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 of man’s desiring
불면의이쑤신
김광천 님 생일 기념성당의 중심. 제단과 신자석 사이에 불청객이 와 있다. 매끄러운 검은색 스타인웨이.
서태웅 마리온은 신자석 가운데 복도에 우뚝 서서 그 불청객을 노려보았다.
성당 내부의 겸손한 돌벽은 밝은 톤이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그랜드피아노는 순식간에 주인공마냥 시선을 차지한다.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를 위해 성당을 꽉 채울 모든 신자들보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연주자 역시 마찬가지다.
오르간과 완전히 다르다. 서태웅의 성당은 작지만 중세 시대 때부터 존재해 온 곳이라 고딕 양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성가대실 위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은 크기나 성능 면에서 꽤 제대로 된 물건으로 건축의 일부이고 예배당 그 자체다.
미사에 집중하는 신도 뒤에서 오르가니스트는 신을 위한 음악을 바친다. 성당의 중심은 제단이고, 누구도 목을 비틀어 한낱 오르가니스트를 올려다 보지 않으며, 만약 뒤돌아본다 해도 살짝 굽은 등만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 등을 보인 채로 오르가니스트는 화음에 기도를 실어 예배당을 꽉 채운다.
그게 서태웅이 하는 일이다. 서태웅은 사제가 아니므로 영성체를 받을 때만 빼고는 제단 앞에 설 이유가 없다. 신의 육체와 사제. 서태웅이 사랑해야 하는 존재와 사랑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모두 제단 앞에 있다. 그 앞에서 저 조용한 악기를 연주해야 한다니.
숨이 막힌다. 언제나 위안이었던 성당의 묵직한 침묵을 적으로 돌린 듯한 압박감. 주먹 속에 촉촉히 차오른 땀을 손끝으로 문댄다. 서태웅은 언제나처럼 거스르지 못한다.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침묵을 깬다.
"긴장되니?"
윤대협 다니엘 신부의 미소는 꾸미지 않을수록 미세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서태웅에게는 전해졌다. 다독이는 듯한 부드러운 미소가.
스타인웨이처럼 새까만 사제복을 입은 윤대협이 가까워진다. 서태웅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은은한 빛 아래에서도 또렷하게 음영지는 그의 이목구비를 인사도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인자하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이 예리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가까워질수록 다시 숨이 막힌다. 서태웅은 그 감정에 분노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신부님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 내고 싶지 않다. 서태웅은 시선을 돌려 다시 정면의 스타인웨이를 원수처럼 노려보았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왼편에 나란히 섰다. 등을 토닥이거나 어깨동무를 할 듯이 오른손을 치켜올렸다가, 허공에서 부드럽게 주먹을 쥐고, 천천히 팔을 내렸다.
잠시 침묵.
서태웅은 이를 악물었다. 말을 듣지 않고 박동이 커진 심장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윤대협이 스타인웨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태웅이는 잘 할 거야."
거스를 수 없는 사랑의 명령.
서태웅은 고장난 인형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대협은 언제부턴가 서태웅을 만지지 않는다.
서태웅은 의심스러웠다. 설마 자신의 비밀을 들킨 건 아닌지. 그럴 가능성을 생각할 때마다 목덜미가 섬뜩하고 눈을 치뜨게 된다.
한 편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말 들켰다면, 그것도 신부님께 들켰다면, 만지지 않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어떤 반응을 할 지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상상만으로도 소화가 안 되고 병이 날 것 같은 가장 끔찍한 공포여서 그런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도피하진 못했다. 정말 들켰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서태웅은 아주 오랫동안 그걸 두려워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찰나의 상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성이 생기고, 결국 열일곱이 되었을 때 쯤에는 나름대로 냉정하게 어떤 일이 닥칠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윤대협 다니엘 신부의 반응은 정말로 예상이 어려웠다.
자비롭고 인자한 신부님. 신을 사랑하고, 신자를 사랑하고, 서태웅을 사랑하는 신부님. 언젠가 그는 서태웅에게 사제란 신을 대신해서 용서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용서하고 싶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죄를 고백한 어린양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이를 전할 뿐이라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자주 이야기할 뿐이라고.
신이 나를 용서한다면 신부님이 그 뜻을 전해주시리라.
그러나 신부님이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서태웅은 알고 싶었다.
서태웅은 하나님이 스스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모든 인간을 빠짐없이 용서하고 사랑하심을 진실로 믿었다. 신부님이 그렇게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태웅은 신의 뜻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가 궁금한 것은 윤대협이었다.
물론 신부님은 그런 건 가르쳐주지 않았다.
