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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3.07.02

상암의 꽃 10

불면의이쑤신

컴백 주는 바쁘다. 초반에는 아직 여기저기 안무를 수정하기도 해서 연습실 나오기가 힘들고. 녹화가 줄줄이 있는 건 당연지사. 끝나면 회식도 잦다.

윤대협은 모든 사녹 현장에서 스탠바이 때부터 객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예 두 손을 미간에 올려 차양을 만들어서 조명을 차단하고 끝에서 끝까지 상세하게 스캔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사녹은 애쓴다면 얼마든지 모든 팬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의 팬들은 좋아했다. 환호도 하고 손을 흔들어 주고. 윤대협도 적당히 웃으면서 골고루 응해줬다. 그 모습은 직캠으로 다 남았다.

윤대협이 누굴 찾는지까진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무심코 던진 시선에도 걸리던 눈에 띄는 사람인데. 하물며 맘 먹고 찾으면 절대 시선이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인데. 아무리 뒤져도 없었다.

그다음 녹화도. 그다음 다음도. 한 주 내내 서태웅은 아무 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주의 마지막 스케줄이 끝나고 열린 저녁 회식. 윤대협은 토꼈다. 아주 자연스럽게 땡땡이를 쳤다. 스케줄용 매니저 차 놔두고 굳이 끌고 나온 자차 운전석에 앉아 내비게이션 기록을 뒤진다. 딱 한 번 가 본 적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윤대협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회식 장소에 도착한 유명호 대표이사는 왁자지껄한 좌중을 슥 둘러보더니 고함을 질렀다. 윤대협 어디 갔냐?!?!?! 늦어도 한참 늦은 사자후였다.


강백호는 차 문을 제법 큰 소리를 내며 닫고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커다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윤대협이다. 틀림없이 유명 아이돌 윤대협이다. 서태웅이 덕질하는 그 윤대협이다...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굳어버린 강백호에게 윤대협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 혹시... 금요일 녹화 때 계셨던 FD 아니세요?"

정확히 강백호가 일하는 음악방송 중 하나다. 튀는 머리색과 우렁찬 목소리를 장착하고 다니는 강백호는 독보적으로 인상을 남기기 쉬운 스태프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돌이 전담도 아닌 FD를 기억하는 건 흔치 않다. 강백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성실하게 끄덕였다. 윤대협이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윤대협입니다."

"아니 그건 아는데요."

"정말요?"

"당연히...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아. 태웅이 형 만나러 왔습니다."

강백호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물음표가 떠다니기 시작했다. 의문을 감추는 법이 없는 편이라 곧바로 외친다.

"얘를 어떻게 알아요?!"

"전에 회사에서 캐스팅 문의가 있었거든요. 미팅 때 사옥에서 만나서 친해졌어요."

"허..."

강백호는 간발의 차도 없이 매끄럽게 나오는 대답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제 어깨에 침을 줄줄 흘리면서 졸고 있는 서태웅의 면상을 돌아본다. 이 와중에도 잘 생겼다. 열받게. 결국은 아이돌 제안이 들어갔군. 왠지 자동으로 채소연이 두 손을 모아쥐고 환성을 지르는 모습이 연상된다. 분노가 치솟아 새하얀 양 볼따구를 떡 주무르듯이 괴롭힌다.

"어이 여우! 일어나!!! 너 다른 사람하고 약속을 해 놓고 술 퍼마신 거냐?! 아 침 다 묻었어 드러워 죽겠어 이거 소연 씨가 사 준 건데 진짜 세탁비 청구할 거니까 기억하라고"

"아 씨... 이 멍터이아 미텅아(이 멍청이가 미쳤나)..."

이목구비를 마구 눌리고 당겨지는 바람에 발음이 다 새면서도 서태웅은 반격했다. 천근만근 무거운 앞발을 들어 강백호의 면상을 쭉 밀어낸다. 짭짤한 손가락 어택에 강백호는 어푸푸 질색하면서 서태웅의 부축을 포기하고 등 뒤로 돌아가서 양어깨를 붙들고 딱 세운다. 서태웅은 시야에서 사라진 멍청이가 어디 갔지 홱홱 주변을 둘러본다.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다.

윤대협은 두 사람의 격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티격태격을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다. 끄지 않은 외제 차 헤드라이트가 역광으로 은은하게 가려 놓은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그때 강백호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카카오톡 알림이었다. 채소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두 눈으로 그걸 확인하는 즉시 강백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문장부호는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전환됐다. 강백호는 서태웅의 어깨를 꾹 쥐고 아프다고 중얼거리거나 말거나 짐짝처럼 한 발 한 발 전진시켜 윤대협 앞으로 데려갔다.

