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류바 키스
불면의이쑤신
오늘로 여름방학은 끝이다. 버저비터까지 최선을 다하는 농구선수처럼, 여름이 다 가도록 태양은 뜨겁고 공기는 후덥지근하다. 거짓말처럼 내일은 시원할는지. 아무리 선선한 바람이 분대도 전력으로 림을 향해 돌진하는 두 사람의 육체를 식히기에는 한참 모자랄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 끝났다. 전신 빠짐없이 흐르는 땀은 차라리 샤워한 것처럼 개운하다. 손날로 눈가에 그늘을 만들어 뭉게구름 피어오른 파란 하늘을 한 번 감상한 다음. 먼저 권한 건 윤대협이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서태웅은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원 근처 조그마한 슈퍼의 아이스크림 라인업은 최대한 보편적이었다. 윤대협은 별생각 없이 캔디바를 골랐다. 상큼하고 달달한 게 땡겼다. 서태웅은 스크류바를 골랐다. 딸기 맛을 좋아하나?
두 개를 모아서 계산했다. 연상이니까. 서태웅은 감삼다 하고 넙죽 받아먹는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건데.
"태웅이는 누나나 형 있어?"
"누나."
어떻게 알았냐는 의문조차 없다. 의외로 막내티가 날 때가 있어.
윤대협은 녹기 전에 얼른 아이스크림을 뜯었다.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벤치를 가리킨다. 저기서 먹자. 서태웅은 대답도 없이 졸졸 따라왔다. 이럴 때도 막내 같다. 조용히 순종적인.
윤대협이 딱히 서태웅을 동생처럼 보고 있는 건 아니다. 이미 동생한테 할 수 없는 일을 조금씩 시작하는 사이라. 서태웅이 전국대회에 다녀온 뒤. 함께 청소년 국가대표에 합류하고. 여름방학 동안 두 사람은 아무도 예상 못 할 만큼 가까워졌다.
윤대협은 아무도 만져본 적 없는 서태웅의 어금니나 입천장을 혀끝으로 더듬어 본 사람이다. 서태웅은 윤대협이 타인에게 제 타액을 넘길 때 쓰는 입 안의 움직임을 아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 가까워졌다.
가을에는 또 얼마만큼 가까워질까.
캔디바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문득 그런 질문을 함께 녹였다.
어금니가 찡할 정도로 차갑게 부서지며 달라붙는 아이스크림의 짜릿한 감각. 살짝 관자놀이가 저릿해지며 체온이 내려가는 기분. 열기가 식고 달콤한 여운이 남는다.
세 입 정도에 윤대협은 캔디바를 싹 해치웠다. 덩그러니 남은 납작한 막대기를 앞니 사이에 물고 위아래로 끄떡이며 장난친다.
흘끗 쳐다보니 서태웅은 아직 멀었다. 스크류바가 생각보다 차가웠는지 한 번에 씹어먹지 못하고 낼름낼름 핥고 있다. 작고 뾰족한 혀끝이 지나간 부분이 아이스크림 표면의 자체적인 냉기로 인해 다시 뽀얗게 얼어붙는다. 그래도 끝부분은 열심히 핥았는지 원통형이 아니라 종유석처럼 동그랗고 뾰족한 모양이 됐다. 핫핑크색 껍데기 가운데에서 흰색이 조금 드러나 있다.
서태웅도 윤대협을 흘끗 쳐다본다. 막대기만 달랑거리는 걸 보고 한쪽 눈썹을 치켜뜬다. 공연히 경쟁심이 붙었을 때 하는 표정이다. 윤대협은 생글생글 웃었다. 불붙이려고.
서태웅이 입을 세로로 나름껏 크게 벌린다. 혀를 쭉 내밀어 스크류바의 옆면을 대고 굴린다. 이게 뭐라고 집중하는 바람에 눈을 내리깔고 있다. 상대적으로 넓은 피부와의 효과적인 접촉으로 표면이 녹아 흐르려고 하자 얼른 윗입술을 다물어 동그랗게 문 다음 쪼옥 빨아 당긴다. 짭, 하는 소리를 내면서 핫핑크가 옮겨붙은 입술이 동그래진 하드 끝에서 떨어진다. 다시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끝부분을 문다. 짭, 하는 소리를 내면서 또 떨어진다.
윤대협이 넋을 놓고 보고 있는 사이에 스크류바 아래쪽이 먼저 녹았다. 엄지손가락 뿌리를 타고 흐르는 핑크색 국물 한 줄기를 눈치챈 서태웅이 얼른 핥아 올린다. 내민 혀를 그대로 올려 살짝 녹아 물렁물렁해진 스크류바 아래쪽을 돌려가며 감아낸다.