신부님이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감정이나, 충동이나, 욕망들. 저 혼자 생겨난 그것들은 죄다 비밀이 되었다. 대다수의 비밀은 사춘기 이후에 생겼다. 서태웅은 비밀이라면 지긋지긋했다. 다른 신도들처럼, 어렸을 때 학교에서 싸움을 했을 때처럼, 성당 구석의 고해성사실에 가서 전부 털어놓고 용서 받고 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비밀도 있었다. 가령 기도를 올린 후에도 바로 잠들 수 없었던 밤에 이불을 세 겹씩 덮어 쓴 서태웅이 소리를 죽이고 무엇을 하는지, 그 정도라면 들켜도 괜찮다. 윤대협은 아마 당황하지도 분노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다. 열받게도 조금 기특해하거나 즐거워할 지도 모른다. 사제로서는 아니지만 서태웅을 기른 사람으로서는. 적당히 하라는 요지의 충고 정도만 건네고 별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사춘기 소년의 수음 정도로는 윤대협의 눈썹 하나 까딱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그 때마다 누구를 떠올리는지.
그것이야말로 치명적인 비밀이다. 들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최악의 공포를 현실로 맞닥뜨렸을 때 윤대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서태웅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다. 추방과 같은 단죄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는 어떤 얼굴을 할까. 경멸? 실망? 혼란?
손 대지 않는다는 건 경멸의 시작일까. 서태웅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정말 들켰을까? 하지만 어떻게? 서태웅은 대체로 윤대협의 생각만 하면서 살지만 그건 일곱 살 이후로 매일이 그랬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제 와서 이상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사춘기 이후로는 서태웅 쪽에서 윤대협을 피하고 있다. 그런 태도에 대해서 윤대협은 서운해하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모든 좋은 양육자가 그렇듯이.
물론 윤대협은 아버지가 아니다. 서태웅은 한 번도 윤대협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
의심이라는 복잡한 심리현상 앞에서도 서태웅의 머릿속은 항상 일정한 루트만을 따라갔다.
들켰을까?
아닌 것 같다.
정말 들켰다면 이 정도겠어?
그런데 정말 들키면 난 어떻게 될까?
끝. 언제나 여기서 막혔다.
윤대협이 서태웅에게 손대지 않는 건 상당히 최근부터다.
이 부분이야말로 이상했다. 2차 성징 이후로 서태웅이 머릿속에서 하루에 세 번 꼴로 윤대협에 대한 비밀을 만들고 윤대협이 나오는 별별 꿈을 다 꾸는 동안에도 윤대협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 땐 오히려 윤대협이 서태웅에게서 손을 떼지 않았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마치고 처음 얼굴을 볼 때마다 다정하게 양 볼에 입 맞춰주었고, 허리에 팔을 감고 식사하러 가거나 산책을 다녔다. 사계절 차가운 편인 오르간실에서는 양손바닥으로 서태웅의 손가락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머리를 쓰다듬거나 볼을 주무르거나 팔꿈치를 슬쩍 치고 지나가는 스킨십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삿된 마음으로 가득찬 서태웅조차 의식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일곱 살 시절과 다른 점이라고는 아무리 윤대협이라도 더 이상 직접 서태웅을 씻겨 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윤대협과의 따스하고 다정하고 일상적인 신체 접촉은 서태웅에게 더할 나위 없는 독이었다. 중독성을 느낄 정도로 좋았고 할 수만 있다면 더한 것을 원했지만 곰곰이 반추하다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근본적으로 일곱 살 취급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태웅은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윤대협에게 서태웅은 영원히 일곱 살일 것 같다는 좌절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크게 자라나다니 너무너무 기특한 일곱 살.
분노한 서태웅은 점점 더 무뚝뚝하고, 차갑고, 말없는 소년이 되었다. 그리고 윤대협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윤대협은 모든 좋은 부모가 그렇듯이 서운해하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녀 온 여행 이후로는 서태웅에게 손끝도 닿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처음부터 가기 싫은 여행이었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서태웅의 진로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윤대협은 서태웅이 재능을 살려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다며 지원해 주고 싶어했다. 서태웅은 성당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다. 윤대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오르간도 윤대협이 칭찬해주었기 때문에 시작했다. 비밀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윤대협과 눈만 똑바로 마주쳐도 다 들켰을 거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예민한 시기에 오르간실은 최고의 도피처였다. 예배당 전체를 꽉 채우는 웅장한 화음 속에 서태웅의 감정과 충동과 욕망 같은 것은 짓눌리고 흩어지고 사라져갔다. 가끔은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헤드폰을 써야 할 정도로 커다란 파이프오르간 소리는 만질 수 있는 진동이 되어 내장부터 인간을 흔든다. 매순간 더없이 흔들리고 있던 서태웅은 오히려 그런 진동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윤대협은 서태웅의 음악 세계를 넓혀주고 싶다는 말이나 지껄였다. 서태웅의 음악은 넓어질 필요가 없었다. 도피처는 좁을수록 안락하다. 그러나 윤대협은 서태웅에게 교회 음악 말고도 풍부한 음악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면서 끝끝내 여행에 끌고 나섰다.
두 사람은 매일 저녁 유명한 도시의 훌륭한 극장을 찾아서 가족과 연인들 사이에 나란히 앉아 교향곡, 오페라, 발레 공연,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다녔다. 사제의 검소한 생활비로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였지만 윤대협은 장학금 같은 거라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다 아는 사람들 공연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윤대협은 여러 번 서태웅을 지휘자며 연주자에게 데려가 인사시켰다. 윤대협은 성당에서 만나는 친숙한 사람들에게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그러니까 노골적이고 겸손하지 않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젊은 오르가니스트의 재능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아 서태웅의 정신력을 소모시켰다.
