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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2023.10.29

Wedding Bell

불면의이쑤신

모 님 <메이팅 콜> 축전

살면서 핸드폰과 친했던 적이 없는 서태웅이 달라졌다. 틈만 나면 네모난 화면과 눈싸움을 하고 있다. 한결같던 서태웅의 일거수일투족에 작은 변화가 생길 때마다 그랬듯이 같은 팀 선배 후배 동기들은 눈만 마주치면 수군거렸다.

천하의 서태웅도 연애하면 다름없구나. 서마터펀 중독 아이가? 선배는 저 눈빛이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 보여요? 아니, 출전 직전 검투사 같은데.

사랑이냐 전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도 가볍게 묻고 싶지 않은 화제다. 붕어빵 꼬리 먹었다고 싸웠다던 믿고 싶지 않은 전적을 고려할 때 사랑과 전쟁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더더욱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 모두가 참견 대신 침묵을 택했다. 서태웅 vs 핸드폰의 진상은 그렇게 미궁 속에 남았다.

목격자들의 추측과 달리, 그리고 대부분의 핸드폰 중독자와 달리, 서태웅의 핸드폰 화면 속에는 카카오톡도 SNS도 문자 메시지조차도 없었다.

서태웅은 달력을 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언제가 좋을까.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핸드폰 액정 속 달력을 뚫을 듯이 째려보면서.

언제로 하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정식으로 사귄 지 3개월쯤, 윤대협과 서태웅은 집을 합쳤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어차피 반쯤은 동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오늘은 어느 쪽 집에서? 그건 고양이가 결정했다. 서태웅이 원정 간 사이, 윤대협이 조던과 이브를 데리고 병원으로 출근했다가 제집으로 돌아간 날에는 서태웅의 내비게이션 목적지도 그 곳이었다. 경기 없는 휴일에는 고양이들과 집에서 뒹굴던 서태웅이 진료 끝나는 시간에 맞춰 윤대협을 마중 나갔다. 손을 꼭 맞잡고 고양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서로의 옷장에 서로의 옷이 점점 쌓여갔다. 빨랫감이 섞인다. 칫솔은 두 개 된 지 오래다. 슬슬 고양이 캐리어 두 개씩 싸들 고 왔다 갔다 하기도 귀찮은 지경이었다. 결정해야 할 건 하나였다. 내 집? 네 집? 윤대협과 서태웅은 서로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합칠 집은 동전 던지기로 정했다.

이삿날은 맑았다. 서태웅을 배려해 시즌이 끝난 다음 날에 맞춰 윤대협이 휴진을 걸었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의 한중간이었다. 핑크빛 봄기운과 청량한 햇살이 공기 중에 가득했다. 마지막 짐을 내려놓고 한숨 돌렸을 때. 갑자기 뭔가 깨달은 서태웅이 악 소리를 질렀다.

“이게 아니야!”

“왜 그래 태웅아, 무슨 소리야?”

갑자기 후회? 짐 풀자마자 빠꾸? 공포에 질린 윤대협이 물었다.

“날짜 잘못 잡았어!”

윤대협은 점점 더 미궁에 빠졌다. 맑은 봄날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았다. 이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요구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무사히 이사를 다 마친 후에 할 말은 결코 아니었다.

서태웅이 도깨비처럼 눈썹을 치켜세우며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윤대협이 보이는 글자를 읽었다.

“4월 1일 월요일.”

“만우절이잖아!”

윤대협은 웃어버렸다. 배를 잡고 넘어가면서 웃었다. 제 성질을 못 이기고 윤대협의 팔뚝을 퍽퍽 치는 서태웅을 품 안에 꼭 끌어안고 뒹굴면서 웃었다.

1월 1일에 태어난 서태웅과 2월 14일에 태어난 윤대협이 12월 25일에 서로 고백하고 4월 1일에 같이 살기 시작했다. 연중 기념일이 이렇게 많은 줄 윤대협은 처음 알았다. 겹칠 때마다 우리만의 기념일이 줄어든다며 노발대발하는 서태웅은 볼 때마다 새롭게 귀엽다. 그야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서태웅은 끝까지 웃지 않았다. 물론 껴안고 뒹굴다 불붙어서 이삿짐 사이에서 화끈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마지막에 좀 울긴 했는데.

