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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4.02.17

Let the right one in 1

불면의이쑤신

설원을 홀로 가로지르는 꼬마.

센도 아키라는 눈 위에 다다닷 발자국을 찍으며 달렸다. 어른들이 열심히 쓸어 놓은 길 위로 그새 얇은 레이스처럼 한 겹 눈이 뿌려졌다. 이 기세로 계속 내린다면 금방 흔적을 지워 줄 것이다. 그놈들이 보이기 전에 재빨리 탈출해야 한다.

다행히 스피드는 자신 있었다. 학교에서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달렸다는 판단이 들자, 털레털레 멈춰서서 숨을 고른다. 짚은 무릎이 욱신거린다. 달려서가 아니다.

몇 달째 밤에도 낮에도 무릎이 아프다. 키가 자란다. 좋은 일이다. 농구부에게는 더더욱. 그러나 시도 때도 없는 통증이 아키라의 예민한 기질을 날카롭게 만든다.

중학교 생활은 만만치 않다.

소학교 때와 달리 부쩍 키가 자라기 시작한 아키라. 1학년 중 유일한 농구부 레귤러인 아키라. 원치 않아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모르는 얼굴들이 아는 척 인사를 하면 때가 맞아 우연히 옆에 있던 같은 반 친구는 기묘한 표정을 했다. 동경과 부러움과 질투와 낯섦이 뒤섞인. 중학생이 된 후로 자주 만나는 얼굴이었다.

그 정도의 긴장감은 괜찮다. 별다른 갈등이 터지지 않는다면. 모르는 척 활짝 웃으면 없던 일이 된다.

하지만 점점 팽팽해지고 있다. 아키라를 둘러싸고.

3학기 들어 소지품이 몇 가지 없어졌다. 지우개, 연필 같은 사소한 물건. 처음에는 없어진 줄도 몰랐던 것들. 눈치채고도 착각인가 싶어서 미리 세어 놓기까지 했다. 도둑맞은 게 맞았다. 책상이나 가방에선 뒤지고 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용의주도하게 뒷정리까지 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아키라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유니폼이 사라진 적도 있다. 과연 이건 문제가 됐다. 고문 선생님이 전체 부원을 소집해 따끔하게 뭐라고 하는 바람에 부원들 사이 분위기만 안 좋아졌다. 선배들은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아키라는 다짐했다. 다음부터는 잃어버렸다고 해야지.

아키라의 동기들은 너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가져간 거 아니겠냐며 툴툴거렸다. 왜 네가 인기가 있는데 우리가 혼나야 하냐고. 아키라는 피해자인데 불평을 들어도 그냥 웃었다.

"담부턴 내가 선수 쳐서 여자애들한테 가져다 팔아야겠다, 프리미엄 붙여서!"

"드러운 소리 좀 하지 마. 센도, 담에 없어지면 이놈이다!"

도를 지나친 농담에도 그냥 웃었다.

용의자는 많다. 동경인지 괴롭힘인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원들 말처럼 가벼운(?) 스토킹인 건지, 아니면 고백했던 여자애가 앙심을 품었는지, 또는 그 여자애를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원한을 샀는지.

가장 불안한 건 세 번째 용의자다. 아키라에게 고백한 여자애는 한둘이 아니니 그런 여자애들을 좋아하는 남자애들도 복수 존재할 수 있지만, 그중 또렷하게 불만을 숨기지 않은 건, 그 중에서도 아키라가 얼굴과 이름을 아는 건 한 명이다.

그는 도라에몽에 나오는 퉁퉁이 같은 기질의 소년으로 아키라를 볼 때마다 있는 힘껏 째려보거나 괜스레 어깨를 세차게 부딪치고 지나가곤 했다. 아키라는 그의 거친 열정이 성가시고 가소롭고 동시에 조금 가여웠다. 소학교 때까진 연애 때문에 이렇게 표변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는데. 모두 사이좋았는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어린 시절이 그립다. 조금 커버린 아키라에겐 벌써 그랬다.

