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짐작보다 훨씬 더 어리광이 많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막무가내라거나 제멋대로라거나 성깔이 있다고 표현했겠지만 콩깍지가 5년째 단단히 뿌리 박혀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서태웅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서태웅의 먹금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개인적인 연락을 안 받는다고 새벽에 인스타 라이브를 켜 버리는 창의적인 플레이는 솔직히 서태웅에게 꽤 충격이었다. 어쩌면 윤대협의 응석을 적절히, 적당히, 감당 가능한 선에서만 받아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서태웅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였다. 원하는 대로 해 주거나. 아예 싹 차단하거나.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서태웅은 정말로 알 수 없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은 두 갈래로 완전히 찢어진 것 같기도 하고 아예 가느다란 실낱이 되어서 지들끼리 마구 엉켜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역시 서태웅의 서른 줄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개인으로서 서태웅의 가장 큰 저력 중 하나는 심플한 정서였기 때문이다. 그거 하나로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 어떻게 구르든 어떤 장면을 마주하든 단순 무식하게 돌파하며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윤대협에게 연락이 오는 것 자체는 당연히... 좋았다. 최애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롭고 심심하고 친구도 없다는데 나라도 시간 때우기에 쓸모가 있다면야. 물론 서태웅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는커녕 단답도 겨우 꺼내는 귀 달린 벽에 가까웠지만. 살다 보면 그런 게 필요한 때도 있겠지. 특히나 아이돌 같은 힘든 직업이라면. 솔직히 최애의 목소리를 독점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태웅이 손해 볼 건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서태웅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 출근인데 새벽 3시에 전화를 받으면서도... 독점적으로. 그게 문제였다. 최고인 지점이자 최악의 요소였다. 서태웅의 순덕 자아는 기꺼이 전화 상대가 되어주고자 했지만 동시에 서태웅의 오타쿠 자아는 외롭고 심심하고 친구도 없으면 그 시간에 버블하고 놀거나 라이브 켜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서태웅 역시 끊김 없는 콘텐츠와 도파민 공급을 먹으며 자라난 만족을 모르는 괴물, K팝 헤비 소비자기 때문이다. 윤대협이 서태웅과 통화가 막히자 인스타 라이브를 틀었다는 사실이 이 지점을 서태웅의 뼈와 살에 실감시키고 말았다. 그러니까 서태웅은 어쩌면 자신이 윤대협의 아이돌 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어렴풋이 느껴버린 것이다. 윤대협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두는 것. 언제나 서태웅이 바라는 바다. 윤대협의 아이돌 활동에 방해가 되는 것. 서태웅이 죽음을 각오하고 피하고 싶은 바다. 정확히 이 두 가지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서태웅은 매우 헷갈리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인간은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서태웅의 단순 무식한 자아가 분연히 일어나 칼을 빼 들었다. 어울리지 않게 복잡해진 머릿속을 일도양단한다. 나 혼자 생각해봤자 답이 없다. 조언을 구하자. 전문가들에게. 눈 뜰 때 ㅎㅇㅎㅇ로 시작해서 새벽에 아이고 나는 잔다로 끝날 때까지 하루 종일 쉬는 법이 없는 윤대협 최애 고인물 8인의 단톡방. 특히 나인 투 식스, 직장인이라는 죄로 회사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퇴근이라는 이름의 석방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가장 활발했다. 