더 이상은 안 돼.

서태웅은 굳게 결심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시작한 연애라 100일이니 200일이니 그런 자잘한 건 물 흐르는 듯한 시간 속에 스르르 지나갔다. 그런 유치한 일회성 이벤트 말고, 매년 챙겨 기념할 만한 날짜는 손에 꼽는 법이다. 평생을 같이 한 대도. 이제 남은 기념일이 정말로 얼마 없다.

프로포즈. 결혼기념일. 두 개뿐이다.

이것이 서태웅이 틈만 나면 달력을 째려보게 된 사연이다.

비시즌에도 훈련은 계속된다. 매일 같이 홈구장으로 출퇴근한다. 아침부터 웨이트, 기초, 서킷, 개인 연습, 모의 게임까지. 운동할 땐 집중하지만 쉬는 시간, 점심시간, 틈날 때마다 핸드폰 속 달력을 켜서 날짜를 헤아린다. 5월은 엄청나다. 기념일 천지다.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끔찍하군. 근로자의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날 성년의날을 훑으며 서태웅은 몸서리쳤다.

달력을 다음 달로 넘긴다. 6월은 현충일 정도만 피하면 된다. 호오. 흥미롭다는 듯 턱을 잡는다. 7월은 아예 아무런 기념일이 없다. 이달이 길하군.

아차. 기념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7월엔 전지훈련이 있다. 서태웅은 제 머리카락을 마구 흩었다. 쉽지 않다. 이제 진짜 날짜만 잡으면 되는데.

초조함이 쌓이면 쉽게 집착이 된다. 무의식까지도 한 가지 생각이 점령해 버리면 엉뚱한 행동이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서태웅은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전지훈련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날, 구단 회식이 이어졌다. 점심인데 다들 자연스럽게 술을 시켰다. 운동선수들은 대체로 주당이다. 힘들었던 훈련을 보상받겠다는 듯이 신나게 퍼마셨다. 서태웅도 적당히 취했다.

아니 생각보다 많이 취했다.

같이 살게 된 후로 회식이 있는 날엔 미리 주소를 찍었다. 언제든지 윤대협이 데리러 올 수 있도록. 평일 점심엔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 설마 대낮부터 옛날 버릇 도져서 호텔 가진 않겠지. 서태웅은 자체적으로 판단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서태웅이 비틀거리며 집에 기어들어 온 건 윤대협이 퇴근하고도 세 시간이 지난 뒤였다.

“나, 히끅! 왔어.”

서태웅이 딸꾹질로 말을 끊으며 신발을 벗는 동안 윤대협은 불도 안 켜고 TV도 안 켜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대꾸도 없이.

서태웅은 쫄지도 않고 휘청거리면서 거실 불을 켠다. 간간이 딸꾹질을 하면서 윤대협 앞에 선다.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윤대협이 뭐라고 하려는 순간.

윤대협의 잘생긴 이마에 종이 한 장이 탁! 붙었다.

혼인신고서였다.

“사인해. 히끅! 빨리.”

윤대협은 찬찬히 신고서를 읽어 본다. 거의 모든 칸이 다 채워져 있다. 취해서 글씨가 삐뚤빼뚤 난리 난 와중에도 윤대협의 주민등록번호와 본관까지 완벽하게 적었다. 하이라이트는 증인을 적는 칸이었다.

서조던. 윤이브. 서명 대신 동글동글하게 뭉쳐 그린... 고양이 발바닥.

윤대협은 더 이상 화낼 수가 없었다.

사인 대신 키스부터 갈겼다.

키스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아무 날도 아니고 오로지 윤대협과 서태웅의 프로포즈 겸 결혼기념일인 그 날짜는 7월 10일에서 하루 미뤄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