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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horts
2026.07.21

가능한 남자

불면의이쑤신

윤대협이 멍 때린다.

자주 있는 일이다. 시합이 아니고서야 빠릿빠릿하게 집중한 윤대협을 보기는 어렵다. 훈련이란 어차피 끝없는 반복.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는 편이 제일 효율적인 걸지도. 너무 멍 때린 나머지 지루한 줄도 모른다는 게 윤대협의 무서운 점이랄까.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데.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 사이로 맥없이 떨구는 기계적인 드리블을 향해 살짝 내려가 있는 윤대협의 공허한 시선을 바라보며 안영수는 쎄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저건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표정이 아니다. 뭔가 생각을 하고 있다… 틀림없이 변변치 못한 생각을…

“대협이 형,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해맑은 박경태가 윤대협을 찌른다.

“어? 아아…”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지 모를 멍청한 반응. 이럴 때는 조금도 천재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농구할 때만… 그것도 시합할 때만 편리하게 천재인 녀석…

쎄이더 발동한 안영수가 굳이 안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리기도 전에. 드리블을 멈춘 윤대협이 툭 뱉었다.

“있잖아. 남자가 봐도 섹시한 남자라는 게 있나?”

체육관이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윤대협의 얼굴에 꽂힌다. 등교만으로도 더운 여름의 습기가 촉촉하게 올라온 시원한 이마 아래 진지하게 멍 때리는 조각상 같은 얼굴…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건 황태산이었다.

“기만자.”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안영수도 거들었다.

“미친놈.”

박경태가 산뜻하게 외쳤다.

“거울 보세요!”

“엥? 나?”

막상 윤대협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런 게 뭔데…?”

“야야. 그만 물어봐. 짜증 나.”

“부정은 안 하시는군요! 역시 대협이 형!”

입을 열수록 주변의 반응이 황폐하다. 언제나 씩씩한 박경태만 빼고.

“아니. 나 같은 거 말고. 그런 거 있잖아. 남자인데 왜 이렇게 섹시하지? 이런 거.”

“이거 언제 닥치냐?”

“너 같은 게 뭔데…???”

“박경태! 아직도 안 갔냐!”

“앗! 감독님! 죄송합니다!”

감독 대신 참관 허락을 받은 도내 연습 시합을 보러 가야 한다며 박경태가 급히 사라졌다. 정찰 잘하고 오겠다고 경례까지 붙인다.

감독님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부 활동이 시작됐다. 일찍 와서 옷 갈아입고 잡담하던 부원들도 일사불란하게 정렬. 한층 험악해진 얼굴로 투지를 불태웠다. 타도 기만자 윤대협.

아무도 윤대협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았다.

말로는 잘 표현이 안 되네…

연습이 끝날 때까지 윤대협은 멍하니 생각했다.

모든 남자가 서태웅 같지는 않다.

서태웅처럼… 섹시하지는 않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일단 잘생겼다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 그러나 TV에 차고 넘치는 잘생긴 남자 배우며 남자 아이돌을 보고 윤대협이 감탄하는 일은 있을지언정 섹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현장감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물론 서태웅의 존재감은 멀리 관중석이나 녹화 화면으로 본다고 해서 빛을 잃을 것 같진 않지만. 코앞에서 상대하는 사람에게는 또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윤대협은 시선을 빼앗기기 전에 이쪽이 먼저 휘둘러 버리는 대책을 썼다.

그게 의도대로 잘 먹혔을 때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파를 허용했을 때. 아차, 당했다. 그렇게 쓰여있는 윤대협의 얼굴 앞에서. 방금 전 슈퍼 플레이는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주먹조차 불끈 쥐는 일 없이 담담하게 돌아서는 서태웅의 조용하고 의기양양한 눈빛이. 지름이 넓은 홍채 속에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꺼지지 않는 불꽃이. 견딜 수 없이 짜릿했다.

지는 시합에서 들불처럼 따라붙는 서태웅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섹시하다. 누구라도 뱃속이 꿈틀거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승부욕이 있는 농구선수라면 당연한 반응이니까. 이상하지는 않다.

문제는 시합이 아닐 때…

아무래도 일 대 일이 문제였던 것 같다. 윤대협은 서태웅에게 집중해 버린 것이다. 40분의 시합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시합과 코트 전체의 흐름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오직 눈앞의 서태웅에게만. 그의 움직임. 스피드. 농구화가 마찰하는 리드미컬한 마찰음. 쭉 뻗은 팔이 그리는 포물선과 점프 후 착지와 함께 바닥에 후두둑 점사 되는 땀방울.

