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erine Morning
불면의이쑤신
빕 님 <Citrus> 축전침대 위에 묵직한 어둠이 있다. 깊이 잠들었다. 그와 닮은 새카만 밤은 새벽이 남김없이 훑어갔다. 이제 방 안에 어둠이라곤 무겁고, 뜨겁고,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까만 재규어 한 마리뿐이다.
투명한 빛이 조금씩 창가로 새어 드리운다. 밤엔 주변과 구별할 수 없던 캄캄한 재규어의 윤곽을 비춘다. 까만 눈이 뒤덮인 산맥처럼 두터운 어깨 근육이 맞닿을 듯 솟아있다. 빽빽하고 짧은 털가죽의 일부는 햇빛을 받아 매끄러운 곡면으로 빛나고, 일부는 여전히 우주 같은 칠흑이다.
밤을 닮은 맹수는 팔다리를 쭉 뻗은 편안한 자세가 아니다. 유연한 척추를 둥그렇게 말고, 발바닥을 바닥에 딱 붙인 채로 고개를 한 쪽 앞발 위에 처박았다. 아주 돌돌 말려있다. 고양잇과 동물들이 춥거나 경계 상태일 때 그렇듯이. 방한이 잘 되어 뜨뜻한 실내, 혼자 사는 제 집, 그 중에서도 침대 위인데.
경계의 원인은 동그랗게 말린 까만 재규어의 품속에 있다. 자신보다 훨씬 커다란 신체에 둘둘 싸여 있어 어렴풋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낙엽 같은 주황빛 털이 숨어 있다. 끝으로 갈수록 검게 물든 귀도 뾰족하게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날아갈 듯 보송보송한 털은 햇빛을 투과해 끝부분부터 다락방의 먼지처럼 살짝 투명해진다. 빛을 반사하거나 머금거나 둘 중 하나인 흑재규어와 완전히 다르다.
햇살이 눈가에 닿자 재규어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깜빡. 깜빡. 샛노란 눈동자가 열린다. 밝은 빛 속에서 까만 세로 동공이 가늘게 좁아진다. 다시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온다.
재규어는 어깨를 한 번 위로 최대한 당겼다가 앞발 두 개를 쭈욱 내밀면서 고개를 위로 들어 거대한 주둥이를 쩌억 벌렸다. 우아하고 야성적인 기지개. 날카롭고 강철 같은 발톱이 쫘악 나왔다가 쏙 들어간다. 살짝 늘어진 입 주변의 검은 살로 쩝, 하는 소리를 내며 느긋하게 노란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를 굴린다. 곧바로 자는 내내 배와 허벅지 사이에 잘 끼워 둔 반려를 확인한다.
붉은여우는 언뜻 보면 재규어의 몸에 파묻힌 채로 제 꼬리를 베고 자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체중의 대부분을 자신을 온몸으로 둘러싼 반려에게 싣고 있었는지. 재규어가 살짝 원형으로 말린 몸을 풀자마자 무게중심이 뒤로 넘어가면서 발라당 뒤집어져 배를 보인다. 그러고도 쿨쿨 잔다. 그 어떤 짐승도 웬만큼 편안해서는 보이지 않는 자세다. 까맣고 날씬한 네 다리가 허공에 제각기로 뻗었고, 하얀 배털이 아무렇게나 뭉쳐 있다.
재규어는 코로 훅, 한숨처럼 뜨순 김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는 녀석, 그런 느낌이지만, 사실은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마음을 푹 놓으라고 밤새 온몸으로 단단히 둘러싸고 있었던 거니까.
갑자기 재규어가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기대고 있던 따스한 벽이 사라져 매트리스에 덜렁 한 바퀴 구른 여우도 덩달아 몸을 반쯤 일으키며 엎드렸다. 잘 자다 이불 뺏긴 사람처럼 다소 황망하게 눈을 끔뻑인다.
어디 갈 생각은 아니었던 재규어는 여우의 길쭉한 몸을 앞다리 사이에 넣어 단단히 고정한 자세로 다시 엎드렸다.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된 여우의 어깨뼈부터 정수리까지, 커다란 혓바닥으로 싹, 싸악, 그루밍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미는 힘 때문에 여우의 기다란 목이 앞으로 훌떡, 훌떡, 딱따구리 장난감처럼 넘어간다.