그런 식으로 눈도장을 찍고 나면 자연스럽게 공연 후 저녁 식사에 합석하게 되고, 매일같이 사교의 장에 얼굴을 내밀게 됐다. 서태웅은 완전히 지쳤다. 그리고 서서히 이 여행의 성격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윤대협이 연줄을 동원해서 음악계의 잘 나가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 둔 것이다. 서태웅을 소개하려고.
응접실에 피아노가 있는 경우에는 권유에 못 이겨 한두번 쳐 본 적도 있다. 피아노는 신학교를 다닐 때 배웠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낯설었다. 언제고 그랬다. 건드리기만 해도 또렷한 소리가 바로 귀에 꽂혔다. 그런가 하면 음량은 아주 작고 섬세해서 치는 사람의 감정이 전부 드러났다. 분노를 담아 부술듯이 치는 소리와 가볍고 발랄하게 띵똥대는 소리와 우울하고 묵직하게 잡아 끄는 소리와 스치듯이 부드럽고 꿈결 같은 터치를 현격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서태웅의 파이프오르간과 완전히 달랐다. 감정을 묻고, 흩고, 지우고, 오직 신에 대한 찬미로 공간을 꽉 채울 수 있었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태도 역시 어딘가 춤을 추거나 연기를 하는 것 같아 서태웅으로서는 어색했다. 그에 비하면 손발을 다 써서 세 계단의 건반과 두 단의 페달을 균일하고 정확하게 누르는 오르간 연주는 규칙을 철저히 따르는 콤비네이션 운동에 가까웠다. 실제로 조금 긴 미사가 끝나면 땀이 뚝뚝 떨어질 때도 있었다. 서태웅은 연주를 할 때 자신의 표정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건 오르간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피아니스트들은 달랐다. 그들의 표정은 연주의 일부와 같았고 그것이 부끄럽지도 않은 것 같았다.
서태웅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감정은 철저하게 감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작한 음악인데...
윤대협이 음악계의 여러 중요한 선생님들과 그들의 지인들과 부드럽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태웅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신발 끝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대화는 십분의 일 정도만 서태웅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온갖 다른 세상사들, 공통의 지인들 이야기, 예전의 추억 이야기, 무용담이며 농담 이야기였다. 한 마디로 죽을 정도로 지루했다. 서태웅은 잠든 줄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곤 했다. 상당히 무례한 행동임에 분명하나 대체로 또래가 없는 파티에 혼자 오게 된 십대 아이의 귀여운 일화처럼 취급되며 넘어갔다.
그럴수록 서태웅은 화가 났다. 윤대협이 사과를 하면서 그만 가봐야겠다고 서태웅을 데리고 나갈 때 그 분노는 최고조가 되곤 했다. 쌀쌀맞은 태도로 잠자리에 들면 하루가 끝났다.
누구의 응접실이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아마도 성당에 스타인웨이를 가져다 놓은 그 사람의 집이었을 것이다. 은은한 조명 속에 나직한 대화 소리와 웃음 소리 사이로 졸음이 깜빡깜빡 서태웅을 잡았다 놓아주었다.
잠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서태웅은 맞은편 소파에서 대화를 나누는 윤대협과 집주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어떤 유명한 음악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본 발레의 작곡가와 같은 이름이었다. 집주인은 상당히 흥분한 어조로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 추문이지요. 정말로. 그 외에 뭐라고 표현할까요. 물론 재능은 대단합니다. 누가 그것을 부정하겠어요? 황실의 연금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지요. 젊고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우러러 볼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사생활이 깨끗해야 마땅한데, 그 전부터 워낙 여러 소문이 돌았지만, 조카라니요! 전 평소에는 이런 소문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신부님. 당연히 아니죠. 그렇지만 앞날이 창창한 어린 소년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드리우는, 뭐랄까, 그런 종류의 생활방식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소문이 날 리는 없으니까요. 허무맹랑한 뜬소문이라면 쉽게 사라졌겠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고요. 더구나 지난번에는 정말 고발을 당할 뻔했다는 이야기가 법조계에서 나왔지요. 법조계에서요! 제 말 믿으세요, 신부님. 그 쪽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나올 때는 그저 소문에 그칠만한 것은 아니니까요. 워낙 입이 무거운 사람들 아닙니까..."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 윤대협의 표정을 보았을 때, 서태웅은 졸음기가 싹 달아났다.
윤대협은 맞은편의 대화 상대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 척 했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예의상 지은 것 같은 심각한 표정에 감춰진 실제로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 날카롭게 서태웅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한순간이었다. 윤대협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런 맞장구도 치지 않았다. 충분히 떠든 집주인은 들고 있던 위스키 소다를 한 잔 마시고 약간 민망해하면서 윤대협에게 말을 시켰다.
"제가 너무 혼자 열을 올렸네요. 이런 종류의 죄에 대해서는 신부님이 잘 아실 텐데요."
