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는 마시고 싶고 섹스도 하고 싶고
불면의이쑤신
농사 님 <Sexru Diary> 축전
<더워 죽겠는데 섹스는 하고 싶고> 3차 연성어떤 경험은 인생을 바꾼다. 그러니까 다시는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다.
프로농구 시즌을 마무리하는 시상식이 열리던 날. 윤대협은 서태웅이 자신이 아닌 무언가를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으로 부모의 원수처럼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문 일이다. 애인도 아닌데 뭘 그렇게 뜨겁게 쳐다보지? 반쯤 심통 난 마음으로 따라가 본 시선 끝에는.
샴페인을 담아 놨던 아이스 버킷이 있었다.
파박! 불꽃을 튀기듯 윤대협과 서태웅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두 쌍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장면, 같은 감각을 떠올렸다. 무더위, 고장 난 에어컨, 땀이 소리 날 정도로 주르륵 쏟아져 내리는 후덥지근한 공기, 그리고 아이스 버킷...
윤대협의 입술 사이로 웃음이 터졌다. 꾹 참으려다 보니 오히려 온몸이 부들부들 흔들린다. 폐에 구멍 난 사람처럼 커다란 상체가 스르르 무너져 테이블에 이마를 박았다. 같은 팀 외국인 선수가 윤 혼자 소주 마셨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는 윤대협 옆에 앉은 서태웅의 얼굴을 보고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친구도 소주 마셨냐고. 불에 잘 구운 숯처럼 이마까지 시뻘건 채로 서태웅은 엎드린 윤대협의 등을 퍽퍽 때렸다.
보리차는 마시고 싶고 섹스도 하고 싶고
또 여름이다.
같은 고온이라도 건기라서 쾌적했던 전지훈련지와 달리 한국의 8월 초는 무자비했다. 딱 일주일의 휴가. 다들 괌까지 간 김에 관광하고 온다는데 윤대협과 서태웅은 칼같이 귀국 비행기를 끊어 하루도 지체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둘이서만 있고 싶어서.
오랫동안 바람이 통하지 않았던 집 안은 바깥보다도 찜통이었다. 커튼 닫는 걸 깜빡하고 간 통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 온 무자비한 햇빛이 거실을 온실로 만들어 놨다. 서태웅은 곧장 에어컨으로 가다가 윤대협에게 저지당했다. 환기부터 해야 한다는 거다. 알 바인가. 너는 환기해라, 나는 에어컨 튼다. 서태웅은 희망 온도가 18◦C에 다다를 때까지 에어컨 리모컨을 연타했다. 실로 오랜만에 가동되는 에어컨은 잠시 정신을 못 차렸는지 미적지근한 바람만 요란하게 내뿜었다. 오히려 더웠다.
서태웅은 투덜거리면서 냉장고를 열었다. 보리차가 가득 담긴 황금빛 유리 물병을 꺼낸다. 전지훈련 가기 전에 윤대협이 삼복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제일 큰 냄비에다 한가득 끓여서, 식혀서, 물병 다섯 개에 나눠 담아 냉장고에 꽉꽉 채워 놨던 보리차. 알맞게 차갑다. 커다란 유리잔에 얼음을 가득 담고 물병을 기울인다. 찰랑찰랑 시원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카랑, 미끄러진 얼음들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초조한 마음속으로 열을 세고 나서 서태웅은 보리차를 쭉 들이켰다. 목울대가 한 번씩 꿀렁일 때마다 뱃속부터 냉기가 차오른다. 하, 시원하게 한숨을 내쉬며 내려놓은 컵 안에는 얼음만 깔끔하게 남았다. 서태웅은 거의 녹지 않은 얼음 위로 다시 한번 보리차를 채웠다.
갑자기 등판을 덮치는 열기. 으엑. 서태웅은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등판을 꼬옥 감싼 열기가 움찔, 하더니 서태웅의 목 옆으로 얼굴을 쭉 빼고 상처받은 눈동자로 쳐다본다.
“자기 지금 나한테 으엑이라고 한 거야?”
