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Cosmos
불면의이쑤신
또웅 님 <Love Chaos> 축전“이란성 쌍둥이는 별로 안 닮는다 하지 않았나?”
윤대협이 했던 얘길 또 한다. 그걸 듣는 서태웅의 눈이 가늘어진다. 지겹다는 뜻이다.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막상 말하는 놈은 처음처럼 경이로움에 잔뜩 취해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태일이는 남자고 태이는 여자잖아. 멍청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얼굴이 완전 똑같잖아. 복사 붙여넣기.”
한 번에 한 아기씩 안아 들더니 운동장만큼 넓은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서태웅의 양 어깨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이렇게 셋이.”
얼굴을 붙여놓고 뿌듯하게 웃는다. 코 잠든 아기들의 볼이 따끈하다. 서태웅은 윤대협의 행복이 어떤 표정인지 관찰한다. 앞으로 인생에서 이런 장면을 최대한 많이 만들겠다고. 농구와 아이들 이외에 아주 구체적인 새로운 목표를 몰래 품는다.
서태웅은 미국에서 대학에 다닌다. 태일이와 태이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에 따라 국적이 주어지는 미국, 부모의 국적에 따라 국적이 주어지는 한국. 그래서 태일이와 태이는 둘 다 이중국적이다. 그래서 윤대협도 미국에 가기로 했다.
윤대협은 다니던 회사에 출산휴직계와 육아휴직계를 한꺼번에 냈다. 상사는 눈을 찌푸렸다.
“네가 낳았냐?”
“그건 아닌데요...”
“그럼 출산휴가는 아니지, 이 자식아!”
욕먹으면서도 윤대협은 헤헤 웃었다. 멈출 기세가 없는 저출생 트렌드 덕분에 대한민국의 법정 육아휴직 기간은 점점 늘어나 부부 각자에게 1년 6개월, 한 명에게 몰아주면 무려 3년에 육박하였다. 물론 독박육아 따위 구습의 적폐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 한 사람에게 3년을 몰아주는 건 거의 개념상으로만 존재하는 극단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윤대협은 그걸 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가족들과 떨어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윤대협은 이미 너무 오랫동안 서태웅, 서태일, 서태이와 살지 못했다. 솔직히 단 하루라도 더는 무리였다. 태명도 못 붙여봤고 태동도 못 느껴봤고 서태웅의 배 안에서 뛰는 세 개의 심장 소리도 못 들어봤다. 더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옹알이, 목 가누기, 뒤집기, 기어가기, 처음 일어서는 순간, 처음 걷는 순간, 처음 말하는 순간. 윤대협은 기꺼이 독박육아에 뛰어들 준비가 끝났다. 오히려 간절히 원했다.
서태웅은 말리지 않았다. 법이 보장한 육아휴직이라는데. 신생아 두 명을 동시에 돌보는 건 아무리 친가의 도움을 받아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복학을 해야 한다면 더더욱 각이 안 나왔다. 마침 전업주부가 필요한 타이밍이다. 하교하면 집에 윤대협이 있을 걸 생각하면 설레기까지 했다.
윤대협은 원래 적응력이 탁월한 편이다. 미국 생활과 육아도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윤대협의 미국 적응은 곧 미국 TV 적응하기라고 봐도 무방했다. 생후 1년 미만의 쌍둥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분유 또는 미리 짜 둔 모유를 주고, 도톰한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트림시키고, 배가 부르니 잠투정을 시작하는 아기들을 차례차례 재우고. 자는 동안 밀린 설거지, 빨래, 청소를 하고. 두 시간 뒤에는 밥 먹여야 하니까 또 깨우고. 중간중간 각종 장난감으로 놀아 주고.
한 세 번 반복하면 서태웅이 학교에서 돌아온다. 그때부터는 육아 난이도가 반으로 줄어든다. 아직 기다림을 모르는 쌍둥이는 한 명을 돌보고 있으면 서러워 죽겠다며 울부짖었는데, 서태웅이 있으면 동시에 밥을 먹이고 동시에 트림시키고 동시에 재우고 동시에 놀아줄 수 있었다. 윤대협은 이제 아기 우는 소리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너무 익숙해서. 그리고 금방 그치게 할 수 있으니까.
