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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2024.02.24

NY state of mind

불면의이쑤신

아양 님 <프로포즈는 연하가 먼저> 축전

뉴욕 맨해튼은 전 세계에서 부동산이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고, 첼시는 그런 맨해튼에서 가장 월세가 비싼 동네다.

90년대 첼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견인한 건 취향이 분명하고 세련된 뉴욕 게이들이었다. 최신식 ‘힙’이 땅값 낮은 곳을 찾아 브루클린과 퀸즈로 넘어간 지금도 첼시는 건재하다. 클래식은 있어도 낡은 건 없다. 겉으로 보기엔 어퍼 이스트 사이드 뺨치는 오래된 브라운스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파크 애비뉴 뺨치는 현대적 감성으로 리모델링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미술관과 갤러리 너머로 하이라인 파크가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웨스트 25번가, 첼시에서 가장 유명한 럭셔리 아파트. 뉴욕을 대표하는(?) 부자 게이 커플이라 할 수 있는 윤대협과 서태웅의 신혼 보금자리다.

딱히 비싼 곳을 고른 건 아니었다. 그런 게 우선이었다면 대놓고 부자 동네인 어퍼 이스트 사이드나 로어 맨해튼으로 갔을 것이다. 뉴욕 닉스 홈 경기장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6블록. 신혼집을 결정지은 요인은 딱 하나였다. 가까우니까.

반면 윤대협이 일하는 파이낸셜 디스트릭트까지는 걸어갈 거리는 아니었다. 특히 러시아워에는 지옥이었다. 평소엔 10분이면 가는 길 위에서 30분 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 윤대협은 어깨만 으쓱하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하철 타지 뭐. 10분이면 가는데.

서태웅은 윤대협이 손해를 보는 듯한 세팅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거주지로서 맨해튼에서 첼시보다 나은 곳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윤대협도 고집이 대단했다. 원래 직장과 집은 적당히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지각하는 법이라며 궤변을 펼쳤다. 윤대협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제법 설득력 있는 궤변이었다. 서태웅은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새 보금자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괜찮아. 내가 더 잘해주면 된다.

윤대협은 월 스트리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스트레스 잔뜩 받은 불친절한 양복쟁이들과(윤대협은 자신도 포함이라고 했지만 서태웅은 믿지 않았다) 만사가 행복한 관광객들이 좁은 도로를 꽉 채우고 있어서 정신없다고. 뉴욕의 상징인 마천루들 덕분에 손바닥만 한 하늘밖에 안 보여 야외를 걸어도 낮은 건물에 갇힌 양 답답하다고. 점심 한 번 같이 먹을 때도 굳이 브로드웨이까지 올라왔다. 양복쟁이 동네 벗어나 네 얼굴 보면 숨통이 트인다며 웃는데, 서태웅도 말릴 방법이 없었다.

트레이더로 활동할 땐 그나마 윤대협의 퇴근 시간이 규칙적인 편이었다. 장 마감과 함께 그날의 트레이딩 보고서 러쉬, 내일과 다음 주와 다음 달과 다음 분기의 전망과 전략 세우기. 숏 트레이딩에 탁월한 윤대협의 활약은, 적어도 드러나는 만큼은 대체로 그날의 장 안에서 결정됐다. 공격적이고, 짧은 시간 안의 변수 예측에 강하고, 과감하고. 윤대협은 하루치 성과만으로도 대체로 퇴근할 자격이 있었다.

퇴근 후에 윤대협의 루틴은 거의 비슷했다.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닉스 홈경기를 보러 갔다. 코트 사이드 시트 맨 앞줄에는 언제나 그를 위한 빈 좌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많은 분기 말에는 아슬아슬하게 뛰어오느라 1쿼터 시작 버저와 동시에 엉망진창 풀어헤친 재킷 사이로 넥타이를 휘날리며 자리에 주저앉을 때도 있었다. 점프볼에 집중하느라 남편이 온 줄도 몰랐던 서태웅이 첫 번째 공격을 마치고 돌아보면, 검지와 중지로 거칠게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후우, 호흡을 고르던 윤대협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다시 농구공에 모든 집중력을 쏟기 직전의 찰나, 서태웅은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죽어라 뛴 보람이 있었다.

