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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horts
2023.12.31

벚꽃이 지면

불면의이쑤신

<연간센루> 앤솔로지 수록

서태웅은 초등학생 때까지 세 살 터울 누나 서혜웅과 같은 방을 썼다. 방 개수가 모자라서는 아니었다. 서혜웅이 어둠을 무서워했다. 서태웅은 아니었다. 어린이집에서 읽어 준 침대 밑이나 옷장 속 괴물 이야기를 채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꿈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마를 쓰다듬고 뽀뽀를 해 준 어머니가 빛이 새어 들어오도록 살짝 틈을 남겨 둔 채 방문을 닫고 나가면, 3초 이내로 남동생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려왔다. 그건 오랫동안 어린 장녀의 두려움을 없애 준 화이트 노이즈였다.

서혜웅의 첫 브래지어를 사러 갔던 날. 백화점에서 서혜웅의 손을 잡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늘부터 혼자서 방을 쓰면 어떨까? 서혜웅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5학년. 이제는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남매가 쓰던 2층 방은 초등학교 2학년 서태웅이 독차지했다. 처음으로 자신만의 방에 혼자 누웠을 때 서태웅은 무려 잠을 설쳤다. 가슴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누나 책이 다 빠진 책장엔 무얼 꽂을까? 용돈을 모아서 만화책을 사러 갈까? 마음에 드는 마이클 조던 포스터를 구하면 어느 벽에 붙일까? 내년 생일 선물로 최신 붐박스를 사 달라고 해야지. 그러면 자기 전까지 내가 듣고 싶은 채널의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겠지…

그러나 서태웅의 프라이버시가 진실로 존중받을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서혜웅은 한참 동안 예전 버릇 못 버리고 전 남매방이자 현 막내방 문을 벌컥 벌컥 열었다. 서태웅은 대체로 자고 있지 않으면 드러누워 음악 듣는 중이었다. 별 반응은 없었다. 누나를 돌아보는 얼굴에 의문만 가득 띄웠다. 서혜웅도 담담했다. 어, 여기가 아니네. 들어온 김에 아직도 남아 있던 제 물건을 주섬주섬 주워서 나갔다.

서혜웅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 부쩍 사복에 관심이 늘었다. 중성적인 외모를 살려보려는 나름의 전략인지 아직 초등학생인데 벌써 자신과 키가 비슷한 서태웅의 나이키 티셔츠를 틈만 나면 강탈해 갔다.

“너 오늘 이거 안 입지?”

“내일 입을 건데.”

쳇, 하고 혀를 찬 뒤에 서혜웅은 티셔츠를 가지고 나갔다.

“다른 거 입어.”

왜 물어보는 거지? 서태웅은 두 손바닥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했다.

반면 서태웅에게는 서혜웅의 방문을 벌컥 여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다. 각자 방이 나뉘었을 때부터 부모님이 여러 번 강조했다. 타인의 방엔 반드시 노크하고 들어가야 한다. 실제로 부모님도 자식들의 방문을 꼭 두들기셨다. 물론 서혜웅은 그 룰을 결코 지키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마음 한구석에 막내방을 남매방으로 여기는 습관이 남아있는 듯.

서태웅은 이러한 불공평에 한 번도 항의하지 않았다. 애초에 서혜웅의 방에 볼일도 없었다. 필요한 건 이제 자신이 독차지한 방에 다 있었다. 가끔 불청객이 들어오긴 해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로 사복 스타일이 바뀐 서혜웅은 서태웅의 옷장에 관심이 없어졌다. 한동안 남매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잘 지냈다.

예외는 딱 하나. 가끔 아침에 엄마가 서로를 깨우라고 지시할 때.

아무리 방문을 있는 힘껏 쾅쾅 걷어차도 잠귀 어두운 건 집안 내력이었다. 불행히도 목소리 작고 큰 소리내기 싫어하는 것까지. 최후의 수단으로 남매는 서로의 방을 침범해 이불 위를 걷어차곤 했다. 그러면 잠에서 깬 사람이 반격으로 발차기(서혜웅의 공격 수단이었다) 또는 베개(서태웅의 무기였다)를 날리는 것까지가 한 사이클이었다.

