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아신스 4
불면의이쑤신
그리고 다음 날도 기묘한 하루가 이어졌다.
자칭 보디가드 루카와는 꾸벅꾸벅 졸면서 새벽 시장 사입을 따라 나와 센도를 졸졸 쫓아다니며 제법 쓸만한 짐꾼이 되어주었다. 돌아올 때는 짐칸에 다 못 넣은 꽃다발이나 화분 사이에 낑겨서 졸았다.
가게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안쪽 방의 접이식 침대를 알아서 찾아들어가 모로 길게 누워 잠들었다. 어제 한 번 봤다고 무슨 제 집 찾아가듯이 기어 들어갔다. 센도로서는 편한 일이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 기어 나와 센도와 함께 점심을 먹고 현금 또는 외상이라 주장하는 수상한 방법으로 값을 치렀다. 동네 대부분의 단골집은 전부 루카와의 얼굴을 보면 흠칫했고 돈을 받지 않았다...
구석에 한 자리 당당히 차지하고 서서 센도를 구경하다 졸고, 졸다가 센도를 구경했다. 반드시 꽃을 만질 때만 눈이 마주쳤다.
튤립은 역시나 인기가 많았다. 길 가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는 건 프리지아 향기 덕분일지라도 충동구매를 하는 건 십중팔구 튤립 다발이었다. 당찰 정도로 매끄럽게 뻗은 직선적인 꽃봉오리와 밝은 컬러 덕분에 슬슬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봄이 다가온다는 실감이 전해지는 모양이었다. 센도로서는 큰맘 먹고 잔뜩 사입한 보람이 있었다. 충동구매는 가격에 민감하다는 걸 감안해 한 송이나 두 송이로 미니 다발도 만들어 봤다. 반응이 괜찮았다. 튤립은 딱 한 송이로도 빛난다. 칼날같이 날카로운 이파리 위 왕관을 쓴 고귀한 존재처럼, 심플하면서 화려하다.
한창 제철인 수선화도 들였다. 절화로 팔기에는 연약한 꽃이라 구근째로 사입해서 물에 담가 뿌리를 충분히 기른 다음 화분에 옮겨 심었다. 창가에 잘 보이도록 늘어놓으면 반응이 있었다. 정원이 아닌 집 안에서 쉽게 기를 수 있다는 데에 관심을 보였다. 일년초라는 건 잘 설명한 뒤에 팔았다. 절화 꽃다발은 특별히 주문이 있는 경우에만. 오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신당부했다. 한 철 장사지만 원래 꽃은 그런 거니까.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행복하게 만끽하면 된다.
루카와는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센도가 손님들에게 꽃 이름을 알려주고, 가끔은 꽃말이나 신화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능숙하게 손을 놀려 큼지막한 꽃다발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았다. 가게 구석에 못 박힌 검은 나무처럼 우뚝 서서. 센도는 루카와의 존재에 조금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종종 여전히 거기 있는지 확인차 돌아보곤 했다.
센도는 어느 날 문득 루카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았다. 그러니까 손님이 없을 때나 센도가 꽃을 만지지 않을 때. 멍하니 바닥을 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루카와는 꽃을 보고 있었다.
창가의 수선화 화분, 벽에 매달린 프리저브드 장미, 냉장고 안의 꽃을 하나하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날엔가 꽃다발을 만들던 센도가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무슨 꽃인지 알아?"
루카와가 고개를 흔든다. 센도가 새파란 나비 날개가 떼로 매달린 듯한 라인 플라워를 한 줄기 들어 올렸다.
"델피늄이라는 건데."
"델피늄."
루카와가 작게 복창했다. 센도는 웃음을 꾹 참고 파란 꽃봉오리 하나를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꽃봉오리가 돌고래를 닮아서 붙인 거래. 돌핀이잖아. 돌고래가. 돌핀. 델피늄."
루카와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센도는 머쓱하게 돌아서서 다시 꽃다발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포장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가게 속에서 센도가 잠깐 손을 멈출 때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돌핀... 델피늄..."
입술 끝을 앞니로 붙들어 보려 무진 애를 썼지만 센도는 결국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새파란 델피늄 꽃다발은 내내 시원한 미소로 완성되었다.
