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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horts
2026.06.09

地獄単騎

불면의이쑤신

東京 新宿

또 만지네.

센도는 오른손에 턱을 괴고 자신의 패를 바라보는 척 눈만 살짝 들어 자신의 왼쪽에 앉은 불량배를 삼 초 정도 노려보았다. 부산스러운 자였다. 기지개를 켜고 손목을 돌리고 허벅지를 벅벅 긁고 하여간 양 팔을 가만두질 않았다.

틈만 나면 손을 뻗어 작탁 모서리에 서서 판세를 구경하고 있는 남자의 엉덩이를 만졌다. 처음에는 센도도 눈치채지 못했다. 추행을 당하는 측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꼿꼿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으레 그런 취향이 좋아하는 가냘픈 스타일도 아니었다. 피부는 희지만 키가 크고 어깨가 반듯한 남자였다. 그가 입은 얇은 유카타의 왼쪽 허벅지 부분이 때때로 희한한 방향으로 움찔거리며 주름지는 것에 위화감을 느껴 곁눈질로 관찰하다가 엉덩이 쪽을 잡아당겨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유카타를 입은 남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포마드를 바르지 않은 까만 머리카락이 눈매를 가렸다. 일자로 꾹 다문 입술만으로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뭐, 색기는 있었다.

추행은 점점 대담해졌다. 센도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여자 가슴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생각하는 저질스러운 부류는 어딜 가나 흔하지. 마치 제가 데려온 창기인 양 주무르고 있지만 놀랍게도 유카타를 입은 남자는 옆자리 불량배의 일행이 아니다. 센도의 맞은편에 앉아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험상궂은 야쿠자가 데려왔다.

대담하기도 하지. 앳된 피부결에 옷자락에 가렸는지 문신도 안 보이지만 일행을 고려할 때 유카타를 입은 남자도 충분히 야쿠자일 수 있다. 그래서였는지 불량배도 처음엔 슬쩍슬쩍 스치듯이 건드리거나 손등을 대기만 해서 만지는 줄도 몰랐는데. 반응이 없자 점점 기세를 올린 모양이다.

불량배가 짐짓 고민하는 척 팔꿈치를 작탁 모서리에 걸고 탐욕스럽게 손목을 놀리자 다시 서 있는 남자의 유카타가 뒤로 잡아당겨졌다. 탄탄하고 날씬한 허벅지 근육과 무릎의 곡선이 얇은 천 너머로 살짝 도드라졌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라진다. 뭐. 색기는 있다. 확실히.

센도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아무 패나 버린 다음 시선을 맞은편의 야쿠자로 돌렸다. 그와는 잘 아는 사이다. 노름꾼은 야쿠자를 모를 수 없다. 이 나라에서 돈을 거는 마작판은 죄다 야쿠자가 꽉 잡고 있다.

센도가 아주 어렸을 때 마작이 전쟁과 함께 수입됐다. 항상 새로운 유행을 찾는 도쿄에서 신생 노름으로 떠오른 마작과 함께 센도도 유망한 노름꾼으로 자라났다. 처음에는 신주쿠와 오사카에서, 그다음에는 만주와 상해에서, 최근에는 대만과 교토에서. 요즘 마작은 많이 변했다. 새로운 룰이 추가되고, 유행하고, 소멸했다.

그만큼 사기 치기 좋았다. 고상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실은 야쿠자나 삼합회와 연관된 화려하고 사교적이며 국제적인 작장이 센도의 주무대였다. 아무래도 화투도 홀짝도 아닌 마작을 굳이 하겠다는 사람들은 신문물에 밝고 외국물 좀 먹은 사람들이니까. 새로운 걸 소개하면 호기심을 먼저 보인다. 인생에 진 적이 없어서 승부욕이 강하다. 쓴맛을 못 봐서 의심이 없다. 요즘 가장 재미가 좋은 건 주사위 대신 조선에서 쓰는 산가지를 뽑자고 하는 수법이다. 주사위보다 조작이 쉽다.

여긴 그런 곳이 아니다. 오늘은 일하러 온 게 아니니까. 불량배와 야쿠자와 노름꾼들. 판을 굴리는 사람들도 가끔은 순수하게 손맛을 즐기고 싶다. 그 사이에서 간식을 팔고 구두를 닦으면서 용돈을 버는 아이들. 걸 돈은 없어도 구경은 언제나 공짜라, 작탁을 둘러싸고 선 채로 시간을 때우는 가난해서 무료한 사람들.