아기들은 쑥쑥 자랐다. 처음 한국에서 봤을 때만 해도 조심히 목을 받쳐 안아야 했는데, 이제는 품에 안긴 채 오동통한 두 팔로 윤대협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본다. 둘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옹알옹알 매일이 백분 토론이다. 윤대협은 할리우드에서 제일 유명한 TV 드라마보다 태일이와 태이의 옹알이 대결을 보는 게 훨씬 더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서태웅이 집에 오면 오늘은 어떤 귀여운 일을 했는지 자랑한다. 가급적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려 노력은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짜 치명적으로 귀여운 행동은 순간 포착이 쉽지 않았다. 찍는다고 찍어 놔도 죄다 흔들려 있거나 초점이 나가서 사진은 완전히 포기하고 영상만 찍은 지 오래다. 물론 영상이라고 멀쩡하진 않았다.
“멀미 나.”
“하하, 웃느라고 흔들렸나보네...”
“멍청아.”
서태웅은 윤대협의 형편없는 촬영 실력을 가차 없이 지적했지만 그러면서도 뺨이 느슨하게 풀려있는 게 다 보였다. 하나도 타격을 입지 않은 윤대협은 자신만의 아메리칸 퍼니스트 홈 비디오 촬영을 이어갔다.
서태웅은 밤잠 재우기 노동을 도맡고 싶어 했다. 낮엔 윤대협이 재웠으니 이젠 자신의 차례라고 주장했다. 일견 합리적이었으나 윤대협에겐 또 다른 논리가 있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하는 사람은 서태웅이지 윤대협이 아니었다. 쌍둥이가 얌전히 통잠을 자는 날엔 서태웅이 양 옆구리에 아기들을 끼고 잤다. 잠투정이 심한 날엔 윤대협이 양팔에 아기들을 안고 달래며 밤을 지새웠다. 서태웅은 아래층으로 쫓겨나 소파에서 외롭게 잠들었다. 나도 휴학 때릴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면서.
쌍둥이의 첫 생일. 미국도 한국만큼이나 첫 번째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특히 윤대협과 서태웅 부부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는데, 서태웅의 친정 가족들과 윤대협이 진심으로 의기투합해서 뭉친 첫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국이지만 뼛속까지 코리안들은 완벽한 돌잔치를 원했다. 돌상에는 무지개떡과 시루떡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돌잡이가 빠져서는 안 된다. 한국이면 인터넷에서 30분 만에 장소부터 음식이며 진행자까지 싹 다 준비할 수 있는데. 미국에선 어려웠다. 물론 다양한 가격대의 파티 플래너가 있었지만 그들이 K-돌잔치에 대해 뭘 알겠는가. 믿을 사람은 윤대협, 서태희, 그리고 서태웅의 부모님이 다였다.
일단 부모님은 결제와 참석만 담당하시기로 했다. 윤대협과 서태희가 사실상의 프로젝트 매니저다.
“태웅이 한복 있나요? 아무래도 준비해야겠죠?”
“어.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이 기회에 사 주실 것 같네.”
“앗. 저희가 할게요. 괜찮아요.”
“그러길래 결혼식 때 하지 그랬냐고 잔소리 듣는다 백퍼.”
“하하하...”
장소, 케이터링, 상차림, 스냅 포토그래퍼, 돌잡이, 서태희의 교포 친구 중에서 섭외한 진행자까지. 생일파티는 신혼집에서 열렸다. 날씨가 좋아서 정원에서 햇살 아래 진행됐다. 서태웅은 하늘색 한복이 잘 어울렸다. 윤대협은 훨씬 짙은 파란색이었다. 태일이와 태이도 귀여운 꼬마 도령과 아가씨 같은 맞춤 한복을 입었다. 얼마 못 입고 맞지 않게 되겠지만, 미국에선 대여할 옵션이 없어 덥석 사버렸다. 이것도 다 추억이지 뭐.
“오늘의 주인공인 태일이와 태이를 만나 볼까요? Come through!”
혼자서 한영 동시통역을 진행 중인 능력자 MC의 신호에 맞춰 서태웅과 윤대협이 각각 태일이와 태이를 품에 안고 돌상 앞으로 걸어갔다. 야외에 적당히 늘어놓은 테이블 주변에 앉거나 선 손님들이 박수를 치자, 태일이가 따라서 손뼉을 쳤다. 그걸 본 태이도 따라서 열심히 손을 마주친다. 마침 요즘 푹 빠진 개인기가 박수치기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입장에 스스로 손뼉을 치는 꼴이 되었다. 지나치게 귀여운 광경에 손님들이 비명처럼 웃었다. 박수 소리가 더 커졌다.
