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의 꽃 1
불면의이쑤신
윤대협은 굴지의 아이돌이다.
서태웅은 윤대협의 남팬이다.
윤대협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5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의 센터이자 리더이자 메인 보컬이자 메인 댄서다. 어떻게 그렇게 혼자 다 하나 싶을 정도로 진짜로 혼자 다 한다. 나머지 멤버들도 밸런스가 나쁜 건 아니지만 윤대협은 엄청나게 튄다. 키도 얼굴도 실력도 재능도. 처음 데뷔할 때부터 모두가 그 그룹을 그렇게 불렀다. 윤대협네 그룹.
그룹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음방 막버자 1위 발표 때 출연자들이 다 모여도. 시상식 하다가 제야의 종치느라고 대한민국 아이돌이 한 무대에 전부 모여도. 윤대협만 머리 하나 어깨 두 개 쑥 튀어나와 있었다. 에이스 오브 에이스. 그게 윤대협이었다.
서태웅은 윤대협의 모든 무대를 다 봤다. 아직 윤대협 그룹이 무명일 때부터 모든 사전녹화, 본 방송, 미니 팬 미팅에 다 갔다. 모든 콘서트에 갔다.
미친놈이다. 윤대협에 미친 놈.
당연히 최대한 앞에서 보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른 멤버들은 이름도 잘 모르고 그냥 윤대협 그룹으로만 통할 때는 쉬운 일이었다. 이제 막 데뷔해서 별로 대박도 중박도 아닌 중소연예기획사 신인 아이돌. 사녹할 무대가 적어서 문제였지 자리가 모자라진 않았다. 공급이 적어도 수요가 그보다 더 적어서.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태웅은 타고난 체격이 대단히 좋았다. 평균적인 한국 남자는 물론 웬만한 아이돌보다도 훨씬 컸다. 가드랑 나란히 서야 견줄 수 있는 정도였다.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소수의 윤대협 팬들로서는 개빡치는 노릇이었다.
사녹이 끝날 때마다 투썸플레이스 상암E&M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그들은 이름 모를 남팬에 대한 분노를 토해냈다.
"진심 개 눈치 없어. 알아서 허리를 쭉 내리든가. 자연재해가 따로 없다니까요."
"아니 헤어스타일도 존나 보송보송해가지고. 세 줄 뒤까지 하나도 안 보여요."
"어떻게 좀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맨 뒤로 보내든가. 호빗만 한 여자들은 다 어떡하라는 거냐고요."
"스탠딩은 그래도 키 제한 있으니까 괜찮은데. 좌석으로 빼 주니까요. 이제 올 좌석이 개노답."
"그냥 남팬 법으로 금지시켜야 된다니까요. 나 지금 순간적으로 호모포비아 개심해졌음. 차별금지법 위반 발언할 것 같아서 뇌에 힘 빡 주고 있음."
"게이예요?"
"헤남이 윤대협 보러 매주 사녹을 다녀요?"
"그것도 그렇네."
서태웅은 비슷비슷한 상암동 통유리창 건물 사이를 헤매다 올리브영 문 앞에서 그 얘기를 다 들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좌석뿐인 사녹의 경우 최대한 엉덩이를 앞으로 쭉 빼고 눕다시피 해서 앉은키를 최대한 줄이려고 했으나. 쓰레기 같은 사녹 의자 줄 간격 때문에 쉽지 않았다. 원래도 긴 다리가 다 안 들어가서 다소 방만한 자세로 앉아야 했는데. 더 이상의 쩍벌은 무리였다. 쩍벌남이 되느냐 자연재해가 되느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어쨌든 서태웅은 최선을 다했다. 가급적이면 뒷줄에 앉으려 노력했으나 아쉽게도 사녹은 자리를 맘대로 지정할 수 없었다. 서태웅은 아예 최대한 일찍 도착해서 적당히 뒷자리를 선점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래도 윤대협이 너무 보고 싶을 때는 맨 앞줄을 사수했다. 팬심은 어쩔 수 없었다. 쿨타임이 차면 남들 눈이고 뭐고, 여성 평균키의 설움이고 뭐고 다 잊어버렸다. 그저 윤대협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할 수 있는 한 가까이.
무서운 여성들의 추측대로 게이인 건 아니었다. 아마도. 서태웅은 살면서 누구에게도 그다지 섹슈얼한 충동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로맨틱한 관계도 맺은 적이 없었다.
윤대협만큼 반짝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을 뿐이다.