유카타를 입은 미남자를 데려온 야쿠자는 신주쿠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야쿠자들도 역할이 다 나뉘어 있다. 핵심에는 사업가들. 군인들과 친하고 정세에 밝다. 제일 무섭다. 안 만나는 게 좋은 삶이다. 주변부엔 해결사들. 폭력엔 재능이 있지만 사업엔 그렇지 않은 단순 무식한 족속이다. 주로 사업가들 밑으로 들어가거나 용병으로 고용되어, 큰 뜻을 펼치다 보면 마주하게 마련인 복잡한 문제를 알렉산더 대왕의 방식으로 단칼에 해결한다.

센도 같은 노름꾼들은 피라미 중의 피라미. 여기저기에서 고용되어 잡기술을 발휘해 누군가를 금전적으로 불행하거나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한다. 보통 사업가 야쿠자의 따까리의 끄나풀 정도에게 고용되지만, 아닐 때도 있다. 군인들도 정치가들도 문인들도 노름은 좋아한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복수극은 복잡하다. 피 흘렸던 과거의 빚을 처음에는 분명히 친선이었던 마작 한 판으로 세 배 되갚아주기도 한다. 주인공의 흥망성쇠를 위해 센도 같은 무명의 조연이 여러 명 고용된다.

해결사들은 노름 자체는 잘 못한다. 관심이 없다. 그들은 냅다 거대한 일본도를 뽑아 작탁을 반으로 갈라버리는 편을 선호한다. 센도의 맞은편에 있는 야쿠자는 특이한 편이다. 마작의 룰을 이해하면 좀 더 폭력의 타이밍을 빨리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작탁에 매달려 있다.

센도는 오늘 그가 불러서 작탁에 앉았다. 교토에서 배운 새로운 룰인 ‘도라’를 가르쳐주고, 참가자 전원의 열렬한 동의를 얻어 모든 판에 적용하고 있다. 돈 걸고 마작하는 놈들치고 도라 싫어하는 놈이 없다. 판돈이 뛰니까.

센도에게는 버릇이 있다. 패를 섞기 직전에 만수패, 통수패, 삭수패 중 하나만 골라서 딱 8개의 패 위치를 기억한다. 열심히 섞는다고 생각하지만 열 중 아홉명은 제 앞의 패끼리만 섞게 마련이다. 확인하고 싶을 땐 같이 섞는 척 하면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만큼 빠르게 찍어둔 패 8개만 슬쩍 위치를 확인한다. 1초도 안 걸린다.

그러면 그 패들을 중심으로 같은 모양의 패 27개의 위치가 전부 외워진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위치를 외운 패는 센도의 손바닥 안이다. 누가 뭘 가져갔는지는 물론 누가 뭘 가져갈지도 순식간에 조작 가능하다. 순수하게 기억력과 손장난만으로. 패를 만질 필요도 없다. 작탁 위로 손이 지나가기만 해도 된다.

센도가 열 살 때부터 순수하게 연습으로 익힌 기술이다. 모양 하나를 깨는 데 10년 걸렸다. 20년이 더 지나면 센도는 모든 패를 외울 수 있을 것이고, 모두 조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밥벌이를 위해 연마한 기술은 아니다. 일에는 대체로 공범이 있으니까. 네 명 앉은 작탁에서 세 명이 짜면 한 명 죽이자고 이런 화려한 기술까진 필요치 않다. 조작보다 중요한 건 전략이다. 센도는 요즘 산패를 건들 때 큰 패는 남을 주고 자신은 깡을 뿌려 판돈이나 올린다. 희생자는 저를 뺀 더블 론 정도로 죽이고. 스깡즈 같은 수상한 건 안 잡는다. 어디까지나 조역만. 크게 따면 의심을 산다.

추행에 정신 팔린 뜨내기 불량배는 도라를 몰랐다. 어디 출신일까. 낯선 얼굴인데. 부산스러운 자였다. 옆에 선 야쿠자 끄나풀의 엉덩이만 만지는 게 아니고 패도 슬쩍슬쩍 바꿔치기했다. 기술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모양 하나의 위치를 다 외운 센도에게는 금방 걸렸다. 사실 저래선 남이 버린 패만 잘 외워도 들통이다.

분위기 파악을 정말 못하는 놈이다. 이 정도로 살벌한 작장에 전문 노름꾼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가장 위험해 보이는 야쿠자가 딱 봐도 초짜고, 다른 두 명에게서는 그다지 폭력의 그림자를 느끼지 못해서 방심한 건지.

