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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eries
2023.07.11

서른 Second shot

불면의이쑤신

센도 아키라는 꽉 막힌 퇴근길에 운전대를 잡고 열여덟 살을 회상한다.

평소에는 운전할 때 반드시 음악을 듣는다. 적당한 자극이 없으면 금세 집중력을 잃기 때문이다. 조용한 차 안을 견디기엔 출퇴근길은 너무 지루했다.

요즘은 다르다. 생각이 많으니 배경음이 필요 없다.

생각은... 주로 과거를 향해 있다. 틈을 주면 몰려오는 기억을 애써 막지는 않았다. 내심 반가웠는지도. 흐릿해져야 마땅한 세월이 흘렀는데 왜 눈앞의 회색 도로보다 그때의 나날들이 선명하게 채색되어 있는지.

가령 열여덟 살의 어느 여름날.

센도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작은 마을인데도 정해진 장소만 오가는 일상을 좋아했기 때문인지. 벗어난 적 없는 반경이 넓었다. 바다를 따라 곁을 걷는 해안 도로. 이날까지 센도의 세상에서는 야외 농구장이 이 도로의 끝이었다. 거기서부터 집이나 학교와는 반대 방향의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새로운 영토 개척이다.

비슷한 듯 낯선 풍경 속에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되짚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간지럽다.

루카와 카에데는 매번 이 길을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지나서 센도 아키라에게 왔다. 이렇게 느긋하게 걸어온 적은 없겠지만. 바람 속을 가르는 매처럼 망설임 없고 날쌘 자전거로 스치듯이 지나 왔겠지. 지금이라도 옆을 쌩 지날 것 같다. 지나치게 생생한 자신의 상상력에 싱거운 웃음이 나왔다.

그때는 왜 그렇게 한 사람만 생각했을까?

곧 떠날 거라서?

그건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전개이긴 했다. 루카와의 존재 자체가 예측할 수 없는 전개의 연속이었지만. 마지막은 더욱 뜬금없었다. 잘 듣던 음악이 갑자기 뚝 끊긴 것 같은 느낌. 예의 상의 페이드아웃도 없이.

센도는 무언가에 몰두하면 마무리를 생각지도 못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시간관념이 없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무엇이든 끝이 있는데. 너무 좋으면 그걸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저 눈앞에 집중해 버린다. 푹 빠져 버린다.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한없이 즐거우면 그랬다. 누군가 휘슬을 불어 줄 때까지. 정확히 40분을 정해 놓고 거꾸로 가는 디지털 초 시계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주지 않으면. 마지막을 알 수 없다. 끝이 온다는 걸 잊어버린다.

루카와는 그런 센도보다도 더한 놈이었다. 가령 농구 골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하게 해가 지면 아무리 센도라도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안다. 그건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휘슬이나 거대한 디지털 초시계보다도 명백한 인류 공통의 사인이다. 그런데도 루카와는 끝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사람처럼 달려 들었지...

그랬던 놈이 갑자기 들이댄 끝이라서 더욱 황망했는지 모른다. 센도는 그때 자신의 감정이 마땅하고 자연스러운지에 대해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졸업은 예상할 수 있는 끝이다. 농구 경기 하나가 40분인 것처럼 고등학교가 3년인 건 누구나 안다. 그런 종류의 마무리였다면 조금 더 대비할 수 있었을까.

사실은 그 모든 게 핑계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짐작하기 싫었던 걸지도. 무의식에도 들여놓기 싫었을지도...

이 모든 게 곧 과거형이 되겠군.

끝이란 그런 거다.

해안 도로에서 표지판을 확인하고 적당히 골목으로 꺾어 들어간다. 낮은 담장의 한적한 주택가를 통과한다. 스즈키, 다나카, 나카무라 같은 문패를 지나친다. 하교 시간은 진작에 지나서 그런지 조용하다. 센도와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은 전혀 없다.

목적지가 보인다. 벽돌 담장에 길쭉한 현판.

카나가와 현립 쇼호쿠 고등학교.