절대로 윤대협과 공에서 떨어지지 않는 집요한 시선.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닌데. 조각조각만 두고 보면 농구하다 흔히 보는 광경이다. 공중에 잠시 멈춘 듯이 붕 떠오른 머리칼이 그리는 방사형의 라인이나. 촉촉하게 피부 위로 올라와 물방울 진 더위가 살짝 늘어진 옷깃 사이로 가슴 근육의 라인을 따라 굴러 들어간다거나. 새하얀 피부에 조금씩 올라오는 울긋불긋한 열기와 혈색 같은 거. 이마 라인에서 생성돼 그린 듯한 눈썹과 주장이 강한 속눈썹을 차례로 스치며 추락하는 투명한 땀방울… 아, 이건 서태웅만 해당하겠구나. 그런 눈썹과 속눈썹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윤대협!!! 집에 안 가냐!!!”

“앗.”

윤대협은 누군가의 고함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혼자서 멍하니 코트에 서 있었네. 뒤통수를 긁적이며 텅 빈 라커 룸으로 환복하러 간다. 뭐, 한산하고 좋네.

날씨 좋네. 바다에나 들렀다 갈까.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교문을 나서던 윤대협은.

“헤이.”

섹시한 남자를 마주치고 말았다.

“그렇겠지…”

“?”

“재밌었어? 전국대회.”

“어. 승부하자.”

“그래그래…”

휙 돌아서서 앞서 나가는 서태웅의 발걸음이 경쾌해서 웃기다.

바로 이런 게 가장 큰 문제다. 농구하지 않는 서태웅. 다른 것보다도 도대체 이게 왜 섹시한지 납득이 잘 안된다. 윤대협의 뇌세포가 제멋대로 연상 작용을 시작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서태웅의 파편을 뒤적거린다. 여름밤의 서늘해진 공기를 망토처럼 둘러메고 갑자기 던진 질문으로 파문을 만들던 서태웅.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던 일자로 다물린 입술. 대답을 듣고 조금 더 커진 홍채에 비치던 은은한 가로등 불빛. 어깨와 팔뚝의 윤곽에 고르게 퍼진 자잘하고 끈적한 물기가 벨벳처럼 반사하던 저녁 어스름. 아. 그런 건가? 평소랑 너무 다른 분위기에서 의외성이 느껴질 때 섹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걸까? 그러니까 지금도. 한여름에 굳이 긴소매, 긴바지로 꽁꽁 싸맨 몸에서 훤칠하게 드러난 목덜미랑 쇄골 같은 거 말이야…

어쨌든 농구를 시작하니 머릿속은 깨끗해졌다.

일 대 일로 붙어 본 바 서태웅은 그간 기술이 더 늘었다. 원래도 동년배 중에서는 전국에서 손꼽힐 공격수인데. 좀 더 창의력이 생긴 것 같다. 하반기가 기대되는데.

체력도 좀 늘었고. 야외 코트에 하나 있는 벤치에 윤대협과 서태웅은 나란히 걸터앉았다. 실컷 농구하고 와서 또 농구. 그래도 단조롭지가 않네. 윤대협은 오늘 하루가 꽤 만족스러웠다.

윤대협은 허리를 쭉 펴며 벤치 뒤쪽으로 양팔을 짚었다.

오른손 손가락 끝에 뭔가 걸렸다.

별생각 없이 내려다본 윤대협의 오른손에는… 완전히 똑같은 자세로 벤치에 팔을 괸 채 음료수를 꿀꺽꿀꺽 마시고 있는 서태웅의 왼손가락이 얽혀 있었다.

앗…

윤대협의 온몸이 소리 없이 긴장으로 굳는다.

그렇다고 어색한 티를 내는 것도 웃기다. 윤대협은 일단 조용히 심호흡했다. 서태웅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다 마신 음료수캔을 구기고. 주먹으로 입술을 문질러 닦아낸다. 보송해진 입술 사이로 내려놓는 한숨이 음료수만큼 차갑다. 격렬한 운동으로 최고 심박수를 찍은 뒤 서서히 차분해지는 서태웅의 맥박이. 손끝을 통해서 전해질 것 같다.

곤란한데. 윤대협은 겹친 손끝을 흘끗 곁눈질했다. 눈을 다섯 번 정도 깜빡이고.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슬그머니 자신의 허벅지 곁으로 3cm 정도 회수한다. 거의 숨을 안 쉬고 있었던 것 같다. 괜찮아. 자연스러웠어. 아마도.

