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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3.07.02

상암의 꽃 6

불면의이쑤신

그날 이후 서태웅은 한 달 정도 아무것도 안 했다. 영상도 안 보고 움짤도 안 땄다.

역생카 이벤트가 끝난 2월과 3월은 컴백 전까지는 아무 떡밥이 없는 휴식기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까진 그런 때조차 예전 영상 다시 꺼내 움짤 찌고 교차편집 영상 만들고 새로 유행하는 틱톡 챌린지 노래를 편집하며 콘텐츠를 쪄내던 윤대협움짤봇 운영자였지만. 진짜로 아무 업데이트가 없었다. 대협 프사들의 비계에 움짤봇 탈덕한 거냐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서태웅의 뇌는 지금 새로운 윤대협 콘텐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서태웅은 깨어있는 시간 전부를 그날 윤대협과 나눈 대화를 복기하는 데 썼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윤대협은 화면 속에 없었다. 아무도 찍어 놓지 않았다. 녹음조차 안 남았다. 오직 서태웅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심지어 누구도 동행하지 않아 그때 그런 말을 했던 게 사실인지, 그런 표정을 했던 게 진짜인지, 아니면 서태웅의 착각이나 왜곡인지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윤대협의 모습을 화면 속에 가둬 놓고 백번 천번 다시 보고 또 보는 방식만 햇수로 5년째 하고 있던 서태웅은 완전히 길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잊어버리지도 못했다. 일에 집중하다가도 샤워할 때도 운동 한중간에도 방심하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윤대협의 목소리.

태웅이 형.

탈덕하는 거 싫어. 아니 안 돼였던가? 헷갈리는 디테일이 많았지만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만 알 수 있는 기묘한 공기만큼은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었다. 이상하게 심장이 따끔거리는 것 같았던 기분도.


대형 아이돌은 주로 여름에 컴백한다. 그 전까진 팬들에겐 잠깐 숨 돌릴 수 있는 휴식기지만 아이돌에겐 그렇지 않다. 다음 활동을 위해 가열차게 준비하는 기간이다. 활동기는 눈에 띄게 바쁜 시기라면 준비기는 드러나지도 않게 정신이 없다. 게다가 준비한 결과가 반응이 어떨지 알 수 없다 보니 한없이 불안해지고 예민해지기도 한다.

팬들은 적당히 쉬면서 일상을 돌본다. 아니 사실 쉴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직장인 오타쿠들은 연차를 다 소비한 업보를 뒤집어쓰고 오랜만에 업무에 집중했다. 불면 같은 프리랜서들도 일 년 중 가장 일 귀신이 되는 시기였다. 그러면서 오는 스트레스는 출퇴근길에 예전 영상을 복습하거나 카톡방에서 라떼는 추억팔이를 하면서 풀었다.

서태웅은 두 달 정도 걸려서 겨우 윤대협 독대의 후유증에서 회복되었다. 그래서 돌아올 컴백을 대비해 외주도 몇 개 맡아서 돈을 모으고. 가족들과 오랜만에 여행도 가고. 유월에 식장을 잡았다는 강백호 채소연 예비부부 청첩장 모임도 가고. 예전처럼 영상 복습하면서 움짤도 꾸준히 올렸다.

같이 영상회하고 놀자는 덕친들의 감사한 제안은 정중히 거절했다. 아무래도 새 떡밥 없다고 심심해하는 선량한 덕친들의 얼굴을 보면 윤대협 독대 사건(?)을 털어놓아야 할 듯한 강박이 생길 것 같았다. 딱히 숨기고 있는 건 아닌데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은 예감이 느껴졌다.

이제 다시 정상적인 덕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어느 새벽.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기 전까진.

서태웅은 알람인 줄 알고 황급히 폰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었다. 그런데 화면이 빛나면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강력한 데자뷰를 느끼며 눈매를 좁혀 초점을 맞춰 응시한 좌상단의 숫자는 3:17. 장난 전화나 보이스피싱이 오기에도 부적절한 시간이다. 서태웅이 발음이 다 뭉개진 소리를 웅얼웅얼 내뱉었다.

