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ARD
Writing/Series
2025.11.08

긴급 당근 금지령

불면의이쑤신

윤대협과 서태웅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외모와 실력의 조화로 농구선수 중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으며 결혼 직전에 원치 않는 바이럴을 타는 바람에 잠깐 이름을 날렸으나. 논란이 사그라들면서 대중들의 인지 속에서도 썰물처럼 빠져나가 자연스럽게 ‘그 농구선수 중에 좀 잘생긴 사람 있잖아’ 정도로 다시 자리 잡았다. 적어도 올림픽 전까지는 그랬다. 결국 천만 관중 리그가 아니고서야 스포츠 선수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전 국민에게 각인시킬 길은 메달권 또는 그에 준하는 A매치 승리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농구 팬들이 득실거리는 주말 경기 농구장 주변이 아니고서야 길에서 그들이 누군지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특히 결혼 후에는 카페나 식당에서 만난 팬들조차도 배려를 한다고 속으로만 웅성거렸지 와서 아는 척을 하거나 말을 걸거나 사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급기야 서태웅은 유니폼 벗으면 우리 팀 팬들도 날 알아보기 힘든가 보다 하는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냥 눈을 안 마주쳐서 그런 거 아냐? 난 가끔 인사해.”

믿지 못하는 윤대협을 가만히 바라보며 서태웅은 중얼거렸다.

“너는 머리… 머리로 알아보겠지.”

의외로 반박하기 어려운 지적이었다.

“그리고 잘생겼으니까.”

“너는?”

“나는 뭐… 너 옆에 있으면 별로 안 튀어.”

음. 아무래도 서태웅과 너무 오래 만난 것 같다. 거울보다 윤대협 얼굴을 더 자주 바라보는 바람에 남편이 영원히 객관성을 잃었나 보다.

뭐 상관없나. 윤대협은 굳이 그 오해를 바로잡아 주려는 무익한 시도는 하지 않았다. 아직 객관성을 잃지 않은 윤대협이 생각하기에 누가 봐도 빠질 데 없는 외모의 두 남자가 서로 네가 더 잘생겼다고 우기는 모습은 객관적으로 꼴값이었다.

그래도 장난스러운 인터뷰어들이 리그 최고의 미남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을 때마다 윤대협은 꼬박꼬박 서태웅의 이름을 말했다.

결혼 후에는 심지어 이름보다 다른 표현을 선호했다.

“아… 아무래도 제 배우자가 아닐까요?”

“아~ 또 신혼부부답게 어떤 과시를 하시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

“네. 어디 내놔도 자랑스럽습니다.”

“윤대협 선수, 물론 언제나 웃는 얼굴이시지만. 지금 정말 환하게 웃으시네요. 그래도 본인도 배우자분 못지않게 잘생긴 농구선수 하면 항상 언급되잖아요.”

“뭐… 저는 태웅이가 뽑아 주겠죠.”

“아, 가서 서태웅 선수한테도 물어볼까요?”

“네. 꼭 그래 주세요.”

그런 식으로 모두가 싱글벙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곤 했다.

서태웅에게는 재차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는 결혼 전이나 후나 리그에서 가장 잘생긴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정확히 이렇게 답했다.

“윤대협이요.”

더없이 진지한 답변.

결혼 전에는 보통 그런 질문이 따라붙었다. 어떤 부분이 잘생겼다고 생각하세요?

정확한 단어를 찾는 듯이 잠깐 눈 사이를 찡그린 채 고민하다가. 서태웅은 짧게 답하곤 했다.

“남자답게 생겼어요.”

자세히 설명할 말재주가 없었을 뿐 서태웅은 윤대협의 얼굴에 지극히 진심이었다. 자신의 외모에도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윤대협은 차원이 달랐다. 서태웅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마 선과 콧날이 만나는 시원스러운 각도나 거친 붓선 같은 눈썹 아래의 섬세한 외쌍꺼풀의 조화 같은 것. 굵직한 턱과 목 라인이 잡아 놓은 외곽선 안에 부드럽게 호를 그리는 입술.