대조적으로 서태웅이 포함된 9인의 단톡방은 티저 공개 같은 대축제 날에나 겨우 활성화됐다. 스케줄 뜨고 나서는 공방 신청하셨는지 서로 확인하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래서 조던 님이 처음으로 먼저 카톡방에 등장했을 때. 8인 사이에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도 너나 할 것 없이 순간적인 긴장감이 돌았다. 무슨 일이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조던 님 ㅎㅇ [인사하는 이모티콘] [윤대협인사짤.jpg] 안녕하세용 자기들끼리 카톡 할 땐 인사고 뭐고 없이 다짜고짜 하고 싶은 말만 갈기면서 집단적 독백X8을 하는 주제에 보송이 앞에선 얌전하게 사회적 체면을 차리는 고인물들. 그러나 우연히도 서태웅 역시 쿠션 같은 것을 깔 줄 모르고 본론부터 바로 꺼내 드는 커뮤니케이션밖에 할 줄 몰랐다... 그래도 딴에는 예의와 범절을 차리고 싶어서 마치 업무 메일 쓸 때와 같은 서두를 넣고 말았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의견을 알려 주시면 고맙겠어요 오? 뭐죵 [귀를 기울이는 이모티콘] 그럼요 그럼요 ㄱㄱ 조던 님이 모르는 것도 있어요? ㅋㅋㅋ [귀에손갖다댄윤대협짤.jpg] 서태웅은 입을 꾹 다물고 마른침을 모아서 삼켰다. 각오를 다지고 한 문장을 쓴다. 3초 동안 심호흡을 한 뒤에 웹 버전 카카오톡에서 엔터를 눌렀다. 아이돌과 팬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윤대협과 서태웅이 서로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그리고 둘 다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 윤대협은 정답이 없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식이었고. 서태웅은 정답이 없다면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대협을 위해서. 드디어 이 질문이 두 사람 사이를 떠나 보다 객관적이고 현명한 이들에게 던져졌다. 서태웅은 카톡방에 올라오는 대화에 집중을 기울였다. 아이돌과 팬이 친구? 흥미로와요 저언니 팬픽 쓰려고 또 시동 거네 진짜 자제좀요 아 그런 거 아니고 진짜로 흥미롭잖아요;; 제 생각은 순서 문제 아닐까요? 아이돌도 친구가 있을 텐데 걔들이 팬이 될 수도 있잖음 그니까 친구였다가 팬이면 괜찮은데 팬이었다가 친구면...? 후자는 가능한가? 팬인데 뭐 계자라서 얼굴 트고 친해지고 그런 건가? 팬이었는데 같은 아이돌로 데뷔해서 친해지는 경우도 있겠지 아님 다른 연예계 종사자든가 1세대 아이돌은 팬클럽 네임드랑 지금도 밥 먹고 그러던데? 복귀 프로젝트 예능에서 봤음 와 진짜 그런 게 가능한 시대가 있었구나 팬이랑 결혼한 배우도 있지 않나? 뮤지컬 배우들은 팬클럽 지기랑 아예 카톡을 트던데 거기도 대형 배우들은 못 그럴 걸 이건 다 사이즈의 문제다 맞는 거 같음 보는 눈이 많으면 팬이랑 가까이 지내긴 어렵지 근데 연애도 아니고 친구인 게 문제가 되나? 실제로 여돌은 여덕이랑 찐친 바이브던디 맞아 팬이 결혼하면 축하해 주고 막 그러잖아 그건 그려 솔직히 남돌판은 여덕이 대다수라 친구? 놀구있네 되는 거 같음 ㅇㅇ 여돌 생각하면... 팬이랑 충분히 친구 먹을 수 있을 듯 여기까지 읽었을 때 서태웅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 연애 가능성 때문에 아이돌과 팬이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윤대협과 서태웅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토론은 거기서 순순히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아닌 거 같음 이렇게 일방적인 친구 관계는 없다 그것도 맞음 누가 친구한테 혼자서 비싼 선물 바치고 서포트 바치고 광고판 걸어 주고 카페 이벤트 열어 주고 화보집 시즌그리팅 만들어 주고 영상 편집해 주고 전시회 열어 주고 갑자기 눈물 나오는데? 좋아서 하는 건데도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오타쿠의 깊은 병이지요 흠... 서태웅은 턱에 손가락을 대고 신중하게 의견을 검토했다. 여기까지도 서태웅은 세이프다. 왜냐하면 한 번도 선물을 보내거나 광고며 서포트며 이벤트를 주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남이 총대 멘 게 괜찮아 보일 때 조촐한 금액을 보태 본 적은 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윤대협이 서태웅보다 돈을 잘 번다. 서태웅은 자신보다 돈을 잘 버는 사람에게 뭔가를 사 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지어 옷도 잘 입는다. 