윤대협은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죄는 신께서 판단하십니다. 사제는 전달할 뿐이죠."
"겸손하시네요. 제가 만나 본 젊은 신부님들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어린 소년의 앞길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걸 보면 패기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요..."
집주인의 빠른 말투는 다른 소음 속으로 사라져갔다. 다시 중력 같은 졸음이 서태웅의 몸을 소파 깊숙한 곳으로 잡아당겼다.
서태웅은 이 빌어먹을 졸음만 떨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신부님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이것만큼은 네가 판단해. 너에게 지은 죄니까. 나는 신이 아니라 너를...
머릿속에 담기도 끔찍한 문장이 완성되기 전에 서태웅의 의식은 까무룩한 잠 속으로 도망쳤다.
정확히 그 날 밤부터 윤대협은 서태웅을 만지지 않는다.
이마 한 가운데 굿나잇 키스도, 양 뺨에 다정한 굿모닝 키스도, 허리나 어깨를 감싸고 천천히 걸어가는 일도 없었다. 이제는 위로의 뜻에서 등을 두드리는 것조차 꾹 참는다.
덕분에 서태웅은 윤대협이 자신을 만져도 만지지 않아도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윤대협의 뜻에 따라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 때 스타인웨이를 연주하기로 한 것이다. 윤대협이 초청한 수많은 음악가들 앞에서. 그들 중 누군가가 손을 내민다면 서태웅은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오르간을 떠나서. 성당을 떠나서. 윤대협을 떠나서. 들키지 않은 죄로부터 도망치는 수배자. 끔찍한 사랑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인. 이 세상에 유일한, 초라한 인생에 하나뿐인, 있을 곳을 잃어버린 고아.
둥지에서 내쫓긴 어린 새가 커다란 그랜드피아노를 마주 보았다. 괴물 같은 입을 벌린 까만 단두대. 이것을 부수는 것은 간단하지만, 목을 조여오는 형벌을 피하는 건 그렇지 않다. 어린 새는 전부였던 알을 깨고 둥지를 떠나야만 한다.
등을 떠미는 것은 가장 사랑하는 존재, 나의 전부, 흠 잡을 데 없는 사제이자 보호자. 죄를 무릅쓰고 그의 유일한 흠결이 되기엔 서태웅은 그를 너무 많이 사랑했다.
서태웅은 다시 태어난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오히려 흐릿한 건 그 이전이다. 서태웅은 일곱 살 이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최초의 기억은 아주 추운 날. 지독하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손으로 앞을 짚어가며 거의 네 발로 기었다.
성당의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언제나 문이 열려있던 곳이다. 추위를 피하고 싶어 서태웅은 기어갔다. 반질반질한 돌바닥이 쌓이지 못하고 녹아내린 진눈깨비에 젖어 차가웠다. 얼얼한 손가락은 끝부분부터 점차 감각을 잃어갔다.
두터운 성당 문 안쪽에서 따뜻한 빛이 새어져 나왔다. 서태웅은 문을 열 힘이 없었다.
온몸으로 문을 밀려고 노력하다 외풍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미끄러졌다. 문은 조금 밀리고 끝이었다.
웅크린 채로 정신을 반쯤 잃었을 때.
아주 천천히. 옆의 문짝이 열리고. 따스한 온기가 서태웅의 작은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몸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서태웅은 비몽사몽 간에 생각했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나쁘지 않았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한 죽음.
정신을 차린 건 죽음이 서태웅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따스한 물에 담갔을 때였다. 사제복을 입은 죽음은 아주 잘생긴 얼굴로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보드라운 비누거품으로 여위고 작은 몸에 남은 상처들을 조심스럽게 닦아내며 서태웅의 눈치를 보았다. 조그마한 손발을 주물러주며 화끈거리거나 마비된 곳은 없는지 살폈다. 좋은 냄새가 나는 두꺼운 수건으로 구석구석 감싸 안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옷을 입혀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서태웅은 죽음의 이름이 윤대협이라는 것을 알았고, 윤대협은 죽음이 아니라 서품을 받기 위해 공부 중인 신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윤대협도 고아였다. 그래서 서태웅을 성당 부속 고아원에 넘겨버리지 못했다. 자신이 자란 곳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라고, 윤대협은 그렇게만 말했다. 서태웅이 일곱 살치고는 작고 말랐고 상처는 많은데 말은 없다는 것도 전부 이유가 되었다.
윤대협은 성당 부속 고아원에서 자라 신학교에 갔고 열다섯 살부터 서품을 준비해 스물한 살에 수품했다. 서태웅을 주웠을 땐 열아홉 살이었다. 공부와 수련만으로도 벅찬 시기에 윤대협은 육아까지 자발적으로 떠맡았다. 그것도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서태웅 같은 아이를.