서태웅은 그런 것을 자세하게 설명할 말재주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지만 감각으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표현이 간결할 뿐. 잘생겼어요. 남자답게.


농구 팬들이나 알아보던 신혼 초기에는 둘 다 잘생긴 얼굴 가릴 일이 없었다. 특히 비시즌 휴식일에 편의점에 슬리퍼 끌고 나갈 때는 씻지도 않고 수염도 안 깎은 채 후드나 야구 모자를 뒤집어쓰고 돌아다니고는 했다.

윤대협과 서태웅의 첫 신혼집은 넓은 도심공원에 인접한 아파트 단지 근처의 신축 주상복합이었다. 침실, 옷방, 피트니스 룸, 그리고 트로피와 팬들이 준 선물 보관만을 위한 방에 필요한 가구며 붙박이장을 채우고 나선 둘 다 이렇다 할 인테리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윤대협과 서태웅이 애용하게 된 신문물이 있었으니. 바로 국민 중고 거래 앱 당근이었다.

윤대협이 부모님 없는 집에서 잘 썼으나 이젠 필요치 않게 된 가전이라든지. 제법 좋은 걸 선물받았는데 둘 다 취미가 없는 커피머신 같은 것. 예전에 샀는데 생각보다 손이 안 가서 처박아 뒀던 새것이나 다름없는 옷이나 운동화.

그런 것을 당근하기로 처음 시도한 건 의외로 서태웅이었다. 비시즌 훈련 중에 만나는 팀 동기들마다 혹시 커피머신 주면 갖겠느냐고 물어봤더니 그중 한 명이 가르쳐 줬다. 야 태웅아 그거 당근 해. 봐봐 이렇게 다운받아서 가격하고 사진 올리면 돼. 호오. 유심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서태웅이 눈을 빛냈다.

그날 윤대협은 귀가한 서태웅이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진귀한 광경을 보게 된다. 평소엔 연락이나 받으면 다행이고 주로 음악 스트리밍 기계로만 이용하는데.

서태웅은 빛 반사가 없으면서도 수평이 맞는 카메라 각도를 신중하게 맞춰서 팔고 싶은 물건의 앞, 뒤, 양옆 사진을 찍었다. 결과물을 한 장씩 체크하며 만족스럽게 끄덕인다.

그 모든 과정을 윤대협은 주방에 서서 이온 음료 마시면서 안주 삼아 구경했다. 웬만한 예능보다 재미있었다.

판매자로서 서태웅은 압도적으로 문고리 거래를 선호했다. 적당한 박스나 종이 쇼핑백을 찾아 문밖에 내놓기만 하면 알아서 가져간다니. 집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필요 없던 물건이 사라지고 입금이 된다. 좋은데. 서태웅은 당근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팔 만한 건 이사 초기에 금방 정리됐다. 서태웅은 팔고 싶은 운동화의 당근 시세를 알아보려고 검색했다가 절판된 컬렉터 운동화를 괜찮은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걸 알아 버렸다. 고전 바이닐이나 좀 궁금했던 운동 장비 같은 것도. 평소에 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왠지 괜찮은 중고 가격에 올라온 걸 보면 혹했다. 운동용 이것저것은 새로 사기 전에 테스트용으로 써 보기엔 중고가 더 딱일 것 같았다. 쇼핑할 때 신중한 편인 서태웅은 처음엔 신경 쓰이는 게시물들을 며칠 노려보기만 하다가 ‘찜’이라는 기능을 발견하고는 조금씩 찍어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즌에 들어가 버리면 당근이고 뭐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유가 생긴 건 다음 비시즌이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찜 목록에 들어가 봤더니 아직도 안 팔린 악성 재고들이 좀 있었다. 간절한 판매 시도의 흔적이었는지 몇천원이나마 할인이 들어간 것도 있었다. 서태웅은 고심 끝에 고전 바이닐 판매자에게 채팅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구매하고 싶은데요]

그렇게 서태웅의 소소한 취미가 시작되었다.

