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다
불면의이쑤신
강진 님 <첫사랑> 축전윤대협에게 초능력이 생겼다.
첫 번째 초능력은 순간이동이다. 졸업 후에도 윤대협은 여전히 능남고 근처 자취방에 살았다. 두 시간 가까운 거리를 통학했다. 진학의 이유가 접근성이었던 서태웅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이해할 수 없어도 존중할 수 있고 나아가 사랑할 수도 있다. 사실 사랑의 관점으로 따지자면 윤대협의 선택은 단연 최고였다.
윤대협이 보고 싶다. 서태웅이 그렇게 생각하는 즉시 윤대협이 나타나는 매일이었다. 윤대협은 오전 강의 없는 날엔 서태웅을 북산고 앞까지 데려다줬다. 교복을 입은 서태웅의 뒷모습을 향해 한량처럼 손을 흔들었다. 반대로 오후 강의가 비교적 일찍 끝나는 날엔 아예 대학에서 곧장 북산고로 왔다. 함께 농구하러 가거나 날씨며 기분에 따라서는 바로 자취방에 틀어박히거나. 서태웅은 금방 윤대협의 시간표를 외웠다. 딱히 달달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히 몸에 새겨졌다. 오히려 작년보다 자주 만나는 거 같기도 했다.
사실이었다. 당연하다. 윤대협은 그러려고 자취방을 안 뺀 거니까.
두 번째 초능력은 텔레파시다. 문득 윤대협이 생각나서 연락해 볼까 하면 반드시 먼저 연락이 와 있었다. 수업시간, 부 활동 시간, 자전거를 탈 때는 핸드폰을 볼 수 없는 서태웅과 달리 윤대협은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나 부재중 전화를 찍어 놨다.
[태웅아 ㅎㅎ]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별일은 없는데 이거 보면 전화해~ 목소리 듣자]
이제 서태웅은 윤대협보다 먼저 보고 싶다고 말하려면 노력을 해야 했다. 부 활동 중간에라도 문득 생각이 나면 재빨리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윤대협]
[보고 싶어]
오늘은 먼저 말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윤대협이 약속도 없이 체육관 밖에 서 있곤 했다. 뛰어온 것처럼 헉헉거리면서. 또 순간이동 쓰네.
“너 저녁 수업 있는 날 아니야?”
“자체 휴강이라고... 그런 게 있어. 태웅이도 대학 가면 알 거야.”
어린애 취급에 발끈하는 마음은 포옹 한 번에 쉽게 녹았다.
계절은 금방 지났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생은 방학도 길었다. 윤대협은 아직 학기가 덜 끝난 서태웅의 하루를 쉽게 독점했다. 서태웅마저 방학하니 정말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았다. 부 활동, 윤대협, 농구, 윤대협, 윤대협이랑 농구, 농구랑 윤대협. 서태웅의 방학은 대충 그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날이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기념일은 평일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나온 서태웅은 대문 앞에서 윤대협을 마주쳤다. 코끝이 빨갰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언제부터 나는... 윤대협을 기다릴 일이 없었지?
윤대협이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장미꽃다발을 내민다. 서태웅이 두 손으로 받아야 할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졸업식이 아닌 날에 꽃다발을 받아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태웅아, 2년 동안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
윤대협이 배시시 웃었다.
“오늘은 학교 빠지고 나랑 놀자.”
나쁜 일을 제안하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서태웅은 거절할 수 없었다.
“이게 그거냐?”
“응?”
“자체 휴강.”
윤대협이 소리 높여 웃었다. 맞아. 태웅이는 대학생의 재능이 있네.
“어디 가고 싶어? 하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건? 뭐든지 얘기해.”
윤대협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뻣뻣해지기 시작한 서태웅의 손등을 감싸며 다정하게 말한다. 연인이 되고 나서야 서태웅은 윤대협의 진짜 온도를 알았다. 코트에서 펄펄 끓을 듯이 달궈지던 최고점과는 또 달랐다. 가장 차가워질 때조차 주변이 상처받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두는 방식의 따스함. 굳이 전하려 하지 않아도 거기 존재하는 온기.
서태웅이 작은 입술을 열었다. 하얀 입김과 함께 말했다.
“바다.”
윤대협의 눈이 커졌다.
“바다 보러 가.”
서태웅은 윤대협이 얼마나 바다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주변이 상처받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어 혼자가 됐을 때, 윤대협의 곁을 지켜준 건 바다였다. 질투심에 고집을 부려 서태웅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본 적도 있다. 그 이후 윤대협이 바다 대신 자신과 어울려 주기 시작했지만. 사실은 윤대협에게 바다를 돌려주고 싶었다. 이런 날만큼이라도.
윤대협이 서태웅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서태웅은 장미꽃다발이 뭉개질까 봐 팔뚝으로 가드를 세웠다. 귀에 따스한 숨결이 속삭인다.
“그래. 바다 보러 가자. 오랜만에 너랑 같이 보고 싶어.”
손을 꼭 맞잡고 바다로 걸었다. 서태웅의 다른 손엔 커다란 장미꽃다발이 들려 있었고, 윤대협의 다른 손은 코트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윤대협은 주머니 속에서 반지 케이스를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