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하냐?
불면의이쑤신
또웅 님 <우리 사귀냐?> 축전“어어, 슬슬 소식 오지 않을까 했다.”
“축하한다 짜식들아!”
“그래서 언제야? 식장은?”
또다. 벌써 세 번째. 서태웅은 무덤덤했고 윤대협은 하하 웃었다. 요즘 윤대협과 서태웅이 약속만 잡으면 사람들이 다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서태웅도 세 번째로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단 한 글자.
“뭘.”
“어... 이거 청첩장 모임 아니었냐?”
오랜만에 만난 북산 OB 정대만이 머리를 긁적였다. 옆에서 권준호와 채치수가 눈빛을 주고받는다. 송태섭이 박수를 짝짝 치더니 두 손을 여기저기로 내밀었다.
“내 말이 맞죠? 쟤넨 이미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라니까. 5만 원씩!”
“아, 이 새끼 진짜 내기 잘하네.”
“송꼬추, 나도 줘!”
“널 왜 줘?”
“여우가 이 천재보다 먼저 결혼할 리가 없다고 내가 알려줬잖아!”
“아 그럼 너도 5만 원 걸었어야지~!!!”
5만 원짜리 지폐를 집어던지며 난리법석을 피우는 북산 OB들을 보면서 윤대협과 서태웅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그냥 결혼할까?
윤대협과 서태웅은 고등학생 때부터 순탄하게 연애 중이다. 그 당시에는 심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별것 아닌 위기도 몇 번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헤어지자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 거의 그럴 뻔한 적은 있었어도.
3년 전부터는 같이 살고 있다. 이상하게 원래 같이 살았던 것처럼 잘 맞았다. 고딩 때부터 뻔질나게 윤대협 자취방을 드나들어서 그런가. 서태웅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윤대협은 그런 서태웅의 반응마저 제법 로맨틱하게 받아들였다.
송태섭이 정확했다. 사실혼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윤대협은 결혼 생각이 별로 없었다. 굳이? 뭐가 달라지지? 지금도 명절에는 서로의 집에 선물 사 들고 가서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조카들에게 용돈도 준다. 정말로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삐까번쩍한 파티 한 번 하는 거. 잘 차려입고, 베일이나 코르사주나 비슷한 장식을 하나씩 하고, 피아노나 현악 삼중주 같은 것에 맞춰서 좀 걷다가, 둘이 마주 보고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인 말을 새삼스럽게 하고, 이미 끼고 있는 반지를 다시 주고받고, 다 아는 사람들 앞에서 한 번 더 사랑한다고 과시를 하고...
어라... 나쁘지 않은데?
윤대협은 어리둥절하게 결혼식 상상에 빠졌다. 서태웅이 좀 예뻐 보일 때마다, 하얀색 실크 턱시도를 쫙 빼입고 화려한 조명과 꽃장식 배경을 걸으면 어떨지. 지금은 절대 안 해줄 것 같은 여보, 자기야, 같은 간지러운 호칭을 결혼했다는 이유로 시켜보면 해줄지 안 해줄지. 같이 산 지는 벌써 3년째지만 신혼여행 핑계로 어디 좋은 곳 놀러 가면 평소보다 조금 더 달아오를 것인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윤대협은 결정했다. 해 보지 뭐. 결혼.
문제는 프로포즈였다.
실은 서태웅과 사귀기 시작한 계기를 생각하면 윤대협은 지금도 조금 미안했다. 자신은 농담에 탔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하하 그럴까? 했는데 서태웅은 더없이 진지했다. 심지어 첫 연애였고. 처음부터 나를 좋아했다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언제 어디서든 얼굴이 빨개졌다. 부끄러울 일이 별로 없는 윤대협으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기념할 만한 이벤트를 해 봐야지. 진지하게. 내가 먼저. 윤대협은 굳게 결심했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최고의 코스를 짰다.
일단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오후 내내 신나게 농구 상대를 해 준 다음에. 배고파서 견딜 수 없을 때쯤 저녁놀이 끝내주는 호텔 고층의 애프터눈 티세트. 분홍색 한정판 샴페인을 기울여 건배를 하고. 미리 준비한 반지를 주면서 물어봐야지. 나와 결혼해 줄 거냐고.