다가서면 센도의 어깨 아래로 오는 낮은 담장 너머로 흘끗. 아스팔트 안뜰을 한 번 들여다보고.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본다. 하교 시간이 40분 정도 지났다. 진학처가 해외로 정해진 학생의 상담이라면 그다지 오래 끌진 않을 것이다. 담장 앞에 빽빽하게 늘어선 자전거 중에 낯익은 것이 있나 살펴본다. 저건가? 파란색... 센도의 눈이 맞다면 다행히 너무 늦지는 않은 것 같다. 센도치고는 흔치 않은 행운이다.

센도는 충동적으로 주머니에서 초록색 일회용 카메라를 꺼냈다. 이걸 가져온 건 충동이 아니고 계획이었지만. 사각형에 눈을 대고 낯선 쇼호쿠 정문 풍경을 네 모서리만 표시된 사각형 안에 이리저리 맞춰 보는 순간.

누군가가 건물을 나온다.

오후의 진한 햇살이 반사되는 까만 머리와 큰 키.

기다리던 사람이 아무것도 없던 풍경으로 걸어 들어와 주인공이 된다.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쪽을 보는 순간 손가락에 멋대로 힘이 들어갔다.

찰칵.

인사는 그 다음이었다.


루카와 카에데는 사진 한 장을 들고 열여섯 살 때 다니던 모교를 찾았다.

교문이 따로 없는 카나가와 현립 쇼호쿠 고등학교의 정문을 통과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버릇처럼 자전거 거치대를 힐끗 본다. 오늘은 천천히 걸어왔다. 의사가 웬만하면 자전거는 타지 말라고 했다.

방학이 시작된 학교 안은 고요하다. 특수 교실과 동아리 부실이 있는 별관에서만 목소리가 좀 들린다. 교실이 줄지어 있는 본관에는 아무도 없다. 서태웅은 천천히 걸어서 1학년 10반으로 갔다.

의자에 앉아 있는 낯선 뒷모습에 인사한다.

"안자이 선생님."

돌아보는 은사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주름지고 여전히 인자하다.

"잘 돌아왔어요."

안자이 선생님은 날씬해지셨다. 다이어트 때문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항암치료 때문이라는 말에 루카와는 깜짝 놀랐다. 이 나이에 큰 수술을 치른 것치고는 예후가 좋은 편이라며 손을 내저으신다. 그래도 과거에 운동 좀 했던 보상을 지금 받는 것 같다고. 겸손한 선생님 답지 않은 자랑스러운 말투에 루카와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 비슷한 것이 나왔다.

목재 건물이 아닌데도 교실에서는 언제나 나무 냄새가 났다. 창틀이나 책상이나 걸상 같은 것들 때문일까. 성능이 나쁜 쿨러가 꺼져서 미적지근한 여름의 실내 공기 사이로 피어오르는 익숙한 학교 냄새.

루카와는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지난 10년간 안자이 선생님을 뵙지 못했다. 한 달이 될까 말까 하는 귀국 기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고 가족들 얼굴을 보기도 빠듯했다. 고국에서 시작된 프로 농구 리그에서 감독을 맡은 미츠이 히사시 선배가 쇼호쿠 농구부 동창회를 빙자한 술자리를 소집하면 일단 시간이 맞을 때는 참석했지만 안자이 선생님이 오신 적은 없다. 그래도 매년 연하장은 꼬박꼬박 보냈다. 선생님도 답장을 주셨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이 항상 쓰여 있었다.

근황 이야기는 금방 끝났다. 안자이 선생님은 길에서 보면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마르셨지만 혈색은 좋아 보였고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묻는다.

"쇼호쿠 친구들은 자주 만나나요?"

루카와는 조금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1년에 한 번을 자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기적으로 만난다고 할 수 있는 타인은 결국 그들뿐이었다. 농구를 더 이상 하지 않는 올해 여름도 이미 약속이 잡혔다. 그래서 루카와는 나직하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앞으론 자주 볼 것 같아요."

안자이 선생님의 얼굴이 밝아졌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신다. 만족하시는 모습이다.

"미야기 군은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에 자주 봐요. 아기를 데리고 우리 집에 오기도 했답니다. 루카와 군도 만났나요?"

"주말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정말 귀여워요. 아야코 군을 꼭 닮았답니다."

루카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말 약속은 기대하고 있다. 내일 백화점에서 아기 선물을 살 예정이다.

"사쿠라기 군은 미국에서도 뜬금없이 전화를 하죠. 그때 루카와 군의 근황도 많이 알려 주었어요."