서태웅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서혜웅은 대학에 입학했다. 호기롭게 자취를 하겠다고 나갔지만 1년 만에 도로 들어왔다. 부모님 댁이 최고라며. 자취 비용을 들이느니 교통비를 쓰는 게 낫고. 길가에 버리는 시간보다 혼자서 모든 가사를 다 해내느라 낑낑대는 시간이 더 아깝다고. 그래도 나가 살면서 나름대로 염치라는 걸 배워 왔는지 무전취식을 꿈꾸지는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조금이나마 생활비를 보태든지 가사를 돕겠다고 솔선해서 제안했다. 부모님은 후자를 선택했다. 갓 스물의 딸에게 생활비 때문에 굳이 아르바이트를 시키기엔 마음이 약한 부모님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의 겨울방학. 서태웅은 돌아온 탕아 서혜웅의 이삿짐을 푸는 걸 도왔다. 주로 가구. 책. 잡지. 그러니까 무거운 것 일체를 도맡아 날랐다. 물론 불평하진 않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171cm였던 서혜웅은 여자 중에서는 물론 웬만한 남자보다도 키가 컸지만 그래도 서태웅보단 훨씬 작고 가녀린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1년 간 이걸 다 샀나 싶을 정도로 물건이 늘었다. 방 꾸미기에 제법 재미를 붙였었는지 서랍장이며 러그며 수납 박스도 잔뜩. 전부 서태웅이 짊어지고 옮겨야 했다. 그중에서도 꽤 존재감을 발산하며 방의 중심을 차지한 못 보던 가구가 있었다.

화장대였다.


대학생의 시간은 쏘아 놓은 화살이다. 오랜만에 집에서 맞은 개강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중간고사가 코앞이다. 서혜웅은 급격히 초췌해졌다. 가족들은 자세한 사정까진 잘 몰랐지만 아마 1학년 때 자취하며 신나게 노느라 쌓은 업보를 처리하는 눈치였다. 과제며 팀플이며 시험공부로 툭하면 도서관에 처박혔다. 귀가가 지나치게 늦어질 땐 서태웅이 자전거를 타고 전철역에 데리러 나가곤 했다. 원래도 아침에는 서태웅이 더 강한 편이었는데 역대급으로 격차가 심해졌다.

서태웅은 속으로 생각했다. 대학생도 마냥 태평한 처지는 아닌가 보군. 오히려 서태웅의 하루가 훨씬 느긋한 편이었다. 서태웅의 규칙적인 생활 패턴은 중학교 때부터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서 농구하고 밥 먹고 학교 가서 자고 밥 먹고 농구하고 집에 와서 밥 먹고 자고. 밥. 농구. 잠. 그게 다였다.

어쨌거나 주말엔 모두 여유로운 편이었다. 서태웅은 평일이나 주말이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공원에 가서 아침 농구를 때리고 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아침을 먹을 때까지도 서혜웅은 보통 자고 있었다. 전날까지 놀았거나 공부했거나. 요즘은 후자다.

날씨가 눈에 띄게 예뻐지면서 서혜웅의 주말에는 과제 팀플 공부 같은 칙칙한 일정 말고도 꽃의 여대생답게 화사한 약속이 점차 늘었다. 오늘도 가장 친한 친구 넷과 벼르고 벼르던 영화를 본 뒤 기간 한정 벚꽃 디저트 먹으러 가는 날인데.

아침 식사는커녕 11시가 지나도록 서혜웅은 2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첫째 딸이 늦잠으로 우정을 잃을까 봐 걱정인 부모님을 위해 오랜만에 서태웅이 누나방으로 출동했다.

똑똑똑. 처음엔 일단 룰을 지켜본다.

“누나. 일어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결국 발이 나간다.

쾅쾅쾅!

누나가 일어나기 전에 방문부터 부서질 것 같다.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서태웅은 결국 무단으로 문을 열었다. 나름 경고는 했다.

“들어간다.”

아무도 없었다. 씻으러 갔나 보네. 2층 화장실은 서태웅 방에 더 가까워서 여기서는 소리가 잘 안 들린다.