서태웅이 원정 경기를 떠나면 윤대협은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무실에 처박혀서 큰 소리로 닉스 경기를 틀어 놓고 일에만 집중했다. 경기 내용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피곤할 때 눈을 쉬는 용도였다. 화면 속 서태웅의 집중한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사무실 밤샘이 절반, 칼퇴가 절반. 윤대협이 월 스트리트의 미친 업무량을 그럭저럭 흥냐흥냐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윤대협은 트레이더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된 후엔 투자자로 전직했다. 향후 귀국했을 때 기업 운영을 염두에 둔 커리어 트랙이었다. 업의 종류가 너무 달라서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월 스트리트를 구르면서 축적해 둔 유무형의 자산을 토대로, 윤대협답게 올라운더라는 말을 들으면서 잘 적응했다. 한동안은 서태웅 경기도 못 보고 정신없이 일에 매진했지만, 초고속으로 파트너를 단 뒤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다.

NBA 시즌이 끝나도 서태웅은 성실하게 훈련하느라 바빴다. 다만 윤대협의 직업이 안정된 후에는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정해진 팀 훈련을 제외한 자율 훈련에는 거의 윤대협을 끌고 다녔다.

특히 출근 전 새벽 조깅. 하이라인 파크를 따라서 한 바퀴, 허드슨강변을 한 바퀴. 윤대협은 이제 곧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며 언제나 죽는 소리를 냈지만 서태웅은 엄살인 걸 잘 알기 때문에 듣는 척도 안 했다.

땀을 쭉 빼고 나면 허기진 배를 붙들고 첼시에서 가장 맛있는 베이글 집에 오픈런을 했다. 하나씩 테이크아웃해서 집까지 걸어가며 먹었다. 서태웅은 늘 갖고 다니는 텀블러를 윤대협에게 내밀었다. 젖산 분해를 도와 피로 축적을 막는 생레몬즙. 요즘 선수들이 훈련 끝나면 먹는다고 했다. 어릴 때 먹던 달달한 레몬꿀절임과는 차원이 다른 파워 디톡스. 신 거 잘 먹는 윤대협도 혀가 아려왔다. 반면 서태웅은 처음엔 좀 그랬는데 이제 익숙하다면서 꿀꺽꿀꺽 잘도 마셨다. 운동선수 무서워. 윤대협이 몸서리칠 때마다 서태웅은 흥 코웃음쳤다. 지는.

집에 와서 씻고 옷 갈아입고. 서태웅은 오프 시즌엔 윤대협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파이낸셜 디스트릭트까지 데려다줬다. 허드슨강변을 따라 30분. 조금 전까지 뛰었으면서 지치지도 않는지. 폭발적인 스피드로 질주하는 서태웅의 자전거 뒤에 실린 윤대협의 넥타이가 깃발처럼 바람결에 나부꼈다. 윤대협은 강 너머 뉴저지의 스카이라인 없는 소박한 풍경을 감상했다. 저녁에 차 끌고 태웅이랑 스테이크나 먹으러 갈까...

서태웅의 자전거는 금세 고층 빌딩 앞에 섰다. 길을 가득 채운 양복쟁이들과 관광객들 사이에, 혼자 러닝용 반 레깅스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저지를 걸친 서태웅. 연이은 운동으로 따끈따끈 달아오른 몸에서 김이 나오는 서태웅. 잘 다녀오라고 껴안아 주는 목덜미에서 확 끼쳐 오는 땀 냄새. 그 어떤 맨해튼 졸부들의 향수보다 달고 청량했다.

윤대협은 서태웅을 보내기 싫었다. 항상 출근 직전이 가장 출근하기 싫었다. 오프 시즌에만 내 밑에서 일하는 인턴으로 데리고 있으면 안 되나. 어차피 침대에서도 내 밑에서 일하는데...

쪽!

“다녀오세요.”

삿된 생각을 자르는 볼 키스와 이럴 때만 꼭 존댓말인 작별 인사. 어쩔 수 없다. 여우 같은 남편이 데려다주기까지 했으니, 오늘도 최선을 다해야지. 윤대협은 서태웅의 조그만 입술에 쪼옥, 굿바이 키스를 남기고 빌딩 숲속으로 사라졌다.

뉴욕도 그럭저럭 살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