서태웅이 구매를 원하는 운동 장비나 바이닐은 물건 특성상 택배 거래가 쉽지 않아 대면 거래가 주를 이뤘다. 근처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도 매물은 많았다. 엉덩이 가볍게 언제고 벌떡 일어나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 타러 가길 좋아하는 서태웅에겐 딱 맞는 취미였다. 운동 가는 길에 거래하거나 나간 김에 편의점 들렀다 오거나.

윤대협은 서태웅의 새로 생긴 취미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래가 끝난 뒤 사냥에 성공한 고양이처럼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는 모습도. 이번엔 뭘 당근했냐고 관심을 가져 주면 식탁에 사냥감을 하나씩 늘어놓고 자랑하는 것도. 가끔 살까 말까 고민되는 물건에 대해 지나가듯 상담할 때의 집중한 표정도. 다 좋았다. 귀여웠다. 서태웅이 무언가에 열중하는 장면이 항상 그랬듯이.

우연히 그 메시지를 볼 때까진.

그날의 당근 전리품은 종아리에 끼고 있으면 근육을 풀어 준다는 요가링이었다. 언제나처럼 윤대협에게 하나씩 꺼내 보여 준 서태웅은.

“씻으러 갈게.”

한 마디 남기고 말없이 핸드폰을 윤대협에게 건넸다.

“응.”

“땡큐.”

저 씻을 동안 충전시켜 달라는 뜻이다. 윤대협은 익히 알고 있었다. 주어도 목적어도 아무것도 말 안 해도 다 통하는 부부의 습관. 서태웅은 욕실로 향하고 핸드폰은 충전기를 향한다.

그때 화면이 빛나며 당근색 메시지 두 개가 연달아 떴다.

[저 혹시 실례지만] [여자친구 있으세요?]

윤대협의 시선이 화면에 고정됐다.

오…

그러고보니 오늘의 전리품은 적당히 여성 취향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쓰기엔 사이즈가 좀 커서 당근에 많이 올라올 법한 물건이었지. 그게 이런 복선이었을 줄은.

재미있군…

윤대협은 곧바로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날은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씻고 나온 서태웅은 비시즌에만 할 수 있는 진한 부부생활을 즐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윤대협은 심술조차 부리지 않고 평소처럼 다정하게 배우자를 안았다. 정말 아무 일 없이 그날은 지나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윤대협은 서태웅의 반응이 궁금했다.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뒤. 윤대협은 종아리에 요가링을 끼고 식기세척기에 저녁 먹은 식기들을 집어넣고 있는 서태웅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커다란 엄지손가락이 제 것처럼 패턴락을 해제한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서로의 핸드폰을 보고 싶다면 언제든 볼 수 있지만 딱히 볼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당근 모양 앱을 눌러 곧바로 채팅창에 들어간다. 맨 위에 떠 있는 메시지가 익숙했다. 일주일 전 목격했던 바로 그것. 윤대협은 바로 대화방을 눌러 봤다.

[저 혹시 실례지만]

[여자친구 있으세요?]

두 개를 마지막으로 아무 메시지도 없었다. 서태웅은 일주일째 ‘읽씹’ 중이었다. 바람직한 반응. 다행히 상대방도 더 매달리지 않을 염치는 있는 모양이었다.

윤대협은 그대로 조용히 당근 앱을 삭제했다.

당근 중독자 서태웅은 금방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윤대협이 지웠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뭔가 오류가 난 줄만 알았다. 그래서 윤대협의 품에 기대 NBA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푸념을 했다.

“핸드폰 고장 났나 봐.”

“왜?”

“당근 앱이 없어졌어. 안 지웠는데.”

“아, 그거.”

드디어 알았군. 윤대협은 뜨끔한 동시에 조금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서태웅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어 보인다.

“그거 내가 지웠는데.”

역시나 서태웅은 전혀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왜?”

막상 선뜻 소리 내 설명하긴 어딘가 치졸한 이유였다. 윤대협은 좀 생각하다가 그냥 예쁘게 웃었다.

“비밀.”