문을 열자마자 맞은 편에 보이는 건 거울 달린 화장대다. 서태웅은 저도 모르게 그 앞으로 다가갔다.

심플한 디자인의 하얀 원목 가구 위에 여러 화장품이 어지러이 쌓여 있다. 아이섀도 팔레트, 글리터, 치크와 블러셔와 쉐딩, 립밤과 립스틱과 틴트. 서태웅은 전혀 구분할 줄 모른다. 색색깔의 물감 또는 무지개떡으로 보일 뿐이다. 왜 이렇게 똑같은 걸 많이 샀지? 죄다 핑크. 핑크. 연한 핑크. 좀 진한 핑크. 그리고 핑크다. 하늘 아래 같은 핑크는 없다는 걸 서태웅이 알 리가 없다. 하늘 아래 같은 덩크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건만. 서태웅은 금방 흥미를 잃고 돌아섰고.

씻고 나온 누나를 딱 마주쳤다.

서혜웅의 한쪽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야. 앉아.”

서태웅의 등골 한가운데를 식은땀 한 줄기가 달려간다.


윤대협은 오늘도 늦잠을 잤다. 딱히 찔릴 것은 없다. 일요일이니까. 휴식과 게으름을 위해 존재하는 날이니까. 천지창조설의 유일신조차도 이날은 쉬었다고 공인하는 마당에. 신이 세상 만물을 만들 때보다 더 부지런히 농구하자고 달려드는 놈이 있었으니.

바로 서태웅이다.

그건 아직 윤대협이 2학년이고 서태웅이 1학년이었던 1년 전 여름. 전국대회가 끝난 후부터. 윤대협은 서태웅과 제법 친해졌다. 아마도.

전국대회에서 돌아온 서태웅은 한 달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어디선가 뚜벅뚜벅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승부하자고 했고. 신나게 농구하고 나서 윤대협이 근데 이거 왜 하고 있더라 생각하는 사이에 툭 말했다.

“정성우가 아니고 정우성이잖아. 멍청아.”

“응? 누구?”

“중학교 때 못 이겼다던 놈.”

“아~ 그랬던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윤대협은 웃었다.

“만났어? 전국대회에서?”

“그래.”

“이겼어?”

서태웅은 처음 보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쪽 눈썹을 찡그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뾰족하게 내민 듯도 한… 이겼다면 저런 표정은 안 하겠지? 그렇지만 졌다고 생각지도 않는 눈치다. 뭐 그런 경기도 있겠지.

“나보다 잘하지?”

서태웅은 두 번째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쪽 눈썹을 치켜뜨면서 눈동자를 위로 올리고 고개를 갸웃한다. 무언가를 재거나 가늠하는 얼굴. 까만 눈동자가 한 바퀴 원을 그리고 다시 윤대협을 바라본다.

“그렇지도 않던데.”

놀랍게도 입술 끝이 약간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미묘한 전국대회 결과 보고(?)를 마친 뒤. 서태웅은 청소년 국가대표 합숙을 다녀왔고. 선선해진 가을 날씨를 등에 업고 다시 찾아와 밥 먹듯이 승부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이유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시점부터 윤대협도 어딘가 이상해진 걸지도 모른다. 뭐 재밌으니까. 손해는 없다. 사실 비밀이지만 능남에 서태웅만큼 일 대 일이 재미있는 동료는 없다. 어쩐지 미안하니까 비밀이지만.

해가 중천에 떠야 비로소 기지개를 켜는 일요일마다 윤대협은 생각했다. 오늘도 있을까? 공원의 농구장에 서태웅. 언제나 있었다. 태양과 농구공과 서태웅. 그래서 윤대협은 서태웅과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자신이 올 때까지 서태웅은 먼저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다시 야외에서 농구하기 딱 좋은 봄이 왔다. 윤대협은 오늘도 아주 약간의 설렘만 들고 공원으로 출발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만개를 막 지나 떨어지기 시작한 벚꽃잎으로 가득했다. 눈송이 같은 연분홍색 점들이 아스팔트 도로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간지러울 정도로 따스한 봄바람이 뺨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물고기 떼처럼 왈칵 쏟아진 꽃잎 송이가 움직이는 점묘화처럼 바람결의 모양과 속도를 그대로 드러냈다. 대체로 이 계절은 건조해서 고생이라는데 이 동네는 바닷가라 그렇지도 않다. 적당히 습한 물 냄새가 섞인 공기는 어쩐지 벚꽃색으로 물든 게 아닌가 착각마저 든다.