“더워. 떨어져.”
“헐. 너무해...!”
목덜미에 부벼대는 앞머리에서 왁스 냄새가 난다. 서태웅은 덩치로 눌러 오는 반려자를 몸부림쳐 떼어내고 돌아섰다. 힝구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시무룩한 윤대협을 감상한다.
오늘 공항에는 일찌감치 포토 라인 공지가 떴기에 전원 정장 필수였다. 서태웅은 들어오면서 이미 재킷은 어딘가에 던져놨지만 셔츠는 그대로 잘 입고 있는데. 윤대협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창문 열어 환기하고, 서태웅 재킷 주워다 옷걸이에 걸고, 서태웅 짐까지 챙겨서 드레스룸에 갖다 놓느라 더웠던 모양이다. 재킷과 넥타이는 사라졌고, 빳빳한 정장 와이셔츠 단추는 네 개까지 풀어헤쳤다. 시원하게 전면 공개된 굵직한 목덜미에서부터 흘러내린 땀 한 방울이 또렷한 쇄골 라인을 지나 셔츠 플래킷을 살짝 들어 올릴 정도로 융기한 대흉근 사이로 또르르 굴러 들어갔다. 양쪽 소매를 걷어 올려 다 드러난 팔뚝 힘줄도 땀에 젖어 반들반들 윤이 났다.
꿀꺽. 서태웅이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고소한 보리차의 여운이 아쉬운 듯 혓바닥에 달라붙는다. 그래. 보리차. 서태웅의 시선이 잠시 따라 둔 보리차를 향한다. 온도 차 때문에 그새 유리잔 겉에 송글송글 맺힌 결로가 식탁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다.
“태웅아. 집에 왔는데 아직 잘 다녀왔습니다 뽀뽀도 안 했잖앙.”
다시 정면의 윤대협을 바라본다. 잘 다듬은 헤어스타일 아래 여기저기 풀어헤친 촉촉한 근육을 뽐내면서 도톰한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애교를 부리고 있다. 다른 어떤 누구였대도 이상한 언밸런스일 텐데, 윤대협이 하면 거부할 수 없는 완벽한 섹스어필이 된다.
서태웅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보리차를 한 번 본다. 윤대협을 한 번 본다. 다시 보리차를 바라본다. 망설인다. 또 윤대협을 본다. 얼굴에 의문이 가득한 멍청한 표정. 젠장. 귀엽다.
양자택일은 서태웅이 좋아하는 게임은 아니다. 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지? 근본적인 의문에 다다른 서태웅은 본능대로 가기로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하얀 오른손이 보리차와 얼음으로 가득 찬 유리컵을 꽉 쥔다.
그리고 윤대협의 머리 위에 냅다 부었다.
‘으악’과 ‘꺄악’의 중간 정도 되는 비명을 지르며 윤대협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작스러운 물벼락 아니 보리차벼락을 맞고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크게 뒤로 물러선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이자 머리를 다 적신 보리차가 촤르륵 바닥에 떨어진다. 셔츠 앞뒤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간 굵직한 얼음이 차갑다 못해 아프다.
어깨선과 팔뚝을 타고 손끝까지 내려가 뚝뚝 떨어지는 보리차 방울을 털면서 윤대협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벽이 등에 닿았다. 서태웅이 윤대협을 그대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서태웅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고, 왠지 살짝 발그레했다.
“시원하지?”
“하...”
윤대협은 웃어버렸다. 다짜고짜 얼음과 보리차를 뒤집어쓰고도 화가 나기는커녕 미친 사람처럼 샐샐 웃음이 났다. 바짝 다가선 서태웅의 몸에서 훅 끼쳐오는 열기의 의미가 명백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환기 때문에 밖에서 쳐들어온 더운 바람을 방금 틀어 놓은 에어컨으로만 식히기엔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무모한 피서법도 제법 나쁘지 않은지도.
“그렇긴 한데 다 젖었잖아.”
왜냐하면 지금부터
“어떻게 하지? 태웅이가 다 닦아줘야겠다. 그렇지?”