윤대협은 강백호와 서태웅이 가까워지는 타이밍에 맞춰 물 흐르듯이 조수석을 열었다. 강백호는 마치 그런 업무 지시를 받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서태웅을 조수석 안에 넣어버렸다. 서태웅의 동그란 머리통이 헤드레스트에 툭 부딪히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실감했다. 음? 뭐... 볼 일 있다니깐... 괜찮겠지?

에이 모르겠다. 주말에도 퇴근을 못하고 촬영에 잡혀 있던 약혼자의 귀가 소식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강백호가 판단을 멈추고 허리를 쭉 편다. 손에 들고 있던 헛개수를 일단 윤대협한테 건넸다.

"얘 토했으니까 아마 좀 있으면 정신 차릴 거예요. 무슨 볼일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집에만 잘 넣어 주세요. 몇 호인지는 아세요?"

"아니요."

"711호. 비번 못 칠 정도로 정신 못 차리면 호출하십쇼. 부모님 깨우기가 좀 그렇긴 한데 지가 쪽팔린 거니까 뭐... 아오 나이 처먹고 이 여우 자식이 진짜 고등학교 때도 안 하던 짓을..."

탕 소리를 내면서 윤대협이 조수석 문을 닫았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흠칫 놀란 강백호를 향해 친절하게 웃는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 예..."

강백호는 머쓱하게 고개를 꾸벅이고 돌아섰다. 살짝 쫓겨난 듯이 찝찝한 감정은 처음에만 남아있었고. 곧 카톡에 재빠르게 답장하다 그것도 성에 안 차 전화를 걸면서 뛰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강백호의 넓은 등짝이 도시의 어둑한 빛방울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윤대협은 차에 다시 들어가 앉았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오른쪽을 돌아보면 문짝에 이마를 부비적거리는 낯익은 얼굴.

드디어 만났다.

윤대협은 제법 오랫동안 서태웅을 기다렸다. 몇 시간인지는 잊었다. 짙게 선팅이 된 차 안에서 불을 전부 끈 채로 어두운 아파트 주차장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윤대협은 많은 생각을 했다.

객석을 꽉 채운 팬들 사이에 찾던 얼굴이 없었을 때의 기분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낭랑한 안내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가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던 목소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럴 때는 자신도 모르게 눈썹이 흔들리거나 윗입술을 검지 옆으로 꾸욱 누르게 되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서태웅을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 현재 상황은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일어난 일과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해 보면 서태웅은 처음부터 거절했다. 아이돌과 팬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그러나 이유는 말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못하는 빈틈을 파고들어 일단 좋을 대로 우정을 쌓고 본 건 윤대협이 멋대로 한 일이다. 팬은 아이돌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새벽이든 언제든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시간이면 손을 뻗었다. 받아 주는 시간이 언제인지 알아보려는 테스트나 트라이얼의 의미도 있었다.

서태웅은 언제든지 받았다. 거절을 하더라도 일단 받고 나서 했다. 그건 윤대협 안에 자신감으로 쌓였다. 언제 연락해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갑자기 한 번에 모든 수단을 일방적으로 차단당했다.

윤대협은 처음으로 정말 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전국 최고의 아이돌 윤대협은 팬과의 소통에도 이골이 나 있었다. 그래서 팬들과 진심으로 공감하며 마음을 나누다가도, 선을 그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게 언제인지도 정확하게 알았다. 팬들이 윤대협을 향해 윤대협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편지든 댓글이든 버블이든 팬싸든 간에.

꼭 나쁜 의도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마음을 설명하다 보면 과몰입한 나머지 윤대협이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개인정보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경우가 흔했다. 윤대협은 잘 읽다가도 거기서 마음속에 선을 그었다. 이 정보는 잊어버리자. 내가 관여할 영역은 아니니까.

별것도 아닌 사안에 강력한 피드백을 주장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저런 일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거나 특정한 대답을 간곡히 바라는 말들 속에는 해당 팬들의 뚜렷한 불안이 보였다. 그건 윤대협의 불안은 아니었다. 따라서 윤대협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래서 윤대협은 못 본 척했다.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도,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대협이 보여주는 모습들의 파편을 주워 씨앗으로 삼아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도 윤대협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팬들의 상상 속의 윤대협과 실제 윤대협은 겹치는 부분이 일부 있을지언정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게퍼라는 단어를 알고 나서는 의도적으로 그런 오해를 일으켜 돈을 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같은 멤버들과 굳이 나서서 스킨십을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별로 타인의 살과 부대끼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쉬웠다.

이렇듯 팬들이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순간. 윤대협은 공감과 연결을 접고 예의와 서비스를 내밀었다. 친절한 미소를 띠고 해야 하는 일까지만 했다. 사실 그 뒤에는 윤대협을 윤대협으로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단절이 일어나고 있었다. 끝까지 팬과의 거리를 지키면서 존중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였다.

그런데 서태웅은 한 번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다.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드디어 알게 된 거절의 이유는 윤대협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아이돌은 팬을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윤대협을 위해서.