주변에서 납득과 동정을 받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무서울 정도로 아이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이라, 아무래도 처음 구한 사람이 옆에 있어줘야 마음을 열지 않겠냐면서. 사제관에서 예전에 하녀방으로 쓰던 가장 작은 방을 얻어쓰고 있던 윤대협은 어린이용 침대를 하나 더 들여와서 서태웅을 재웠다. 하지만 서태웅은 열 살이 될 때까지 언제나 윤대협의 침대에 기어들어갔다.
서태웅은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아이다운 게 뭔지도 몰랐지만 윤대협에게 순종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삶이었고, 세계였고, 전부였다. 서태웅은 윤대협을 처음 만났을 때 죽었고, 윤대협이 처음 씻겨줄 때 다시 태어났다. 진정한 의미의 세례였다. 물론 몇 년 뒤 세례에 대해 배우고, 갓 서품을 받은 윤대협의 손으로 직접 세례를 받았지만, 그건 서태웅에겐 일종의 세레모니일 뿐이었다. 진짜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과 생일파티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윤대협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서태웅이 성당 앞에서 발견된 날은 1월 1일이다. 윤대협은 그날을 서태웅의 생일로 여겼다.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기 때문에 세례명은 마리온이었다.
하지만 윤대협은 직접 고른 세례명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윤대협이 신에 대해 가르쳐주었기에 서태웅은 신을 믿었다. 윤대협이 잘 먹으라고 해서 잘 먹고, 학교에 가라고 해서 갔다.
친구들과 잘 지내라는 당부만은 순종하기 어려웠다. 서태웅은 눈에 띌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도 시비가 잘 털렸다. 누군가 자신의 물건을 빼앗거나, 순서를 가로채거나, 물리적으로 공격해 올 때 서태웅은 바로 주먹부터 뻗었다. 어디서 든 버릇인지 알 수 없었다. 윤대협이 가르쳐 준 게 아니니, 일곱 살 이전의 생활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쁜 신학생인 윤대협이 여러 번 학교에 불려 다녔다.
윤대협은 서태웅이 아홉 살 때 수품했다. 그가 정식으로 보좌 사제가 되었을 때, 서태웅은 학교에서 쫓겨났다.
윤대협은 자신이 서품 받기 전에 하던 일을 서태웅에게 하나씩 알려주었다. 그런 식으로 서태웅은 자연스럽게 복사 일을 하게 됐다. 조그마한 아이가 벌써 밥값을 한다면서 성당 사람들은 기특해하고 또 불쌍해했다. 그런 식으로 윤대협은 서태웅의 자리를 마련했고, 서태웅이 제 손으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했다. 아무리 작은 손이라도.
교육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윤대협이 서태웅을 홈스쿨링하게 됐다. 성당 부속 고아원 출신의 윤대협은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아무런 경제적 문제가 없었지만 가정교사를 붙일 정도의 수입 같은 건 없었다.
윤대협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좋은 양육자이자 좋은 친구이자 좋은 신학생인 것처럼. 서태웅은 책을 펼치면 금방 집중력을 잃어버렸고 쉽게 잠들었다. 윤대협은 억지로 깨워서 공부를 시키기보다 서태웅을 재워 놓고 볼 일을 봤다. 그래도 일정 수준의 글과 산수와 상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르쳤다. 그거면 충분했다.
윤대협은 서태웅이 집중력을 발휘해서 몰두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주고 싶었다.
서태웅과 오르간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성당 내부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윤대협을 졸졸 따라니던 서태웅이 오르간실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 윤대협은 서태웅에게 오르간 소리를 어떻게 내는지 건반을 누르며 페달을 밟아 보여주었다. 폐부를 찌르는 듯한 쩌렁쩌렁한 울림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아직 페달에 발도 안 닿는 서태웅에게 윤대협은 대신 페달을 밟아가며 음계를 가르치고 보면을 알려주었다. 서태웅은 타고난 집중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윤대협은 예감이 맞았다는 짜릿함을 즐겼다. 서태웅의 눈빛이 반짝였다. 좁은 오르간실에 나란히 앉아 윤대협이 페달을 밟아주면 서태웅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반짝반짝 작은 별'을 연주했다.
그렇게 서태웅은 행복을 배웠다.
윤대협은 악보 정도는 볼 수 있었지만 훌륭한 연주자는 아니었다. 오르간에 대한 서태웅의 집착이 깊어질수록 그에게 스승을 붙여주고 싶다는 윤대협의 욕망도 선명해졌다. 성당에는 전임 오르가니스트가 없었다. 오래됐지만 꽤 훌륭한 악기는 침묵 속에 썩어가고 있었다.
윤대협은 신학교에서 수소문하여 성당에서 음악 교육 봉사를 할 만한 젊은 연주자들을 데려오곤 했다. 서태웅은 그들에게서 띄엄띄엄 기초적인 테크닉을, 음계와 화성과 선율을 배웠고, 그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봉사를 중단한 동안에는 자발적으로 오르간실에 틀어박혀 오르간의 구조를, 그것이 내는 소리의 질감을, 그것이 이어지고 끊어질 때의 차이를, 그것들의 조화가 선사하는 감각을 통째로 삼켰다. 거대한 악기가 조그마한 손과 발 끝에서 이리저리 눌리면서 해부되고 다시 조립되어 몸에 새겨졌다. 잘 알 수 없을 때는 여러 번 반복했다. 무수한 실패 속에서 실패와 변주의 차이를 알게 됐고, 무수한 변주 속에서 정답을 찾아갔다.
