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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2023.10.29

Cafe Prince

불면의이쑤신

우택 님 <짝사랑 오퍼레이션> 축전

필승 데이트 코스. 오래된 연인들은 모두 하나쯤은 갖고 있다. 취향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시간을 쌓다 보면 알게 되는 교집합. 예를 들어 같은 취미를 함께 한다거나. 같은 스포츠팀을 응원한다거나. 같은 음식을 정기적으로 먹는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테리어 취향이나 쇼핑 취향이 겹친다거나. 아무튼 두 명의 서로 다른 인격이 동시에 만족할 만한 데이트. 무엇을 할지 새삼 고르는 것도 귀찮은 날이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할 만한 기운이 없는 날이라도, 반드시 성공하는 그들만의 필승 코스.

윤대협과 서태웅은 결혼을 먼저 했고 데이트를 나중에 했다.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하면 손을 잡고 다닌 나날은 짧은 편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필승 데이트 코스가 있다.

일 대 일은... 데이트라기엔 미묘하다. 사귀기 전에도 실컷 했고. 어쨌든 둘 다 직업이다 보니. 훈련과 섞여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승부만큼 두 사람의 텐션을 끌어오는 일도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데이트라기엔 지나치게 치열한 감이 있었다.

두 사람을 동시에 아는 지인들이 알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지만. 부부에게는 의외로 농구 말고도 필승 데이트 코스가 있었다.

윤대협과 서태웅은 카페 데이트를 좋아한다.

특히 서태웅이 카페를 좋아했다. 윤대협은 그런 점이 서태웅의 귀여운 구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아늑한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도 낯선 공간에 갑자기 떨어진 고양이처럼 경계하는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더니. 몇 번 규칙을 배워 와서는 스스로 주문을 해냈다고 의기양양해하고. 윤대협이 더 익숙해 보이면 금방 눈을 가늘게 뜨고. 이런 데서까지 승부 정신.

그랬던 녀석이 이제는 카페를 꽤 좋아한다. 먼저 이런 저런 곳을 찾아서 가 보자고 한다. 여기는 커피가 맛있대. 사이폰...이라는 도구를 쓴대. 여기는 모카포트. 너 커피 좋아하잖아. 카페인에 서툰 서태웅은 뭘 마실 생각이냐고 물어보면 한참 핸드폰을 뒤적이다가 또 다른 후보를 가져온다. 여긴 진짜 딸기로 만든 딸기라떼를 판대. 여기는 밀크티를 얼린 얼음을 준대. 그리고 여기는...

윤대협은 종알종알 한 달 치 말할 걸 다 떠드는 서태웅의 입술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그래서 잘 몰랐다. 서태웅이 카페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서태웅은 카페에 좋은 기억밖에 없다. 윤대협이 서태웅의 프로포즈를 받아 준 곳이고. 처음 마셔 본 카푸치노 거품과 함께 처음으로 밖에서 키스했던 곳이다. 그래서 서태웅은 윤대협과 함께 카페에 갈 때마다 조건반사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은 또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까.

그날 서태웅이 선택한 카페는 인테리어도 힙하고 메뉴도 다양하며 리뷰도 고평가였으나, 가격 대비 질이 훌륭한 대부분의 공간이 그렇듯이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애매한 위치였다. 윤대협이 운전대를 잡았다. 서태웅은 졸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를 생각하다가. 전방을 주시하는 윤대협의 무표정한 옆얼굴을 훔쳐보다가. 그러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카페는 직접 가보니 더 좋았다. 목재 위주의 공간을 자개로 장식한 가구로 채워 모던하면서도 전통 풍미가 났다. 특히 윤대협의 마음에 쏙 들었던 건 병풍으로 가려진 구석 자리였다. 신나게 뽀뽀해야지. 물론 서태웅이 허락한다면. 삿된 마음을 품고 메뉴를 고른다.

서태웅은 흑임자 크림 라떼를, 윤대협은 오늘의 커피를 주문했다.