처음에는 TV 속에서만 그럴 거라 생각했다. 데뷔 무대를 봤을 때.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부드럽고 힘 있는 음색. 기다란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휘둘러 눈을 사로잡는 춤 선. 아무런 환성이 없어도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 카메라를 똑바로 보는 커다란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 조명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반짝임. 왜냐하면 조명은 외부로부터 비추어져 하얀 얼굴에 반사되어야 맞는데. 윤대협 얼굴은 자체적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행성이 아니라 항성이었다. 아무튼 서태웅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살아있는 사람인지... 내 눈의 착각인지... 같은 땅에서 숨 쉬는 인간이 맞는지... 눈앞에서 그렇게 반짝이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어떨지. 지금보다도 가슴이 두근거릴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지.
서태웅은 네이버와 구글과 트위터를 하나씩 켜고 비슷한 검색어를 넣었다. 아이돌 사전녹화 가는 법. 한 번도 오타쿠였던 적이 없는 서태웅은 그렇게 K팝의 늪에 정수리부터 힘차게 다이빙했다.
윤대협 그룹은 2집 후속곡으로 처음 1위를 했다. 아무도 터질 줄 몰랐던 곡이 터졌다. 2집 활동기 공방부터 점점 유입이 늘었고 연말에 시상식 스케줄이 처음으로 생겼으며 첫 단독 콘서트는 체조경기장 사이즈가 됐다.
팬들의 비계와 써클 트윗에서 모든 스케줄에 다 나타나는 남신팬은 공공연한 화제였다...
남팬도 아니고 남신팬. 그럴만했다. 일단 키가 상위 5%다. 대한민국은 얼굴이 못생겨도 키만 크면 훈남 취급인데. 게다가 길이만 긴 멸치도 아니고 체격도 그림 같았다. 머릿결도 좋다. 항상 마스크를 끼고 앞머리가 제법 길고 두꺼운 뿔테 안경까지 썼지만, 돌판에서 구른 짬바가 있는 여성들의 매서운 스캔 실력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분명히 잘생겼다. 그것도 상당히.
뒤통수만 봐도 잘생김의 아우라가 나오는지. 남신팬은 가끔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찍혀서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오곤 했다. 야 이거 누구누구 아니냐. 라이벌 그룹 콘서트 염탐인가. 친한 멤버 있나. 금방 두 자릿수 댓글이 달렸다. 미친놈아 이거 일반인이야. 도촬로 신고 먹기 전에 빨리 지워. 실루엣만 봐도 아이돌이나 연예인으로 착각 당하는 퀄리티. 그게 남신팬이었다.
이렇듯 평범하고 소소하게 공방 뛰는 팬들한테는 단순히 도시 전설 같은 존재였지만. 코어 팬으로 갈수록 그의 존재는 제법 눈엣가시 쪽에 가까웠다. 특히 무명에 가까웠던 1집부터 덕질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올드팬과 찍덕 홈마들. 그들의 비계에서는 좀 더 살벌한 대화가 오갔다.
보송이또있네
미친. 거기도 있어요? ㅇㅔ브리보송에브리웨어올앳원스
얘 알고 보면 윤대협 친족 아닌가 킹리적갓심중
호텔 비공개 행사를 어케 알고 왔는데요 대체
보송이 소름인점 카메라도 없고 계정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윤대협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감 모든 무대 행사 해외콘까지 다 오는데 팬싸는 안옴 돈 많이 드는 건 절대 안하고 얼굴만 뜯어먹는 건지 뭔지 이걸 순덕이라고 하나 스토커라고 하나
백퍼 유사라고 봅니다
유사인데 팬싸는 왜 안와요 진짜 알 수가 없어요
거진가보져
거지가 해외투어는 어케 올콘을 해요 진짜 나 얘 너무 이상해서 무섭다고요 CSI에 수사좀
저만 알페스 먹나요 댑X보
보송이니? 자라
님은 진짜 미친 거 같아요... 그나저나 우리애는 일반인 알페스에서도 씹탑이네
나 해외투어에서 보송이 뒷줄 5콘 중 3콘함. 죽이고싶음. 필리핀 살인청부 전화걸뻔했음 뻥안치고진짜로 너는 트위터계정 걸리기만 해라 비계인알 100개 찍어준다 지독한 사불을 보여줄게
보송이 계정 진짜 궁금함 윤대협이랑 나페스 팬픽 잘 쓸 거 같음 포타는 안하니 보송아 내가 돈 주고 살게
님은 진짜 미친 거 같아요...