그러고 보니 서태웅의 손가락을 의식적으로 시야에 담은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윤대협의 부지런한 뇌세포가 시각 정보를 열심히 주워 담는다. 운동선수답게 길고. 운동선수답지 않게 하얗고… 툭 불거진 관절뼈와 힘 안 줘도 튀어나온 힘줄이… 역시 좀…

아니지. 남의 손을 그런 식으로 쳐다보면 안 되지. 윤대협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며 갑자기 제 오른손을 눈앞으로 가져와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 손이 좀 더 큰가? 서태웅 손도 작지는 않은데. 아까 한 마디 정도 겹친 게 여기까지 왔으니까…

“다쳤냐?”

“응?”

아. 이번엔 못 숨겼네.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서태웅 때문에 윤대협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히 생각을 들킨 것처럼 제 발 저린다.

“손. 다쳤냐고.”

“아니 뭐 그냥 좀.”

그런데 서태웅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렇게 진지한 표정 할수록 잘생김이 도드라져서 점점 더 곤란한데. 윤대협의 심경을 전혀 모르는 서태웅은.

다짜고짜 윤대협의 오른손을 낚아챘다.

에.

자신의 손을 붙든 두 손을 바라보며 윤대협의 뇌세포가 또 부지런히 시각 정보와 촉각 정보를 주워 담는다. 하얗다. 왼손은 따스한데 오른손만 조금 차갑다. 아마도 음료수캔 때문에. 촉촉하다. 악력은 제법이지만 굳은살을 감안해도 의외로 보드랍고. 확실히 윤대협의 손보다는 작다고 할지 조금… 가늘다…

서태웅은 윤대협의 오른손을 구석구석 살펴보더니. 심각하게 다친 곳은 없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아마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엄지손가락 두 개를 써서 윤대협의 손등을 꾹꾹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윤대협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뭐 하는 거야?”

“마사지.”

“아하.”

열심히도 하는구나. 윤대협은 오른손을 내맡긴 채로 생각했다. 이 녀석. 정말 곤란하네…

“잘 하는데. 어디서 배웠어?”

“어머니.”

“아하…”

약간 자랑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사지에 집중한다. 윤대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되지. 섹시한데 다정하기까지 하면. 정말 문제가 많네. 당사자는 아무 생각도 없고. 더더욱 문제다.

윤대협은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돌려서 물어보기로 했다.

“학교에서도 일 대 일 자주 하지?”

“학교?”

윤대협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붙든 채로 서태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뒤집어서 손바닥의 엄지 부분을 꾹꾹 누르면서 중얼거린다.

“별로. 가끔 멍청이만…”

윤대협의 오른손에 집중하느라 내리깐 속눈썹이 엄청나게 길어 보였다. 평소에는 아랫속눈썹만 보이는데. 지금은 위쪽도 아주 잘 보인다. 중학교를 갓 졸업했던 4월에는 동글동글했던 얼굴 라인도 여름을 통과하며 제법 날카로워졌나 했더니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면 여지없이 곡선이다.

“강백호랑? 의외로 사이좋구나.”

“얼마 못 해.”

흥하고 코웃음을 친다. 게임이 안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뭔가 덧붙인다. 무식한 게 힘만 좋아서 다치지나 말든가 어쩌구저쩌구. 왜 다들 서태웅이 무뚝뚝하다고 할까. 이렇게 종알거리는데. 윤대협은 웃으면서 대꾸해줬다.

“그래도 디펜스는 좋잖아.”

“늘긴 했음.”

티격태격하다가도 쿨하게 인정한단 말이지. 사이 좋은 동료가 있어서 부럽다. 윤대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태웅의 내리깐 속눈썹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손가락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낯익은 감각에 움찔했다.

서태웅이 이번에는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깍지처럼 끼운 것이다.

아니. 아니아니아니. 이건 좀. 윤대협이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서태웅의 손가락은 윤대협의 손가락 틈을 단단히 붙잡고 위로 아래로 꺾으면서 윤대협의 손가락 관절의 움직임을 확인한다.

아. 그런… 의미가 아니구나. 지극히 순수하고 물리적이며 거침없는 기세에 윤대협은 안도했다. 여자애들하고나 해 본 손깍지인데. 서태웅의 손가락은 당연히 그들보다는 훨씬 굵고 길어서. 손가락 사이 빈틈을 꽉 채우지만 제 것보단 가느다란지라 불편할 정도는 아니고. 여자애들과 비교도 안 되게 단단한 힘으로 꾸욱 잡아 오니까. 왠지 이쪽도 한 번 제대로 맞잡아보고 싶어지는 게 역시나… 섹시하다는 생각이…

윤대협은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기 전에 먼저 손부터 빼냈다.