살면서 누구나 만날 법한 대부분의 사소한 곤란은 예쁘게 웃으면 해결되곤 했다. 지각을 해도 금방 용서받을 수 있었고. 남들보다 잘 나가도 질투를 피할 수 있었고. 말하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있었다. 윤대협은 그런 경험이 지나치게 많았고 특히 서태웅을 상대로는 더욱 많았다.

서태웅은 윤대협의 예쁜 미소를 의아한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고양이 탐정이 난제를 만난 것 같네. 윤대협은 힘이 들어가려는 배우자의 미간을 꾹꾹 눌러 주었다. 주름질라.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곰곰 생각하던 서태웅이 불쑥 물었다.

“다시 깔아도 돼?”

오. 그렇게 나온다. 윤대협은 결코 으름장처럼 들리지 않는 가벼운 어조로 선뜻 권했다.

“해 봐.”

여전히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서태웅은 묵묵히 주황색 당근 모양 앱을 다시 내려받았다. 로그인을 하고 여봐란듯 윤대협 앞에 핸드폰을 내민다.

윤대협은 서태웅이 쥐고 있는 핸드폰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꾹꾹 눌렀다. 채팅창에 들어가 가장 최근 것을 연다. 익히 알고 있는 두 개의 메시지를 손끝으로 톡톡 치며 선포한다.

[저 혹시 실례지만]

“이제 태웅이는”

[여자친구 있으세요?]

“당근 금지.”

서태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대협을 바라본다. 윤대협의 손끝은 여전히 서태웅이 쥐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꾹꾹 누른다. 홈. 앱 선택. 설치 삭제. 이 앱을 제거하시겠습니까? 예.

두 번째로 당근이 사라졌다. 윤대협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서태웅과 눈을 맞춘다. 여전히 동그랗게 커진 눈. 윤대협은 내심 아주 약간의 초조함을 감추고 있었다. 음. 역시 좀 쪼잔했나. 그래도 결혼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서태웅의 얼굴이 움찔거린다. 인중이 조금 구겨진다. 어깨를 움츠리며 상체를 소파 구석으로 돌린다.

하. 윤대협은 속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았다.

이 자식… 웃음을 참고 있다.

“태웅아. 재밌어?”

분하면 지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여유로운 미소를 만들어 보려 애썼지만.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문 목소리가 나갔다. 서태웅은 소파에 얼굴을 박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이건 거의 십 년 치 폭소다. 에라이 몰라. 건방진 자식. 실컷 웃어라. 결국 윤대협은 약 오름을 참지 못하고 서태웅의 겨드랑이를 실컷 간지럽혀 버렸다. 당장 저항하며 뻗어오는 팔다리를 제압하느라 엎치락뒤치락.

같이 눈물 쏙 빠지도록 웃다가 가슴팍이 맞닿도록 껴안는 자세가 되었을 때. 소파에 문대져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까만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서태웅의 발그레 달아오른 눈가에 웃음기가 남아 있었고. 멈칫해 버린 윤대협의 표정에서 확실하게 전해진 욕망이 있었는지. 서태웅이 양팔로 윤대협의 목을 거칠게 감싸는 동시에 윤대협이 서태웅에게 깊게 키스했다.

그날은 특별히 분위기가 좋았다. 서태웅의 반응이 남달랐다. 기분 좋은가 보네. 귀엽다. 그러고 보니 소파에서 하는 건 처음인데. 그래서 그런가.

윤대협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서태웅의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질투하는 윤대협이 귀여워서였다.

소파 위에 드러누운 윤대협의 벗은 몸 위에 똑같이 벗은 몸을 늘어뜨린 서태웅이 중얼거렸다.

“사이비…”

“응?”

고개만 쏙 빼서 윤대협의 넓은 가슴팍에 올린 채로 진지하게 묻는다.

“사이비 아니었을까?”

“뭐가?”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본 여자.”

윤대협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서태웅의 땀에 젖은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오프라인 ‘읽씹’이나 다름없는 침묵의 대꾸.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는 맞았구나…

윤대협의 손길에 만족스럽게 눈을 감는 서태웅의 얼굴은 불평 없이 예뻤다. 윤대협은 서태웅이 한 발짝도 지지 않고 용서 없이 달려드는 순간만큼이나 드물게 고분고분한 순간들이 좋았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붙어있는 윤대협에게조차 희소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찰나였다.