멍한 표정으로 그루밍을 받던 여우의 표정이 한 번 고개를 끄덕할 때마다 점점 티벳여우를 닮아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규어는 심취했다. 눈까지 지그시 감고 까끌한 혓바닥에 걸리는 붉은 털결을 음미한다. 물론 빳빳한 재규어털과 달리 얇고 장모인 여우털은 그루밍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지기보단... 오히려 엉키고 있었다. 게다가 역방향. 침이 묻어 축축해진 여우털이 정수리에서 삐죽삐죽 솟아올랐다.
표정만 구려졌을 뿐, 얌전히 그루밍을 받던 여우가 갑자기 몸을 홱 뒤집었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선홍색 혓바닥을 펀치하듯 빠르게 앞발을 쭉 펴서 저지한다. 고개까지 한껏 옆으로 돌렸다. 노란 유리구슬 같은 재규어의 눈이 깜빡인다. 서서히 혀를 집어넣는다. 흥. 콧방귀를 뀌며 여우가 앞다리를 편안히 꺾자마자.
다시 혓바닥을 쭉 내밀어 이번에는 거의 꼬리에 가까운 아랫배부터 가슴팍을 거쳐 목을 따라 뾰족한 턱 끝까지 한 번에 핥았다. 따끈하고 까끌한 재규어의 혀가 문자 그대로 여우의 전신을 닦는다. 여우는 다소 몸부림쳤지만 저지하진 않았다. 제법 힘을 주어 눌러가며 훑으면 복부의 보송하고 하얀 털에 숨겨진 유두가 한 번에 눌린다. 여우가 귀를 파들파들 떨었다. 삼각형의 귓속에도 솜털이 빽빽하다. 너무 큰 혀끝을 무작정 들이밀어 빠짐없이 싹싹 핥는다.
여우가 두 앞다리를 쭉 내밀었다. 이번엔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재규어의 거대하고 촉촉한 까만 코를 주둥이 채 가슴팍으로 끌어안았다. 푸흐흑, 재규어가 콧김을 뿜자 따스하고 습한 숨결이 여우의 보드라운 가슴털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두 맹수는 잠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3초. 2초. 1초.
누가 먼저였는지 알 수 없는 천천한 변화. 어느새 침대 위엔 짐승 대신 알몸의 두 사람이 몸을 겹치고 누워있었다. 서태웅은 등을 대고 누워 윤대협의 머리통을 가슴팍에 껴안았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얼굴을 양 팔 사이에 가둔 채로 그 몸 위에 엎드렸다.
둘은 잠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윤대협의 샛노란 눈동자. 서태웅의 금색 같은 개암색 눈동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흉곽 아래로 모든 신체가 맞닿아있었다.
서태웅이 눈 한 번 깜빡이지도 않고 윤대협을 바라본다. 윤대협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여우의 눈동자에 홀린 인간들의 전설을 생각했다. 윤대협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서태웅은 배부른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3초. 2초. 1초.
누가 먼저였는지 알 수 없는 키스. 역시 인간 쪽이 적당한 사이즈라고 윤대협은 생각했다. 아까 제대로 빨아먹지 못한 귓속까지 맛보리라 다짐하면서. 짐승의 침으로 이미 축축해져 있는 서태웅의 전신을 서서히 더듬는다. 털 없이 매끈하고 보드랍다. 싸늘한 아침 공기에 노출되어 식지 않도록.
금방 따뜻하게 데워줄게. 그렇게 속삭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서태웅은 두 다리를 뻗어 윤대협의 허리에 감았다. 짐승일 때나 인간일 때나 의사소통수단 이전에 팔다리가 먼저 나간다. 허락 정도가 아니고 한 발 성큼 앞서 나가는 반려의 방식은 윤대협의 마음에 언제나 불을 당겼다. 경쟁하듯 서로를 탐하는 사이에 투명한 아침 햇살이 서서히 주홍색으로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