루카와의 얼굴이 심드렁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예전 별명.

"멍청이가..."

"하하! 여전하네요. 보기 좋아요."

루카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른이 되어 만난 은사 앞에서 보이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약간 얼굴이 달아오른다.

서른이 되어도 어떤 관계는 그대로다. 한 번도 팀을 바꾼 적 없는 루카와 카에데와 달리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저니맨에 가까웠다. 그만큼 괜찮은 센터를 원하는 팀이 많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도 컨퍼런스가 겹친 적은 없다. 두 사람이 코트 위에서 맞붙기 위해서는 챔피언십에 나가야 했다. 사쿠라기는 10년 내내 루카와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웠고 루카와는 콧방귀로 넘겼지만 내심 챔피언십에서 저 멍청이를 기다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매 경기를 뛰었다. 그래도 데뷔 시즌 루키 오브 더 이어는 내 거였어. 루카와는 항상 한 발, 못해도 반 발은 사쿠라기보다 앞섰다. 악착같이. 결국은 사쿠라기가 있어서 그렇게 달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농구하는 내내 앞에도 뒤에도 누군가 있었다.

앞에 있던 누군가는 언제부턴가 환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환상이어도 좋았다. 어차피 떨쳐낼 수 없다면.

노을이 시작되기 전. 햇살이 마지막으로 강렬해지는 시간이 왔다. 유난히 짙은 금빛이 되어 가로로 내리쬔다. 그만큼 짙어진 그림자가 안자이 선생님의 얼굴에 깊게 팬 곡선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부분적인 그늘 속에서 선생님이 말했다.

"농구는 즐거웠나요?"

루카와가 대답을 망설인 적이 없는 질문이다.

"네."

안자이 선생님이 웃었다. 얼굴 위에 그늘보다 햇빛의 영역이 늘어난다.

"다행이네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멀리서 부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큰 소리로 외치면서 자전거 스탠드를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운동장을 달려간다. 같이 가. 그렇게 외쳤다.

안자이 선생님이 한 번 더 물었다.

"후회하나요?"

그림자 속에 숨어 버린 반쪽의 눈매는 너그러우면서도 서늘했다. 항상 진실을 보고 있는 눈. 동시에 선생님은 항상 철없는 제자들보다 겁이 많았고. 걱정도 많았다. 아마 이 질문의 의도는 애제자가 후회하지 않기를, 더 나아가 후회하더라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지만.

루카와는 잠깐 그 눈으로부터 시선을 피해 책상의 나뭇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한 번쯤은 정직하게 묻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후회.

좁은 책상 아래 간신히 구겨져 들어 간 두 개의 다리. 두 개의 무릎. 그때보다 커졌고 그때보다 낡았다.

루카와는 미국에 간 이후 매 경기 매 순간 아낌없이 몸을 던졌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10년이었다. 한계까지 밀어붙이면 한계를 넘었고 또 다른 한계가 찾아왔다. 무한히 앞으로만 돌진하는 에너지 그 자체였다. 무엇에 마찰하든 부딪히든 깎여 나가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다소 멍들고 넘어지고 상처 입더라도 결코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밖에 살 줄 몰랐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루키 오브 더 이어. 탑 스코어러. NBA 챔피언. 닳고 찢어지고 고장 난 무릎. 다시는 그런 식으로 농구할 수 없는 몸. 좋아하던 자전거도 이제는 자유롭게 탈 수 없는.

루카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안자이 선생님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본다. 루카와의 눈도 한쪽은 짙어진 황금색 저녁 햇살 속에, 다른 한쪽은 오똑한 콧대가 드리운 그늘 속에 있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봄을 시작이라 부르고 여름을 절정이라 한다면 루카와의 농구는 여름에서 끝났다.

여름이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하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안자이 선생님의 제안을 루카와는 한사코 거절했다. 체육관이나 다른 곳을 혼자 둘러보고 싶다고 했더니 이해해 주셨다. 그러나 실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

교문이 없는 담장을 빠져나와 현판 앞에 선다. 어깨에도 미치지 않는 낮은 담장 너머로 교정을 바라본다. 주머니에 고이 넣어 놨던 사진 한 장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눈앞의 풍경과 맞춘다. 휴대폰을 꺼낸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