사실이긴 하다. 센도는 폭력과 무관하다. 별다른 무기를 소지하지도 않았다. 센도의 무기는, 노름판의 진짜 무기는 그런 게 아니다.

센도는 오른쪽에 앉은 사람과 아주 짧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같은 업계 사람이었다. 몇 번 같이 일한 적도 있다. 눈빛만 봐도 작전을 안다. 공유하는 신호체계도 많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이 뜨내기가 시골에선 제법 먹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도쿄에선 좀... 적당히 신고식이 필요한 것 같다.

다같이 패를 섞는다.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은 센도가 필요한 패를 다 가져오고 있다. 주사위는 오른쪽의 동료가 던진다. 그렇게 센도가 원하는 순서대로 패를 가져가게 된다. 이미 패를 섞으면서 이번 판에 누가 어떤 순서로 무엇을 가져갈지 센도가 전부 계산을 마쳤다. 그런다고 과연 덫에 걸릴지 모르겠지만. 아마 확실하다.

순배가 다섯 번 정도 돌았을 때 불량배가 리치를 불렀다.

순서가 된 야쿠자가 패를 내려놓았다.

불량배가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론!”

리치, 일발, 구련보등이다. 뒷도라도 하나 맞았다.

구경꾼 사이에 일대 소란이 일었다. 센도는 놀란 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동료가 두 손을 항복했다는 듯이 들어 올린다. 물론 연기였지만.

“어마어마하네요. 설마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그러게요. 저도 처음 보는 거 같은데요.”

동료가 잡담처럼 건넨 말에 뼈가 있다. 줘도 티 나게 그런 걸 주냐고 대놓고 꼽 주는데도 센도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불량배가 중간에 다른 걸로 화료하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욕심도 허세도 많은 불량배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구련보등을 노릴 거라고 생각했고 기다리면 할 수 있는 패를 주었다. 이번엔 사기를 안 쳐도 돼서 어안이 벙벙했겠지만.

불량배는 신이 났다. 고개를 들이미는 구경꾼들에게 패를 자랑하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보통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못 잡는 패라면서 돈 내고 보라는 둥 부러우면 술 한잔 사고 운을 나눠 가라는 둥 기세등등했다.

그가 나대는 만큼 론을 뒤집어쓴 야쿠자는 험악해졌다. 핏발 선 눈이 가늘어진다. 동시에 옆에 서 있던 미남자가 턱을 들었다. 빛나는 눈동자가 날카롭게 좌중을 살피다가 센도와 마주쳤다. 센도의 순수하게 감탄하는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지나간다. 마치 경계하는 군견 같다.

야쿠자는 손실이 꽤 컸다. 그가 예의 얼굴 고운 군견에게 손을 까딱이자 남자가 빠르고 높게 휘파람을 휙 불었다. 십 대 초반의 아이가 자기 몸통만 한 가방을 민첩하게 가져온다. 야쿠자는 자기가 딴 돈은 그대로 두고 새 돈을 꺼내어 세 번 세더니 작탁 가운데 던졌다. 불량배는 밉살맞게 굽실거리고 사과하면서 한 푼 남김없이 쓸어 모았다.

그 추태를 가만히 바라보던 야쿠자가 센도에게 물었다.

“저게 그렇게 대단한 거냐?”

센도가 대답했다.

“꽤 비싸죠. 목숨값이라고도 하고.”

“목숨?”

“구련보등에 오르면 가진 운을 다 써서 죽는다는 말이 있거든요.”

센도는 흘끗 시선을 돌려 불량배가 그 말을 들은 것을 확인했다. 야쿠자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센도는 야쿠자의 눈에서 의심을 읽었다.

적당히 준비가 끝난 것 같다.

센도는 이번에도 함정을 팠다. 뭐로 하지. 역시 럭키 세븐? 7만. 좋아. 7만에 걸어 보자. 센도는 깡을 두 번 불러서 도라를 세 개 까놨다. 이번 판은 누군가 리치로 화료하면 무려 도라만 여섯 개. 앞도라 중 두 개가 6만이다. 아무도 7만패를 안 버릴 판이다.

“리치.”

이번에도 불량배가 선수를 쳤다. 야쿠자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센도는 아무거나 버렸다. 동료도 적당히.

“리치.”

두 번째 리치는 야쿠자였다.

불량배는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치나 퐁을 부를 시간도 주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건너편 산패로 손을 뻗는다.

센도가 그 손목을 붙들었다.