거기서 서태웅이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말했다면 훨씬 쉬웠을 것이다. 부담스럽다거나. 사적으로 친해질 생각은 없다거나. 귀찮다거나.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나왔다면. 윤대협은 선을 그을 수 있었을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존중하고 물러설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서태웅은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서태웅이 윤대협에게 밝힌 자신의 감정은 딱 두 가지다. 미안하다. 고맙다.

윤대협은 그걸 생각할 때마다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로 윤대협만 생각하는 마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오랜 팬이라도. 아무리 순수한 팬이라도. 자신의 욕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윤대협에게 반드시 무언가를 원했다. 하다못해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일지라도. 그게 팬들이 하는 일이었다. 출퇴근길에 인사를 주고받길 원하면서 기다리고. 사인회에서 적극적으로 팬서비스를 요청하고. 자기 얘기를 적은 편지를 보내고. 사용해 주기를 바라면서 선물을 보내고. 봐 주기를 바라면서 광고나 이벤트를 연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원한다.

윤대협은 그게 잘못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팬들이 아이돌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윤대협도 할 수 있는 한 보답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팬들 각자가 갖고 있는 모든 고유한 마음과 욕구를 다 받아주는 건 불가능했다. 어떨 땐 그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기만이 될 수 있었기에 침묵과 미소로 단절을 택했다.

서태웅 씨는 나한테 원하는 게 뭘까. 윤대협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지금 윤대협은 오직 하나만 확신했다. 서태웅이 윤대협을 좋아한다는 것.

그걸 믿고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조수석에 드러눕다시피 한 서태웅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강백호와의 대거리가 어느 정도 각성을 시켰는지 완전히 잠들지는 않았다. 떼쓰는 아이처럼 긴 다리를 앞으로 쭈욱, 쭈욱 뻗댄다.

윤대협은 왼 팔꿈치를 핸들에 기대어 턱을 괴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기억하기는 할까?

그러나 이 정도로 취했을 때 사람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반드시 진심으로 생각하는 바를 말하게 된다. 심지어 무의식조차도. 만약 지금까지 서태웅이 윤대협에게 철저히 숨겨 온 욕구가 있다면.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이 그걸 캐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서태웅이 갑자기 눈을 꾹 감았다가 번쩍 뜨면서 상체를 일으킨다. 빛을 처음 본 신생아처럼 눈을 찡그리더니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는 눈치다.

윤대협은 자상한 목소리로 서태웅을 불렀다.

"일어났어?"

창백할 정도로 하얀 낯이 홱 돌아본다. 어어. 그런 소리를 낸다. 다 풀린 혓바닥으로 이런 말을 한다.

"윤대협?"

"응. 윤대협이에요."

갑자기 뭐가 얼굴에 닿는다. 서태웅의 손가락이다. 아주 진지한 표정을 하고 윤대협의 얼굴을 더듬는다. 윤대협은 얌전히 눈을 감고 그다지 섬세하다곤 할 수 없는 주정뱅이의 손길을 받아줬다.

얼굴을 툭툭 치던 두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더니 쇄골쯤의 가슴팍을 턱 짚는다.

"윤대협 맞네..."

지독하게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서태웅은 고개를 쳐들고 이렇게 말했다.

"내 아이돌."

콧잔등을 잔뜩 찡그린 서투른 미소를 가득 머금고. 각각의 방향으로 미묘하게 비틀린 얇은 입술이 그리는 윤곽은 호선이라 보기에는 삐뚤빼뚤했다. 한 번도 그렇게 크게 웃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어린애가 그린 듯한 그 어설픈 미소를 보고 윤대협은 처음으로 서태웅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윤대협은 가슴팍을 짚고 있는 서태웅의 손등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약간 떨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태웅은 고개를 꾸벅거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윤대협..."

"응."

"너... 꼭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윤대협은 입을 다물었다.

서태웅은 맛이 간 목소리로 끝없이 웅얼거린다. 한 마디가 끊어질 때마다 윤대협의 가슴팍을 툭툭 친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뭐든지. 다 해. 너는 다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고... 그리고... 좋아하는 거 해... 하기 싫은 건 하지 말고... 그냥... 아무한테도... 허락받지 말고. 눈치도 보지 말고..."

주섬주섬 풀어 놓는 모든 말의 주어가 윤대협이었다.

"너는 그래도 되니까... 너는 많이... 사람들한테. 엄청나게 주고 있으니까... 좋은 그런 거를... 그러니까 너도... 나는 그거를 돌려줄 수가 없지만... 너는 하고 싶은 거를 다 하고..."

중얼거리던 서태웅이 갑자기 윤대협 앞으로 확 얼굴을 들이댔다. 가슴팍에 올려놓은 손으로 꾹 주먹을 쥐어서 멱살을 잡는 꼴이 되었다. 눈동자가 다 풀려 있는데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서 행복해야 돼."