"여부세어..."

맑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때린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미안. 내가 깨웠지."

윤대협이었다.

서태웅은 침대에 엎드린 채 반쯤 상체를 일으킨 어정쩡한 자세로 굳었다.

한참 동안 굳어 있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도 역시 아무 말이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숨소리만 들렸다. 다시 잠들 것 같아서 서태웅은 반신반의 상대의 존재를 확인했다.

"여보세요...?"

"응. 태웅이 형. 나 윤대협이야. 기억해?"

기억하냐고? 미친 사람인가? 어떤 최애가 팬한테 이딴 걸 물어보지? 서태웅은 잠깐 열이 뻗쳐서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해. 여기서 정상인은 나뿐이다.

서태웅은 지극히 당연한 질문을 뱉었다. 목이 다 잠겨서 원치 않게 칭얼거리는 듯한 말투가 된다.

"왜 전화했어..."

"나 시간이 뜨는데 할 일이 없어서. 외로워졌어. 잠깐만 통화해 주면 안 돼요?"

지난번 일을 곱씹다가 알게 된 건데 이 자식은 뭔가 부탁할 때만 존댓말을 쓴다. 절대로 팬한테 반말 안 하기로 유명한데 왜 이렇게 맞먹는가 했더니 불리할 때 필살기를 쓰려는 밑 작업이었나 보다. 진짜 머리 좋고 짜증 난다. 그런 점도 좋아서. 할 수 없이 장단을 잠깐 맞춰주기로 한다. 어차피 잠은 다 깼다.

"이 시간에 뭐 하는데..."

"뮤비 찍어."

이런 미친. 갑작스러운 스포일러에 서태웅이 입틀막을 했다. 정말 컴백이 코 앞이구나. 어쩔 수 없는 팬심이 떨린다. 윤대협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나불거린다.

"이번엔 댄서분들 많이 나오셔서 시간이 좀 걸리네. 첨엔 재밌어서 보고 있었는데 테이크가 길어진다. 다 같이 찍는 건 거의 다 했고 독무만 좀 남았는데 잠들기 싫어서 전화했어."

"왜 나한테 전화를..."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수화기 너머 윤대협은 아주 서운하다는 듯한 침묵을 주더니. 이어 속삭이는 것처럼 대꾸했다.

"나 이럴 때 전화할 사람 없잖아."

서태웅은 어쩔 수 없이 잠시 먹먹해졌다. 아니 그러니까 나를 포함해서 그럴 때 전화할 사람이 없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차마 그렇게 팩트를 들이밀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눈을 비볐다. 아무 대답이 없자 윤대협이 조금 웃었다.

"나 이거 허락이라고 생각해도 돼요?"

서태웅은 응석쟁이 아이돌을 포기하기로 했다.

"맘대로 해라..."

윤대협은 의젓하고 온순하게 말했다.

"응. 받아줘서 고마워요."

최애가 고맙다고 하면 팬은 뭐든지 하게 되어 있다.

그래도 서태웅은 하나는 확인해야 했다. 바람직한 팬의 자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각오와 함께 목청을 좀 다듬고 깨끗한 음성으로 묻는다.

"하나만 물어보자."

"네. 형."

"왜 나지?"

윤대협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서태웅은 기다렸다. 대답을 정리하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서태웅은 항상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한참 후에 윤대협이 전혀 정리되지 않은 답변을 두서없이 늘어놨다.

"사실 처음부터 형이 다른 팬들보다 특별했던 건 맞아. 자주 와 줘서도 있고. 그런데 팬싸는 전혀 안 와서도 있고. 아 억지로 오라는 거 아니고 그냥 나는 그게 신기했어. 편지나 선물도 전혀 없고. 이것도 달라는 말 진짜 절대로 아니고 그냥 다른 분들하고 달라서. 남자여서 마음이 편한 것도 맞고. 여자분들한테 일정 이상 가까워지는 건 그냥 하도 조심하라고 세뇌를 당해서 좀 본능적으로 뭔가 그래. 실제로 함부로 그러면 안 되는 것도 맞고."

