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말할 수 없는 것
불면의이쑤신
사워 님 <고양이는 할 수 없어> 축전고양이는 말이 많다.
“왜앵~ 우애앵? 꾸뤡? 꺄우애앵...”
아닌가. 윤대협만 그런가.
“밥은 안 먹어?”
“왜애앵.”
“사람 돼서 먹는다고?”
“구루룩.”
“알겠어.”
드넓은 소파 위에 커다란 고양이만 느긋하게 배를 깔고 누워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소파는 윤대협이 사람이어도 충분히 누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크기였고, 윤대협은 서태웅과 있을 때만큼은 사람 모습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서태웅은 텅 빈 소파 다 놔두고 그 아래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뺨을 소파에 기댄 채 오랜만에 고양이가 되어 준 윤대협에게 온 정신을 쏟고 있다. 숨기지 못한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달콤한 눈빛. 너무 가까워서 약간 사팔눈이 될 정도다. 윤대협은 자기도 모르게 분홍색 발바닥을 서태웅의 살짝 들린 코끝에 톡 갖다 댔다. 서태웅은 몸서리치며 좋아했다. 상당히 귀여운 표정이었지만 윤대협은 조금 씁쓸해졌다. 아직도 사람 윤대협은 고양이 윤대협을 이길 수 없나보다.
서태웅은 윤대협이 고양이가 되면 말이 많아진다. 왜냐하면 윤대협은 서태웅이 말을 걸면 무조건 대답해 주는데, 서태웅은 고양이 소리를 최대한 많이 듣고 싶기 때문이다. 고양이 소리는 너무 귀엽다. 윤대협의 사람 목소리도 듣기 좋고 다정하지만 고양이와 비교할 순 없다. 윤대협 잘못이 아니다. 고양이만큼 귀여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아무리 윤대협이 다 해도 그건 할 수 없다.
서태웅은 소파에 엎드린 채 윤대협의 부드러운 골골송의 진동을 느끼다가 잠들어버렸다. 그 무방비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고양이가 유연하게 목을 쭉 빼냈다. 눌려 자느라 아기처럼 살짝 벌어진 서태웅의 입술을 고양이 혀가 조심스럽게 핥았다.
소파에서 건장한 남자의 두 다리가 내려온다. 사람이 된 윤대협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서태웅을 깨지 않게 안아들었다. 불편한 자세로 잠든 서태웅을 침대까지 옮기는 건 고양이가 할 수 없는 일.
윤대협은 서태웅이 키스해 주면 고양이에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마법에 걸린 왕자나 공주가 저주에서 풀려나듯이. 그렇지만 서태웅 왕자님이 고양이에게 먼저 뽀뽀하는 일은 없었다.
처음에는 혹시 고양이가 싫어할까 봐. 나중에는 고양이에서 사람으로 변하는 게 싫으니까... 사람일 땐 열심히 키스한다. 고양이 되라고. 그게 좋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윤대협은 어쩔 수 없이 쓸쓸했다.
사람 윤대협이 고양이 윤대협을 이길 수 있는 날이 올까?
승리는 언제나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그날 서태웅은 귀가하자마자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 뭔지는 잘 모르겠다. 윤대협이 집에 있는 것 같은데 없다.
“윤대협. 나 왔어.”
아무 대답이 없다. 쿵쿵거리며 달려오는 소리도 안 들린다. 발소리 없이 다가오는 고양이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불길한 기분이 들어 서태웅은 집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거실에도, 소파에도, 침대에도 없다. 허탕을 칠수록 마음이 급해지고 허둥댔다.
윤대협은 식탁 아래 구석에 있었다. 고양이였다. 드문 일이었다. 윤대협이 고양이 모습으로 서태웅을 맞아 주다니. 아니 맞아주지 않았지만. 윤대협은 서태웅에게 등을 돌린 채 웅크려 앉아 있었다. 서태웅은 온몸을 식탁 밑으로 구겨 넣을 듯이 꾸깃꾸깃해져서는 하얗고 복슬복슬한 뒷모습에 대고 애타게 말을 걸었다.
“왜 거기 있어.”
아무 대답이 없다. 꼬리만 바닥을 쓸 듯이 움직였다. 자는 것도 기절한 것도 아닌데 꿈쩍도 않는다.
서태웅은 손을 뻗어 고양이를 꺼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만약 지금 기분이 나쁜 거라면 억지로 만지는 건 좋지 않다.
혹시 나한테 화났나?
“윤대협. 나한테 화났어?”
서태웅이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그대로 말하자, 윤대협의 귀가 빠르게 쫑긋, 움직였다. 윤대협이 천천히 앞발을 짚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아주 느리고 불편한 움직임이었다. 서서히 몸을 돌려 서태웅을 향한 채 다시 식빵처럼 네모난 자세로 돌아갔다. 평소처럼 바닥과 하나 될 듯이 느긋하게 쭉 뻗은 자세가 아니다. 고개를 뻣뻣하게 올린 채로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서태웅은 조심스럽게 윤대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윤대협은 피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야옹거리지도, 골골거리지도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고민 끝에 서태웅은 일단 윤대협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나 거실에 있을게.”
잘못된 판단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깊도록 윤대협은 식탁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물 한 방울 마시지 않는 모습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서태웅은 다시 한번 상황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고양이는 전신에 힘을 꽉 준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봤던 식빵 같은 자세 그대로였다. 분홍색 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숨쉬기가 어려운지 입을 벌리고 학학대며 개구호흡을 했다.
“윤대협!”
서태웅이 부리나케 긴 팔을 뻗어 고양이를 잡았다. 고양이는 비명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채찍처럼 앞발을 휘둘러 서태웅을 할퀴었다. 처음이었다. 그래도 서태웅은 천천히 고양이를 꺼내서 조심히 안아 들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고양이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말도 안 되게 뜨끈뜨끈했다. 서태웅이 간절하게 물었다.
“윤대협, 너 어디 아파?”
축 늘어진 고양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서태웅은 욱했다. 속상함이 뜨거운 샘물처럼 가슴 속에서 복받쳐 올랐다.
“아프면 말을 해야지, 멍청아.”
보드라운 고양이의 얼굴을 한 손으로 받치고, 서태웅은 입술을 기울여 고양이의 주둥이에 쪽, 소리 나게 키스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말도 안 되게 뜨끈뜨끈한, 점점 심해지는 복부 통증으로 기절 직전인 윤대협이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서태웅은 119를 불렀다. 맹장염이었다.
수술은 빨랐고 회복은 더 빨랐다. 맹장 끝이 조금 사라진 윤대협은 딱 3일 뒤에 웃으면서 집에 돌아왔다. 서태웅은 진지하게 선언했다.
“앞으로 고양이로 변하지 마.”
윤대협은 깜짝 놀랐다. 서태웅에게서 이런 말을 듣다니.
“왜? 태웅이 고양이 좋아하잖아.”
서태웅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주먹을 꾹 쥐고 간절히 말한다.
“아니야. 고양이는... 고양이는 아프다고 말 못 하잖아.”
그러더니 윤대협의 목에 두 팔을 걸고 체중을 실어 매달린다. 온몸을 던지는 애 같은 포옹. 윤대협이 아니면 버틸 수 없는 묵직한 애정. 천하의 서태웅도 가슴 깊이 두려울 때가 있는 것이다. 다시는 겪기 싫은 그런 공포. 좋아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 왜냐하면 고양이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윤대협은 마음속 깊이 승리의 전율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