안타깝게도 서태웅의 예쁜 주둥이는 오프라인 ‘읽씹’에도 굴하지 않았다.

“나 세수도 안 하고 나갔는데…”

윤대협은 대답하지 않았다.

“면도도 안 하고…”

윤대협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후드 이렇게 하고…”

서태웅이 오른손 주먹을 박력 있게 휘둘러 후드 턱 끈을 조이는 시늉을 했다. 윤대협은 그냥 웃어 주었다. 명백하게 말하고 싶지 않은 말만 떠올라서였다. 어쩌라고. 그런다고 서태웅이 못생겨지겠냐고.

제 딴에는 제법 논리적인 어필이 먹히지 않자 서태웅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헌팅만 빼고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본다.

“납치.”

윤대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기 떼 가려고.”

윤대협이 더욱 안타깝게 고개를 저었다. 태웅이 지난번에 넷플릭스에서 본 느와르 영화가 재미있었구나.

“보험 팔려고.”

“그런 걸로 하자.”

자고 싶어진 윤대협이 적당히 대화를 끝냈다. 서태웅은 불만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윤대협이 지금껏 야무지게 정리해 둔 제 이마에 쪽쪽 입술을 갖다 대자 눈에 띄게 표정을 풀었다. 귀여워. 윤대협은 생각했다. 귀여우니까 오늘도 내가 봐줘야지.

며칠 뒤. 서태웅의 핸드폰에서 사라졌던 당근이 다른 곳에서 부활했다. 윤대협의 핸드폰에서.

“네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맘대로 써. 저거 재당근할 거지?”

윤대협이 문제의 요가링을 턱끝으로 가리켰다. 그의 입장에서 다소 재수 없는 물건으로 느껴진다는 이유로 처분을 강요하는 건 아니었다. 서태웅은 요가링을 몇 번 써 보다가 슬슬 방치하는 중이었다. 한번 안 쓰기 시작한 아이템은 다시 안 쓰는 스타일인 걸 익히 알기에. 재깍 재당근하고 싶은데 앱이 없어서 못하고 있겠거니 짐작한 것이다.

예상대로 서태웅은 재빨리 윤대협의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윤대협은 순순히 건네주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조건.”

윤대협은 씨익 웃었다.

“직거래는 내가 갈게.”

서태웅은 흔쾌하게 답했다.

“콜.”

윤대협은 서태웅이 고분고분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심 윤대협의 속박을 귀여워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귀여우니까 내가 봐줘야지. 서태웅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서태웅은 당근 거래 약속이 잡힐 때마다 채팅창에 이렇게 쳤다.

[남편이 나갈 거예요]

그럼 이런 답변이 올 때가 많았다.

[네 저도요! ^^]

아무래도 공원에 인접한 아파트 단지에는 가족 단위가 많다 보니.

한동안은 윤대협의 성실한 당근 셔틀로 평화가 유지되었다. 서태웅은 내키면 언제든 윤대협의 핸드폰을 가져갔고 윤대협도 개의치 않았다. 사실 서태웅은 아무런 부자유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딱히 남편의 귀여운 속박을 누리고(?) 있다고 보기도 애매했다.

아마 윤대협이 질투를 내세워 서태웅의 그 어떤 행동을 금지한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서태웅은 기꺼이 스마트폰을 포기할 것이고 칩거를 선택할 것이고 인연을 끊을 것이다. 농구만 아니라면. 다행히도 윤대협은 속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서태웅에게서 그 무엇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 볼 가능성만 제외하면.

서태웅 당근 금지령은 꼭 한 달 뒤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여느 때와 같이 윤대협의 핸드폰을 제 것처럼 만지작거리던 서태웅이 새로 온 당근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저기 혹시 실례지만 여자친구 있으세요?]

어디서 많이 본 메시지였다.

[너무 잘생기셔서… 괜찮으시면 커피라도 어떠세요? 제가 살게요!]