"나한텐 함부로 한다는 거 알긴 아네."

"설마."

윤대협이 짧게 비웃는 듯한 소리를 섞어 대답하는데 약간 화났나 싶어서 서태웅은 조금 쫄았다. 얼른 회수했다. 아니면 말고.

"그냥 잘 표현이 안 되네..."

말 잘하기로 유명한 아이돌 윤대협이 정말 곤란하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서태웅도 할 말이 없어졌다.

"형이 이거 대답해 주면 좀 더 생각해 보고 다음에 꼭 말해 줄게."

"뭔데."

"왜 나 좋아해?"

서태웅은 입을 다물었다. 치사한 새끼...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자 윤대협이 후후 하면서 작게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점점 더 웃음소리가 커지더니 곧 배를 잡고 깔깔 폭소하는 소리가 난다. 퍼포먼스를 보고 입덕한 서태웅에게 지금껏 논란 한번 없었던 윤대협의 인성은 플러스 요소인 줄만 알았는데 사적인 대화를 나눠 보니 그다지 성격이 좋기만 한 건 아닌 것도 같다.

그런 모습도 좋아서 문제다. 서태웅은 기나긴 한숨을 쉬었다.

윤대협은 전화를 끊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새벽이 깊어진다. 어차피 기상 시간에 가깝다. 서태웅은 스피커폰으로 바꿔 놓고 세수를 하러 갔다. 윤대협은 잠깐 끊으라는데 들은 척도 않고 서태웅이 세수하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평소 몇 시에 일어나는지, 그다음엔 뭘 하는지, 한참 서태웅의 하루 일과를 캐물으며 중간중간 자신의 신변잡기를 주절주절 떠들었다. 어디서도 알 수 없던 아이돌이 아닌 인간 윤대협의 루틴 이야기를 듣는 건 신기하고 정보 값이 많았다.

윤대협의 대기 시간은 두 시간 정도였다.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이제 끊어야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공교롭게도 서태웅의 평소 기상 시간이 다 되었다. 서태웅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응석쟁이 최애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또 전화해도 돼요?"

"아니. 차단한다."

"하 진짜 쉽지 않다."

"탈덕하기 싫으니까."

"그건 나도 싫어."

"차단할게."

"좋은 하루 보내."

"너도... 뮤비 촬영 힘내고..."

잠깐 말끝을 흐리다가 서태웅이 용기 내서 덧붙였다.

"고마워."

윤대협은 잠깐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윤대협을 부르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으로 진짜로 짜증이라고 할 것까진 아닌 어떤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섞인 듯한 한숨을 내쉬면서 윤대협은 말했다.

"새벽 세 시에 다짜고짜 전화하는 사람한테 고맙다고 하네."

"그게 고마운 게 아닌데."

"나 진짜 끊어야 돼. 미안해. 또 전화할게. 안녕."

진짜로 전화가 뚝 끊겼다. 아니 차단한다니까...

서태웅은 묵묵히 통화목록으로 들어가서 방금 수신한 전화번호를 차단하면서 생각했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냥 항상 하는 그 얘긴데. 아이돌 해줘서 고맙고. 밤새 뮤비 찍고 컴백 준비해 줘서 고맙고. 곧 컴백해 줘서 고맙고... 탈덕하지 말라고 해줘서 고맙고...

갑자기 또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세차게 고개를 한 번 흔들고 서태웅은 침대에 다시 드러누웠다. 수면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많이 깎였기 때문에 오늘은 아침 운동 째고 한 시간 늦게 출발해야지.