이제 아키라는 멀리서 그놈이나 함께 몰려다니는 무리의 그림자만 보여도 피해 간다. 오늘도 하굣길이 겹칠까 봐 뛰었다. 무릎이 시큰거려도 무시한 채로.

고개를 조금만 들면 하얀 하늘에서 제 살을 뜯어서 뿌린다. 하얀 하늘이 땅에 쌓인다. 아키라는 차가운 눈이 얼굴에서 녹는 것을 잠시 즐겼다.

중학생들은 생각보다 유치하다. 그런 유치함으로부터 전력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이 아키라는 서러웠다.


"다녀왔습니다."

바깥바람보다 큰 소리로 인사하며 들어가는 것이 이 집의 규칙이다. 단단하고 네모난 벽돌 이층집은 단열을 위해 천장이 낮고 창문이 아주 작다. 부엌에서 응답이 들린다. 할아버지가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웬일로 빨리 오셨네. 사냥꾼은 야생동물들의 겨울잠이 시작되기 직전에 가장 바쁘기 때문에, 아키라는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을 제외하면 혼자 밥을 먹었다.

할아버지가 끓여 준 사슴 스튜는 맛있다. 두 그릇째 비우는 아키라 옆에서 부엌 쪽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옆집에 누가 이사를 왔구나."

아키라가 숟가락을 멈췄다. 옆집은 나무로 된 오두막이다. 오늘 같은 밤에는 눈바람이 숭숭 들이칠 듯한. 고개를 창문 쪽으로 길게 빼 보지만 아키라가 앉은 자리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만 밤과 하얀 눈밭뿐.

"옆집은 폐가잖아요."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도 불이 켜져 있구나."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눈여겨 볼 때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숨소리도 없다. 사냥을 할 때처럼. 궁금증을 참지 못한 아키라가 남은 스튜를 허겁지겁 마시고 식탁 의자를 뒤로 밀었다. 창문 앞으로 다다다 달려가서 붙는다.

진짜네. 따스한 색의 불빛이 오두막의 유일한 창문에서 새어 나온다. 저 집에도 전기가 붙었구나. 아키라는 처음 알았다.

어떤 그림자가 창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더벅머리... 아이였다.

아키라와 할아버지의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관심을 잃은 듯이 창문에서 시야를 거두고 그릇 정리를 시작했다. 아키라도 도와야 한다. 하지만 왠지 그림자가 지나간 창문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실 때까지 창문 밖 오두막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그림자는 다시 비치지 않았다.


다음날도 아키라는 하루 종일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학교생활을 마쳤다.

도망치듯 교문을 지나 설원을 가로지르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해방감을 느낀다. 가슴이 꽉 조이는 무언가가 차가운 바람에 순식간에 얼어붙고, 깨어져, 조각조각 흩어진다. 그 자리엔 얼얼한 열상만 남는다.

아키라는 2년 전 도쿄에서 눈의 왕국으로 전학해 왔다. 그때부터 조금씩 예민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친구가 부족하진 않았다. 아키라는 금방 적응했다.

하지만 중학교는 또 다른 세계였다. 실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 번은 무조건 경기에 나와야 했던 소학교 체육 시간. 승패보다 즐거움이 우선이던 그때와는 달리, 중학교 농구부에는 레귤러가 있었다. 교복을 입은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레귤러와 비레귤러를 계급처럼 여겼다.

같은 소학교에서 진학했던 친구. 아키라는 지금도 가장 가까운 친구를 물으면 망설이다가 그 친구의 이름을 댈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관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분명한 거리감이 시작된 건 농구부 레귤러 멤버가 발표되던 날이다. 1학년 중에서 이름이 불린 건 센도 아키라뿐이었다. 친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같이 점심을 먹거나 하교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친구가 몰려다니는 다른 친구들을 놓쳐 혼자 남았을 때 정도.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 심심하고 딱히 대체할 사람이 없을 때에야 그 친구는 아키라에게 말을 걸 것이다.

아키라에게는 아무도 없다.

아키라는 자유다.