전반적으로 모든 취향이 서태웅보다 분명하고 몇 수 위로 세련되게 느껴졌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이 뭔가 골라 줘 봤자 쓰레기를 건네는 일이 되리라고 서태웅은 굳게 믿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돈 낭비를 하지 않고 오로지 공방, 행사, 콘서트, 해외투어만 조졌다. 광고며 서포트며 이벤트를 주최한 적 없는 이유는 당연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서태웅은 편지조차도 보낸 적이 없었는데 이것도 원인은 유사했다. 괴멸적인 말재주로 빈 종이를 채울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태웅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덕질을 해 왔다. 최애와의 독점적인 연락은 과연 서태웅이 할 수 있는 일일까? 문제는 거기 있었다. 서태웅은 계속 올라가는 스크롤을 따라간다. 너무 열심히 읽느라 타자칠 시간이 없어 최소한의 리액션조차 끼울 수 없었다. 보송이의 그런 반응에 익숙해진 고인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돈 쓰는 것만 문제가 아녀 이렇게 일방적으로 찾아가서 만나는 친구가 세상에 어딨냐 그것도 맞다 마치 부산 사는 친구가 매번 서울 와야만 만나주는 이기적인 서울놈 같음 ㅇㅇ 수원 사는 애 홍대로 부르는 쓰레기 서울러 그 자체 아 절교각이죠 솔직히 내가 이 정도로 윤대협한테 갔으면 윤대협이 나한테 올 때가 됐다 ㅋㅋㅋㅋㅋ ㅇㅈ 이 지점에서 서태웅은 어쩔 수 없이 움찔하고 말았다. 바로 얼마 전에 집 앞에 자신을 데려다주느라고 서 있었던 윤대협의 자차가 떠올랐기 때문에... 서태웅의 양심을 저격한 줄은 꿈에도 모르는 고인물들은 계속해서 토론을 이어갔다. 친구는 동등한 관계인데 아무래도 팬은 을이지 그렇네 친구 먹고 싶어도 쉽지가 않겠다 ㅇㅇ 접근성은 그 다음 문제인듯 예전에 다른 판 얘기 들은 건데 거기는 오디션 출신으로 만든 그룹이라 연생 때부터 팬이 있었단 말야? 근데 멤버 중 한 명이 팬들이랑 친목하길 너무 좋아해서 자기가 막 단톡방 만들고 먼저 번호 따서 카톡하고 이지랄했다는겨; 헐 미친 레알로? 나도 들었음 거기 유명함 같팬들이 더 열받지 그런 건 사생 아님? 그게 사생인지 아닌지로 겁나 머리채 잡고 싸운다고 들었음 ㅇㅇ 모니터를 바라보는 서태웅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알 리 없는 고인물들은 흥미진진하게 썰 푸는 자를 부추겼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데뷔하고 나서도 당연히 말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 근데 팬들 입장에선 오빠가 먼저 연락한 건데 그럼 어쩌라는 거냐고 할 말이 있는 거지 하긴 따지고 보면 사생은 일방적 스토킹인데 이건 일방이 아니네 진짜 머리 아프겠다 그렇다고 자기 팬 죄다 카톡하는 것도 아닐 거 아냐 그래 몇 명만 특별취급하면 당연히 난리 나지 똑같이 돈 쓰고 시간 써서 덕질하는데 야 솔직히 사생도 예쁘면 오케이인 남돌이 한둘이냐? ㅇㅈ 레알이죠 ㄹㅇ 카톡 튼 것도 솔직히 얼굴 봤겠지 뻔하다 뭐 골라잡아 사귈 수 있는 미래여친팜으로 생각하는 거임? 우웩 토나와 그 꼴 보고도 탈덕 안하는 게 신기 한남들 이래서 개노답임... 남돌 파는 건 미친 짓이다... 제발 신이시여 정의로운 윤대협 중성화를 허락해 주세요 미친거아냐 ㅋㅋㅋㅋㅋㅋ 앗... 죄송합니다 조던 님 농담입니다; 네 알아요 강아지도 아닌데요 ㅋ ㅋ ㅋ ㅋㅋㅋㅋㅋ 갱얼쥐 윤댕협 [강아지귀쓴윤대협팬싸짤.jpg] [미친귀여워죽을래짤.jpg] [귀여워서 사망 이모티콘] 금방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한 대화 덕분에 저절로 올라가는 스크롤을 무기력하게 올려보내며 서태웅은 잠깐 눈썹 사이를 엄지로 꾹 짚었다. 너무 여러가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서태웅 입장에선 K팝 덕질의 대법관이나 다름없는 8인 사이에 굵직한 의견과 반론이 오갔고 소수의견도 있었다. 모두 적절한 사례가 제시되었고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더욱 헷갈린다... 판결문이 없는 재판 속 홀로 피고인석에 서 있는 서태웅은 좌절감을 느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8인의 대화는 어느새 친구 논란에서 연애 논란으로 흘렀다. 아무래도 돌덕이 가장 예민해지는 아킬레스건은 오빠의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예쁜 팬들 어장으로 쓰는 건 또라이짓이지만 연애 자체는 또 다른 얘기 아녀? 난 내가 결혼한 뒤로는 아이돌 연애에 무조건 쌍심지 켜기도 애매하더라... 