서태웅은 널찍한 유리잔에 담긴 흑임자 크림 라떼를 마시다가 윗입술은 물론이요, 코끝에까지 갈린 검은깨가 콕콕 박힌 눅진한 크림을 묻히고 말았다. 정확히 윤대협이 예측한 대로여서 과연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서태웅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윤대협은 냅킨을 준비했다. 자 하고 내밀기 전에 서태웅이 먼저 움직였다.

눈을 살짝 감은 채로 하얀 턱을 윤대협 쪽으로 쭉 내민다.

“응.”

그런 소리를 내면서. 발칙하게도.

윤대협은 사양하지 않고 얼굴을 기울였다. 혀끝을 내밀어 서태웅의 버선코에 가만히 댄다. 따끈하고 촉촉한 감촉에 서태웅이 살짝 몸을 떨었다. 왈칵 새어 나온 페로몬을 끌어안듯이 윤대협의 커다란 손이 서태웅의 양 어깨를 부드럽게 붙잡았다. 서태웅의 코끝을 훔쳐낸 윤대협의 분홍색 혀끝이 이번에는 서태웅의 입술을 훔치러 간다. 윗입술에 묻은 달콤하고 고소한 크림을 일부러 여러 차례에 걸쳐 소리 내며 할짝거린다. 윤대협의 손바닥 안에 들어있는 서태웅의 어깨가 그때마다 정직하게 움찔거렸다. 아직 크림을 다 핥아내기도 전에 서태웅이 성급하게 입술 안쪽을 붙여왔다. 딱히 크림 맛이 아니어도 달콤한 키스가 이어졌다.

그날 데이트에서는 이야기보다 키스를 훨씬 더 오래 했다.

적당히 집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였다. 잔잔한 레트로 팝이 나오던 카페 스피커에서 둘 다 너무 잘 아는 전주가 흘러나왔다. 특히 서태웅이 먼저 반응했다. 얼굴 전체에 느낌표를 띄우고 윤대협을 바라본다. 윤대협도 첫 소절이 나오기 전부터 눈치챘다. 예전에 서태웅과 함께 골랐던 프린스의 앨범 중 하나. <Diamond and Pearls>였다.

윤대협은 미소 지으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서태웅도 엉거주춤 따라 앉는다. 윤대협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손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서태웅의 손을 잡았다. 서태웅도 묵묵히 그 손을 만지작거렸다.

이 노래는 꽤 길다. 거의 5분이다. 윤대협은 느긋하게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윤대협의 의중을 알아챈 서태웅도 금방 노래에 푹 빠졌다. 워낙 좋아하는 노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비트에 딱딱 맞춰 발을 까딱인다. 그걸 눈치챈 윤대협도 함께 발을 까딱여 본다. 아는 후렴구에선 익살스럽게 립싱크도 시도했다. 서태웅이 그걸 보면서 입술 사이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윤대협에게 누가 다이아몬드와 진주를 준다고 해도 이보다 부자가 된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윤대협과 서태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손을 맞잡은 채로 프린스의 를 들었다. 마주 잡은 손바닥이 따뜻했다.

페이드아웃과 함께 노래가 끝났다.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갈 준비를 5분 전에 끝냈기 때문에 윗옷도 걸치고 지갑도 차키도 챙긴 채였다. 그대로 카운터를 지나가며 인사를 남긴다. 잘 먹었습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라디오를 틀었다. 귀에 익은 광고 CM. 사연을 읽는 디제이의 나직한 목소리. 주차장에 도착해 윤대협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린 순간. 거짓말처럼 디제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신청곡 듣고 오겠습니다. 프린스의 'Diamond and Pearls'.

두 사람은 동시에 동그란 눈을 마주 보고 푸핫, 웃어버렸다.

라디오는 5분이나 같은 노래를 틀어주진 않았다. 겨우 1절이 끝났을 때쯤에 마음대로 페이드아웃해 버리고 광고를 틀었다. 그렇지만 킥킥 웃던 부부가 키스를 나누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손을 잡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윤대협이 휘파람으로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서태웅은 발끝으로 박자를 맞췄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동시에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긴 전희 같은 데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