이번에는 위쪽 끝에서 아까 열심히 녹인 표면이 방울져 떨어지려고 한다. 입술을 하드에 붙인 채로 옆면을 쭉 타고 올라가 다시 끝을 앙 삼킨다. 더는 녹은 물이 흐르지 않도록 턱을 들어 올려 위아래로 이동하며 녹여 먹는다. 끝까지 베어 물지 않았다.
그걸 다 보고 있던 윤대협은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미간 사이를 꾹 눌렀다.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태웅이한테 아이스크림 먹는 법을 이따위로 가르쳐 줬을까. 난 이걸 왜 이렇게 집중해서 보고 있는 거지. 아직 윤대협은 서태웅과 스크류바만큼 찐한 스킨십을 할 정도로 가까워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장면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쟤가 이상한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 눈을 감아도 핑크색으로 물든 혀 끝이 들락날락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윤대협은 차라리 다시 눈을 떴다. 갑자기 목이 탄다. 단 걸 먹어서 그런 거겠지. 부디 그런 걸로.
서태웅은 어찌저찌 스크류바를 다 먹었다. 다 먹은 캔디바 막대기를 물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윤대협을 슬쩍 쳐다본다. 눈이 마주쳤다.
서태웅이 윤대협의 입술에서 캔디바 막대기를 치웠다.
핫핑크색 혀끝이 다가온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후의 키스는 차가웠다. 처음에는.
베리류의 찐한 단맛을 쫓아 탐닉할수록 서태웅의 차가운 입 속이 점점 미지근하게 변했다.
온도 차가 있는 키스.
두 사람의 입 속 온도가 완전히 일치하고 나서야 붙어 있던 두 입술이 떨어졌다. 다소 멍해진 눈으로 서로를 응시하다가. 서태웅이 먼저 목소리를 냈다.
"처음이군."
"어?"
아직 넋을 놓고 있는 윤대협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아이스크림 먹고 키스한 거."
"응... 그렇지..."
서태웅이 손을 뻗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윤대협의 입술을 슥 훑는다. 분홍색이 묻어 나온다.
그대로 제 입술 끝으로 가져가서 핥는다.
"마음에 들어. 다음에 또 해."
한쪽 입꼬리가 어설프게 올라간 건 기분 탓일까.
윤대협의 얼굴이 실컷 농구했을 때보다 훨씬 빨개졌다. 태양에 탄 것처럼 시뻘겋다. 서태웅은 벌떡 일어나서 돌아섰다.
"그럼 다음에."
농구 얘기야?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 대고 윤대협은 끝내 묻지 못했다. 심장이 다 녹아버려서. 한여름의 끝자락에 방치해 둔 아이스크림보다 빠르게.
가을의 첫날도 여전히 더웠다. 여름의 길어진 해가 짧아지려면 아직 멀었다. 5시가 넘고 6시가 다 되도록 제법 밝았다. 림이 안 보인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 결국 오늘도 신나게 땀을 쏟았다.
옷 사이로 빠져나가는 저녁 바람이 쾌적하다. 습도는 확실히 달라졌다. 굳이 셔츠를 끌어 땀을 닦지 않는 편이 상쾌하다. 윤대협은 샤워조차도 다급하지 않다고 느낄 정도였다. 이대로 천천히 걸으면 착실하게 가을로 가기 시작한 바람이 기분 좋게 몸을 식혀줄 것 같았다.
그래서 서태웅이 이렇게 말할 거라고는
"아이스크림 먹자."
정말 생각도 못 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여름보다 한결 나아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운동 후의 차디찬 당분 보충을 마다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깨를 으쓱하고 윤대협은 흔쾌히 앞장섰다.
어제 갔던 그 슈퍼에서 어제 먹었던 그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서태웅은 이번에는 튜브 속에 들어있는 초코맛 쭈쭈바를 골랐다. 계산하려는데 척 막아서더니 동전을 낸다. 어제 얻어먹은 걸 갚겠다는 건가? 그냥 막내가 아니라 지기 싫어하는 막내구나. 그래야지. 귀여워라.
어제 그 벤치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한입 물었다. 열기가 덜해서 그런가. 똑같은 아이스크림인데 어제보다 차가운 느낌. 으적으적 씹으면서 흘끗 옆에 앉은 서태웅을 곁눈질한다. 오늘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충격적인 시청각을 제공했던 스크류바가 아니다. 이건 또 어떻게 먹으려나? 기대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서태웅은 윤대협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옆으로 훔쳐보던 윤대협은 딱. 눈동자를 들켜 버렸다.
서태웅은 포장도 뜯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손가락 두 개 끝으로 간신히 잡고 있었다. 무릎 아래 달랑달랑 늘어진 아이스크림 껍데기에서 온도 차 때문에 발생한 결로가 아스팔트에 똑, 똑 떨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태웅은 윤대협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처음에는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시선이 그보다 약간 아래인 것도 같다. 캔디바를 먹고 있는 윤대협의 우물대는 입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안 먹어?"