서태웅은 그런 식으로 오르가니스트가 됐다. 발이 페달에 안 닿을 시절부터 어떻게든 직접 부딪혀 가면서 배운 미사곡들. 레가토, 칸타타, 푸가. 서태웅은 본능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탐했다. 열세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키가 자라기 시작해 열다섯 살 정도에는 페달을 구름처럼 부드럽게 밟아가며 연주할 수 있었다. 성당에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전임 오르가니스트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윤대협과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한 건 아마 열 살 전후였을 것이다.
서태웅은 그 때까지도 윤대협과 함께 씻었다. 그건 서태웅이 안전함을 확인받고 다시 태어나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매일의 세례였다. 서태웅의 삶, 세계, 전부인 존재와 충분히 맞닿아 체온과 감촉과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 그 시간은 끝났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손을 잡고 욕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서태웅은 기대에 찬 얼굴로 윤대협을 올려다 보았지만, 윤대협은 서태웅을 내려다 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이제 태웅이 혼자 씻을 수 있지?"
그건 이상한 질문이었다. 지금까지도 서태웅은 혼자 씻을 수 없었던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둘만의 의식이었다. 서태웅은 제대로 된 대답을 찾지 못해서 입을 다물었다.
윤대협은 천천히 욕실 문을 열고 서태웅의 손을 놓으며 들여보냈다. 약간 당황한 서태웅과 마주친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서태웅은 왠지 그 속에서 일말의 딱딱함을 느꼈다. 서태웅이 무언가 잘못한 게 분명했다.
그러나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윤대협은 방을 옮겼다. 다른 사제들을 비롯한 성당 사람들은 모두 한시름 놓았다. 정식으로 보좌사제가 되고도 작은 하녀방을 일 년 넘게 계속 쓰고 있어 모두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서태웅은 갑자기 커진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모두의 배려로 바로 옆 방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몽 같은 것에 시달린다면 바로 옆 방을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정작 서태웅은 윤대협이 거둔 후에 단 한 번도 악몽을 꾼 적이 없었다. 매일 윤대협과 함께 잤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태웅은 허전함을 배웠다.
서태웅은 열세 살 때 윤대협이 다니던 신학교에 입학했다. 윤대협은 공립학교에 보내고 싶어했는데 서태웅이 신학교를 골랐다. 성당에 계속 남아있으려면 막연히 자신도 윤대협처럼 사제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대협은 마지막까지 망설였지만 최종적으로 서태웅의 의사를 존중해주었다.
그러나 윤대협과 성당 사람들 이외에 거의 만나지 않고 오르간실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세계가 더욱 단단해진 서태웅의 사회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문제를 키운 건 기숙사 생활이었다. 2년 정도는 잘 지내다가 결국 폭행 사건으로 쫓겨났다. 서태웅은 실신할 정도로 이마에서 피를 많이 흘렸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더 많이 때린 쪽이라 피해자로만 처리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윤대협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서태웅을 포함해 폭력에 직접 연루된 학생들은 모두 퇴학을 당했다.
남학생들만 잔뜩 있는 신학교에는 윤대협이나 서태웅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거의 다 좋은 집 자식들만 가득했다. 가톨릭 집안의 아이들은 둘 중에 하나였는데, 매우 순종적이거나 잔뜩 억눌린 폭력성을 어딘가에 풀고 싶어했다. 후자 중에 도저히 명문 사립학교가 받아주지 않은 놈들도 제법 있었다. 끝내 서품을 받지 못하고 시간낭비만 하다가 돈 많은 부모들이 마련해 준 자리로 사라질 놈들이었다.
윤대협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부딪히지만 않으면 만사형통. 열다섯에 입학했던 윤대협은 모범생이 되는 걸 택했다. 고아원 출신의 모범생. 망나니들에게는 완전히 동떨어진 아웃사이더였다. 부딪힐 일조차 없었다. 실제 나이와는 달리 다른 이들보다 어려 보이지 않을만큼은 덩치가 커져있었기 때문에 만만한 취급을 당하지도 않았다.
서태웅은 달랐다. 너무 어렸고, 비사교적이며, 공부에 무관심했다. 금방 건방지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서태웅은 전부 무시했다.
그러나 기숙사의 단체 생활은 바보들을 언제까지나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불이 꺼진 뒤에 일어나는 일까지 통제할 수 있는 어른들은 없었다. 폭력이 유혈사태로까지 번진 이유는 망나니들이 '성적으로 짖궂은 짓'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신학교에서 드문 일은 아니었다. 망나니들이라고 사제들의 눈치를 아예 안 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남자아이들끼리 주고 받는 장난과 폭력의 경계에서 성적인 괴롭힘을 적극 이용했다. 성경을 기반으로 한 성교육은 어처구니 없었다.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서태웅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다만 수치심 이전에 본능적인 신체 위험을 느낀 서태웅이 공포에 짓눌리지 않은 격렬한 저항을 카운터로 먹이는 바람에 한 명은 불구가 됐고 두 명은 뼈가 부러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다.