리터럴리 내로남불 리터럴리 내로남불 ㅋㅋㅋ 것도 맞네 언니는 유부녀니깐 ㅇㅇ 난 결혼해서 좋아~ 인생 안정된 지점이 있음. 이게 맞는 사람이 분명 있거든? 특히 남자는 솔직히 결혼하면 이득이 훨씬 많지 ㅋㅋㅋ 근데 팬들 속상하니까 절대 연애하지 마! 이러기가 쫌 양심에 찔린다고 해야되나 머 내 입장은 그랴 연애 자체보다 기만이나 럽스타가 더 문제 아니야? 근데 솔직히 숨길 수밖에 없잖아 그럼 자동으로 기만 아님? 것도 그렇네 안 숨기면 그것대로 족같고... 1세대 때는 공개 연애도 많았었지... 야 그것도 평화롭진 않았어 공개된 여자 쪽은 면도칼 받고 그랬다 ㄷㄷ 어느 시대나 아이돌 연애는 살벌하구먼 난 갠적으로 축복이 찾아왔습니다 이게 최악임 아 그건 최악이 맞죠 제발 아이돌들 성교육도 안 받은 거니 노콘노섹좀요 ㄹㅇ 그냥 인간으로서 정이 떨어짐 계획없는 임신시키는 남자? 개최악 걍 30대 될 때까지는 잘 숨기면서 살다가 30대 중반에 결혼하면 좋겠다 솔직히 어릴 때 팠던 1세대 오빠들 40줄 넘어서도 결혼 못하는 거 보면 그건 그것대로 좋아 보이진 않음 어지간히 폐급인가보다 싶기도... ㅋㅋㅋ진심 이렇게 보니까 객관적으론 어쩌라고이긴 하네 한창 때는 연애하면 지랄 다 늙으면 결혼도 못하냐고 지랄 그래 난 지랄맞은 오타쿠야 미친시애미야 그냥 인정할란다 누가 내여자 욕했어? 가만안둬 망치 들고 갑니다 또 시작이네 하 근데 윤대협 와꾸에 연애 안 했을 리가 없지 않냐 솔직히 아 제발 이 주제 너무 괴로워 그만 말해 현실을 봐 오타쿠야 저 얼굴로 연애를 못할 리가 없잖아 니가 여돌이면 대시 안함? 너 T야? 팩폭도 폭력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악 존나 하죠 될 때까지 하죠 도끼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찍어 봤을듯 하긴 모쏠인 것도 이상해 그냥 잘 숨기는 거 아닐까? 비밀연애도 윤대협이 한다 그런 거라면 제발 평생 숨겨주길 잘하고 있어 이 정도면 그래 애써 망상하지 않는 한 정병은 안 생긴다 서태웅은 카톡 창에 무심코 '한 번도 안 해 봤대요'라고 썼다가 지웠다. 아무리 덕친이라도 사적인 통화 내용을 발설할 수는 없다. 정보의 출처를 추궁받았을 때 할 말도 없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서태웅은 오늘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서태웅이 윤대협의 비밀이고 기만이고 특별이었다. 그게 우정이든 뭐든 간에. 서태웅은 흥미로운 의견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카톡 창을 껐다. 핸드폰에 쌓인 카톡 알람에 이모티콘이 몇 개 보였다. 조던 님이 안 보는 동안에도 고인물 덕친들은 알아서 하고 싶은 얘기를 떠들 것이다. 모두 유용한 조언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은 건... 그들의 존재 자체였다. 서태웅이 스무 살이 지나 처음으로 만든 8명의 친구들. 아직 친구라고 불러도 되는지 확신은 없지만. 지인 정도가 맞을지도 모르지만. 저쪽은 그 정도도 생각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서태웅은 강백호 이후로 타인과 이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맺어 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게 같고. 모르는 걸 물어 볼 수 있고. 회사 사람들 다음으로 자주 보고. 고생 끝에 도파민을 얻은 덕질 현장에서 내일 보자면서 헤어지는 사람들. 학교 다닐 때도 내일 보자 인사할 사람이 없었던 서태웅에게는 낯설고 신기하면서도 어느새 꽤 소중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말은 서태웅에게 아주 중요했다. 똑같이 돈 쓰고 시간 쓰는데 몇 명만 특별취급하면 당연히 난리 나지. 그렇다고 자기 팬 죄다 카톡하는 것도 아닐 거 아냐. 연애 자체보다 기만이 더 문제 아냐? 그런 문장들이 머리를 뎅 치고 그대로 새겨져 버렸다. 서태웅이 덕친을 실망시키는 것. 정말 피하고 싶지만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 받지 못하면 쓸쓸하게 처음 생긴 친구와 멀어지게 되겠지. 서태웅이 감당하면 되는 일이다. 어쩌면 이미 실망시킬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뒤에서 몰래. 하지만 윤대협이 팬들을 실망시키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일에 일조할 순 없었다. 차라리 탈덕하는 게 낫다. 서태웅은 결심했다. 윤대협과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다. 윤대협을 포기시켜야 한다. 서태웅은 진지하게 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