예쁘다. 윤대협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다.

공원에도 벚나무가 제법 있었나 보다. 다른 계절에는 무슨 나무가 사는지 알지도 못했는데. 이 계절이면 어김없이 존재감을 뽐낸다. 코트에도 바람 따라 이리저리 뭉치고 흩어지는 흰색 웅덩이가 보였다.

그리고 벤치 위에 길게 누워 잠들어 있는 서태웅도.

바람이 벚꽃잎을 몰고 간다. 서태웅의 발치부터 머리까지 소규모의 연분홍빛 토네이도가 지나갔다.

어쩐지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윤대협은 조용히 다가가 서태웅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벌써 오후인데 봄볕은 아직 부드럽다. 여름처럼 폭력적인 자외선이 아니다. 노곤하게 달아오른 포근한 봄바람의 품에 안겨, 겨드랑이에 끼워 놓은 농구공을 하얀 뺨 아래 괸 채로, 서태웅은 조용히 자고 있었다.

속눈썹에 벚꽃잎이 딱 한 장 내려앉아 있었다.

예쁘다. 윤대협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벌렸다. 숨길 수 없는 감탄이었다. 벚꽃잎 한 장을 살짝 얹은 속눈썹이 하얀 뺨에 드리운 독특한 윤곽의 그림자를 감상했다.

손끝으로 건드려 치워 주려다. 멈칫했다.

더 부드럽고 섬세한 것으로 옮겨줘야 할 것 같았다.

혹시라도 눈을 찌르지 않도록. 속눈썹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뭐가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가까이 기울였다.

서태웅이 눈을 떴다.


서혜웅은 흔한 20대 초반 여성들처럼 화장에 서툴렀다. 아니 평균보다 훨씬 더. 남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사연이 있었으니 무려 화장할 필요가 별로 없는 미모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빠르면 중학생 때부터 이것저것 발라보기 시작했던 친구들 옆에서 서혜웅은 끽해야 색깔이 약간 묻어 나오는 챕스틱 정도만 발랐다. 그런다고 안 예쁘단 사람 없었으니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쭉.

그렇다 해서 서혜웅이라고 20대 여성들을 노리고 쏟아붓는 화장품 업계의 무지막지한 마케팅 물량공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다. 친구들과 놀 때면 으레 길거리 로드샵이며 드럭스토어에 들르기 마련이었고. 추천하는 손에 이끌려 알록달록 신상들을 테스트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다. 거울 속 제 모습이 마음에 들 땐 몇 가지 사기도 했다.

유난히 화장품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잔뜩 사들였다가 감당 못 하게 된 짐승 용량 아이섀도나 도저히 낯빛에 안 맞는 립스틱을 한 번 닦아 공짜로 건네기도 했다. 피부가 하얗고 머리칼이 새카만 서혜웅은 웬만한 색깔은 다 소화했다. 1학년 때는 다같이 서혜웅 자취방에 모여 늦은 밤까지 서로의 얼굴에 화장을 얹어 주며 놀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진한 갸루 화장도 해 보고. 스모키도 해 보고. 아이라인 그리는 연습도 하고. 서혜웅은 언제나 최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최고의 모델이었다. 얼굴을 내밀고 있으면 신이 난 친구들이 이거 발라보고 저거 찍어봤다. 서혜웅도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메이크업 스킬은 전혀 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서혜웅은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자취방 빼고 돌아온 집에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최고의 마네킹이 있었다는 걸.

서혜웅이 세수할 때 쓰는 분홍색 포근포근 토끼 헤어밴드로 앞머리를 강제 오픈 당한 서태웅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화장대 의자에 앉았다.

“약속 늦을걸.”

“두 시다. 걱정 마라.”