“잠깐만요. 이게 뭐죠?”

우악스럽게 뒤집어 깐다.

“뭐야?”

당황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펼친 불량배의 퉁퉁한 주먹 속에는 7만패가 있었다. 센도가 짐짓 감탄했다.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숨죽인 작장에 울려 퍼졌다.

“어쩐지. 구련보등이 그냥 나온 게 아니네.”

불량배가 항의하기도 전에 야쿠자가 뭐라고 외쳤다. 누군가의 이름인 것 같았다.

센도는 유카타의 얇은 소매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다.

쿵, 소리와 함께 유카타를 입은 남자의 까만 앞머리가 공중에 찰랑이며 떠올랐다. 하얗고 앳된 이마가 백열전구 아래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 속에서 센도의 눈에는 그 부분만 느리게 보였다.

빛이 번뜩였다. 센도는 유카타를 입은 남자의 눈빛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칼날에 반사된 백열전구의 불빛이었다. 동시에 머리카락이 콧잔등에 걸리듯 무언가 가느다란 것이 불량배의 손목을 붙든 센도의 손과 작탁에 바짝 붙은 센도의 이마에 튀었다.

순식간에 센도의 눈앞으로 다가온 하얀 얼굴을 가로지르는 핏방울.

비명은 훨씬 느리게, 더듬거리면서 시작되었다.

유카타를 입은 남자가 상체의 체중 전체를 실어 작탁에 꽂아버린 잭나이프가 불량배의 손바닥을 관통했다. 불량배의 손바닥이 한가운데에 꽂힌 작탁을 가로질러 센도와 유카타를 입은 남자가 상체를 숙인 채 얼굴을 맞대고 있는 꼴이었다.

불량배는 발버둥 쳤다. 센도가 쥔 손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렸다. 불량배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유카타를 입은 남자는 잭나이프 손잡이에 올려놓은 제 손등에 날렵한 턱 끝을 느긋하게 올려놓았다. 고양이가 제 손등에 얼굴을 괴고 낮잠 잘 준비를 할 때의 움직임이었다. 하얗고 앳된 뺨을 속도감 있게 가로지른 새빨간 피가 물감이 튄 것처럼 예뻤다.

가까이서 보니까, 아랫속눈썹이 참 길다.

센도는 그런 생각을 하느라 야쿠자가 뭐라고 불량배를 훈계하는지도 몰랐다.

“이제 됐다. 루카와.”

스르륵. 하얀 얼굴이 후퇴한다.

아. 그게 이름이었구나.

루카와는 칼을 거둬갔다. 센도도 손목을 놓고 머쓱하게 몸을 일으켰다. 야쿠자는 센도에게 눈짓했다. 대충 또 보자, 뭐 그런 뜻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긴말을 싫어한다. 센도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불량배는 피투성이 소매로 상처를 누른 채 구경꾼을 홍해처럼 가르면서 사라졌다. 동료가 센도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들기고 갔다. 너무 심했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피가 흥건하게 남은 작탁을 바라보다 센도도 일어섰다. 바람을 쐬고 싶었다.

센도는 뒷문으로 나갔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 그래도 여름밤은 달이 밝다.

아무도 없는 벽에 머리를 기댄다. 방금 본 풍경들을 머릿속에서 곱씹는다. 좀 자극적이었나. 심장 박동이 아직도 약간은 크다. 보통은 센도처럼 기술적 용병들은 유혈사태가 나기 전에 자리를 피한다.

꼭 피를 봤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멍하니 허공을 향하던 센도의 눈앞에 불쑥 뭐가 들이밀어진다. 눈을 가늘게 뜨고 초점을 맞춰본다. 담배잖아.

그리고 담배를 내밀고 있는 건.

“루카와.”

아까 들은 이름을 불러본다. 아는 사람처럼 다정하게. 이름을 알면 그런 수작을 부릴 수가 있다. 루카와는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 이름을 불린 군견처럼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린다. 씨익 웃음이 난다.

재촉하듯이 담배를 내민다. 일단 받아 든다. 스쳐 지나간 손가락은 의외로 따스했다. 입에 물고 품에서 성냥을 찾아 불을 붙이는 동안 루카와도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며 소매에서 근사한 지포 라이터를 뺀다. 일련의 동작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시원한 손짓 한 번에 불꽃이 튄다. 은은한 라이터 불빛이 화려한 미인의 얼굴을 환하게 물들이다 금방 사라져 버린다. 센도는 영화나 가부키를 구경할 때처럼 담뱃불을 붙이는 루카와를 가만히 감상했다.