“고마워. 시원하네.”

서태웅은 대꾸도 없이 어깨만 까딱인다. 윤대협은 서태웅의 손끝이 남김없이 지나간 오른손을 슬슬 만지작거리면서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런데 말이야.”

결국 돌리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런 거…”

학교에서 나 말고 다른 사람과 일 대 일을 하다가 누군가 손가락을 잘못 짚어도. 발목이 좀 이상한 것 같다거나 어깨를 좀 주물러 달라고 해도.

“착각할 수도 있잖아.”

서태웅이 닿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남자에게도 혹시나 서태웅이 섹시하게 보일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역시 거기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윤대협은 그냥 적당히 얼버무렸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해줄 수 있는 말 정도로.

“하.”

오산이었다.

서태웅 앞에서 윤대협이 언제나 그렇듯이.

큰 소리로 코웃음 친 서태웅이 윤대협을 똑바로 마주 본다.

“너나 하지 마.”

진짜로 울컥한 감정을 담아서 쏘아붙이더니.

그대로 뒤돌아서 가방 들고 저벅저벅 걸어가 버렸다.

혼자 남은 윤대협은 서태웅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나…?”

어라… 내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도 했나…? 혹시 서태웅이 섹시하다는 생각부터가? 하면 안 되는 생각인 건가? 물론 연하에다가 남자이니까 대놓고 얘기하기는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어라?

혼란에 빠진 윤대협을 코트 한가운데에 홀로 남긴 채 여름 태양이 느리게 낮아진다.


전국 대회에서 돌아온 북산에 연습경기를 청해 온 학교는 올해 예선에서는 대진운이 나빴지만 작년까지는 8강권이었던 곳이다. 북산으로서도 전국의 성과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좋은 기회였다. 공개 연습임에도 하반기를 대비한 훈련에 바빠 감독이나 선수들이 직접 참관하러 오긴 어려웠지만 전력 분석 담당자는 몇 명 있었다.

“앗! 능남 스파이다!”

“정찰이라고 불러 주세요!”

물론 박경태처럼 압도적인 친분을 자랑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대 팀이 아직 도착하기 전부터 북산 선수들에게 전국대회 소감을 물으며 거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될성부른 기자의 싹이다.

“앗! 서태웅 선수다!”

시야에 들어 온 서태웅을 보고 일단 시선을 끌어 둔 박경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까만 두 눈을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서태웅 선수는 남자가 봐도 섹시한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북산고 체육관에 일대 소란이 일었다.

“갑자기 뭐야? 전국이랑 뭔 상관이야?”

“아, 이건 그냥 사담으로! 오늘 아침 농구부에서 유행한 질문이라서요!”

“능남은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거야…”

“능남 욕하지 마세요!”

엉망진창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에 정대만 혼자 진지하게 대답한다.

“아니, 평범하게 '섹시'는 없지. 백 보 양보해서 남자가 봐도 멋진 남자까진 몰라도.”

“역시 그런가요?”

“그래. 불가능하다고 본다.”

“서태웅 선수는요?”

혼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최초의 타겟에게 박경태가 재차 물었다. 서태웅은 별다른 고찰 없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있어.”

“정말요?”

“어.”

박경태가 누구냐고 물으려던 순간 체육관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인사와 함께 처음 보는 저지를 입은 선수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감독들이 인사를 주고받고 선수들은 본격적인 시합 준비에 들어간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담 같은 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날 경기는 북산의 넉넉한 승리. 양 팀의 실력 차이와 별개로, 초인적인 힘으로 한 달 만에 재활에서 돌아온 강백호가 4쿼터에 투입되어 처음으로 실전 맛을 보았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음에도. 서태웅은 무언가 부족하다 느꼈다. 아무래도 전국 대회만 한 짜릿함은 없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능남으로 쳐들어갔다.

절대 박경태가 윤대협 얘기를 꺼내서는 아니고.

그래서 보고 싶어진 거 아니고.

그냥 농구가 부족해서.

좀 더… 찌릿찌릿한 승부를 원해서.

그런 것엔 윤대협만 한 상대가 별로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 대 일은 재미있다.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한 번도 만족스러운 적 없었다. 할수록 더 하고 싶기만 했다. 퍼부을수록 갈증이 나는 잘못된 음료수. 윤대협과의 승부는 언제나 그렇다.