농구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 조금 좋은 데 예약했으니까 씻고 옷 갈아입고 저녁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까지도 서태웅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디저트라기엔 너무 많은 음식을 하나하나 해치우고 또 추가해서 먹는 동안 윤대협은 즐거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포크를 꼭 쥐고 복스럽게 잘 먹고 있는 서태웅의 하얀 손등을 괜스레 만지작거리면서 멜로 눈깔을 하거나, 노을이 예쁘지 않냐고 목소리를 깔거나, 입술에 묻은 스콘 부스러기를 닦아주면서 웃거나. 아무튼 다가오는 프로포즈에 떨리는 마음을 감추려고 그린 듯한 수작질을 하나씩 던지면서 선셋을 기다렸다.
창밖이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윤대협은 재킷 가슴 안쪽 주머니로 손을 넣으면서 천천히 서태웅의 이름을 불렀다.
“태웅아.”
금속 질감의 짙은 은색 상자가 시야에 들어 온 순간, 서태웅이 입 안에 머금었던 샴페인을 그림처럼 뿜었다.
“미, 미안. 사람 불러올게...!”
난데없이 샴페인 미스트를 뒤집어쓴 윤대협이 눈을 꼭 감고 굳어 있는 동안 서태웅이 와당탕 일어났다. 웨이터가 허둥지둥 달려와 꼼꼼하게 닦아 주고 나서도 서태웅은 돌아오지 않았다.
프로포즈 실패인가. 노을만 가득한 맞은편의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윤대협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먼저 집에 왔어]
윤대협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혼자서 귀가하며 윤대협은 마음의 정리를 거의 마쳤다. 사실 결혼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너와 그러고 싶다는 마음을, 사귈 때와는 달리 남들만큼만 멋지게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서태웅에게 부담스러웠거나 원하지 않는 방식이라면 고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현관문까지 마중 나온 서태웅은 안절부절못하면서 윤대협의 눈치를 봤다. 그럴 필요 없는데.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서태웅의 초조함이 제법 귀여워서 윤대협은 금방 마음이 풀렸다. 그래. 서태웅의 약지 손가락에는 이미 윤대협이 준 반지가 있다. 윤대협의 약지 손가락에도 서태웅이 준 반지가 있다. 굳이 남들 다 앉혀주고 그 앞에 서서 새로이 교환해야 사랑은 아니다.
“윤대협.”
“응응. 나 왔어. 배는 괜찮아?”
재킷을 벗는 윤대협을 서태웅이 턱, 가로막는다. 갑자기 입술이 다가온다. 전에 없이 적극적이고 끈적한 키스와 함께 노골적으로 배꼽 아래를 맞붙인다. 어라.
평소의 살기가 사라진 조금 게슴츠레한 눈으로 서태웅이 중얼댔다.
“옷... 벗지 말아 봐.”
아하. 눈치 본 게 아니고 꼴렸구나. 윤대협은 하하 소리내서 웃어 버렸다. 정말 결혼 같은 건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서태웅만 있으면 행복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질펀한 정사 끝에 곯아떨어진 서태웅의 널브러진 옷가지를 하나하나 주워서 정리하다가, 옷걸이 구석에 절묘하게 숨겨진 쇼핑백 속 명품 웨딩 밴드 세트 상자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윤대협은 깨달았다.
이 새끼... 지가 먼저 프로포즈하려고 도망갔잖아...?
윤대협이 왼쪽 눈썹을 안쪽으로 밀면서 혓바닥을 볼에 괴었다. 정말 간만에 승부욕이 불탔다.
재미있군...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주 주말에 서태웅은 지난번엔 미안했고 이번엔 제가 산다며 파이브 코스 정통 프랑스식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번화가 지하에 있는 그 레스토랑은 다른 세계처럼 아늑했고 심지어 라이브 피아노 연주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서태웅 제법 치네. 윤대협은 서태웅이 가격도 라벨도 안 보고 주문한 와인을 홀짝이며 감탄했다. 윤대협이 살짝 알아본 바 이 레스토랑은 최소 3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 반지도 사고 열심히 준비해 놨는데 내가 먼저 선수 치려니까 후다닥 도망갔구나. 심경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하지만 오늘은 복수의 날이었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서태웅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지 챙겼지? 아까부터 무심코 가슴팍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단단한 상자가 느껴지면 그제야 안심이 된다. 코스 요리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윤대협도 이렇게 긴장했을까? 왠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날 윤대협은 어디서 많이 본 작은 상자를 꺼내기 전까진 평소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술술 간지러운 말이나 해대고.