은은한 담뱃불이 루카와의 얼굴에 아직도 튀어있는 핏자국을 주황색으로 비춘다. 빛이 사라지고 나면 검게 말라붙은 원래 색이 드러나 밋밋한 상처처럼 보였다.

센도는 벽에 기댄 채 잠시 담배를 피우며 루카와를 감상한다. 루카와도 자신을 바라보며 묵묵히 담배를 핀다. 너도 날 감상하는 건가. 왠지 기특하네. 센도는 부드럽게 웃었다.

문득 목소리가 궁금해졌다. 센도가 뜬금없이 물었다.

“마작. 할 줄 알아?”

“아니.”

짤막한 대답. 감질나네. 센도는 좀 더 말을 붙여보았다.

“그럼 이유도 모르고 손을 썰어버린 거야?”

루카와가 센도를 빤히 바라본다.

“음. 자기 차례가 되면 패를 버리고 하나 가져오는데.”

센도가 조금 웅크린 손바닥을 들어 루카와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숨겨서 바꿔치기를 한 거야. 원하는 패를 미리 쥐고 뽑은 척 하려고. 사기꾼이지.”

“나도 알아.”

루카와가 불쑥 손가락을 들어 올려 센도의 얼굴을 가리켰다.

“진짜 사기꾼.”

담배를 문 센도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이거 본격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데.

“증거 있어?”

“그렇게 말하면 범인. 절대로.”

음. 보기보다 똑똑한 것 같다. 센도는 배시시 웃었다. 제법이네. 보면 볼수록. 다 타 버린 담배를 바닥에 던진다.

“궁금하지. 왜 들켰는지.”

루카와가 툭툭 건드리듯이 말을 던진다. 체격에 어울리는 낮은 목소리. 더 듣고 싶어서 센도는 새 담배를 꺼내 물며 루카와를 부추겼다.

“조금. 자신 있었거든.”

갑자기 루카와의 얼굴이 훅 다가온다.

“불.”

나직한 목소리와 동시에 날렵한 턱이 기울어진다. 물고 있는 것도 잠깐 잊어버렸던 센도의 담배 끝에 자신의 담배를 맞댄다.

센도는 잠깐 숨을 멈췄다.

센도와 루카와는 동시에 숨을 들이마셨다. 불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담배연기가 된 루카와의 날숨이 센도의 코끝을 스치며 지나간다.

“네 손장난은 못 봤지만...”

루카와가 중얼거렸다.

그 말이 신호인 것처럼, 담배 끝만 바라보던 센도와 루카의 눈빛이 공중에서 딱 마주쳤다.

“그 자식 손바닥엔 아무것도 없었어.”

부싯돌처럼 불꽃이 튈 것 같다고 센도는 생각했다.

“나는 알아.”

갑자기 루카와의 엉덩이를 마음껏 주무르던 불량배의 퉁퉁한 손이 떠오른다.

그래서 알고 있었구나.

거의 동시에 센도가 붙잡고 있던 그 고깃덩이에 칼날이 꽂히던 감각이 떠오른다. 분노와 만족의 빠른 사이클. 값싼 카타르시스에 센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연기가 된 센도의 한숨이 루카와의 뽀얀 뺨을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센도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위치만으로 보자면 정확히 루카와의 하반신을 아래부터 위까지 훑듯이. 루카와의 옷자락도 스치지 않았지만. 시선은 루카와의 눈동자에 고정한 채로. 루카와의 하반신이 끝나는 곳쯤에서 허공에 멈춰 있던 커다란 손이. 다시 서서히 내려간다.

손바닥에도, 소매에도,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루카와가 두어 걸음 물러섰다. 센도는 계속 벽에 기대있었다. 왠지 힘이 빠졌다. 힘이 빠져서인지 웃음이 났다.

노름꾼은 갖고 싶은 것이 없다. 그래서 지지 않는다. 원하는 사람을 이기게 해 주고, 원하는 사람을 지게 해 주고. 가운데에서 약속된 소정의 보수와 목숨을 담보 받아 근근이 살아간다. 무언가를 너무 갖고 싶어 도박판에 앉은 사람들은 항상 위기에 처했다.

갖고 싶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루카와는 보기보다 훨씬 위험한 남자였다... 야쿠자라서가 아니고...

한숨과 함께 내뱉은 담배 연기 속에서 루카와가 뒤돌아선다.

매정하게도 센도의 이름조차 묻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