팬한테 전화번호를 차단당한 아이돌 윤대협은 그러고도 사적인 연락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통해 친구 추가한 듯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보이스톡을 걸었다. 서태웅은 최초 한 번은 성실하게 받아줬지만, 늘 마지막엔 차단 의사를 밝히고 끊었고 실제로 차단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인스타 디엠이 왔다. 서태웅이 윤대협 계정 팔로우와 이벤트 참여용으로만 쓰는 알계에. 소름이 돋았다. 빅 브라더 세상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소속사의 이벤트에 참여한 적도 있고 당첨된 적도 있으니 당연히 자신의 계정이라는 게 털려있었을 터. 철저한 개인정보 관리도 소속사라는 강력한 빽을 갖춘 최애 본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건 차단할 수가 없다. 그럼 또 알계를 파야 하는데... 너무 최근에 만든 알계는 당첨 확률도 낮아지고... 서태웅은 이를 갈면서 윤대협과 디엠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팬은 그러면 안 되는데. 지금 내가 병크를 실시간 갱신하고 있는 건가. 누구에게 뭘 들켜도 당당한 순덕질만 해 온 서태웅의 배덕감은 엄청났다. 두려움과 불안함에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이상하게 얼굴이 붉어졌다.

윤대협은 아무 때나 디엠을 보내는 주제에 곧바로 답장하는 편은 아니어서 서태웅 역시 곧바로 답장할 필요가 없었다. 편하긴 하지만 서태웅은 윤대협이 왜 이러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버블이 있는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난 돈도 냈는데. 윤대협은 버블에 성실한 편은 아니고 셀카보다 제철 낚시나 NBA 얘기를 더 많이 올려서 가끔 팬들을 속 터지게 하는 편이었다. 지금 나한테 보내는 거 버블에 올리는 게 돈값하고 좋을 것 같은데.

[목소리 듣고 싶은데] [통화가 안 되니까 아쉽다]

그래 바로 이런 거.

[왜 전화는 안 되지?] [사실 나 전화기 많아] [근데 진짜 싫어하는 거 같아서 안 하는 거야]

서태웅은 연달아 솟아 나오는 말풍선 속의 글자에서 시무룩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기어코 답변을 입력하는 바를 터치했다. 원래 팬은 최애가 시무룩한 걸 참지 못한다.

[싫은 게 아니고 안 되는 거지]

[왜 안 돼?]

[팬이니까]

[친구잖아]

[팬이다.]

[팬이면서 친구면 안 돼?]

서태웅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게. 되나 안 되나. 그런 경우가 있을까? 팬이면서 친구인 경우. 윤대협은 아이돌이지만 친구가 없다. 서태웅은 아이돌도 아니고 친구도 없다. 이런 걸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서태웅의 머릿속에 8개의 닉네임이 스쳐 지나갔다. K팝 팬질의 고수라 할 수 있으며 모든 암묵지와 규칙들을 알고 있는 덕친들. 나중에 물어봐야지.

[안 되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어? 팬이랑 친구인?]

[나도 모르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난 본 적이 없는데]

[그게 중요한가?]

그럼 뭐가 중요하지... 서태웅은 말문이 막혔다. 역시 글자로 소통한다고 말발이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서태웅은 하루 중 이 정도로 길게 대화를 나누는 상대 자체가 없다.

서태웅이 말문이 막힌 동안 한참 말줄임표를 띄웠다 없앴다 하던 화면에 새로운 말풍선이 떴다.

[친구해도 될 거 같을 때 차단 풀고 전화해 줘]

그러겠다 곤란하다 뭐라 말할 수가 없어 말풍선을 노려보고 있는 사이 아래에 또 하나가 떴다.

[기다릴게]

서태웅으로서는 가장 견딜 수 없는 네 글자였다. 그럴 만도 했다. 오랫동안 윤대협을 기다리는 일에만 익숙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최애가 나를 기다리는 건 견딜 수가 없었다.

서태웅은 그날 윤대협 번호의 차단을 풀었다. 하지만 먼저 연락하진 않았다. 언제 연락을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태웅은 그냥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 날의 변덕으로 또는 복잡한 스케줄의 틈바구니에 찾아오는 외로움으로 윤대협이 벼락처럼 연락할 때까지. 팬이 아이돌을 기다리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