윤대협도 서태웅에게 묻지 않았고 서태웅도 윤대협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태웅은 윤대협이 전말을 다 알고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서태웅이 퇴학당한 날 밤에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기 때문이다.
문 앞에 서 있던 건 윤대협이었다.
윤대협은 자신의 가슴께까지 키가 자란 서태웅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서태웅은 열세 살부터 본격적으로 팔다리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1년에 10cm씩 커져서 항상 무릎이 아팠다. 그 속도를 따라서 근육이 자라지 못해 덜 자란 새끼 기린처럼 마르고 길쭉했다.
윤대협은 아주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두 팔을 뻗어 서태웅을 끌어안았다.
포근한 품속은 기억 속의 죽음과 같았다. 한 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던 그 날의 온기.
서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윤대협을 마주 안았다. 팔에 힘을 줘서 꼬옥 달라붙었다.
"미안해."
윤대협이 신음을 토하듯이 사과했다.
서태웅은 윤대협이 왜 사과하는지 알지 못해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서태웅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윤대협은 떠났다.
그 날 처음으로 서태웅의 꿈에 윤대협이 나왔다. 퇴학 동지들이 불쾌한 어조로 서태웅에게 저지르겠다고 장담했던 행위를 안전한 곳에서 윤대협이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꿈이었다. 윤대협은 언제나처럼 친절하고 정중하고 자상했다. 그게 서태웅의 첫 몽정이었다.
그 날부터 매일 쌓여가는 비밀들.
서태웅은 비밀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오르간은 윤대협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가 되었다.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연주는 비밀을 잊어버리기에 적합할 정도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훈련이었다. 정식으로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된 이후에는 하루종일 훈련에 매진한다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었다.
파이프오르간은 성당 건축의 일부다. 미사 때 서태웅이 만든 소리는 천장에서부터 신자들의 정수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오르간은 신의 말씀을 음악으로 전달하는 도구였다. 천사에게는 나팔이, 성당에는 오르간이 있는 것이다. 물론 서태웅은 대체로 인류의 유일신이 아니라 자신의 유일신을 생각하며 연주하였지만 누구에게도 비밀스런 헌정을 들키지 않았다. 중세 때부터 지금까지 전해오는 많은 미사곡은 역사를 알 수 있을 만큼 명곡이라, 멜로디만으로 충분히 신비롭고 성스러운 감각을 전파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서태웅의 기계처럼 정확한 박자감과 과장스럽게 질질 끌지 않는 담백하고 깔끔한 연주는 역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작곡가가 처음 의도한 큰 감동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작지만 유서 깊은 성당에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오르가니스트. 고아 출신에 성당에서 자랐다는 사실이나 신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했다는 불명예마저 특정한 종류의 신화 같은 서사로 탈바꿈했다. 여기에 서태웅의 외모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누구나 떠들기 좋아하는 이야기의 완성이다. 그렇게 소문은 퍼져 나갔다.
윤대협은 애쓰지 않아도 서태웅에게 관심을 갖는 수많은 음악계의 저명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서태웅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큰 흥미를 보였다.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를 앞두고 제단 앞에 스타인웨이가 놓이게 된 이유다.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
순서가 돌아왔다.
모두 자리에 앉았다. 신도도 사제도 합창단도 복사들도.
윤대협은 보좌사제를 위한 등받이 높은 의자에 앉았다.
예배당 안에 단 한 사람의 연주자만 서 있었다. 따라서 그의 얼굴이 하늘에 가장 가까웠다.
서태웅은 천천히 그랜드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어색하게 의자를 빼고 앉았다.
잠시 건반을 노려보던 그가 고개를 휙 돌렸다.
시선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웃어줘야지. 윤대협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 윤대협은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위험한 일이다. 아이는 아주 예리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윤대협을 불만스럽게 바라본다.
불만스럽게, 원망스럽게, 간절하게.
아이가 눈을 살짝 감고 심호흡을 내쉰다. 열 손가락이 건반 위에 부드럽게 뿌려진다.
예수님은 나의 기쁨의 원천이시며
내 마음의 본질이며 희망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근심에서 나를 보호하시며
내 생명에는 힘의 근원이 되시며
내 눈에는 태양이며 기쁨이 되시고
나의 영혼에는 기쁨이며 보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과 눈에서
예수님을 멀리 하지 않으려 합니다
맑은 피아노 소리가 이토록 고요한 성당이 아니었다면 시작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시작되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아름다운 찬송가의 멜로디가 성당의 높은 천장 속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울려퍼졌다. 서두르지 않고 가만가만 속삭이는 듯한 피아노 소리. 명백한 고백이었다. 감히 가지고 있어도 되는지 확신할 수 없는 기쁨에 대해 거의 용서를 빌듯이 매우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연주였다.
