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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horts
2023.06.01

키스

불면의이쑤신

한가한 주말. 느지막이 눈 떠서 뭐라도 대충 만들어 먹고 나면 둘만의 시간. 서태웅은 농구를 제안하고 윤대협은 서태웅 끌어안고 소파에 드러눕기를 제안...하기 전에 이미 실행한다.

부루퉁한 표정이던 서태웅은 발버둥도 없이 금방 품 속에서 꿈뻑꿈뻑 존다. 또 싫진 않은가 보네. 윤대협은 동그란 정수리에 코를 묻으면서 안 보이게 웃었다. 어차피 이것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별로 없다. 이래야 비로소 주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느긋함이 체온과 무게로 몸에 스며드는 순간. 디저트보다 커피보다 식후엔 서태웅.

잠든 줄도 모르게 깜빡 잠들었다. 윤대협은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다. 딱 30분이 지났다. 품 속의 서태웅은 여전히 새근새근. 자는 동안 조금 더 따끈따끈해진 몸의 들어가고 튀어나온 굴곡이 제 것과 맞아떨어져 퍼즐처럼 편안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창밖의 청명한 햇살. 파란 하늘. 그리고 유난히 눈에 띄는 먼지와 머리카락과 쌓인 빨래... 미뤄뒀던 집안일이 물끄러미 이쪽을 쳐다보는 기분이 든다. 한가한 주말 오후에는 으레 그렇듯이.

윤대협은 서태웅을 한 번 꼬옥 힘주어 끌어안는다. 으음 하고 먹힌 소리를 내면서 서태웅의 의식이 약간 돌아왔다. 몸을 뎅굴 굴려서 커다란 소파에 서태웅을 혼자 눕혀 놓고 일어선다. 하지만 서태웅은 다시 잠들지 않았다. 주먹 꾹 쥐고 기다란 팔다리를 아래 위로 있는 힘껏 자랑하며 기지개를 켜더니. 졸음을 쫓으려는 듯이 서서히 눈을 깜빡인다.

"더 자도 되는데."

"나도 농구..."

"농구하려고 일어난 거 아니야."

"그럼..."

"청소하려고."

윤대협과 서태웅은 딱히 가사 분담을 정해 놓기보다 한 사람이 움직이면 다른 사람도 알아서 움직이는 편이다. 오늘은 햇살도 공기도 맑다. 앞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청소기를 가지고 나왔을 때 서태웅은 소파에 없었다. 베란다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빨래하려나 보다. 굿 초이스. 윤대협은 베란다를 향해 소리쳤다.

"태웅아."

베란다 문에서 서태웅의 얼굴이 뿅 튀어나왔다.

"노래 틀어 줄래?"

서태웅은 두말 않고 베란다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거실의 커다란 스테레오 오디오 앞으로. LP와 CDP와 라디오와 심지어 카세트테이프까지 들어가는 오래된 오디오 세트는 서태웅이 부모님께 물려받은 진짜 빈티지다. 관리가 어지간히 잘 됐는지 신기하게 아직도 창창하다.

버튼 누르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익숙한 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서태웅은 청소기 소리를 고려해서 볼륨 다이얼을 쭈욱 돌렸다. 프린스의 퍼플 레인. 휘파람을 꽤 잘 부는 윤대협이 유일하게 후렴구를 따라 했던 노래다. 그 이후로 서태웅은 윤대협이 음악을 주문할 때마다 일단 이 곡부터 틀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생각해서.

실은 윤대협은 이 노래에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캐치한 동시에 난해하기도 한 프린스의 노래 중에 가장 따라 하기 쉬웠을 뿐이다. 어느 날 우연히 흥얼거렸다는 이유로 꼬박 기억하고 선곡하는 그 마음씨가 각별했을 뿐.

청소기를 틀면 그마저도 잘 안 들린다. 윤대협은 개의치 않았다. 속으로 또 그 노래일까, 혼자만의 작은 내기를 걸어 봤고, 오늘도 이겼다. 그거면 충분했다. 박자가 맞거나 말거나 윤대협은 휘파람을 불면서 청소했다.

9분에 육박하는 제법 긴 노래가 후주까지 전부 끝났을 때쯤엔 윤대협의 시원시원한 청소도 대충 마무리됐다. 그렇게까지 매번 꼼꼼한 편은 아니다. 이제 밀대로 걸레질해야지. 청소기 집어넣고 밀대 꺼내고 걸레 빨아 끼워 넣고. 준비를 마치자 오디오는 벌써 다음 노래를 틀고 있었다.

딱딱 끊어지는 특유의 비트감이 살아있는 곡. 제목은 기억 안 난다. 아마도 컴필레이션 앨범을 고른 것 같다. 나올 때마다 사 모은 수많은 앨범 중 하나겠지만.

서태웅이 양 팔에 방금 걷은 빨래를 잔뜩 안고 나와 발로 베란다 문을 닫는다. 방금 청소한 바닥에 햇살 냄새가 나는 천 쪼가리를 우르르 쏟아 놓자 햇살 사이로 하얀 먼지가 일어난다. 그 앞에 책상다리 하고 앉는다.