서태웅의 트위터 계정은 네 개였다. 거래계. 윤대협 움짤봇. 윤대협 인스타그램 RT봇. 그리고 윤대협 급식봇.
윤대협은 고등학교 때 농구하다 입은 부상으로 십자인대가 파열해서 군 면제다. 데뷔하고 1집이 썩 잘 되진 않았으니 이 김에 군대부터 해결하자며 4주 동안 훈련소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서태웅이 급식봇을 팠다. 윤대협... 뭐 먹고 사나. 많이 먹어야 할 텐데. 육군 훈련소 식단표를 확인하고. 처음에는 직접 요리를 만들어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서태웅은 디지털이 아닌 그 모든 장르에서 똥손이었다. 그래서 그냥 은 식판에 음식 사진을 합성해서 매일 올렸다. 윤대협이 아직 탑 아이돌은 아닐 때라서 종종 급식봇 계정이 윤대협 셀카보다 RT가 많이 되기도 했다. 정작 서태웅은 관심을 끌겠다는 의도가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만 했다. 이거밖에 못 해줘서 미안해.
순덕 오브 순덕킹인 서태웅. 그는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컴공과였고 고졸 취업한 풀 스택 개발자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서치력과 실패한 적이 없는 황금손 티켓팅은 그 덕분이었다. 취미는 운동.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으려면 유산소와 근력이 필수여서. 윤대협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잠자는 것 정도. 심각한 외골수라 한 번 빠지면 정도를 모르고 끝까지 갔다. 농구를 시작했으면 NBA를 갔을 그런 놈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빠르게 움짤봇을 만들었고 인스타그램을 스크롤링해서 자동으로 올리는 RT봇을 팠다. 움짤은 서태웅의 주요 안방 덕질이었다. 윤대협이 나온 각종 직캠, 브이 라이브, 인스타 라이브, 예능, 광고 앓는 김에 겸사겸사 만들어서 올렸다. 사담은 일절 덧붙이지 않았다. 날짜 출처 그게 끝이었다. 그런 주제에 너의 색깔 플레이리스트 어쩌고 하는 게 유행 타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했다.
2집 이후로 유명세를 타면서 윤대협도 창조 논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남돌이라 여돌만큼 말도 안 되는 걸로 시비가 털리지는 않았지만. 되도 않는 타 그룹 빠수니 견제질의 타겟이 되기 쉬웠다. 인스타 라이브에서 뭐라고 한 마디 한 거 가지고 죽자고 물고 늘어지는 일부 무리가 생겼을 때 서태웅은 연검 정화용 가짜 계정 천 개를 찍어내는 매크로를 코딩해서 24시간 자동 트윗을 돌렸다. 순덕이 빡치면 무섭다.
그렇지만... 서태웅의 등빨에 희생당한 같수니들이 조리돌림 하고 싶을 법한 인격이 담긴 사담계는 하나도 없었다. 서태웅은 말이 없는 성격이었다. 성대만 쉬고 있는 게 아니고 애초에 뇌 속에 담긴 말이 없다.
움짤 올리면서도 별다른 텍스트를 떠올리진 않았다. 그냥 무섭도록 집중했다. 윤대협 잘생겼다. 윤대협 멋있다. 이 장면... 계속 보고 싶다. 움짤 만들자. 그게 다였다. 끝없이 중얼거리도록 설계된 트위터는 서태웅과 맞지 않는 SNS였다.
만약 사담계가 있었으면 서태웅은 뭐라고 썼을까.
배고프다... 졸리다. 윤대협 잘생겼다. 윤대협 보고 싶다.
그게 다였을 것이다.
서태웅은 팬 사인회에 응모한 적이 없다. 집에서는 스밍 말고 음악 감상으론 CD 플레이어를 주로 쓰기 때문에 앨범은 직접 듣는 용, 소장 보관용 딱 두 개를 샀다. 가끔 사서 주변에 선물할 때도 있지만.
팬 사인회에 응모하지 않는 이유는... 같은 팬들 때문이었다.
서태웅은 자신이 나타나면 모두의 시선이 꽂힌다는 걸 잘 안다. 때로 한꺼번에 쏟아지는 시선은 물리적인 칼날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기차에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면 한순간에 돌아보는 따끔따끔한 눈빛을 견뎌야 하는 어머니들처럼.
트위터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남신팬이라고 부르면서도 좋은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았다. 서태웅은 사담계가 없고 그룹 공식 계정 외에는 아무것도 팔로우하지 않았지만, 구독용 비공개 리스트를 통해서 탐라를 염탐했기 때문이다. 그야 서태웅의 덩치가 너무 커서 민폐를 끼치는 것도 있지만. 그것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또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서태웅은 결론을 내렸다. 여자들은... 아이돌 외의 남자를 싫어하는구나.