윤대협은 다 좋은데. 농구를 안 할 때 너무 쳐다본다. 그게 좀. 서태웅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불편한 것까진 아니고. 어떤 단어로 포착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달라붙는 듯한 시선 속의 어떤 불온함을 감지하고 있었다. 특히 서태웅이 윤대협을 보지 않을 때 농도가 짙어졌다.

서태웅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명료한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저 전신의 솜털 끝으로 윤대협의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흘끗 스치는 순간마다 자신의 전신을 조각조각 집요하게 훑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러다가 결국 손끝이 닿았을 때.윤대협은 뭐에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웃기고 자빠졌네. 서태웅은 하필이면 그 순간 한창 음료수를 마시는 중이라서 불가피하게 코웃음을 참았다. 무슨 사춘기 여자애도 아니고. 서태웅을 보고 꺅꺅 소리 지르는 응원단조차 윤대협처럼 수줍음을 타진 않는다. 서태웅은 어이가 없었다. 끈적하게 쳐다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런 주제에 손은 그대로 둔다. 뜨끈뜨끈하고 축축하고 제 것보다 훨씬 굵직한 손가락을 서태웅의 손가락 틈새에 얽은 채로.

뭔가 부당하다. 뭐가 어떻게 그런지 설명할 순 없지만 하여튼 불만스럽다. 그래서 해소할 수도 없다. 서태웅은 가슴에 뭉게뭉게 쌓여가는 무언가를 내려보려고 애꿎은 음료수를 원샷했다. 입가에 묻은 음료수를 닦는 것마저 윤대협은 집요하게 쳐다본다. 그러니까 이런 거.

윤대협은 뒤늦게 스르륵 오른손을 회수하더니 묵묵히 쳐다본다. 서태웅은 문득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다친 건 아니겠지?

부상은 절대 안 돼. 꼼꼼하게 검사한다. 두텁고 단단한 손바닥은 서태웅보다 아주 약간 굵다. 이런 것도 서태웅보다 하나하나 더 크다는 게 정말 열 받는다. 사사건건 어른스럽다.

박경태가 갑자기 던진 질문에 윤대협이 떠오른 건 아마 그래서겠지.

꿰뚫는 듯한 부드러운 무표정. 갑작스러운 승부에도 질문에도 절대 당황하지 않는 차분한 눈동자. 빙빙 돌리는 듯하다가도 결국 핵심을 찔러 와 여러 날을 고민하게 만드는 목소리. 서태웅의 기억 속의 윤대협은 좀 열받게 굴고 능청스럽게 놀리고 툭툭 찔러 보고 그런 것들도 다 승부의 일부라고 차치하고 나면. 결국에는 어른스럽고. 다정하다. 그런 데서 섹시함이 느껴지는 거겠지. 섹스는 어른들이 하는 거니까.

서태웅은 무심코 잡고 있던 윤대협의 오른손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가끔 농구 실컷 하고 들어 온 아들에게 해주던 지압 루틴을 흉내 낸다. 이러면 긴장된 손의 미세근육이 풀리면서 왠지 전반적인 컨디션까지 좋아지는 기분이 든다.

윤대협도 나한테 잘해주니까.

자꾸 쳐다보는 것도 뭐. 좋아서 그러겠지.

마지막엔 엄마가 했던 것처럼 손깍지를 꼬옥 끼고 손목을 꺾어서 스트레칭으로 마무리. 이러면 가장 개운하다. 윤대협은 또 사춘기 소녀인 양 황급히 손을 뺀다. 서태웅은 어이가 없었다. 실컷 주무를 땐 내버려둬 놓고 이제 와서.

“그런데 말이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런 거…”

조심스럽게 늘어놓는다는 말이 저딴 거라니.

“착각할 수도 있잖아.”

그럼 너는.

착각할 일 없단 소린가?

“하.”

서태웅은 화가 났다.

자기가 먼저 다짜고짜 해달라는 승부도 해 주고. 친절하게 조언도 해 주고. 물어본 것도 다 대답해 주고. 그런가 하면 조금 더워질 정도로 여기저기 뚫어져라 쳐다보고. 손끝 좀 닿았다고 화들짝 놀라고. 그래 뭐 내가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 서태웅은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다 착각이라고?

“너나 하지 마.”

서태웅은 원흉이나 다름없는 윤대협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경고했다.

씩씩거리며 집에 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윤대협의 멍청한 얼굴이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았다.서태웅은 괜히 주먹을 꾹 쥐었다.

양손에 남은 낯선 체온의 여운이 붙들린다.

여름볕에 녹아들지 않는다.