서태웅이 곁눈질로 침대 머리맡의 알람 시계를 흘끗 쳐다본다. 열한 시 이십 분. 누나야말로 머리 말리고 화장해야 하는 시간 아닌지? 하지만 머리칼을 대충 수건으로 싸맨 채 화장대 서랍에서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와르르 꺼내 놓기 시작한 누나는 이미 아무 말도 안 들리는 모양이다.

서태웅은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면봉, 뷰러, 눈썹 칼, 파우더, 컨실러 등등에 경악했다. 아까 나와 있던 게 다가 아니야? 뭐가 이렇게 많아?

서혜웅은 초집중 모드에 들어간 얼굴을 남동생에게 바짝 들이댔다.

눈썹은… 그리기는커녕 다듬을 필요도 없다. 하긴 서혜웅도 거의 손대 본 적 없다. 그래서 연습해 볼까 했는데. 쳇, 하고 혀를 찬 뒤 눈썹칼을 치운다.

다음은 베이스. 바를 게 없다. 가릴 것도 없다. 결도 완벽하고 잡티 하나 없다. 선크림도 발라 본 적 없는 자식이… 어쩐지 짜증이 난다. 하지만 보나 마나 점심 먹고 쪼르르 농구하러 나갈 애한테 아이라인을 그리거나 아이섀도를 바르고 립스틱을 칠했다간 변태라고 신고당할 것 같고.

그럼 이거나 연습할까?

“아래 봐.”

서태웅이 순순히 눈을 깔았다. 서혜웅은 무언가를 바짝 가져갔다.

눈 앞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기운에 서태웅이 움찔 놀랐다.

“움직이지 마. 데인다.”

서혜웅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속눈썹 고데기 사이에 남동생의 가지런하고 기다란 속눈썹을 차례로 끼웠다. 최대한 눈꺼풀에 붙여 꼬옥 누른다. 위를 향해 손목을 꺾어 천천히 고데기를 빼낼 때는 긴장감 때문에 손끝이 달달 떨렸다. 덩달아 긴장한 서태웅은 무릎 위에 올려 둔 주먹을 꾹 쥐었다. 이 뜨끈한 건 대체 뭐지…

“눈 떠 봐.”

서태웅이 눈을 깜빡였다.

“오. 잘 됐는데.”

서혜웅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동생의 양쪽 눈을 비교했다. 확실히 효과가 좋다. 속눈썹 고데기는 친구에게 최근 선물 받은 아이템이다. 속눈썹이 길고 풍성한 서혜웅에게 딱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는데 사실 서혜웅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다. 데일까 봐 무서워서. 기미상궁이라 치고 남동생한테 써먹어 봤는데 생각보다 제 손재주가 쓸모 있었다.

나머지 한 쪽 눈도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그래도 한 번 해 봤다고 처음보다 매끄러운 동작이었다. 고정하는 의미에서 뷰러로 한 번씩 더 집어주기까지 했다. 자신감이 지나쳤는지 막판에 살짝 점막 끝이 낑긴 서태웅이 낮은 목소리로 짧게 외쳤다.

“악.”

더럽게 아팠다.

“미안. 다 했어. 어어 비비지 마. 처음부터 다시 할 거다.”

무서운 협박에 서태웅은 눈가로 가져가던 손을 순순히 내려놓았다.

이제 남은 건… 서혜웅이 매의 눈으로 화장대를 훑는다. 틴트와 립밤 몇 개를 늘어놓는다. 벚꽃 시즌에 맞춰 온갖 브랜드가 앞다투어 내놓은 분홍색 립 제품들. 그중에서도 투명감 넘치고 바른 듯 안 바른 듯한 자연스러운 것들을 몇 개 골라 서태웅 입가에 대 본다.

“너도 쿨톤인가?”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입술 내밀어 봐.”

서태웅이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다.

“아 그렇게 말고.”

누나의 시범을 따라 서태웅이 다시 입술을 모아서 쭉 내밀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모델의 도톰한 입술 산의 윤곽선을 넘지 않도록 신중하게 틴트를 얹고 새끼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들겨 얇게 펴 발랐다. 서혜웅이 입술 위아래를 서로 부비는 시늉을 하자 서태웅이 우물우물 따라 했다. 조금 번진 부분은 면봉으로 닦아낸다.