그렇다고 선취점을 뺏길 순 없지. 네가 좀 능숙하다고 해도, 내가 좀 더 빠르니까. 서태웅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쭉 폈다. 그런데 화장실 간 것 치곤 너무 늦는데?
퍼뜩, 서태웅의 뇌리에 어떤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서태웅은 골대를 막아선 윤대협을 제치는 드라이브인보다 빠르게 화장실로 튀어갔다. 쾅! 쾅! 쾅! 딱 세 칸인 화장실 문을 죄다 열어젖혔다.
윤대협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했다. 서태웅이 뿌드득 이를 갈았다.
택시를 잡아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가던 윤대협은 무시무시한 문자를 받게 된다.
[니가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 있나 보자]
윤대협은 피식 웃고 답장을 보냈다.
[태웅아 내가 할 말이야]
그때부터는 전쟁이었다.
고등학생부터 지금까지 치열하게 맞붙었던 농구가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신경전. 누가 보면 ‘내가 더 사랑하거든?’ ‘아니거든 나거든?’ ‘내가더’ ‘질수없음’ 정도의 수준 낮은 대결이었지만 당사자들은 진지했다. 그땐 그렇게 지나갔던 사랑한다는 고백을 이번에는 일생일대의 프로포즈로 바로잡고 말겠다고. 너 말고 내가 먼저.
윤대협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크루즈 디너를 예약했다. 배 안에선 도망갈 수 없겠지. 스스로 생각해도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프로포즈가 아닌 척해야 했기에 잘 기억도 안 나는 ‘능남 대 북산 연습경기에서 태웅이를 처음 만난 날 10주년’ 기념일이라고 둘러댔다. 사실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절할 순 없을걸. 윤대협은 다 시나리오가 있었다. 서태웅이 못 간다고 하면 끝끝내 이유를 추궁하면 된다. 차마 ‘내가 먼저 서프라이즈로 프로포즈해야 하니까’라고 진실을 말해 지금까지의 대결을 날릴 순 없을 테니 결국은 따라오게 될 거다.
서태웅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 물이 무서워서 못 가.”
윤대협은 자신도 모르게 필터 없이 내뱉었다.
“웃기고 있네.”
헙. 이렇게 연상답지 않은 반응을 하다니. 윤대협이 제 경박한 입을 틀어막은 사이에 서태웅이 윤대협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거짓말 아니야. 고등학교 농구부 때 송태섭 주장이 우리 다 배 타는 거 금지시켰어. 영원히.”
서태웅이 종알종알 말해준 사연은 도저히 지어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제기랄. 남의 가족사를 이용하다니 치사한 서태웅. 물론 이용하려고 한 게 아니고 그냥 윤대협이 우연히 배라는 소재를 잘못 밟았을 뿐이지만... 애초에 물에 가둬 두고 프로포즈하겠다는 제 계획 자체가 치사하다고는 생각지 못하는 윤대협은 씁쓸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서태웅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무려 어느 평일 저녁에 먹고 싶은 게 생겼는데 전차 타고 좀 가야 한다면서 잘 모르는 방향으로 윤대협을 끌고 갔다. 별로 로맨틱한 세팅도 아니고 옷도 평상복이라서 아무 생각 없이 끌려가던 윤대협은 전차를 탄 지 40분이 지나 익숙한 역 이름이 하나둘씩 나오는 걸 보고 경악해서 노선을 확인했다.
쇼난신주쿠라인이었다.
윤대협은 요코하마에서 아슬아슬하게 뛰어내렸다. 간발의 차로 닫힌 전차 문 너머에 선 서태웅이 이쪽을 흉흉하게 노려보다 분하다는 듯이 퍽, 아크릴 문에 대고 조그맣게 주먹질을 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위험했다. 하마터면 멍때리다 가마쿠라로 끌려갈 뻔했다.
살다시피 했던 야외 농구장, 엉망이 된 도시락을 나눠 먹던 그 옆의 낚시터, 레코드 샵과 영화관, 카페와 닭갈비집, 서투른 키스를 나누던 모든 담벼락까지. 그 동네의 골목마다 추억이 서려 있고 사랑이 새겨져 있다. 지금의 서태웅과 손을 잡고 걷다가는 이렇게 후줄근한 꼴로 반지도 없이 무릎 꿇고 제발 결혼해 달라고 조르게 될지도 모른다.
