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my mate
불면의이쑤신
하이디 님 <Sweet Recall> 축전
<Be my date> 3차 연성루카와는 중학생 때 처음 농구부에 들어갔을 때부터 단 하루도 아침 자율 훈련을 빼먹은 적이 없다. 루틴을 넘어서서 숨을 쉬는 것과 같다. 눈을 뜨면, 옷을 갈아입고, 농구공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새벽에 시작한 훈련은 아침에 끝났다. 가볍게 달리는 루카와의 숨소리가 고요한 거리에 퍼진다. 항상 같은 시간, 같은 길. 휴일 아침의 도시를 가득 채운 건 햇살뿐이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그림자도 없다.
예약제로 사용하는 실내 농구장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는 선택지가 몇 개 있다. 무난하게 스타벅스에서 커피만 테이크아웃. 마침 이 시간에 갓 구운 식빵이 나오는 빵집(집에 잼이 남았나?). 유일하게 휴일에도 일찍 여는 단골 카페에서 오늘의 샌드위치와 커피를 동시에...
객관식 옵션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사이, 단골 카페의 시그니처 샌드위치 맛이 생생하게 기억나 버렸다. 부드러운 루콜라 잎과 상큼한 당근 라페, 촉촉한 닭가슴살이 큼직하게 들어간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을 때의 감각.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좋아. 카페로 가자. 빠른 결정.
2인분의 아침 메뉴가 정해졌다.
어렴풋한 의식 너머로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센도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였다. 머릿속에선 벌떡 일어나 아침 루틴을 마치고 온 연인을 다정하게 안아주면서 잘 다녀왔어? 라고 인사하고 있는데 실제로 품속에 있는 건 푹신푹신한 이불 뭉치뿐이다.
센도는 아침형 인간은 아니다. 언제나 오전보단 오후에 컨디션이 좋았다. 저녁에 경기할 일 많은 농구선수로서는 천운이다. 연습보다 중요한 건 실전이니까. 모든 아침 중에서도 특히 휴일에는 일찍 정신을 차려도 왠지 더 뒹굴고 싶다. 그래도 되는 날이니까. 지금처럼.
촥, 커튼을 걷는 소리. 눈꺼풀 너머로도 환한 빛이 느껴진다. 반사적으로 눈썹을 찌푸리게 된다. 못 이기는 척 눈을 뜨기도 전에, 퍽. 익숙한 무게가 상체 전체에 무자비하게 떨어진다.
끄응. 루카와에게 짓눌린 센도의 흉곽에서 숨 참는 소리가 난다. 운동복 그대로 덮쳐 온 루카와는 바깥 기운을 두르고 있어 전반적으로 차갑다. 신나게 농구하고 적당히 쿨다운 운동을 하며 돌아왔겠지만 이불이 따땃하게 데워둔 센도의 맨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오직 침대에서만 가능한 아찔할 정도로 아늑한 고온을 찾아 루카와가 센도의 품속을 파고든다.
센도는 웃으면서 루카와의 버석버석한 운동복 위를 꼬옥 끌어안았다. 꿈속에서 건넸던 인사를 귓가에 중얼거린다.
“잘 다녀왔어?”
품속의 루카와가 끄덕인다. 빗장뼈쯤에 처박고 있던 고개가 슥 올라온다. 루카와는 물끄러미 센도의 얼굴을 본다. 까치집일 게 분명한 앞머리를 보고도 웃지 않는다. 아직도 빛에 익숙지 않아 제대로 뜨지 못했고 눈곱도 좀 묻어있을지 모를 눈가를 찬찬히 살핀다. 나른하게 미소 짓는 입술 선까지 꼼꼼하게.
무뚝뚝하고 집요해 보이는 까만 눈동자를 잘 들여다보면 이 거리에서만 알 수 있는 감정이 넘쳐흐르고 있다. 눈동자를 통해 네가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마음이 전해지면, 그것이 또 사랑스러워서 제곱되어 돌아간다. 주고받는다. 사랑스럽다.
읏차. 센도가 몸을 옆으로 굴려 제 상체 위에 올라와 있던 루카와를 끌어안은 채로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 루카와는 꿈질꿈질 몸을 돌려 센도와 같은 방향을 보고 눕는다. 자신의 등이 옷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센도의 두툼한 가슴팍과 복근에 달라붙는 것이 느껴진다. 벽처럼 단단하다. 안심이 된다.