루카와는 금방 적극성을 보였다. 구석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센도가 돌아보면 냉장고 앞에 코를 박고 있었다. 살벌한 눈동자로 유리 벽 안을 노려보며 손끝으로 톡톡. 알록달록한 꽃을 하나하나 두들겼다. 아주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프리지아. 튤립. 스토크. 캄... 파... 뉼라. 거베라. 라... 라... 라넌큘러스. 글... 라디올러스."
약간씩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기억해 냈다. 몰래 지켜보는 센도로서는 마음속으로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델피늄을 가리킬 때는 꼭 이렇게 말했다.
"돌핀. 델피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센도는 그 뒤통수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공들여 가득 채워 놓은 꽃 창고 앞에 시커먼 야쿠자가 딱 달라붙어 있는 기묘한 장면인데도. 톡. 톡. 하얀 손끝이. 사람의 뼈를 부수던 그 살벌한 손끝이 가만가만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가. 싫지 않았다.
가끔 혼자 집에서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씻고 잠을 청하는 의무적인 살림의 시간을 보낼 때도 센도는 종종 그 소리를 떠올렸다. 톡. 톡. 톡 톡 톡 톡 연속해서 떠올리다 보면 쏟아지는 봄비처럼 머릿속이 루카와의 속삭임으로 가득 찼다. 기묘했다. 가게에 나와 있는 모든 시간을 루카와와 함께 보내는 데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즉 센도의 거의 모든 하루를.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이렇게 같은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한창 꽃을 배우며 돈이 없어 연애도 못 하던 시절에 안 만나주면 죽겠다고 매달려 온 같은 클래스 남자의 집에 거의 얹혀살듯 빌붙었던 때가 마지막인 것 같다. 성 정체성의 측면에선 의외로 잘 맞았고 경제적인 측면에선 저축 목표가 분명했던 센도에게 지나치게 좋은 조건이었지만, 오히려 너무 이용만 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결국 센도가 헤어지자고 했었다. 게이도 결혼할 수 있는 나라인 게 무섭기도 했고. 어쨌거나 그때랑 지금은 다르지. 이건 연애는 아니니까.
정말 아닌가?
톡 톡 톡 톡 빗소리처럼 머릿속에 루카와의 손끝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하고. 어디서부터가 꿈이었는지 센도는 결코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루카와가 있는 순간이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첫째로 루카와는 방해였다. 수선화의 고운 자태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오려다 검고 거대하고 살벌한 정장 차림의 장정을 발견하고 움찔하는 손님이 얼마나 많았던가. 센도가 재빨리 그 앞을 가로막으며 환한 접대용 미소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목소리로 그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접객에 있어 센도는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한 스타일을 추구해 왔으나 루카와라는 암흑물질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는 다소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해서 잡을 수나 있으면 다행이었다. 문 열기 전에 발견하면 그대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 손해가 막심했다.
실내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배달을 갈 때도 문제가 발생했다. 루카와는 자는 동안엔 얌전히 가게를 지켰지만 깨어있는 동안엔 그렇지 않았다. 따라왔다. 어떻게. 자동차로. 자기 닮아서 커다랗고 시커먼 고급 외제 수단으로...
마력이랄 것도 없는 스쿠터는 세단에 비할 수 없이 느린데도 루카와는 꿋꿋하게 그 뒤를 따라왔다. 이건 경호가 아니라 형편없는 미행이라고, 센도는 길에서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신호등에라도 걸리면 길 가던 모든 사람이 센도의 스쿠터와 루카와의 외제 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예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는 센도의 핑크색 스쿠터를 아슬아슬 따라오는 각진 고급 세단의 드라이빙은 차라리 묘기였다.
이 또한 센도의 신변을 보호하려는 루카와의 최선인 건 알지만. 센도는 빠르게 결단했다. 아닌 건 아니다. 센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키라 플라워다. 루카와가 잠을 방해하는 걸 용서하지 않듯이, 센도는 장사를 망치는 건 그게 무엇이든 좌시하지 않았다. 즉시 해결했다. 지나치게 경호에 열성적인 야쿠자라 한들 예외는 없었다.