같은 곡을 오르간으로 연주할 때와 많이 달랐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사곡의 반주였다면 지금은 완전히 개인적인 퍼포먼스였다. 박자를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미묘하게 늘리거나 왼손 반주의 특정 음이 더욱 잘 들리도록 연주하는 것도 오르간 연주에선 볼 수 없었던 표현이었다. 아이의 연주에선 언제나 절제가 돋보이긴 했지만 피아노가 드러내는 섬세함은 파이프오르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진심을 고백하면서 진심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과 같은 간절한 절제였다.
절제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인데.
폭풍처럼 또 직사광선처럼, 숨기거나 삼가하거나 머뭇거릴 줄 모르는 아이. 스스로 정당화하고 나면 주저없이 계율을 어기는 아이.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순종할 줄 아는 아이. 오직 주님 앞에서만.
그런 아이가 이토록 조심스럽게, 간절한 자제력으로 감싸, 거의 용서를 빌듯이 고백하는 기쁨.
윤대협은 가슴이 아팠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그의 육신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영혼이 비명을 질렀다. 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이의 연주가 윤대협의 영혼에 떨어져 파동을 일으켰다. 독처럼 아팠다. 기쁜 성탄 전야의 묵상과 기도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잔잔하고 겸손한 음악에 이토록 아픈 것은.
죄인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윤대협은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을 깨닫는다.
서태웅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그건 모든 양육자의 기쁨. 주님 뜻하고 지으신대로, 번데기를 벗어나 날개를 말리는 나비처럼, 훌륭한 청년으로 피어난 모습.
하지만 윤대협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시작할 때처럼 조심스럽게 연주가 끝났다.
서태웅은 잠시 의자에 앉아있었다.
마지막 잔향이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서태웅은 이내 어색하게 일어났다.
연주회가 아니라 미사 도중이라 박수는 적절하지 않았지만 몇 명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이내 모든 신자들이 동조했다. 서태웅은 조금 당황하면서 제단 위의 사제석을 돌아보았다. 박수를 치는 사제는 없었지만 모두 인자한 얼굴로 부드럽게 손짓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윤대협만 제외하고.
서태웅은 윤대협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사람 같았다. 이제 아이가 아닌 아이를 향해 윤대협은 어른들 사이에서 종종 그래야만 하듯이 억지로 웃어보였다. 윤대협은 그런 웃음을 제법 잘 짓는 편이었다. 어른을 상대로는 그랬다.
윤대협의 그림 같은 미소를 확인한 서태웅이 얼굴을 조금 붉혔다. 자랑스러움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꾸벅 목례하자 박수소리가 더 커졌다. 서태웅은 약간 비틀거리면서 신자석 구석을 찾아갔다.
윤대협 다니엘 사제가 일어섰다. 다시 미사를 진행해야 한다.
사제는 신자석을 바라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칠 위험을 무릅쓰기보다 신에게 기도하기를 택했다. 미사는 그 자체로 기도다. 그 어느 때보다 신이 필요한 순간이다.
서태웅은 신자석 구석에 상체를 조금 웅크리고 앉았다.
남들 앞에서 연주를 마쳤다는 흥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콩닥거리는 가슴 속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눈가에 질금질금 무언가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기도를 하는 것처럼 살짝 고개를 숙이자 얼굴 앞 짧은 나무책상 위로 미지근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들켰다.
서태웅은 온몸으로 그렇게 느꼈다.
피아노는 예상대로 연약하고 치사한 고자질쟁이였다. 감추려고 노력할수록 감추고 있다는 사실만 드러날 뿐이다. 불쾌하고 공포스러워야 할 감정이 그렇지만은 않았다. 콩닥거리는 심장박동을 따라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하면 손끝과 발끝으로 짜릿함이 퍼져 나갔다. 고해성사의 해방감이었다. 성당을 가득 채운 신자 앞에서, 모든 사제 앞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그의 신이자 삶이자 세계이자 전부이자 유일한 사랑 앞에서, 서태웅은 드디어 죄를 털어놓은 것이다. 진심을 드러낸 것이다.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기쁨인지 고통인지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어쩌면 둘 다일지 모를 눈물이 몇 줄기 더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조절할 수 없는 감정이 눈을 통해 고요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서태웅은 문득 십 년 전 한 번 죽었다가 태어났던 날의 세례를 떠올렸다. 얼굴을 적시는 이 눈물도 일종의 세례일 수 있다면.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이제 필요하지 않다. 서태웅은 그의 신이자 삶이자 세계이자 전부이자 유일한 사랑을 떠난다. 신을 죽이고 아버지를 죽이고 연인을 죽이고 집을 떠나야만 시작될 수 있는 인생도 있는 것이다.
다 털어놓고 나서야 서태웅은 이보다 적합한 방식은 없었음을 알았다. 격정을 격정으로만 전달하기엔 너무 오랫동안 많은 감정이 쌓였다. 얼마나 감추려 노력했는지까지 전해야만 이다지도 감출 수 없었음이 전해진다.
가장 인간적인 욕망의 기쁨 속에서 서태웅은 몸을 떨면서 미소지었다. 휘어진 입술 위로 짭짤한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