코리아 스타일 첫 번째 생일파티의 하이라이트, 돌잡이. 복사한 듯 나란히 놓인 똑같은 트레이 위에 늘어선 물건들. 부부가 준비한 물건 중에는 독특한 게 하나 있었다. 작은 농구공 장난감이다. 대체로 무채색이거나 목재로 된 실, 연필, 판사봉, 마이크, 청진기 옆에 노란색 오만 원권 몇 장과 주황색 농구공 장난감이 단연 눈에 띄었다.
서태웅의 부모님은 내심 돈을 잡길 바랐으나... 태일이와 태이는 짠 것처럼 동시에 농구공을 잡았다. 오동통한 단풍마냥 조그마한 손으로 터뜨릴 듯이 꽉 쥐었다.
서태웅의 표정은 굉장했다. 신생아를 서울대 아니 하버드에 보낸 것처럼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서태웅이 태일이 볼따구에 뽀뽀를 퍼붓자, 신이 난 아이는 농구공을 위아래로 흔들다가 던져 버렸다. 삼 점 슛! 천재 슈터가 되려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시점에서 윤대협도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태일이와 태이는 덩치가 좋은 데 비해 발달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돌이 지나면서 걷기 시작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에게 한 손가락씩 잡힌 채로 허리를 푹 숙인 고릴라 같은 자세로 윤대협은 매일매일 정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함께 잔디를 밟고 개미를 세고 꽃향기를 맡았다.
한 번 걷기 시작하니 금방 뛰고 싶어 한다. 정원도 좁다고 울타리 너머 밖으로 나가자 한다. 나갈 때는 유모차도 거부하고 무조건 걷겠다더니 돌아올 땐 힘들다고 둘 다 손을 뻗어 안아 달라고 한다. 윤대협은 군말 없이 하나씩 팔에 걸치고 돌아왔다.
주말에 서태웅네 학교로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서태웅은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다. 윤대협도 하나 장만했다. 한 명은 자전거 뒤에 아기 유모차 사이드카 두 개를 연결하고, 한 명은 피크닉용 의자나 돗자리, 테이블 따위를 넣은 카트를 연결해 달린다.
정문에 자전거를 두고 카트를 챙겨 교정을 걷는다. 윤대협이 카트를 끄는 동안 서태웅은 달려 나가는 아이들을 쫓는다. 서태웅네 학교는 오래된 건물과 커다란 나무, 잔디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햇살 좋은 날을 참지 못하고 살 태우러 나와 돗자리도 없이 뒹굴고 있는 미국인들 사이에 윤대협과 서태웅 가족도 돗자리를 편다. 서태웅은 캠핑 의자 펴 주면 금방 졸았다. 윤대협은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에 서태웅의 머리칼을 보지도 않고 만지작거렸다. 결국 무릎에 한 명씩 안은 채로 30분 정도 자다 왔다.
휴일은 그런 식으로 금방 지났다.
15개월을 넘기면서 태일이와 태이는 갑자기 열이 오르거나 감기 기운이 도는 날이 아니면 밤중에 깨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아이들을 위한 방을 만들고 각자 침대에서 자게 됐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드디어 오붓하게 둘만 끌어안고 잠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어느 밤. 서태웅은 누군가 볼을 꼬집는 걸 느끼고 잠에서 깼다.
“아바. 아빠?”
태일이였다. 소싯적엔 누구든 내 잠을 깨우는 녀석은 용서하지 않았는데. 서태웅의 불 주먹도 아기들 앞에선 한없이 무력하다. 태일이와 태이는 말이 빨랐다. 둘이 하도 옹알이로 수다를 많이 떨어 그런지. 한 명이 깨친 말은 다른 한 명도 재빨리 깨쳤다. 아빠. 네. 아니야. 그거. 코코(잔다는 뜻이다). 주세요. 고마부(고맙다는 뜻이다). 어른들의 말을 대충 다 알아듣게 된 지는 꽤 오래됐기 때문에 제법 의사소통이 된다.
하지만 새벽에 아빠 볼을 꼬집는 건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왜 그래 태일아. 잠이 안 와?”