먼저 루카와를 아키라 플라워에 적응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외면적인 측면에서. 센도는 루카와를 아키라 플라워에 타의적으로 들이게 된 인테리어 소품 중 하나로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다면 기존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어야겠지.
일단 루카와에게 정장 금지를 알렸다.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인 루카와가 다음날 입고 온 옷은 표범 무늬로 뒤덮인 샛노란 하와이안 셔츠였다. 반소매 아래로 하얀 팔을 감싼 시꺼먼 문신이 전부 보였다. 센도는 꺅 비명을 지르며 간절기에 걸치느라 가게에 놔둔 자신의 회색 후드 지퍼를 루카와에게 덮어씌웠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팔을 끼우고 나니 루카와에게는 조금 헐렁했다. 센도는 신중하게 말을 고른 뒤 물었다.
"... 직업과 관련 없는 옷은 없어?"
루카와는 한참 생각했다.
"한 벌 정도."
옷을 사러 가야 하나? 센도는 고민했다.
다음 날 루카와는 보라색 나이키 셋업을 입고 나타났다. 센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쁘지 않았다. 잘 어울렸다. 안 그래도 어린 얼굴이 더 어려 보였다. 긴 팔이라 문신도 안 보였다. 3월도 다 지나고 작약 봉오리가 가득 차오르는 계절이었지만 루카와는 딱히 더워하지 않았다. 추위를 훨씬 많이 타는 모양이었다.
센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루카와에게 패션 칭찬을 퍼부었다. 루카와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표정을 보면 제법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안쪽 방에 센도가 놔둔 거울로 흘끗 차림새를 체크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저럴 땐 나이에 맞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 몇 살인지 모르지만. 센도보다는 어리니까. 아마도 확실히.
루카와는 그때부터 다양한 나이키 셋업을 입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센도는 참지 않고 싱글벙글 웃었고 많이 칭찬해 주었다. 결국 긍정 강화가 최고인 것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센도 아키라 사장의 야심. 센도는 비장의 아이템을 꺼내 루카와에게 장착시켰다. 역시 꽃집이란 이런 걸까? 하고 구매했다가 너무 과한 것 같아서 처박아뒀던... 꽃무늬 앞치마.
루카와는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센도는 진지하게 설득했다.
"잘 봐봐. 너희 동료...들이 입던 패턴이랑 크게 다르지도 않아. 하와이안 꽃인지 남유럽 쪽 꽃인지 그런 건 사소한 차이 아니겠어? 화려하고 좋은데 뭘 그래. 루카와는 심플한 트레이닝복을 주로 입으니까 매치도 잘 되고."
루카와가 호오... 하는 소리를 내며 검지로 턱 한 쪽을 긁기 시작했다. 먹히고 있다는 증거다. 의외로 귀가 얇은 것 같다. 이 녀석 정말 야쿠자 세계에서 괜찮은 걸까... 센도는 택도 없는 걱정을 하다가 루카와의 발차기를 떠올리고서야 정신을 차리곤 했다.
비장의 아이템을 착용시킨 다음 단계로, 센도는 새 인테리어 소품의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바로 현관 앞이다.
역시 설득이 어렵진 않았다.
"생각해 봐, 루카와. 호텔에서 경호가 어디 서 있는지.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야. 세콤은 어디 설치하지? 그렇지. 문이지. 그러니까 네가 나를 지켜주려면 문 앞에 서 있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어? 그리고 무엇보다 흡연에도 용이하잖아."
루카와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 선정은 어디까지나 논리적인 귀결이었다. 센도는 씨익 미소 지었다.
언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야쿠자의 보복으로부터 아키라 플라워를 지키는 보디가드로서 더없이 자연스러운 위치에 팔짱을 턱 끼고 서 있는 루카와. 보라색 나이키 셋업 위에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루카와. 직업을 모른다면 열일곱으로도 스물로도 보이는 루카와. 센도가 살면서 본 중에 가장 미형의 남성인 루카와...
효과는 엄청났다. 아키라 플라워 앞의 유동 인구가 확연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낮에도 눈에 띄게 사람이 늘었다. 멀리서 지하철역 출구를 나오면서부터 남녀노소의 눈이 루카와에게 꽂혔다. 새까만 정장을 입고 어슬렁거리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시선이었다. 공포가 사라지고 놀라움이나 미소, 심지어는 홍조가 떠올랐다.