제법 뜨거워질 것 같으니까.
윤대협은 은근슬쩍 서태웅의 허리춤에 벨트가 살짝 떠오른 틈 사이로 손끝을 집어넣어 꼬리뼈를 더듬었다. 움찔대는 근육을 셔츠 위로 끈적하게 쓸어 올린다. 땀으로 촉촉해진 피부에 셔츠가 매끄럽게 달라붙는다.
서태웅은 두 손바닥을 차갑게 식은 윤대협의 가슴팍에 찰싹, 갖다 붙이면서 선언했다.
“알았어.”
그리고 윤대협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보리차를 한 방울, 한 방울, 핥기 시작했다. 뾰족하고 작은 혀끝이 윤대협의 선 굵은 얼굴을 꼼꼼하게 더듬었다. 내리깐 속눈썹이 고소한 보리차 냄새가 나는 피부를 조금씩 긁어 간지러웠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혀끝이 입가를 지나갈 때마다 맞이하듯 입술을 살짝 벌렸지만 서태웅은 흥 코웃음치며 지나쳐 버렸다. 하하, 새침하네. 귀여워라.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나도 맘대로 해야지.
윤대협은 서태웅의 허리 뒤로 손을 돌려 하반신을 바짝 붙였다. 서태웅의 꼼꼼한 보리차 수습(?)이 관자놀이에서 귀를 지나 목덜미로 내려가는 동안, 자신의 단단한 허벅지를 그의 다리 사이에 밀어 넣고 뭉근하게 부비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 손으로는 정장 바지 안에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셔츠 테일을 끝까지 빼냈다. 치마처럼 엉덩이 아래로 퍼진 라운드 테일 안으로 굵직한 팔뚝이 단단하게 허리를 죄었다. 윤대협의 양손이 셔츠 아래로 사라졌다. 후끈한 습기가 피어오르는 등짝을 느긋하게 맛본다.얼음 섞인 보리차 때문에 차가워진 손끝이 맨살을 더듬는 감각에 서태웅이 날개뼈를 움찔댔다. 상반신을 차가운 자극이 사로잡는 한편 다리 사이를 바짝 뭉개는 뜨겁고 단단한 허벅지 때문에 하반신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아찔한 온도 차. 서태웅의 입가에서 힘이 풀린다. 내민 혀끝에서 은실 같은 타액이 늘어진다.
윤대협은 만족스럽게 노곤한 입술을 잡아챘다. 드디어 기다렸던 키스.
단단한 얼음도 순식간에 녹일 듯한 뜨거운 키스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서태웅은 기어이 다리가 풀렸다. 윤대협의 오른쪽 허벅지에 거의 올라탄 자세로 전신을 기댔다. 입술이 초옥, 물기 띤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태웅이 지금 보리차 맛 난다.”
윤대협은 단추 하나 열지 않고 서태웅의 상체를 마음껏 지분거리면서 웃었다. 서태웅은 발그레한 열이 오른 이마를 윤대협의 촉촉한 쇄골에 대고 새액새액 숨을 몰아쉬었다. 반쯤 풀린 눈으로 눈앞의 윤대협 가슴팍을 멍하니 바라본다. 낼름, 혓바닥을 내밀어 또렷한 대흉근의 데피니션을 핥는다. 따끈하고 촉촉한 기습 공격에 움찔한 윤대협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가슴만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린다.
“너도.”
하하, 이 자식이. 윤대협의 웃는 얼굴에 의미심장한 힘줄이 솟았다.
으쌰. 윤대협이 늘어진 서태웅을 추켜올렸다가 그대로 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찰박, 아까 쏟은 보리차 웅덩이에 서태웅의 엉덩이가 젖었다. 찡그린 서태웅의 눈썹 사이를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펴주며 윤대협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이번엔 태웅이가 다 젖었네. 걱정 마, 나도 닦아줄게.”
물론 입으로.
그해 여름, 서태웅은 더 이상 보리차를 마실 수 없었다.
최소한 입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