그새 태일이 뒤에 태이도 서 있다. 소리를 듣고 따라 나왔는지 눈을 비빈다. 조금 엄하게 말하고 가서 자라고 해야 하나? 서태웅이 고민하는 사이. 새벽잠을 훔쳐 간 범인인 태일이가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서태웅의 뺨에 쪽! 소리 나게 뽀뽀했다.
서태웅은 웃어버렸다.
태이도 머리를 들이민다. 서태웅은 반대쪽 뺨을 내줬다. 쪽!
결국 오늘도 서태웅이 패배했다. 한 명씩 침대 위로 안아 올린다. 아이들은 좋다고 옆구리를 파고든다. 태이는 서태웅과 윤대협 사이로 들어가 기어이 윤대협의 얼굴에도 뽀뽀해서 깨운다. 으엉? 얼빠진 소리를 내며 일어난 윤대협이 태이를 안고 홱 돌아 누워버리자 꺄르륵 소리가 들린다. 애 잠을 더 깨우면 어떡해. 툴툴거릴 기운도 없어 서태웅은 얌전히 잠을 청하는 태일이를 꼭 껴안고 정수리에 코를 묻었다.
서태웅의 등 뒤로 따끈한 태이가 달라붙는다. 그 뒤에서 뻗어 나온 윤대협의 팔이 서태웅을 감싸고 태일이의 조그마한 손까지 잡는다.
다음 날 아침은 네 가족이 나란히 늦잠을 잤다.
태일이와 태이가 네 살이 되던 해에 윤대협의 육아 휴직이 끝났다. 윤대협은 눈물을 흘리며 3년 만에 회사에 복귀했다. 서태웅의 학업도 끝났다. NBA 진출을 노릴 거라는 예측과 달리 대졸 최고 연봉을 받고 KBL을 선택했다. 서태웅에게는 이제 농구만큼이나 중요한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명실상부한 차세대 스타를 얻은 KBL은 환호했다.
쌍둥이는 유치원에 들어갔다. 영어는 이미 잘 하니까 공립 유치원으로. 등하원은 서태웅이 맡았다. 수도권 경기 때는 그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장으로 출근했다. 저녁 7시 경기 시작 전에 칼퇴근한 윤대협이 바톤 터치를 했다. 함께 경기를 볼 때도 있고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 귀가할 때도 있었다. 지방 원정 경기나 낮 경기가 있는 금요일에는 방문 놀이 선생님이 온다.
쌍둥이는 매일매일 새로운 개인기를 배워 와 아빠들 앞에서 선보였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윤대협 팔 안에 쏙 들어간 채로 쌍둥이의 경쟁적 재롱 배틀을 구경하는 게 서태웅의 낙이었다.
어느 날은 최신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녔다.
“엄마 퀸카, 엄마 퀸카, 엄마, 엄마!”
뭔가 가사가 이상한데.
“그게 아니지. I’m a queen card.”
서태웅은 봐주지 않고 틀린 점을 짚는다. 딱히 혼내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발음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테고, 아예 한글 가사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같아서다.
“아니야. 유치원에서 하빈이가 그랬어. 엄마 퀸카라고.”
“그래 맞아. 선생님도 좋아했어.”
태일이와 태이는 물러서지 않고 쫑알쫑알 맞선다.
“근데 우리는 엄마가 없는데?”
윤대협과 서태웅의 눈이 마주쳤다. 뭐라고 대답을 찾기도 전에.
“그럼 우린 아빠 퀸카라고 불러?”
쌍둥이는 스스로 대답을 찾는다.
“그래! 좋아!”
난생처음 듣는 한국어와 외래어 조합을 외치며 거실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쌍둥이들. 서태웅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낄낄 웃던 윤대협이 남편의 어깨를 감싸던 손을 당겨 와 하얀 볼을 손가락 등으로 쓸어내린다. 귓가에 속삭인다.
“태일이 태이 아빠가 좀 퀸카긴 하지.”
서태웅의 팔꿈치가 윤대협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컥 소리를 내면서도 윤대협은 나가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서태웅을 꽉 끌어안았다. 질기게 달라붙기로 결심하고 붙잡은 가족이니까. 노래하고 춤추며 뛰어다니던 태일이와 태이가 달려와 합류했다. 나도! 안아줘! 아빠!
네 가족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를 꼭 껴안았다.
평범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