그게 서태웅이 윤대협에게 바라는 거였다.

"알았지?"

윤대협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서태웅을 내려다보았다. 눈동자가 다 풀려 있고 안색은 창백하고 목소리는 맛이 간 주제에. 제법 간절한 그 얼굴을.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치솟는다. 하마터면 울 뻔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에 윤대협은 가까스로 그걸 다시 삼켰다. 그리고 우는 대신 웃었다.

"알았어."

제 멱살을 쥔 서태웅의 두 손을 단단히 맞잡으며 약속했다.

"꼭 그럴게."

서태웅은 또 콧잔등에 주름을 잡으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윤대협만 알아볼 수 있는 미소였다.

그러더니 만족스럽게 상체를 뒤로 젖혔다. 목이 이상한 각도로 툭 꺾였다. 윤대협은 얼른 손을 뻗어서 서태웅의 머리통이 강화유리를 세게 치는 걸 막았다. 새하얀 목덜미를 있는 대로 드러낸 채 서태웅은 잠시 코까지 골면서 잠들었다.

윤대협은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태웅의 주머니를 뒤져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이폰이었다. 그때 본 건 갤럭시였는데. 잠금화면이 떴다. 윤대협의 생일 네 자리를 눌러 본다. 틀렸다. 숫자판이 도리질하듯 양옆으로 흔들린다. 잠시 생각하다 윤대협의 데뷔일 네 자리를 눌러 본다.

핸드폰이 손쉽게 열렸다. 콘서트 중 온몸이 땀에 젖어 환하게 웃고 있는 윤대협의 사진으로 가득 찬 화면.

윤대협은 설정에서 내 핸드폰 정보를 찾아냈다. 새로 알게 된 전화번호를 제 핸드폰에 입력한다. 그러나 전화를 걸거나 거꾸로 제 번호를 서태웅의 핸드폰에 입력하진 않았다.

대신 카카오톡 앱을 열었다. 읽지 않은 빨간 알림이 잔뜩 쌓여 있었다. 윤대협은 하나도 읽지 않고 맨 왼쪽 친구목록 탭을 눌러 서태웅의 프로필을 눌렀다. 나와의 채팅창을 열었다.

술에 취한 사람의 기억에 맡기기엔 조금 간절히 전하고 싶었던 말을 적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다시 핸드폰을 잠그고 서태웅의 주머니에 원상 복귀시켜 준다. 그 덕분에 몸을 움찔거리며 깨어난 서태웅이 처음처럼 주변을 또 두리번거린다.

"음... 택시?"

윤대협은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저 가볼게요... 감사합니다..."

서태웅이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문을 열고 내린다. 힘없이 뒤로 던진 조수석 문은 제대로 닫히지도 않았다. 비틀비틀 현관문에 달라붙더니 뒤돌아서 손을 흔든다. 윤대협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윤대협도 보이지 않을 걸 알면서 마주 손을 흔들어줬다.

느릿느릿 비밀번호를 누르는 시도는 세 번 만에 겨우 성공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서도 서태웅은 한 번 더 뒤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닫히는 문에 팔이 낑겨서 화들짝 놀랐다. 윤대협은 보이지 않을 걸 알면서 계속 마주 손을 흔들어줬다.

서태웅이 복도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센서 등이 켜졌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것까지 보인다. 꾸벅꾸벅 조는 서태웅의 실루엣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거기까지 다 보고서도 윤대협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서태웅이 사라진 현관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이돌은 항상 팬보다 먼저 무대를 떠난다. 자신을 향한 반짝이는 눈동자와 뜨거운 환성과 헤어지기 싫은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열렬히 손을 흔들면서 뒤돌아선다. 그 마지막 뒷모습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도 객석의 팬들은 움직이지 않고 환성을 보낸다. 때론 앵콜까지도.

윤대협도 이제 그 마음을 알게 되었다.

정면을 보고 뒤통수를 헤드레스트에 기댄다.

윤대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는데 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참 동안 어두운 차 안에 혼자 앉아서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가려 놓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윤대협은 아이돌이 된 걸 가슴 깊이 후회했다. 처음이었다. 아이돌이라서 받은 사랑. 그런데 아이돌이라서 돌려줄 수 없는 사랑. 끝내 보답을 거절당하는 처참함, 일방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아픔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직업이 윤대협의 본질을 방해하는 경험 자체가 낯설었다. 비참한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윤대협은 다시 기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았다. 기지개를 쭈욱 한 번 켠다. 시동을 걸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고 드라이브 기어를 넣는다.

다행히 인생과 우정과 좋아하는 마음에는 경기 종료 휘슬이 없다. 그렇다면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매끄럽게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윤대협의 입가에는 다시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