아키라는 외롭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없다. 쪽지가 있었다. 앞으로 3일간 눈이 그친다. 그동안 마지막 사냥을 떠나신 것이다.

아키라는 농구공을 들고 헛간으로 향했다.

가축을 기르는 건 방계의 몫이었다. 어머니가 살아있었다면 계속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래전에는 마구간, 더 오래전에는 외양간으로 쓰던 텅 빈 헛간은 천장이 아주 높았다. 이층집의 가운데를 뚫어놓은 것보다도 높았다.

헛간은 문이 없다. 뚫린 벽으로 치고 들어와 얕은 언덕처럼 쌓인 눈을 자기 키만 한 빗자루 하나 들고 쓱쓱 쳐낸다. 눈에 젖어 축축한 바닥만 지나면 그래도 바람 안 든 공간이라고 바깥보단 제법 따스하다. 여전히 입김이 나오지만.

입구 근처에 늘어진 기다란 줄을 힘껏 잡아당기면 알전구에 불이 켜진다. 그제야 캄캄한 어둠에 감춰졌던 헛간 안쪽이 보인다. 가을 추수 끝나고 남은 볏짚이 구석구석을 빼곡히 채운 채로 먼지 냄새를 풍겼다. 안 쓴 지 백 년은 된 것 같은 농기구와 청소 도구가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었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자물쇠와 두터운 사슬로 굳게 잠긴 문이 있다. 할아버지의 무기고다. 쓸데없이 큰 헛간에서 실상 기능하는 공간은 그 조그마한 방 하나다.

헛간 들보에는 농구 골대가 덜렁 붙어있다.

아키라는 들고 온 농구공을 바닥에 세 번 튀기고 가볍게 점프슛을 날렸다. 말끔하게 들어갔다. 삼 점... 아닌가? 창고에선 코트 규격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한다.

왜 이런 곳에 저런 것이 있는 것일까. 아키라는 여러 번 상상해 봤지만 썩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내진 못했다. 그건 아마 자신도 썩 재미있진 않은 사연으로 이런 곳에 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사망으로 할아버지와 살게 된 아이.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아이. 이전에 살던 인생과의 연결은 농구밖에 없는 아이. 불행하진 않았지만 행복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로 변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특히 중학생이 되고 나선 뭔지 모를 조마조마함 속에서 하루하루가...

생각을 끊기 위해 아키라는 볏짚 속에 처박힌 농구공을 굴려 꺼냈다. 반은 실내, 반은 실외인 헛간에서 홀로 날아오른다. 혼자 하는 농구는 자유로웠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즐거웠다. 외로웠다.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온 공이 아키라의 키를 넘어갔다. 입구 쪽으로 데구르르 굴러간다.

공을 따라가다가, 아키라는 맨발을 만났다.

새하얀 눈이 묻은 더러운 맨발 두 개.

맨발의 주인은 창고의 경계에 서서 해 떨어진 회색 하늘을 등에 짊어지고 아키라를 마주 보았다. 아키라보다 작은 아이였다. 마구 흩어지고 얽힌 더벅머리에 반쯤 가려진 까만 눈동자가 아키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온통 때투성이인 비쩍 마른 몸에서 그 눈동자만 티 하나 없이 반짝거렸다.

소녀?

소년?

아키라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 애는 끝이 낡아 올이 풀린 얇은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추웠다. 치마를 입고 있으니 여자아이일까? 하지만 남자아이라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 애의 등 뒤에서 정말 기묘한 냄새가 났다. 스멀스멀 신경을 갉는 지독한 냄새. 할아버지의 늙은 사냥개가 다리를 다쳐 안락사할 때 나던 냄새...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키라는 깜짝 놀랐다.

"들어가도 돼?"

허스키한 목소리. 역시 남자아이일까? 아키라는 어쩐지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들어와."

그 애는 딱 세 발자국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팔을 뻗어 농구공을 집어 들었다. 허리를 숙일 때 니트 원피스 아래 새하얗고 뼈만 남은 가슴팍이 훤히 보였다. 아키라는 움찔, 고개를 돌렸다.