서태웅의 턱 끝을 잡고 이쪽저쪽 돌려보며 서혜웅은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눈썹에 닿을 듯 바짝 올라간 속눈썹과 자연스럽고 은은한 빛깔에 투명한 물기가 감도는 입술. 도자기로 만든 프랑스 인형 같다. 마음에 든다.

어릴 때도 비슷한 일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호기심에 안방 화장대를 뒤져 엄마 립스틱을 하나 가지고 나왔을 때. 제 얼굴에 바르면 혼날까 봐 동생 얼굴에 발랐다. 당연히 들키고 나서 무지 혼났지만.

아무것도 안 바른 통통한 볼을 손바닥으로 툭툭 친다.

“다 됐다. 가라.”

서태웅은 싫어하면서도 군말 없이 벌떡 일어났다. 분홍색 포근포근 토끼 헤어밴드를 휙 잡아 빼서 화장대 위에 툭 던진다. 그제서야 머리 말릴 준비를 하는 서혜웅에게 묻는다.

“점심은?”

“시간 없을 것 같은데. 넌?”

“엄마가 샌드위치 싸 준대.”

“호오.”

“딸기주스도.”

“하 그건 못 참지.”

요란한 드라이기 소리를 뒤로 하고 서태웅은 누나 방문을 닫았다.

계단을 내려와 주방으로 간다. 제 도시락과 식구들 점심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등에 대고 상황 보고를 한다.

“누나 깼어요. 점심 먹으러 내려온대요.”

“그래. 네 도시락 식탁 위에 그거다. 바로 갈 거니?”

“네. 다녀오겠습니다.”

“물 자주 마시고. 그늘에서 쉬어 가면서 해라.”

“네, 엄마.”

거실에서 TV를 보시던 아버지께도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자전거 위에 훌쩍 올라타 이어폰을 꼈다. 부쩍 바람이 따스해졌다. 이럴 때는 더 세게 페달을 밟아야 시원함이 느껴진다. 빠르게 양옆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 언제부터인가 은은한 연분홍을 띤 벚꽃 구름의 면적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평소보다 늦게 나왔는데도 공원에 윤대협은 없었다.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딱히 놀라진 않았다.

자전거를 세워 두고 그늘에 앉아 어머니가 챙겨 준 도시락을 먹는다. 먹기 좋게 6등분 된 닭가슴살 샌드위치. 상큼하고 달콤한 드레싱. 야무지게 꼭꼭 씹는다. 직접 딸기를 갈아 만든 주스도 챙겨 주셨다. 맛있다. 잘 어울린다. 금방 도시락통을 텅텅 비웠다.

배가 부르니 어김없이 졸음이 온다. 나른한 계절이 몰고 오는 춘곤에 어느 해고 서태웅은 속절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망설이지 않고 옆으로 눕는다.

윤대협… 오면 깨우겠지.

그리고 바로 잠들었다.

머리 위에서 연분홍색 벚꽃잎의 무도회가 열린 줄도 모르고.


오늘의 서태웅은 이상하다. 그런데 어디가 이상한지 모르겠다.

일 대 일이 진행될수록 윤대협은 점점 깊은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서태웅을 막아설 때마다. 반대로 서태웅이 앞에 설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답을 찾기는커녕 지금 문제가 주어진 건지 아닌 건지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이슈가 있는 건… 얼굴이다.

시야를 꽉 채운 얼굴이 익숙한 듯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보던 그 얼굴과 똑같아야 하는데 어딘가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그게 어딘지 도통 콕 집어 알 수가 없다! 윤대협은 약간 미칠 것 같았다.

아닌가? 이미 미쳤나? 어쩐지 서태웅 얼굴이 전체적으로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인가? 공기가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온도 습도에 쾌청하기까지 해서? 왜 평소보다 눈을 뗄 수가 없는 거지?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지?

특히 서태웅의 이글거리는 두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볼 때. 돌파 또는 수비가 시작되는 찰나를 포착해 재빨리 눈을 떼고 예측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때마다 기가 막히게 1초 내지 2초 정도 발목을 잡힌다. 왠지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서태웅의 두 눈으로부터.