급기야 재촉까지. 윤대협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아담한 캔디바는 이미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서태웅의 시선은 여전히 윤대협의 입가에 고정되어 있다. 부담스러운걸. 뭔가 보여줘야 하나? 어제 서태웅의 다소 곤란했던 퍼포먼스(?)가 생각난다. 저도 따라 해볼까, 하는 심술의 아이디어가 살짝 떠올랐지만. 관두기로 한다. 이 정도로 열렬한 관객 앞에서는 함부로 까불기도 마땅찮다. 실은 조금 긴장될 정도다. 최대한 담백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더 큼직하게 베어 문다.
오늘도 세 입만에 끝났다. 솔직히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한 입은 윤대협의 입 속을 꽉 채울 정도로 많아서. 제법 오랫동안 녹여야 했다. 서태웅은 살짝 빵빵해진 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윤대협의 볼따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레이저 나오겠다. 내가 뭐 잘못했나? 아이스크림이 다 사라질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하고 바라보는 서태웅. 흡사 먹이를 앞둔 매. 골대를 바라보는 슈터. 한참 시합 중에 농구공을 쫓을 때처럼. 집중력 가득하다. 오직 윤대협의 하관을 노리고 있다. 다 먹고 대체 무슨 생각인지 꼭 물어봐야겠다. 바삐 턱을 놀려 아이스크림을 삼킨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꼴딱 넘어간 걸 확인하자마자. 서태웅의 눈동자가 훅 가까워졌다. 살짝 내리깐 화려한 속눈썹이 갑자기 눈앞이다.
차가워진 윤대협의 입술에 따스하고 말랑한 서태웅의 입술이 붙었다.
지체 없이 혀끝이 들어온다. 전에 없이 적극적이다. 하얗고 긴 손가락 열 개가 대뜸 윤대협의 목을 끌어당긴다. 길다고는 할 수 없는 혀로 이리저리 핥는다. 제법 꼼꼼하다. 차갑고 달달해진 혓바닥, 볼 안쪽, 입천장, 혀 아래가 차례로 따스함에 문대져 미지근하게 냉기를 잃는다. 엔트로피의 이동이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미끄러워진다.
서태웅은 고개를 기울여 가며 아주 열심이다. 제대로 윤대협 쪽으로 넘기지 못한 타액이 작은 입에 담겨 있지 못하고 가장자리로 흐르고 있는데 신경도 쓰지 않는다. 보다 못해 윤대협이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닦아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태웅은 계속해서 윤대협의 입 속을 맛본다. 미지근해졌던 입 안이 슬슬 온기를 되찾는다. 그 정도가 아니다. 아이스크림을 먹기 전보다. 한여름 한낮의 땡볕보다. 점점 더 뜨거워진다. 윤대협도 어느새 한 손은 서태웅의 뒤통수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서태웅의 허리를 바짝 당기고 있었다. 쩍, 소리를 내며 잠깐씩 두 사람의 점막 사이에 틈이 생길 때마다 바쁘게 서로의 한숨이 오간다.
키스는 길었다. 곤란하네. 물론 곤란하지만은 않았다. 야외에서 이 정도로 적극적인 서태웅은 처음이다. 윤대협도 제법 불이 붙었다. 윤대협은 이대로 서태웅의 손목을 살짝 붙잡고 자취방까지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키스만큼이나 제법 길고 끈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서태웅이 고개를 뒤로 젖힌다. 번들거리는 입가를 손등으로 슥 닦는다. 얼굴이 발갛다. 귀엽다. 윤대협은 상냥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서태웅이 대충 두 사람의 무릎 사이에 던져둔 손도 안 댄 쭈쭈바를 가져다가 열 오른 뺨에 대 준다. 몸서리를 치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피하지는 않았다. 윤대협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서태웅은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어제는 너 먼저 다 먹어서."
"네가 늦게 먹은 거지."
"키스할 땐 나만 차가워서."
"..."
"오늘은 차가운 너를 먹어 볼까 하고."
윤대협의 손에서 쭈쭈바가 툭 떨어졌다. 서태웅은 눈으로 그걸 쫓더니 담담하게 허리를 숙여 주웠다. 윤대협이 굳어 있는 사이에 벌떡 일어난다. 윤대협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맛있었다."
한쪽 입꼬리가 어설프게 올라간 것 같은데 잘못 본 걸까.
"그럼 다음에."
미련없이 휙 뒤돌아선다. 멀어져 간다. 무자비하게.
다섯 템포 정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윤대협이 벌떡 일어나 아스팔트를 차며 달린다.
저 새끼... 잡히면... 어제 몫까지 가만 안 둬야지.
다행히 스피드는 자신 있는 편이다.
뺨을 스치는 저녁 바람이 시원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