깡마른 아이가 농구공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호기심 어린 목소리가 묻는다.

"이게 뭐야?"

"농구공이잖아."

"농구공."

아키라의 말을 그대로 복창한다. 농구공... 난생처음 들어 보는 단어인 것처럼. 아키라는 어이가 없었다. 농구를 모르는 사람도 있나? 정말 모르는 거 같으니 바보 취급을 하면 싫어하겠지. 친절하게 묻기로 한다.

"농구해 본 적 없니?"

절레절레. 더벅머리가 좌우로 흔들린다. 어찌나 뭉쳐 있는지 거의 움직임이 없다. 머리 감은 지 얼마나 됐을까? 불온한 호기심을 느끼며 아키라는 친절하게 그 애가 든 농구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가르쳐 줄게."

센도 아키라는 그렇게 옆집에 이사 온 아이와 일 대 일 농구 교습을 하게 됐다.


다음 날은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주 조금 더 가벼워졌다. 어차피 할아버지는 안 계신다. 인사도 생략하고 가방을 내던진 채 공을 주워 헛간으로 달린다.

그 애는 반드시 해가 진 다음에야 헛간 문가에 나타났다. 언제나 들어가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그렇게 정중할 필요 없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했다.

이름을 가르쳐 줬다. 카에데. 루카와 카에데. 그게 그 애의 이름이었다. 역시 여자애인가?

아키라도 이름을 가르쳐 줬더니 다짜고짜 성을 떼어 버리고 아키라라고 불렀다. 왠지 귀가 뜨거워졌다. 분해서 카에데라고 부르기로 했다. 카에데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카에데는 열두 살이라고 했다. 아키라보다 한 살이 어렸다. 너무 말라서 아홉 살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에데에게는 그런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자라다 만 것 같기도 한데, 어떨 땐 너무 차분해서 어른 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카에데는 농구를 빨리 배웠다. 한 번 보여준 건 다시 알려줄 필요가 거의 없었다. 깡마른 만큼 몸이 허약한 건지 다소 비틀거리고 몸싸움에 쉽게 밀렸고 금방 지쳤지만. 타고나길 스태미나가 약한 것 같았다.

처음으로 점프슛을 성공시킨 뒤 작게 주먹을 쥐는 모습이 귀여웠다. 카에데의 자세는 교본같이 깔끔했다. 하긴, 누가 가르쳤는데. 아키라는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만 으스댔다.

슛을 넣을 줄 알게 된 카에데는 드리블도 대충 하고 그것만 하려 든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키라는 그 틈을 타 조심스럽고 진지한 태도로 만난 이후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카에데. 언제 씻었어?"

"... 몰라."

한 번 더 슛.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그물을 통과. 지금은 좀 멀었는데 대단하네. 아니 이게 아니고... 아키라는 다정하게 말하려고 최대한 애썼다.

"아무래도 너는 조금 더러운 거 같아..."

"..."

카에데가 자기 옷을 내려다본다. 오늘은 청바지에 면 셔츠. 여전히 추워 보이고, 어제보단 상태가 좀 낫지만 군데군데 얼룩이 있다. 카에데는 그 이후 한마디도 안 하고 농구만 했다. 기분이 상한 걸까? 아키라는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카에데, 기분 상했어?"

카에데가 멀뚱히 쳐다본다. 표정이 거의 없어 감정을 읽기 어렵다.

"아니? 왜? 기분 좋아. 농구 재밌어."

돌아온 대답은 명쾌했다.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쉰 아키라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하이 파이브를 하자는 뜻이었다. 카에데는 빤히 그 손바닥을 바라보기만 했다. 혹시 이것도 할 줄 모르나?

아키라가 카에데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깜짝 놀랄 정도로 가늘었다. 단단한 뼈가 바로 느껴졌다. 저항 없이 끄는 대로 끌린 손을 제 손바닥 위에 어설프게 탁, 가져다 댄다.

"하이 파이브. 뭔가 엄청나게 잘했을 때 하는 거야."