오늘 윤대협은 스스로의 시선을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다. 상대의 어깨나 발끝의 방향으로 다음 움직임을 예측해야 하는 장면에서 봐야 할 곳은 안 보고 자꾸 서태웅 얼굴로 자석처럼 눈동자가 달라붙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윤대협은 혼란에 빠졌다.

운동할 때 시선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대체로 인간은 시선을 먼저 둔 방향으로 재빨리 움직이기 때문이다. 매끄러운 노 룩 패스가 쉽지 않은 이유다. 특히 상대방이 있는 농구에선 관찰과 예측을 위해서라도 예리한 시선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시선 제어를 완전히 놓친 윤대협은 서태웅에게 형편없이 깨졌다.

처음 서태웅이 승부하자고 덤빈 이후로 이렇게 원 사이드로 승부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지막 골을 넣은 서태웅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오늘따라 기이하게 반짝이는 그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윤대협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서태웅이 기다란 검지손가락을 뻗어 윤대협의 미간을 톡. 눌렀다. 말뚝을 박듯이 찍었다. 매우 불쾌한 눈치다.

“집중해. 멍청아.”

여전히 눈을 떼기가 힘든 서태웅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곰곰이 자신의 패인을 고민하던 윤대협이 말했다.

“너 오늘 눈빛이 좋은가 봐.”

“눈빛?”

서태웅의 한쪽 눈썹이 올라간다.

“어. 엄청 이글이글한가?”

“나한테 물어보는 거냐?”

“그건 아닌데…”

윤대협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여전히 서태웅의 두 눈에 시선이 고정된다. 왜 자꾸 이러지. 농구할 때야 오늘따라 유난히 승부욕에 불타는 눈동자라 그랬다고 치자. 지금은 딱히 눈에 힘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기세 싸움에 진 건가. 시선에서 갈린 승부가 많았어.”

어깨를 으쓱. 딱히 변명은 아니다. 패인을 분명히 짚고 싶었을 뿐이다. 서태웅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의기양양하게 받아친다.

“변명.”

“아니라니까.”

“추하군.”

“진짠데.”

“억울하면 너도 기세를 올려.”

흥, 하고 내뱉는 코웃음이 기분 좋아 보인다. 이 자식이. 윤대협도 맞불을 놓듯이 하, 하고 한숨처럼 웃었다.

“그럼 슬슬 진심으로 해야겠네.”

서태웅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온다. 소리를 낼 듯한 기세로.

“어차피 마지막엔 내가 이길걸.”

그때부턴 다시 한참 동안 승부였다.


장담했던 바와 달리 윤대협은 마지막에 웃지 못했다. 시선의 통제권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기세 싸움에서 끝까지 졌다.

얼빠진 기분에 무릎을 짚고 땅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쳐다보는 윤대협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서태웅. 물병을 열어 꼴깍꼴깍 목을 적신다. 손등으로 입술을 부빈다. 여전히 멍때리는 윤대협을 부른다.

“헤이.”

“어? 어.”

생각보다 더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서태웅은 말없이 물병을 내민다.

윤대협은 감사히 받아 들었다. 입으로 가져가다 뭔가 발견했다.

분홍색이 묻어 있다…?

벚꽃잎이라도 붙은 건지. 의아하게 여기면서 티셔츠로 슥 문댄다. 꿀꺽꿀꺽 되는 대로 목구멍에 쏟았더니 남은 물을 거의 다 마셔버렸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반납했다. 서태웅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개의치 않는 서태웅의 입술에도 벚꽃잎이 번져 있다…?

윤대협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서태웅을 향해 다가갔다. 서태웅은 눈꼬리에 물음표를 띄운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다. 가까이서 보니 벚꽃잎은 아니다. 뭔가 물든 것처럼. 분홍색이다. 입술 주변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윤대협이 제 입술 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너 여기 뭐 묻었다.”

서태웅이 손을 들어 제 뺨 주변을 더듬는다. 아니 거기가 아니고 입술 근처라니까. 영 방향을 못 잡고 엉뚱한 곳을 긁는다. 오히려 점점 더 번진 영역만 커진다. 윤대협의 가슴 속 정체 모를 답답함도 커진다.

“아니 거기가 아니고… 이거 뭐지? 김치 국물인가?”