윤대협은 순순히 인정했다. 서태웅은... 제법 로맨틱했다. 장난처럼 사귀자는 말에도 먼저 도시락을 싸 오고 레코드 샵에 가자던 어린 시절부터 싹수를 알아봤어야 했는데. 심지어 돈과 술수(?)를 손에 넣어 훨씬 더 진화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런 짓을 3개월 정도 반복했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지치지도 않고 창과 방패처럼 맞붙었다. 멀쩡하게 밥 잘 먹다가도 윤대협이 조금만 멜로 눈깔이 되면 서태웅이 벌떡 일어나서 무릎을 꿇으려고 하고 윤대협이 그걸 막느라고 무릎을 꾹 누르면서 있는 힘을 다 썼다.
한동안 로맨스 영화를 보자는 건 선전포고와 동의어였다. 두 사람은 영화관 티켓 부스 앞에서 기 싸움을 하다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액션과 애니메이션만 주구장창 도장 깨기를 했다. 덕분에 웬만한 극장판 만화는 전부 다 알게 됐다.
윤대협은 아침에 먼저 일어나서 서태웅 약지 손가락에 반지를 바꿔 끼워 두고 ‘일어났어? 결혼할래?’를 시전할 계획도 남몰래 세웠으나 그놈의 늦잠 습관을 이기지 못하고 매번 기상 시간에서 서태웅에게 패배했다. 젠장. 다행히 서태웅에게는 그런 발상은 없었던 모양이다.
한편 서태웅은 장소로써는 카나가와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윤대협을 그곳으로 납치할 36가지 방법을 세우기 시작했다. 기절시켜서 둘러메고 간다. 음. 너무 무겁다. 차에 싣고 간다. 장거리 운전은 자신 없다. 중간에 졸릴 것 같다.
헬기를 빌린다, 제트기를 빌린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진지하게 예약 사이트를 찾다가 윤대협한테 검색 기록을 들켰다. 제기랄. 포털 사이트는 검색 기록이 뜨는 걸 깜빡했다. 부루퉁해진 서태웅에게 윤대협은 금전 감각이 신기하다는 둥, 발상이 남다르다는 둥 좋은 말로 시비를 털었다. 지는.
윤대협은 점차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서태웅 백 명이 윤대협을 잡으러 뛰어오는 꿈이었다. 서태웅71번이 집어던진 부케에 뒤통수를 맞고 위기에 처한 순간 헉, 숨을 들이켜며 꿈에서 깼다. 옆자리에서 자고 있는 서태웅도 꿈자리가 별로인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움찔움찔거렸다. 안쓰러워서 이마에 뽀뽀를 해줬다.
실은 서태웅도 완전히 똑같은 꿈을 꾸는 중이었다.
그날도 프로포즈 대작전은 무사히 수포로 돌아갔다. 오늘은 윤대협의 공격이었다. 서태웅이 제일 좋아하는 농구 카드를 꺼냈다. 실내 체육관을 대관해 꽃이며 풍선이며 모든 세팅을 마쳐놨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일 대 일에 지나치게 적극적인 윤대협의 계략을 동물적인 예감으로 간파한 서태웅이 직전에 야외 농구장이 더 좋다고 발길을 돌리면서 실랑이가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왔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둘 다 너덜너덜해진 채로 비틀비틀 현관을 넘었다. 배가 고팠다. 다리가 아팠다. 어마어마하게 헛된 하루였다.
두 사람은 외투도 안 벗고 침대에 동시에 풀썩, 쓰러졌다. 윤대협은 천장을 보고 드러누웠고, 서태웅은 고개를 윤대협 쪽으로 돌린 채 엎드렸다.
눈이 마주쳤다. 서로만이 비치고 있는 눈동자.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서태웅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반지를 숨겨 놓은 곳으로 간다. 윤대협은 말리지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들고 다녔지만 꺼내지 못했던 작은 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섰다.
맨날 함께 자는 안방에서, 아무런 로맨틱한 세팅 없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서로를 마주한 윤대협과 서태웅이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랑 결혼해 줄래?”
“나랑 결혼해.”
윤대협이 빙그레 웃었다. 서태웅도 미소 지었다. 전혀 다르게 생긴 두 사람이 제법 닮은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같은 마음임을 알 수 있었다. 꼭 먼저 말하고 싶을 정도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도, 서로의 제안에 대한 대답도, 반지보다 키스가 먼저인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