다행히 서태웅도 여자들에게 별생각은 없었다. 딱히 사랑받고 싶지도 미움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최대한 나타나지 않으면 된다. 무대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팬싸는 달랐다.
애초에 팬싸에 가면 뭘 한단 말인가. 윤대협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죽을 것이다. 윤대협과 손을 맞대고 손 크기를 잰다? 죽을 것이다. 윤대협이 서태웅의 존재를 안다? 죽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남자가 가면 기분 나쁘겠지.
서태웅은 팬싸는 아예 포기했다. 그 돈으로 해외 투어를 쫓아가길 택했다. 서태웅은 돈을 꽤 잘 벌었지만 갑부는 아니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듯이 리소스는 제한적이었다. 선택과 집중.
그런 와중에 팬데믹이 터졌다.
모든 공연과 행사가 다 취소됐다. 공방 방청도 물 건너갔다. 서태웅은 하루아침에 오프라인 덕질을 다 뺏겼다. 움짤 생성만 빼고.
우울증이 오기 직전에 영통팬싸 공지가 떴다.
서태웅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다음 해외투어를 위해 모으던 돈을 그대로 영통팬싸 응모에 꼬라박았다. 물론 실물 앨범은 받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아무도 몰랐지만 서태웅은 그룹 내에서도 넘사벽인 윤대협의 영통팬싸 컷을 최다 구매자로 통과했다.
서태웅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윤대협은 당연히 서태웅을 알고 있었다.
그야 눈이 달렸으니까...
모든 남자 아이돌이 그렇지만 특히나 윤대협 그룹은 남팬이 드물다. 노래는 상큼한데 스타일링은 테스토스테론에 올인이라. 센터이자 리더이자 메인 보컬이자 메인 댄서인 윤대협의 와꾸와 피지컬을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그의 강점이 이 그룹의 최대 강점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윤대협이 매주 올리는 #오운완 릴스에서 턱걸이를 하는 동안 불끈대는 광배근에 열광했지만, 윤대협의 퍼포먼스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윤대협의 정체성은 아이돌이었고. 아이돌 윤대협을 사랑해 주는 건 여성들뿐이었다.
딱 한 명만 빼고.
데뷔 때부터 모든 무대에 와 있는 건장한 남팬. 앞에 있을 땐 물론이고 저 뒤에 앉아 있을 때도 스탠딩을 뚫고 그의 머리통이 쑥 올라와 보였다. 우리 그룹에서도 나 빼고 다 저 팬분보다는 키가 작겠지 싶을 정도.
긴 앞머리, 뿔테 안경, 마스크. 유일하게 눈에 띄는 오똑하고 날렵한 콧날은 새하얀 대리석 조각을 닮았다. 어디에 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불쑥 솟아올라 정말 잘 보인다. VIP만 참석하는 기업 행사나 호텔 행사까지도. 잠깐 손 흔들고 지나가는 레드카펫도.
대체 직업이 뭘까. 어떻게 이렇게 자유롭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할까. 혹시 재벌 3세? 윤대협은 그런 망상도 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냥 대학생일 확률이 높겠지?
가장 의아했던 건 팬싸에는 절대로 안 온다는 사실이다.
윤대협은 그 사람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마치 팬들이 팬싸에서 할 말을 미리 메모해서 준비하듯이. 윤대협은 팬싸가 다가올 때마다 만약 그 남팬이 와 주신다면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두곤 했다.
일단 이름이 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닉네임을 말해 줄지도 모르지만. 혹시 직업이 뭔지 여쭤봐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말해 볼까. 너무 실례일까. 그치만 궁금한데. 그냥 데뷔 때부터 항상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할까. 그래 그게 낫겠다. 키가 몇이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좀 아니지. 관객석에 얼굴 보이면 너무 반가워서 그날 무대는 훨씬 재밌게 느껴진다고 말해도 부담스럽지 않을까. 이런 건 잘못하면 특정 팬을 편애하는 것 같으니까 말하지 말까. 왜 처음에는 안경도 마스크도 안 썼는데 요즘은 쓰냐고 물어봐도 되나. 얼굴 까먹을 것 같으니까 한 번만 벗어주시면 안 되냐고 하고 싶은데 그것도 너무 갔나. 나보다는 어려 보였는데 몇 살이냐고는 물어봐도 되겠지.