이어폰을 끼고 재빠른 걸음으로 루카와를 지나쳐 갔다가 지갑을 떨어뜨린 사람처럼 깜짝 놀라 다시 돌아보는 직장인 여성. 맞은편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척 하염없이 루카와를 안주 삼아 킥킥거리는 십 대 불량소녀 무리. 진짜인지 인형인지 궁금했다면서 루카와의 손등을 잡아당겨 보고 지나가는 꼬부랑 할머니. 급기야 아키라 플라워 옆 만두집, 라멘집, 오뎅집까지 손님이 늘었다. 웨이팅이 생기면 사람들은 오히려 좋아했다. 줄 선 채로 루카와를 구경할 수 있으니까.
당연히 꽃집을 기웃거리는 사람은 훨씬 더 많았다. 루카와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본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듯. 센도가 야외 가판에 늘어놓은 꽃다발을 자세히 보라며 자리를 비켜주거나 손짓하거나 심지어 하나 꺼내서 쥐여주기도 했다. 루카와에게 꽃다발을 받은 사람들은 남녀노소 그 자리에 5초 정도 굳었다가 얼굴이 좀 흐물해져서 가게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센도는 계산만 하면 됐다. 장사가 이렇게 편한 적이 있었나? 루카와는 심지어 간판이 되었다는 자각도 없이 그런 짓을 했다!
곧 꽃을 고르는 척 루카와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루카와가 아는 건 몇몇 꽃 이름 정도였다. 가끔 센도에게 주워들은 꽃말 같은 것을 대충 때려 맞추기도 했는데 정답률은 50%에 불과했다. 어차피 손님들은 정보가 맞든가 틀리든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대답이 막히면 루카와는 유리창 너머로 센도를 돌아보았다. 센도는 곧바로 달려 나가지는 않고 두어 번 눈을 피했다가 손님이 충분히 즐긴 것 같은 타이밍에 지원 사격을 나가곤 했다. 그 간절한 눈빛이 조금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키라 플라워의 웨이팅은 옆 만두집, 라멘집, 오뎅집에 비할 바가 아니게 되었다. 센도는 바빠졌다. 야심 차게 사입한 화려한 수입 꽃이나 조금 드문 꽃을 보여주면 루카와를 보러 왔던 사람들도 시선을 돌려 꽃에 홀렸다.
센도가 잰걸음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루카와는 손님들을 줄 세우거나 센도가 외치는 이름의 꽃을 찾아서 가져다주었다. 이제는 제법 꽃을 많이 알았기에 가능했다. 루카와는 꽃을 직접 잡지 않고 꼭 양동이째 옮기려고 했다. 정확히 센도가 몇 송이를 가져오라고 하면 속도가 훨씬 느려졌다. 꽃이 상할까 봐 어찌나 조심조심 들고 오는지. 센도는 요령 없고 성실한 루카와의 태도가 싫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다정한 감정이 분명히 있었다.
센도는 이제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루카와는 귀여웠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건 루카와가 야쿠자라는 것을 첫 만남 때부터 너무나 강렬하게 뇌리에 새겼기 때문이다. 루카와는 분명히 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러 왔고, 그런 직업이고, 지금 잠시 쉬고 있는 것뿐 언제고 다시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르러 훌쩍 떠나겠지만...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루카와를 볼 때마다 솔직하게 드는 생각을 애써 무시해왔지만...
그런 시간이 삼 개월 넘게 쌓였고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루카와는 귀여웠다. 센도는 야쿠자를 마음 깊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약간 질렸지만. 그럼에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4월은 그야말로 작약 철이었다. 연꽃과 작약의 중간 같은 다홍빛의 수련 작약, 팡 터진 풍선껌 같은 분홍색 아이스크림 작약, 끝이 뾰족하고 새하얀 유럽 작약. 소녀들이 작약 봉오리 한 송이씩 품에 안고 집에 가서 물에 꽂아 두면 다음 날엔 꽃다발처럼 활짝 펼쳐진 겹겹의 꽃잎을 만날 수 있으리라.