“점심에 김치 안 먹었는데.”

“뭐 먹었어?”

“샌드위치랑 딸기주스.”

“딸기주스! 그건가 보다.”

윤대협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서태웅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가슴에 답답함이 조금 걷힌다.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가까이 와. 닦아 줄게.”

서태웅이 살짝 눈을 감고 턱을 내민다.

윤대협은 손가락 네 개로 서태웅의 하얀 턱을 살짝 쥐고 엄지손가락을 뻗어 딸기주스로 추정되는 분홍빛에 물든 입가를 살살 쓸었다.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엄지 끝에 조금씩 힘이 들어간다. 연한 입가가 오히려 쓸리면서 점점 더 빨개지는 것 같다. 서태웅의 미간에도 힘이 들어간다. 결국 닦아주기를 포기한 윤대협이 손을 거뒀다. 조금 미안해진다.

“잘 안되네. 침 묻혀서 닦아야겠다.”

본보기처럼 혀를 내밀어 제 입가를 두들기며 말했다. 당연히 스스로 닦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서태웅은 놀랍게도 다시 하얀 턱을 내밀었다.

스르르 눈을 감으며.

윤대협의 전신에서 일제히 솜털이 일어섰다. 와르르 쏟아지는 벚꽃잎처럼. 여전히 묘하게 반짝이는 서태웅의 얼굴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윤대협은 마른 입 안의 침을 모아 꿀꺽 삼켰다. 코앞에 내밀어진 하얀 턱으로 다시 손을 뻗는다. 조심스럽게 붙잡는다.

귓전을 기분 좋게 두들기는 심장 소리를 세면서 혀를 내밀었다. 벚꽃 같은 입술 옆에 가만히 갖다 댔다.

서태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지만 고개를 피하지는 않았다. 잠시 눈을 마주 본 채로 서태웅과 윤대협은 쏟아지는 벚꽃 비를 맞았다. 어느 한쪽도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서서히 두 얼굴이 달아올랐다.

결심한 듯 입술을 꾹 다물며. 서태웅이 먼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위로 곱게 휘어진 속눈썹이 장식처럼 가지런히 뺨 위로 내려앉았다.

그건 분명한 신호였다. 윤대협은 놓치지 않았다. 계속 시선이 거기 있었으니까. 다른 쪽 손을 펼쳐 서태웅의 등을 감쌌다. 서태웅의 두 손이 윤대협의 땀에 젖은 이두근 위에 자연스레 얹혔다.

좋아한단 말도 없이 마주 닿은 두 입술은 따끈하고 촉촉했다.

둘 사이에 봄처럼 퍼지는 날숨은 따끈하고 촉촉하고… 조금 떨렸다.

서로의 떨림으로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조금 더 가까이 맞붙으며 입술이 뭉개졌다. 윤대협은 농구할 때보다 거세진 심장 박동에 가슴이 뻐근했다. 서태웅은 가슴팍에서 시작된 울렁임이 하반신으로 번져 힘이 풀렸다.

따르릉.

저 멀리 지나가는 자전거 소리에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떨어졌다.

서태웅은 얼굴이 심장이 된 것처럼 두근거린다고 느꼈다.

윤대협은 시야가 갑자기 좁아지다가 넓어지다가 어지러웠다.

한참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서태웅이 먼저 등을 돌렸다. 척척 짐을 챙겨 자전거로 걸어가는 오른발과 오른팔이 같이 나왔다. 삐걱이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윤대협은 한참 동안 웃지 못했다.

서태웅이 자전거에 올라탔을 때에야 정신이 돌아와 퍼뜩 외쳤다.

“내일!”

오늘 하루 종일 눈 뗄 수 없었던 예쁜 얼굴이 돌아본다.

“내일 또 하자.”

농구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목적어를 제대로 말할 정신조차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태웅은 잠깐 윤대협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아 나갔다.

윤대협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아아…

바닥에 쏟아 놓은 한숨보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커다란 덩치를 꾸깃꾸깃 뭉친 것처럼 쪼그려 앉은 고등학생의 첫사랑을 휘감았다. 무리 지어 쏟아지는 다정한 벚꽃잎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