양말 짝을 맞추면서 서태웅의 고개가 펑키한 비트에 맞춰 까딱인다. 가끔 어깨도 움찔거린다. 신나면 곱게 접은 양말을 내려놓고 손가락도 딱, 딱 튕긴다. 미니멀한 사운드 사이에 장식처럼 서태웅의 간결한 움직임이 끼어든다.

윤대협은 슬슬 걸레를 밀면서 서태웅을 구경했다. 질리지 않는 광경이다.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선 좋아하는 음악을 온몸으로 즐긴다. 봐도 봐도 신선하다.

이어폰을 몸의 일부처럼 달고 사는 서태웅과 달리 사실 윤대협은 일상에 음악을 필요로 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다. 고요함을 즐기는 편이고 자연에서 나는 소리를 좋아했다. 물론 서태웅이 내는 소리는 다 좋다. 프린스의 음악도 그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싫어할 이유가 없다. 윤대협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노래를 골라 틀거나, 비트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서태웅의 입술이 소리 없이 가사를 따라 한다. 새처럼 높고 관능적인 목소리가 마치 그 입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제 막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 서태웅이 이어폰을 낀 채로 혼자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춤추던 현장을 처음으로 목격한 순간이 기억난다. 기습 당한 서태웅은 눈이 마주치자 그 자리에 딱 3초간 얼음처럼 굳었다가 스르르 흐르듯이 소파에 쓰러졌다. 그리고 잠시 동안 쿠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윤대협의 어떤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자고 있었던 것처럼 뻔뻔하게... 하지만 언뜻 보이는 목덜미와 귓등이 시뻘게져 있었다.

참 귀여웠지. 윤대협은 어느새 자신의 입꼬리가 최대한의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걸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서태웅은 전혀 부끄러움 없이 어깨를 으쓱이고 목을 까딱이며 빨래를 갠다. 이젠 서로가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의 일부에 가까워진 사이라서. 흐뭇하고 귀여운 광경. 걸레질도 까먹고 숫제 멈춰서 쳐다본다.

그런데 갑자기.

서태웅이 입술을 뾰족하게 모으고.

음악과 동시에 허공에 키스를 날렸다. 다섯 번.

쪽. 쪽. 쪽. 쪽. 쪽.

Kiss.

와당탕.

윤대협이 잡고 있던 밀대를 놓쳤다.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서태웅은 그 순간에는 깜짝 놀랐다가. 뭐야. 그냥 놓쳤나 보네. 별일 없는 걸 보고 금방 다시 빨래로 돌아간다. 여전히 흐르는 비트에 몸을 맡긴 채. 까딱까딱.

어릴 적부터 자주 들었던 노래는 어디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 너무 잘 안다. 코러스와 악기까지 외워 버렸으니까. 예상 가능한 전개에 마음속으로 싱크로 되는 기분은 언제든 짜릿하다. 프린스는 따라 부르기보다는 듣고 즐기기에 최적화된 음악이라 언제나 소리는 내지 못하고 립싱크가 되기 마련이지만. 보통은 속으로만 따라 하는데 혼자 있거나 많이 신나면 저절로 목이 까딱거리고 어깨가 들썩거리고 입술이 오물거린다.

윤대협의 파란 양말 짝이 안 보인다. 어디 갔지. 뒤적거리면서도 어깨가 으쓱인다. 기분 좋은 노래다. 오늘처럼 맑은 날 텐션을 띄워 준다. 서태웅은 단순하다. 느린 노래를 들으면 졸리고 빠른 노래를 들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어린 시절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자전거를 탈 때도 그랬다. 신나는 노래가 나올 땐 팍팍 밟다가 발라드로 넘어가면 금방 잠이 왔다. 졸음운전 폭주 자전거라는 오명을 쓴 것도 반쯤은 프린스의 장르를 불문하는 광범위한 음악성 때문일지도. 반쯤은.

찾았다. 파란 양말. 신중하게 발목 끝을 서로 맞추려고 눈높이로 집어 든다. 서태웅은 빨래를 손 빠르게 각 맞추는 재주는 없어서 그냥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편이었다.

양말 너머에 어디서 많이 본 예쁜 눈 한 쌍과 마주쳤다.

어느새 자신 앞에 바짝 다가와 앉아 있는 윤대협.

뭐지. 왜 빤히 쳐다보지. 이상하게 눈을 안 깜빡인다. 서태웅의 날렵한 눈썹 끝에 의문이 들어간다. 청소 다 하고 도와주려나 보다. 저 좋을 대로 해석한다. 그동안에도 부지런히 목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입술이 멋대로 가사를 따라 한다.

그때 커다란 손이 빨래 더미를 쑥 넘어와 목덜미를 붙잡았다.

음악에 맞춰 입술을 빼앗겼다.

쪽. 쪽. 쪽. 쪽. 쪽.

Ki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