어쨌든 감사하다고 해야지. 꼭 그래야지.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런 팬도 있겠지. 무대만 좋아하는 분. 아니면 팬싸는 역시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부담스러워서... 아니 하지만 해외 투어는 전부 오셨는데... 스탠딩 맨 앞줄 오신 날에는 일부러 윙크도 하고 손 인사도 했는데. 앵콜곡 폰 들고 찍으실 때는 가져가서 셀카 영상도 많이 남겼는데. 하지만 윤대협이 안 하던 트위터 서치까지 열심히 했는데도 온라인에 그 영상이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대체 날 좋아하는 건지 아닌 건지.
아이돌 일에 익숙해진 윤대협은 두 가지 종류의 대우에만 익숙했다. 전부를 다 바쳐 사랑하는 사람들. 전혀 관심이 없거나 악의로 가득한 사람들.
그분은 알 수가 없다. 분명히 자신의 모든 무대를 보러 꼬박꼬박 와 주는 끈질긴 마음이 보이는데. 혹시나 다른 멤버 팬은 아닌가 헷갈릴 일이 없을 정도로 한순간도 빠짐없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 바로 그런 순간 때문에. 별빛처럼 곧고 반짝이는 에너지와 마주하는 순간이 참을 수 없이 좋아서 윤대협은 아이돌이 됐는데.
왜 팬싸에는 안 와 주실까...
오매불망 기다리던 윤대협의 마음은 팬데믹으로 인해 보답받았다.
대망의 영통팬싸날.
서태웅은 재택근무를 하는 자신의 방에 앉아 있었다. 아이패드로 녹화를 세팅하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대기했다.
한 시간 전.
30분 전.
10분 전. 공식 계정으로부터 대기하라는 연락이 왔다.
1분 전.
화면이 윤대협으로 가득 찼다.
"어!"
그게 첫마디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윤대협이 환하게 웃는다.
"드디어 만났다."
아이돌이 팬한테 하기에 적절한 첫인사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이름이... 서태웅이시구나. 서태웅. 저 엄청 궁금했어요. 성함이요. 엄청 멋있어요. 남자답고."
서태웅은 아직 한마디도 안 했는데 윤대협이 혼자서 잔뜩 떠든다. 차분하고 나긋한 목소리지만 덕후 짬바로 봤을 때, 살짝 흥분한 톤이다. 윤대협이 예쁘게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저한테 물어볼 거 없으세요?"
서태웅이 천 번은 움짤로 땄을 듯한 눈웃음. 손가락을 고양이처럼 모아서 뺨에 기댄 채로 똘망똘망 쳐다본다. 서태웅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물어볼 거는 아니고..."
"네에."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뭔데요?"
큼직한 양손을 귀 뒤에 대고 모으는 시늉을 한다. 어차피 이어폰 끼고 있는데. 바보 같네... 귀여워... 서태웅이 정줄을 잡으려고 애쓰면서 미간에 힘을 빡 주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에?"
서태웅이 주먹을 꾹 쥐고 목소리를 좀 더 키웠다. 평생 안타깝다는 평가를 듣곤 했던 말주변이 지금처럼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고맙습니다. 팬이에요. 계속 아이돌 해 주세요."
윤대협은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하고 있다. 서태웅은 초조해졌다. 내가 그렇게 이상한 말을 했나. 그냥 무난한 말인 것 같은데. 천 번은 넘게 들었을 말일 텐데.
윤대협은 입을 벌렸다가 잠깐 닫았다가. 눈썹을 팔자로 내리면서 웃었다.
"제가 꼭 말하려고 했었는데. 한 방 먹었네요."
"네?"
"제가 말하려고 했어요. 감사하다고요. 한 번도 안 빠지고 다 오셨잖아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다. 저 다 보고 있었는데. 엄청 감사했어요. 진짜 언제나 항상. 저는 서태웅 씨 때문에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있어요. 진짜로요. 다른 팬들도 다 그렇지만. 그렇게 저만 계속 바라봐 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같은 말을 중언부언 반복하는 게 윤대협답지 않다. 서태웅은 상당히 멍청한 표정으로 조그마한 입을 벌리고 그 목소리를 음악처럼 듣고 있었다.
윤대협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앗! 30초 남았대요. 또 궁금한 거 없으세요? 빨리!"
"앗... 어... 그러니까..."
전화가 뚝 끊겼다.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의 멍청하고 불그레한 얼굴을 바라보며 서태웅이 중얼거렸다.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