카에데는 아키라에게 닿았던 오른손을 눈앞에 들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게 뭐라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카에데가 위를 향해 손바닥을 내민다. 아키라가 방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키라는 웃음이 터졌다. 경쾌하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바로 이게 하이 파이브라고 보여주듯이. 아래로 내려간 손을 반동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또 그대로 내밀면 카에데가 한번 더, 이번에는 제대로, 멋진 소리가 나는, 살짝 얼얼할 정도의 하이 파이브를 쳐 줬다.

박수갈채처럼 몇 번이나 하이 파이브를 하면서 바보같이 웃었다. 카에데도 조금 미소 짓고 있었다. 웃는 편이 훨씬 예뻤다.


아키라의 방은 다락이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아키라가 넓고 따스한 방을 다 놔두고 여기를 고집했다. 벌써 고개를 약간 숙여야 하는 낮은 천장과 좁을 정도로 아늑한 공간. 아지트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원형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줄기가 비추어 들통난 먼지 냄새도. 막을 수 없는 나쁜 것, 예를 들어 배고픈 곰이 집 안까지 침입해 온다 해도, 이 방에 있는 한 아키라까지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푸짐한 스테이크로 무사 귀환을 축하했다. 할아버지는 사냥감을 갈무리하느라 헛간을 쓰고 있다. 오늘은 카에데와 농구를 할 수 없다.

다락에서는 카에데가 사는 오두막이 잘 내려다보인다.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작업 중인 헛간 쪽으로 가는 카에데가 보일까 봐, 아키라는 해가 지고 내내 창문 밖만 살폈다. 다행히 오두막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오두막의 유일한 창문은 낮 동안 무언가로 안쪽에서부터 가려져 있었다. 해가 지고, 그것이 사라진 뒤에야, 노란 전구 불빛과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더벅머리는 카에데다. 다른 한 사람은... 키가 작은 남자. 오늘은 유달리 거칠게 왔다 갔다 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어렴풋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틀어 둔 라디오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아키라는 찜찜한 마음으로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카에데와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에 빠졌다.

등교 전 함께 아침을 먹으며 할아버지는 항상 신문을 읽으신다. 조간신문 헤드라인은 누구라도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내용이었다. 살인 곰 등장? 실종된 20대 청년의 사체, 숲속에서 발견. 출혈이 많고 목 부위 커다란 상처. 직접 사인은 경추 골절.

곰에게 공격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 방에 죽는다. 거대한 앞발에 맞으면 바로 목이 부러진다. 출혈은 뜯긴 듯한 발톱 상처로부터 추후에 발생. 모두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이다.

아키라는 식탁을 일어서기 전, 할아버지를 흘끔 쳐다봤다.

"할아버지, 정말로 곰이 그랬어?"

할아버지는 불편한 표정으로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꼬았다.

"바보 같은 소리. 곰은 겨울잠 자러 갈 시기다."

곰이 사람을 해칠 만큼 민가에 가까이 오면 수렵 허가를 받은 사냥꾼들이 팀을 꾸린다. 그렇다고 바로 죽이는 건 아니다. 며칠간 개체의 나이와 특징을 파악하고, 만약 새끼가 있는 어미 곰일 경우 숲속 깊은 곳에 먹이를 두는 등 민가 반대로 유인하여 굶주림을 덜어준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 많은 수컷인 경우 잡는 것이 빠를 수도 있다. 곰은 희귀동물이고 엽총을 든 사냥꾼도 눈 깜짝할 사이 제압당할 수 있다. 신중해야 한다.

할아버지가 곰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아키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까지 망설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럼 뭐야?"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아키라는 순순히 집을 나섰다.

할아버지도 모르는 거다. 그게 숲에 사는 짐승의 짓이라면 할아버지가 모를 리 없다. 그러니까 그건 '무엇'의 짓이 아니라 '누구'의 짓인 걸지도...

할아버지도 두려워하는 게 있구나. 아키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빠르게 걸었다.

간밤에 숲에서 누군가 사람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