루카와의 머리를 받친 센도의 팔뚝이 더듬더듬 루카와의 손을 찾는다. 손등을 조심스럽게 감싸고 다시 편안히 뻗는다. 뒤에서 다정한 한숨이 들린다. 센도의 숨결에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 달콤한 듯, 고소한 듯, 찌르는 듯 묘하게 자극적이고,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어딘가 맛있는 듯한... 루카와는 최근에야 이 향기가 무엇을 닮았는지 알았다. 트뤼플이다. 센도와 함께 가 본 고급 레스토랑에서 수상할 정도로 익숙한 향기를 맡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섹스가 한창일 때는 아찔할 정도로 더 진하게 코를 찌른다. 지금은 훨씬 옅고 은은하다.
눈앞에는 겹친 두 개의 오른손. 루카와는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본다. 뻗어나간 하얀 팔이 한 몸처럼 포개진 모습을. 사이사이 하나씩 얽혀 있는 손가락을 구부려서 쥐어본다. 따스하다.
이런 순간에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반려가 된다는 건 뭔지.
“아침 뭐 사 왔어?”
“아, 맞다.”
아직도 살짝 잠겨있긴 하지만 졸음이 사라진 목소리로 센도가 묻는다. 루카와는 미련 없이 벌떡 일어섰다. 품속의 부피가 사라져 아쉬운 표정을 하는 센도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민다.
“커피 식어. 일어나.”
식으면 안 되지... 센도가 중얼거리면서 마지못해 루카와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센도는 루카와와 동거를 시작하면서부터 아침을 챙겨 먹게 됐다. 귀찮고 안 내켜서 두 끼만 먹기로 한다면 루카와는 저녁을 거를 거고 센도는 아침을 거를 거다. 둘이 함께 살면서 자연히 루카와가 아침을, 센도가 저녁을 챙겨서 두 사람은 하루 세 끼를 성실히 챙겨 먹게 되었다.
“오늘은 약속 없지?”
루카와가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센도는 커피를 한 입 마시고 계속 말했다.
“난 내일은 대학 동창들 만나.”
“알아. 청첩장 모임.”
“말했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야무지게 샌드위치를 한 입 더 베어 무는 루카와를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센도가 명랑하게 말했다.
“친구가 꼭 와서 말해달래. 결혼하면 뭐가 좋은지. 선배로서.”
루카와는 묵묵히 센도를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씹고 있다.
“매일 아침 식사를 챙겨줘서 좋다고 하면 너무 뻔한가?”
싱글벙글 웃는 센도를 가만히 쳐다본 채로 루카와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떨 때 가장 좋았지? 같이 산다는 건... 그걸 느꼈던 건... 오늘 아침하고... 센도는 재촉하지 않는다. 느긋하게 루카와의 대답을 기다린다.
루카와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사 왔을 때. 내가 선반 달았잖아. 베란다에.”
“맞아. 그랬었지.”
부모님은 항상 물건을 제자리에 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려면 모든 물건이 제자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유학을 가거나, 대학을 가거나, 거처를 옮길 때마다 물건에는 다시 새로운 제자리를 주어야 했고, 그것은 늘 임시적이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제자리라 할 순 없었다. 언제고 다시 챙겨야 한다면.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있었던 센도의 물건은 더더욱.
효율적인 수납을 위해 베란다에 튼튼한 철제 선반을 제 손으로 박아 넣고, 센도와 어떤 칸에 무엇을 넣어둘지 정하고, 차곡차곡 정리했을 때. 루카와는 깨달았다. 센도와 함께, 위치와 구조와 가격과 모든 조건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큰돈을 들여 구매한 이 집의 모든 물건은 앞으로 영원히 우리가 정한 이 자리에 있을 거라는 사실을.
루카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너무 생생해서 무의식적으로 눈높이 정도의 선반에 손에 쥔 물건을 내려놓는 듯한 동작을 하면서, 루카와가 말했다.
“진짜 제자리를 찾았구나.”
정적이 흘렀다. 센도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반을 달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응.”
확신을 담아 쐐기를 박아 준 뒤, 루카와는 유리컵에 남은 오렌지주스를 입에 털어 넣었다.
센도는 침착하게 머릿속으로 루카와가 한 말을 정리했다. ‘결혼하면 뭐가 좋냐고? 이사 왔을 때 베란다에 선반을 달고 진짜 제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감동이 느껴졌다.
이유야 어쨌든, 루카와 카에데가 센도 아키라의 옆이 제자리라 말하고 있으니. 그거면 됐다. 센도는 불평 없이 웃었다. 승리자의 여유를 만끽하는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