결국 그들이 웃으며 집에 가져가는 건 루카와의 미모가 아니라 꽃이었다. 센도는 무엇보다 그게 기뻤다. 귀여운 조수와 함께하니 갑자기 늘어난 주문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조수는 담배 피울 틈도 없이 열심히 움직였다. 루카와를 보고 아키라 플라워를 기억했다가 전화로 꽃을 주문하는 사람도 늘었다. 미남 문지기가 마음에는 들었으나 직접 찾아갈 용기는 없었던 보다 정중한 부류일 것이다.
수요의 증대는 분명했다. 센도는 신중한 고민 끝에 작약 말고도 주력 상품을 더 늘렸다. 두 달 전에 수선화가 반응이 좋았던 것에 착안해 구근을 들여보았다. 올해는 이 동네에서 소소하게 구근 꽃을 유행시켜 볼 생각이었다. 수선화 화분이 줄지어 늘어섰던 창가에 보라색 히아신스의 조그마한 삼각형 봉우리가 나란히 들어왔다. 작은 꽃이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 꽃은 활짝 피면 그 자체로 탄탄한 원통형의 꽃다발이 된다. 아래부터 피기 시작하므로 만개할 때까지는 원뿔 내지 삼각형의 형태를 띤다.
센도는 실내 창가에 늘어놓은 히아신스 화분에 조그마한 물조리개로 하나하나 물을 줄 때면 꼭 유리창을 똑똑 노크해 밖에 서 있는 루카와의 시선을 끌었다. 무심한 눈빛과 무지하게 인상 깊은 아랫속눈썹이 휙 돌아본대도 별로 할 말은 없었다. 그냥 새삼 반갑게 손이나 흔들고 말았다. 루카와는 코웃음조차 없었다.
그래도 센도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실은 루카와가 히아신스 화분에 물 주는 광경을 매번 물끄러미 쳐다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한심하다는 눈빛을 했던 주제에. 심지어 그 다음에도 흥미로운 루틴이 있었다. 루카와는 센도가 줄지어 선 히아신스 화분에 물을 다 주고 나면 꼭 한 개비씩 담배를 태웠다. 그러니까 노크는 센도가 루카와에게 건네는 자발적인 알람이었던 셈이다. 그 집요한 시선의 끝이 이번에도 꼭 담배일지 그것을 궁금해하고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면서.
사실이었다. 루카와는 센도가 히아신스에 물 주는 광경을 구경하길 좋아했다.
센도의 물조리개가 지나가고 나면 히아신스가 심긴 토분 아래에 겸손하게 깔린 화분 받침 위로 물이 배어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결코 넘치는 일이 없었다. 매일 아침 센도가 반짝반짝 닦아 놓은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투과하는 봄 햇살이 센도의 커다랗고 섬세한 손가락에 얽힌 작은 물조리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비춘다. 보석처럼 반짝반짝 떨어지는 물방울이 흙투성이 센도의 손가락을 조금 적시는 모습을 루카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화분의 흙이 촉촉이 젖을 때 더없이 집중한 센도의 눈동자에서도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루카와는 생각했다. 아주 자세히 보면 보일 것 같았다. 그러면 뭔지 알 것 같았다. 햇빛을 반사하지 않아도 빛나는 듯한 무언가. 햇빛도 물도 아닌데도 식물을 키우고 꽃 피우는 무언가. 만질 수 있다면 아마도 부드럽거나 따스하거나 말랑할 것 같은 그 무언가.
지금까지 루카와의 인생에서 꽃을 자세히 본 순간이라고는 단 일 초도 없었다. 꽃이 다 꽃이지 하나하나 다른 이름인 줄도 몰랐다. 루카와가 보던 꽃은 주로 국화꽃. 장례식장에서. 아니면 난초. 보스의 방에 있는 화분. 그 외엔 없었다. 들꽃에도 눈길을 준 적 없다. 남의 문신을 자세히 살폈다면 몇 송이쯤 끼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진짜 꽃이 훨씬 예쁘다는 걸 알아버렸다. 살아있는 편이 예쁘다는걸.
모르는 게 편했을지도 몰라. 흙투성이 센도의 손끝을 적시는 물방울을 보면서 루카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럴 때는 조금 목이 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