조금 더 적극적이다. 서태웅이 실시간으로 보는 바람에 곧바로 ‘읽음’ 표시가 떠서 그런지도 모른다.

서태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쿵쾅거리며 피트니스 룸으로 직행. 집중해서 발목 강화 동작을 하고 있는 윤대협의 눈앞에 액정을 들이댔다.

놀란 표정으로 화면을 읽던 윤대협의 동그란 눈이 이내 휘어졌다. 아하하하. 박장대소가 터진 윤대협의 맑은 웃음소리 속에서 서태웅은 퍽퍽 소리가 나도록 휴대폰 액정을 갈겼다. 홈. 앱 선택. 설치 삭제. 이 앱을 제거하시겠습니까? 예.

윤대협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방글방글 웃으면서 서태웅을 쿡쿡 찔렀다.

“당근에 사이비 되게 많네.”

서태웅은 한 번에 뭔 소린지 못 알아듣는다. 시간차를 두고서야 한 달 전에 자신이 한 말이 그대로 돌아온 걸 깨닫는다. 안 그래도 부아가 잔뜩 치민 표정이 더더욱 험악해진다. 빈말로도 고운 얼굴은 아닌데 윤대협은 자꾸 웃음이 났다. 계속 보고 싶었다. 귀엽고.

“조심해야겠다. 그치, 태웅아.”

“넌…”

서태웅이 뭐라고 반박하려다 입을 꾹 다문다. 험악했던 얼굴이 점차 진지해진다.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윤대협은 내심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태웅은 윤대협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한다.

“넌 세수 안 해도 잘생겼어.”

윤대협이 입술을 말았다. 어떡하지.

“수염 안 깎아도… 후드 쓰고 나가도…”

너무 귀여워서 어떡하면 좋지.

“사이비 아니야… 플러팅이야…”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서태웅이 중얼거린다. 세상 심각한 얼굴에 윤대협도 같이 심각해진다. 심각하게 귀여워서.

서태웅이 두 손을 뻗어 윤대협의 얼굴을 턱 붙잡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못생겨 보이지…”

윤대협은 그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심각한 사랑의 고민에 빠져 있는 눈앞의 하얀 얼굴을 마주 콱 붙잡고 바로 뜨거운 키스. 얼른 허리춤을 붙들고 번쩍 들어 올려 침실로 납치했다. 질투하는 서태웅! 그건 너무 심한 자극이었다. 오래 참았다. 이 정도면 칭찬받아도 괜찮아.

결국 서태웅도 윤대협 당근 금지령을 선포하며 두 사람의 신혼집은 전면적 당근불가구역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인간 세상의 미추에 관심이 전혀 없는 듯한 서태웅이 윤대협에게 일편단심 푹 빠진 이유를 다들 농구 때문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윤대협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윤대협만은 그게 다가 아닌 걸 아주 잘 알았다. 서태웅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의 미추를 누구보다 날카로운 오감으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윤대협의 껍데기를 포함해서 모든 구석구석을 아름답다 여겼다. 절대 헷갈리게 하지 않았다.

배우자가 서태웅이라고 공개한 후부터 윤대협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 밝힌다는 코멘트를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윤대협이 서태웅에게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이목구비의 형태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었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곧지만 뻣뻣하지 않은 자세, 투명할 정도로 단순한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 생활 속에서는 틈만 나면 약간 졸고 있어 느릿하다가도 농구할 때면 놀랍도록 날렵한 움직임, 그 다채로운 스펙트럼, 느긋하고 쿨할 때도 불꽃처럼 열정적일 때도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고요함, 그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한 머리칼과 피부와 눈동자와 입술의 색 대비, 깊게 집중할수록 살짝 벌어지는 아랫입술의 둥그런 각도, 무엇보다 자신을 향해 절대 헷갈리게 하지 않고 올곧게 달려드는 도전적인 시선, 이 세상에서 오직 서태웅만이 발산하는 그런 에너지에 깊이 반해 있었다. 윤대협은 서태웅을 관찰할수록 아름다운 존재라 여겼다.

그리고 자신보다 그를 정확히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었다.

그것만큼은 감히 자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